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over/본브루스] In a Dreamy Mission

- Anything/Crossover 2016. 8. 31. 16:18 posted by Jade E. Sauniere

- Jason Bourne in the dream of Bruce Wayne

- Original Date 2016. 08. 16

- Written by. Jade


In a Dreamy Mission




  꿈의 내용은 상상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제이슨 본이 새로운 프로그램에 발탁되고 나서 참가했던 첫 트레이닝 시간에 들었던 말이었다. 꿈은 상상력이 발현되는 장소가 아니다. 잠들기 전 경험했던 가장 강렬한 현실이 꿈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꿈은 어떻게 보면 과거가 된 현실을 추적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단서이다. 꿈은 비현실적이지만 또한 현실적이다. 그 모호한 경계를 구분하고 양쪽을 넘나들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면 요원은 최고의 자산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본은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가 그 말들을 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본은 조용히 튜브를 꺼내 한 남자의 팔에 둘렀다. 만약 꿈이 상상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면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 꿈을 꾸었을 남자였다. 아니, 꿈이 마지막 현실의 반영이라고 해도 남자가 신나는 꿈을 꿀 것 같지는 않았다. 신문에 실리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지루함이 있었다.


  브루스 웨인은 한 팔을 통째로 본에게 내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제이슨 본에겐 그저 읽혀야 하는 대상이었다. 


  고담시의 모든 것에 신경을 기울인다는 도시의 황태자는 그 지역의 살아있는 명물이자 논란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은 자경단원에 대해서는 유독 불분명한 태도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찰청장조차도 은근히 '배트맨'의 편을 들고 있는 가운데 브루스 웨인만이 그를 비난하지도, 응원하지도 않았다. 공권력이 아닌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라는 웨인의 위치를 고려하더라도 어딘가 수상쩍었다. 


  CIA는 배트맨이 출현한지 1년이 넘어가던 해에 그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고담은 CIA가 지부를 두지 못한 미국 내 유일한 도시였다. 기관을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6시간 이내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력을 가지고도 유일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암흑 지대를 언제까지고 내버려둘 수 없었다. 중앙정보국이 고담의 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을 주시해온 이유였다.


  본은 브루스 웨인의 옆에 자신이 누울 만한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와 한 침대에 눕기가 껄끄러워 본은 이불을 바닥으로 적당히 끌어내렸다. 가구를 사용하면 후에 정리를 하기가 불편했다. 본은 두툼한 이불을 최대한 고르게 펼치고 자신의 팔에도 튜브를 연결했다. 


  제이슨 본은 브루스 웨인의 마지막 현실을 볼 것이다.


  필름이 순간적으로 튕기면서 발생하는 약간의 번뜩임이 되어 브루스 웨인의 꿈으로 흘러들어갈 때, 제이슨 본은 트레이닝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떠올렸다. 특정 개인들은 자신이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는 비밀로 꿈을 빚어내기도 한다. 비밀을 꿈의 재료로 삼는 부류는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혼자만의 메아리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자들이다. 메아리는 자신의 목소리이지만, 또 다르게 따지면 완벽하게 그 자신의 목소리는 아니다. 자기와 타자가 반씩 섞인 공간에서 안정을 찾아야만 하는 이들의 꿈은 그래서 정보의 천국이다. 꿈에 흡수되어 꿈을 흡수하는 요원들은 그런 곳에서 가장 짜릿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본은 자신이 브루스 웨인의 꿈에 안착했음을 느꼈다. 질량은 사라졌으나 감각은 더욱 깨어났다. 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 도시의 설계도를 연상케 하는 배경이었다. 서늘하면서 습한 공기가 공중을 떠다녔고 빛은 결핍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했다는 증거로 꼽히곤 하는 뮤지컬 극장이 있는 것 같았다. 본은 누렇고 까맣게 번뜩이는 간판을 보았다. 간판이 광고하는 것은 조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이었다.


