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son Bourne in the dream of Bruce Wayne
- Original Date 2016. 08. 16
- Written by. Jade
In a Dreamy Mission
꿈의 내용은 상상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제이슨 본이 새로운 프로그램에 발탁되고 나서 참가했던 첫 트레이닝 시간에 들었던 말이었다. 꿈은 상상력이 발현되는 장소가 아니다. 잠들기 전 경험했던 가장 강렬한 현실이 꿈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꿈은 어떻게 보면 과거가 된 현실을 추적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단서이다. 꿈은 비현실적이지만 또한 현실적이다. 그 모호한 경계를 구분하고 양쪽을 넘나들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면 요원은 최고의 자산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본은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가 그 말들을 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본은 조용히 튜브를 꺼내 한 남자의 팔에 둘렀다. 만약 꿈이 상상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면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 꿈을 꾸었을 남자였다. 아니, 꿈이 마지막 현실의 반영이라고 해도 남자가 신나는 꿈을 꿀 것 같지는 않았다. 신문에 실리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지루함이 있었다.
브루스 웨인은 한 팔을 통째로 본에게 내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제이슨 본에겐 그저 읽혀야 하는 대상이었다.
고담시의 모든 것에 신경을 기울인다는 도시의 황태자는 그 지역의 살아있는 명물이자 논란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은 자경단원에 대해서는 유독 불분명한 태도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찰청장조차도 은근히 '배트맨'의 편을 들고 있는 가운데 브루스 웨인만이 그를 비난하지도, 응원하지도 않았다. 공권력이 아닌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라는 웨인의 위치를 고려하더라도 어딘가 수상쩍었다.
CIA는 배트맨이 출현한지 1년이 넘어가던 해에 그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고담은 CIA가 지부를 두지 못한 미국 내 유일한 도시였다. 기관을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6시간 이내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력을 가지고도 유일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암흑 지대를 언제까지고 내버려둘 수 없었다. 중앙정보국이 고담의 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을 주시해온 이유였다.
본은 브루스 웨인의 옆에 자신이 누울 만한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와 한 침대에 눕기가 껄끄러워 본은 이불을 바닥으로 적당히 끌어내렸다. 가구를 사용하면 후에 정리를 하기가 불편했다. 본은 두툼한 이불을 최대한 고르게 펼치고 자신의 팔에도 튜브를 연결했다.
제이슨 본은 브루스 웨인의 마지막 현실을 볼 것이다.
필름이 순간적으로 튕기면서 발생하는 약간의 번뜩임이 되어 브루스 웨인의 꿈으로 흘러들어갈 때, 제이슨 본은 트레이닝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떠올렸다. 특정 개인들은 자신이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는 비밀로 꿈을 빚어내기도 한다. 비밀을 꿈의 재료로 삼는 부류는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혼자만의 메아리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자들이다. 메아리는 자신의 목소리이지만, 또 다르게 따지면 완벽하게 그 자신의 목소리는 아니다. 자기와 타자가 반씩 섞인 공간에서 안정을 찾아야만 하는 이들의 꿈은 그래서 정보의 천국이다. 꿈에 흡수되어 꿈을 흡수하는 요원들은 그런 곳에서 가장 짜릿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본은 자신이 브루스 웨인의 꿈에 안착했음을 느꼈다. 질량은 사라졌으나 감각은 더욱 깨어났다. 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 도시의 설계도를 연상케 하는 배경이었다. 서늘하면서 습한 공기가 공중을 떠다녔고 빛은 결핍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했다는 증거로 꼽히곤 하는 뮤지컬 극장이 있는 것 같았다. 본은 누렇고 까맣게 번뜩이는 간판을 보았다. 간판이 광고하는 것은 조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이었다.
그러나 뮤지컬이 행해지고 있어도 그곳의 본질은 지하였다. 본은 어떤 구석으로도 빛이 들어올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태양이 아닌 불빛으로 깨어나는 도시는 원초적인 의미에서는 영원한 밤에 시달리는 땅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제이슨 본은 이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엉뚱한 뮤지컬과 기대할 수 없는 낮은 브루스 웨인의 현실인가, 망상인가, 혹은 비밀인가.
신중하게 걷던 본은 박쥐가 푸드덕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빈 손으로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를 박쥐를 바라보았다. 타인의 꿈에 흘러들어온 요원은 자신이 방문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본은 무기를 꺼내들지 않았다. 박쥐도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박쥐는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이후 더 많은 박쥐들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것처럼 나타나고 날아가길 반복했다.
