-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Montgomery Scott
- Theme from 'When I heard the Learn'd Astronomer' by Walt Whitman
- Written by. Jade
A Mystical Lecture
강단 앞은 하얀 글자 하나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모조리 썰렁했다. 제일 처음 휴강이라는 큼직한 글자를 만난 생도들은 책도 제대로 내려놓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고 없는 휴강 공지 아래에 몇 줄이 더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잽싸게 계단식 강의실을 가로질러 나머지 부분을 크게 읽었다. 생도들이 받아든 것은 특정 시간과 약간의 지시사항이었다.
이런저런 논의를 하고 있는 생도들 틈으로 누군가는 가장 먼저 강의실을 벗어났다. 생도들은 그 뒤에도 저것이 과연 그들에게 내려진 과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느라 몇 분을 더 소모했다.
* * *
별을 일순위로 연구하지는 않아도 별을 탐험하는 입장에서 소령은 가벼운 천문학적 지식은 충분히 생도들에게 가르쳐 줄 능력이 있었다. 싹싹한 말솜씨는 없어도 남을 이해시킬 정도의 명쾌한 언변은 있는 힘껏 구사할 수 있는 게 붉은 셔츠의 소령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소령은 누구보다도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와 메모지를 한 움큼 들고 샌프란시스코의 높은 건물들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령은 그러다 자신의 기억 하나를 주워 들게 되었다. 박식한 과학자가 장교들을 위해 초청 강연을 열었다고 해서 고개를 기웃거렸었다. 그도 들어본 이름이었고, 남들의 지식을 평가절하 하는 오만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 소령은 한껏 학생 분위기를 뽐내며 강연에 임했다.
허나 정확히 15분 뒤 소령은 주변의 공기를 빼앗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강의실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소령의 뒤로 차트와 다이아그램과 숫자들이 휘날리며 반짝였다. 엔지니어로서 세상의 모든 그래프와 수치를 존중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우주의 아름다움을 차례차례 분해해가는 것 같은 붉은 막대들을 끝까지 보고 있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소령은 그 날 혼자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그 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오늘의 밤하늘에는 어제와 크게 차이점을 찾을 수 없는 별들과 어두움이 구석구석 박혀 있었다. 소령은 그 밤을 감상하다 집으로 돌아갔었다.
소령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제 처지가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언제까지고 우주를 함께 가르고 싶은 하얀 동체는 그에게 적어도 낭만을 앗아가지는 않았다.
메모를 들고 그는 다시 걸었다. 세 번째로 쓰인 이름의 건물을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 * *
"다음 행선지를 물색 중이기라도 하신 거예요?"
함선 안에서 책을 보는데 중위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스타플릿에서 두드러지게 하얀색을 품고 있는 엔터프라이즈호 안에서도 세 번째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나이가 눈썹을 올렸다.
"무슨 소리야?"
"보시고 있는 책 때문에요."
소령이 자신이 보던 책의 제목도 잊었다는 듯 책표지를 잠깐 펼쳤다.
"아아, 뭐 큰 의미는 없어. 그냥 별들의 진리를 안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난 내가 헤쳐 나갈 곳보다 내가 탈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중위는 씩 웃었다.
"소령님다운 말씀이시네요."
대답을 듣고 나서 그는 자신이 정말로 그 말과 부합하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는 한 함선의 기관실장이었고, 우주와 은하와 성운을 맴도는 배의 중추를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로서 별들에 대한 지식은 그의 코어가 피해야 할 경로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소령은 멀뚱히 눈꺼풀을 깜빡이면서 펼쳐진 페이지 속 별자리 사진을 바라보았다. 우주를 꽤나 오래 지켜본 그에게는 시시할 지도 모르는 종이의 납작한 빛이 반짝반짝했다.
이내 엔터프라이즈의 기관실장인 몽고메리 스캇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사실 어떠한 해결책도 적용될 수 있는 미지의 공간이 이따금씩 그것이 품은 보석을 내보이며 그를 놀렸다. 스캇은 함선을 공부할지언정 우주를 뜯어볼 작정은 떠올리지도 말기로 결심했다.
* * *
"강의실이 마음에 안 들면 차라리 장소를 바꾸면 되는 거 아니었나. 덕분에 시간만 낭비했었다."
스캇은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그림자를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요, 당신?"
"헤드쿼터에서 오늘 소령이 수업을 하는 걸로 알았는데."
최대한 차분하게 숨을 고른 뒤에 스캇은 눈을 좁혔다. 말도 하고, 심지어 뒤를 돌기도 하는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스캇은 스타플릿에서 기본적으로 지급하는 검은 티셔츠를 알아본 뒤에야 낯선 남자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스캇은 곧 콧잔등을 구기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사과는 드리지. 갑자기 휴강 공지를 때린 건 학생들에게 썩 예의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남자는 반응이 없었다. 스캇이 슬금슬금 발을 옮겼다.
"그런데 당신은 생도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당신의 지식이 궁금했을 뿐이다."
옥상 어디에나 있을 먼지 낀 구조물에 가볍게 엉덩이를 걸친 그는 짙어지고 있는 밤하늘만 보았다. 스캇은 아무렇지도 않게 명당을 차지해버린 남자를 비키게 만들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내지 못해 결국 그의 옆자리에 앉을 준비를 했다.