  그러나 뮤지컬이 행해지고 있어도 그곳의 본질은 지하였다. 본은 어떤 구석으로도 빛이 들어올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태양이 아닌 불빛으로 깨어나는 도시는 원초적인 의미에서는 영원한 밤에 시달리는 땅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제이슨 본은 이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엉뚱한 뮤지컬과 기대할 수 없는 낮은 브루스 웨인의 현실인가, 망상인가, 혹은 비밀인가.


  신중하게 걷던 본은 박쥐가 푸드덕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빈 손으로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를 박쥐를 바라보았다. 타인의 꿈에 흘러들어온 요원은 자신이 방문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본은 무기를 꺼내들지 않았다. 박쥐도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박쥐는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이후 더 많은 박쥐들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것처럼 나타나고 날아가길 반복했다.


  제이슨 본은 이제 그만 브루스 웨인을 찾아야 했다. 꿈의 주인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안에 존재하는 법이었다. 본은 혹시 날아가버린 박쥐 중에 브루스 웨인의 의식이 섞여있지는 않았기를 바라면서 지하도이자 대로이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길을 걸었다. 그 와중에도 박쥐들은 날아올랐다. 본은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다가 박쥐들이 나타나는 방향이 다 똑같다는 걸 간파하고 움직임을 수정했다.


  브루스 웨인은 박쥐들이 탄생하는 곳에서 그 까만 날갯짓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본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꿈 속에서는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꿈에 속한 요소처럼 보여야 하는 본은 브루스 웨인이 자신을 알아채주길 기다려야 했다. 본은 브루스 웨인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는 허망할 뿐 시끄럽기만 한 반복에서 무슨 의미를 찾는 것인지 박쥐들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그가 본을 발견한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의자가 필요한가?"


  브루스 웨인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본의 옆에 가죽 의자가 등장했다. 꿈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 상식인 한편 타인의 꿈에 침입하는 CIA의 기술은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사장이라고 해도 알 수 없는 극비 사항이었다. 본은 당황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브루스 웨인이 본을 보았다. 본은 별로 걱정스럽지 않았다. 기관에서도 인정받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본은 브루스 웨인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 꿈은 으레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할 게 있어서 나타난 게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식으로 사고를 하면 도움이 된다고들 하니까. 내 머리가 그런 흔한 조언을 새기고 있을 줄은 몰랐군. 하지만 질문자를 만들어내야 할 정도로 내가 나약하다는 건 인정할 수 있으니, 어디 한 번 질문해봐."


  여러 사람의 꿈에 출입해봤지만 이런 식의 흐름은 처음이었다. 본은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피상적인 질문을 골라보았다.


  "왜 그렇게 박쥐들을 보고만 있는 거지? 시끄럽지 않나?"

  "…날카로운 질문이군."


  본이 의아해했다. 혼자만의 흐름을 갖는 남자가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사실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저 우연하게 마주쳤던 기억이고 스쳐 지나가는 영감이었지. 여기에 박쥐가 있어야 할 타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군."

  

  브루스 웨인이 그렇게 인정함과 동시에 박쥐들이 사라졌다. 본은 아무렇지도 않게 박쥐를 다루는 브루스 웨인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왜 어둡지?"

  "내가 빛을 잃어버린지 오래니까."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이 철학적이라는 정보를 받은 적이 없는 본은 자신의 대응 전략을 바꿔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 본은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브루스 웨인의 시선이 매우 특이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는 꼭 애증했던 선생님이나 잃어버린 부모님을 보고있는 것 같았다. 브루스 웨인은 본을 연민하고 있었다. 


  본은 혼란스러웠다.


  "꿈에서조차?"

  "그 어느 곳에서도."

  "…힘들겠군."

  "그래서 살아있는 거야.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빛을 뿌려주기 위함이지."


  본은 조금씩 이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목적을 알았다. 브루스 웨인은 본의 질문을 빌려 그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꺼내고 있었다. 본의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 입증되면 아무리 입을 여는 게 어색한 성격의 사람이라도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이 한 행동은?"

  "내 정신을 제외한 모든 걸 희생했다. 기부를 하고 수많은 자선사업을 벌이고, 무법지대와 폐허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했어. 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이타성을 모조리 끌어내서 변화를 만들어보려 했지…."