제이슨 본은 이제 그만 브루스 웨인을 찾아야 했다. 꿈의 주인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안에 존재하는 법이었다. 본은 혹시 날아가버린 박쥐 중에 브루스 웨인의 의식이 섞여있지는 않았기를 바라면서 지하도이자 대로이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길을 걸었다. 그 와중에도 박쥐들은 날아올랐다. 본은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다가 박쥐들이 나타나는 방향이 다 똑같다는 걸 간파하고 움직임을 수정했다.
브루스 웨인은 박쥐들이 탄생하는 곳에서 그 까만 날갯짓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본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꿈 속에서는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꿈에 속한 요소처럼 보여야 하는 본은 브루스 웨인이 자신을 알아채주길 기다려야 했다. 본은 브루스 웨인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는 허망할 뿐 시끄럽기만 한 반복에서 무슨 의미를 찾는 것인지 박쥐들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그가 본을 발견한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의자가 필요한가?"
브루스 웨인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본의 옆에 가죽 의자가 등장했다. 꿈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 상식인 한편 타인의 꿈에 침입하는 CIA의 기술은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사장이라고 해도 알 수 없는 극비 사항이었다. 본은 당황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브루스 웨인이 본을 보았다. 본은 별로 걱정스럽지 않았다. 기관에서도 인정받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본은 브루스 웨인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 꿈은 으레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할 게 있어서 나타난 게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식으로 사고를 하면 도움이 된다고들 하니까. 내 머리가 그런 흔한 조언을 새기고 있을 줄은 몰랐군. 하지만 질문자를 만들어내야 할 정도로 내가 나약하다는 건 인정할 수 있으니, 어디 한 번 질문해봐."
여러 사람의 꿈에 출입해봤지만 이런 식의 흐름은 처음이었다. 본은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피상적인 질문을 골라보았다.
"왜 그렇게 박쥐들을 보고만 있는 거지? 시끄럽지 않나?"
"…날카로운 질문이군."
본이 의아해했다. 혼자만의 흐름을 갖는 남자가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사실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저 우연하게 마주쳤던 기억이고 스쳐 지나가는 영감이었지. 여기에 박쥐가 있어야 할 타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군."
브루스 웨인이 그렇게 인정함과 동시에 박쥐들이 사라졌다. 본은 아무렇지도 않게 박쥐를 다루는 브루스 웨인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왜 어둡지?"
"내가 빛을 잃어버린지 오래니까."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이 철학적이라는 정보를 받은 적이 없는 본은 자신의 대응 전략을 바꿔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 본은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브루스 웨인의 시선이 매우 특이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는 꼭 애증했던 선생님이나 잃어버린 부모님을 보고있는 것 같았다. 브루스 웨인은 본을 연민하고 있었다.
본은 혼란스러웠다.
"꿈에서조차?"
"그 어느 곳에서도."
"…힘들겠군."
"그래서 살아있는 거야.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빛을 뿌려주기 위함이지."
본은 조금씩 이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목적을 알았다. 브루스 웨인은 본의 질문을 빌려 그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꺼내고 있었다. 본의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 입증되면 아무리 입을 여는 게 어색한 성격의 사람이라도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이 한 행동은?"
"내 정신을 제외한 모든 걸 희생했다. 기부를 하고 수많은 자선사업을 벌이고, 무법지대와 폐허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했어. 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이타성을 모조리 끌어내서 변화를 만들어보려 했지…."
브루스 웨인은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을 했나?"
"나는 실패했어. 그래, 나는 이 말을 들어야 했던 거군. 실패했다고."
브루스 웨인의 눈동자가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아 본이 얼굴을 돌렸다. 뮤지컬 간판이 아까보다 더 요란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웨인 부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뮤지컬을 보고 나오던 도중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브루스 웨인만이 알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웨인 부부는 그저 고담 시민들의 바닥난 도덕성에 희생당한 불행한 위인들일 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본은 최후의 질문을 던질 차례가 왔음을 직감했다.
"당신은 배트맨인가?"
꿈 속에서나 가면을 벗을 수 있는 배트맨이 차갑게 웃었다.
"내가 언제까지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하룻밤의 자조를 마친 그가 눈을 감았다. 의미를 다한 꿈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제이슨 본은 노련하게 꿈에서 빠져나왔다.
본은 배운대로 꿈에서 깨어난 즉시 튜브를 거두고 자신이 있었던 흔적을 지웠다. 아직 잠들어 있는 브루스 웨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얼핏 보면 꿈 하나 꾸지 않고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본은 배트맨이 그런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모든 걸 폄하한다는 걸 배우고 말았다.
본은 들어올린 이불 자락을 브루스의 몸에 덮어 주었다. 제이슨 본은 그 날 처음으로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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