"스타플릿 소속이요?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남자의 청록색 시선이 갑자기 스캇에게 와 닿았다.
"적어도 지금은 당신보단 지위가 높으니 거슬리는 말투는 그만 접어 줬으면 좋겠군."
스캇은 표정을 구기면서도 속으로는 움찔한 기운이 남아 있어 거칠게 투덜대지 못했다. 다리를 흔들거리는 법도 없이 멈춰있는 남자의 모습은 신기하기도 했고 이질감이 흐르는 것도 같았다. 스캇은 소매로 자신이 앉을 자리를 탁탁 털었다. 남자가 잠시 자신의 눈동자를 내려 손짓으로 먼지를 치워내는 스캇을 보았다.
스캇이 남자의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 그는 8분 정도의 여유를 확인했다. 오피스로 사용되는 건물들이 차츰 깜깜한 구석으로 사라져갔다.
"혹시 날 여기서 기다렸습니까? 나도 계산 끝에 후보지가 되는 몇 군데만 추렸을 뿐인데."
남자는 엉뚱한 말을 꺼냈다.
"…그 후보지의 개수는?"
"5군데 정도 됩니다."
"나쁘지 않은 수준이군."
스캇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던 시작점과는 완전히 엇나간 곳에서 대화는 끊겨버렸다. 스캇은 자신보다도 사람 대하는 태도가 부드럽지 못하다며 속으로 정체 모를 남자를 향해 혀를 찼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캇은 문득 그와 기다리는 대상이 같다는 점에 표정을 미묘하게 찡그렸다.
"당신, 나보다 계급이 높다고요? 그럼 중령입니까? 함장이라면 어디서든 한 번 마주쳤을 텐데 도무지 그런 기억이 없어서 말이지."
목소리 대신 청록빛 시선이 스캇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아마 저 제스처의 의미는 긍정이겠지? 하면서 벌써 그의 속내를 추측해보는 스캇이었다. 스캇은 느닷없이 그러한 입장으로 떨어진 자신의 현재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못했다.
남자의 가지런한 머리는 밤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았다. 스캇이 검지로 코를 비비며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생도들은 끝내 여기에 오지 않았군."
"내가 완벽한 장소를 적어주지 못했으니까 할 수 없는 노릇이죠."
둘은 그 대화 속 맥락에서만 존재하는 무엇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숱한 고층 건물들 중에서 이곳의 옥상을 골라 왔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면모 한 가지는 파악할 수가 있었다. 스캇은 첫인상만으로도 밤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를 슬쩍 훑었다. 적어도 그와는 우주 정도는 자연으로서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공유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그건 왜 묻나."
"당신은 나를 아는 눈치라서."
"엔터프라이즈호의 기관실장을 모르는 장교도 있었나."
스캇이 애써 입꼬리를 부여잡고 큼큼거렸다.
"…뜬금없이 비행기 태우지 말고, 자기소개 좀 해 보죠."
남자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에 관해 말하길 꺼려했다. 대신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곧 당신이 기다리던 광경이 펼쳐질 텐데."
"…꼭 당신한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하네."
버릇처럼 말대답을 하긴 했으나 스캇도 곧 시간이 되어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스캇은 두 손을 문질러 닦은 다음 구조물에 손바닥을 고정시키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스캇이 조용히 숫자를 거꾸로 셌다. 남자는 그의 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셋, 둘, 하나.
스캇이 설명과 사진에서 그치고 말 천문학 수업보다 더 생도들에게 가치 있다고 판단했던, 몇 억 년 전의 혜성이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엔터프라이즈로 그 녹색 꽁무니를 쫓아간다 하더라도 다신 볼 수 없을 빛의 직선이 스캇의 시선을 꿰뚫었다. 스캇은 결국 자신이 예상했던 생도 몇 명조차 대동하지 못한 채 이름도 듣지 못한 남자와 함께 그의 생에 단 한 번 허락된 혜성을 목격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스캇은 남자가 그 자세로 혜성을 제대로 보기는 했었을 지 의심했다. 스캇은 아직 멍한 기색이 지워지지 않은 얼굴로 남자를 마주했다. 눈동자라는 일반적인 단어보다는 그에게 꼭 맞는 다른 어휘가 존재할 것 같은 눈으로 남자는 스캇의 기묘한 눈초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며 입꼬리는 올렸다.
"당신 지금 웃었…."
한 마디는 붙여야 했다. 스캇의 눈에 그의 미소는 꼭 예상을 빗나가긴 했어도 그럭저럭 즐거움을 주었다는 대상을 만났다는 뜻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그런데 스캇은 남자의 눈꺼풀이 제 위치를 되찾았을 때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색깔 탓인지, 방금 보았던 혜성의 빛이 어른거렸다.
남자는 긴 다리를 뻗어 바닥에 닿게 한 뒤 미끄러지듯 구조물에서 내려왔다. 스캇이 인상을 찡그렸다. 남자는 엔터프라이즈의 기관실장에 관한 탐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밤안개 같은 웃음이 여전히 남자의 입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으나 스캇이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혜성이 또 지나가서 스캇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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