  

  브루스 웨인은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을 했나?"

  "나는 실패했어. 그래, 나는 이 말을 들어야 했던 거군. 실패했다고."


  브루스 웨인의 눈동자가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아 본이 얼굴을 돌렸다. 뮤지컬 간판이 아까보다 더 요란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웨인 부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뮤지컬을 보고 나오던 도중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브루스 웨인만이 알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웨인 부부는 그저 고담 시민들의 바닥난 도덕성에 희생당한 불행한 위인들일 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본은 최후의 질문을 던질 차례가 왔음을 직감했다. 


  "당신은 배트맨인가?"


  꿈 속에서나 가면을 벗을 수 있는 배트맨이 차갑게 웃었다.


  "내가 언제까지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하룻밤의 자조를 마친 그가 눈을 감았다. 의미를 다한 꿈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제이슨 본은 노련하게 꿈에서 빠져나왔다.


  본은 배운대로 꿈에서 깨어난 즉시 튜브를 거두고 자신이 있었던 흔적을 지웠다. 아직 잠들어 있는 브루스 웨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얼핏 보면 꿈 하나 꾸지 않고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본은 배트맨이 그런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모든 걸 폄하한다는 걸 배우고 말았다.


  본은 들어올린 이불 자락을 브루스의 몸에 덮어 주었다. 제이슨 본은 그 날 처음으로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    




[Crossover/본브루스] The Cat Doesn't Forget

- Anything/Crossover 2016. 8. 31. 16:17 posted by Jade E. Sauniere

- Ex-CIA Agent and Strange Black Cat

- Original Date 2016. 08. 07

- Writeen by. Jade


The Cat Doesn't Forget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아무리 괴짜에 정신 나간 인간처럼 보이는 작자들에게도 사람다운 점이 있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악당들이 펄펄 끓는다는 고담시에서도 아주 고약한 악질을 담당하고 있는 조커라는 자에게도 물론 그러한 점이 있습니다. 박쥐 인간과 숨바꼭질을 하는 게 인생의 낙이지만, 그 친구가 워낙 인기가 많아져서 자신과의 데이트에 소홀해지자 이 이상한 악당이 그만 질투심을 느끼고 만 거죠. '내 귀염둥이를 넘보다니 용서할 수 없어!' 같은 심리라고 해둡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박쥐 인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조커는 온갖 과학자들의 주리를 틀고 손톱을 뽑은 끝에 약물 하나를 얻게 됩니다. 일주일간 사람을 아주 귀엽게 만들 수 있는 효능을 가졌다나요? 조커는 낄낄거리며 박쥐 인간과 일주일쯤 아주 오붓하고 재미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행위는 때로 놀라움을 발휘합니다. 조커가 결국 그 박쥐 인간, '배트맨'애게 약물을 노출시켰거든요. 


  '아주 귀엽게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뱃시가 어린애처럼 키가 줄어들기라도 하나? 너무 귀엽겠다! 아니면 애완용 박쥐로 변하는 거 아니야? 오, 뱃시. 뱃시. 우리 뱃시!'


  하지만 이런 귀여운 바람이 조커같은 악당의 것이기 때문이었는지, 조커는 온갖 종류로 구비해 둔 케이지를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배트맨이 사라졌거든요. 조커는 배트맨 대신 악당들을 족치면서 우리 뱃시를 어디로 감춘 거냐며 발악을 했지만 소득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조커도 허술한 구석이 있어요. 배트맨이 귀엽게 변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당연히 고양이부터 떠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직 배트맨에게 프로포즈를 하려면 멀었군요, 조커.


  네. 첨단 기술이 50가지쯤 적용된 거대한 수트를 입고 다니는 배트맨은, 대상이 아주 귀엽게 변한다는 약물의 효과에 따라서 조금 거대한 고양이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몸집 큰 검은 고양이요. 뚱뚱한 고양이라고 부르는 게 더 귀엽지 않겠냐고요? 좋을 대로 하시죠. 아무튼 고담을 비밀스레 수호하던 암흑의 기사는 지금 까만 고양이입니다.


  우리야 뭐 배트맨의 가면 속에는 브루스 웨인이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 숨기지 않고 얘기하도록 하죠.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님이자 고담시의 황태자인 브루스 웨인은 참 완벽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두말할 것 없는 재력에 외모도 아주 훤칠하고, 부모님은 없지만 부모님처럼 그를 훌륭하게 챙겨주는 보호자도 있고 침대 한 구석이 서늘하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불러들일 수 있는 매력도 갖고 있습니다. 거대 기업의 회장님 노릇을 하고 있으니 머리도 좋고 행동력에 책임감도 가졌죠.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다보니 보통 사람이 그를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이겁니다. 게다가 이런 사람이 배트맨이라니. 그렇지만 바로 이 순간 위대한 배트맨이자 빈틈없는 브루스 웨인인 존재는 너무도 인간다워서 몸이 배배 꼬일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담의 수호자 배트맨은 배가 고파요.


  통신기가 부착되어 있는 수트는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체형으로 바뀌어버린지라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습니다. 가뜩이나 도움이 되지 않는 고양이들은 갑자기 등장한 뉴페이스를 경계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았어요. 고양이가 된 몸에 익숙하지도 않은 배트맨 겸 브루스 웨인은 그들을 이기지 못했죠. 그 와중에 그는 지금 배가 고프군요. 큰일입니다. 브루스 웨인께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걸 찾아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본래 그는 어떤 욕구도 잘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이 있지만 이 망할 몸뚱아리가 정신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인지 서서히 허기를 참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는 니야― 하고 힘없이 울었습니다. 귀엽긴 한데 좀 불쌍하네요. 그리고 이런 감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남자가 멈춰섰을 리가 없거든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정체도 참 귀여움이라곤 없을 것 같은 구석이 많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제이슨 본이라고 알고 있지만 본명은 다릅니다. 으음, 이건 몇몇 분들에겐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당장은 말을 아끼죠. 아무튼 그는 CIA의 일급 기밀 프로그램에서 훈련을 받은 프로 중의 프로이며, 지금은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인데도 그 훈련의 여파가 얼마나 강력한지 며칠 전에는 볼펜으로 칼 든 암살자를 때려잡았습니다. CIA의 기밀 프로그램이란 게 다 그렇죠. 


  그는 현재 자신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적들과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잠시 고담에 왔습니다. 고담시는 워낙 괴팍한 곳이라서 CIA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데다, 미국 내에서 CIA 지부가 없는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악당들이 지부에 들이닥쳐 기밀이라도 빼가면 답이 없으니까요. 그는 진짜로 기억을 잃은 상태인데 어떻게 그런 사실은 잘 느끼고 고담을 찾았습니다. 


  기억을 잃은 암살자와 고양이가 된 자경단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네요. 


  "……"

  ―…니야아.


  지금의 제이슨 본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그는 현재 굉장히 순수한 상태입니다. 사람 죽이는 기술은 몸에 남았지만 인격을 지워버리는 CIA의 프로그램은 기억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렸거든요. 그리고 순수하고 착한 영혼들은 동물에 약한 법이죠. 


  "…같이 갈래?"


  배트맨에게 보호자가 생겼군요.




* * *




  방으로 돌아온 남자는 고양이를 바닥에 살짝 내려놓았다. 그는 제일 먼저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고양이는 남자가 먹을 걸 찾아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최대한 얌전하게 앉아 있으려다가 혼자서 중심을 한 번 잃었다. 생수를 꺼내던 남자가 그 모습을 보았고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높은 지붕에서도 끄떡없는 고양이가 바닥에 앉으려다 휘청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영락없는 고양이 생김새를 한 진짜 고양이를 의심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는 두 개의 그릇에 물과 통조림의 내용물을 쏟았다. 고양이는 음식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또 휘청했다. 남자는 고양이가 부상을 입은 게 아닌가 싶어 고양이의 다리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다행히 고양이는 고양이다운 균형 능력을 되찾고 물을 할짝였다.


  골목길을 서성이던 것치고 고양이의 털은 꽤나 깨끗했다. 그는 당장 고양이를 씻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검은 고양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남자가 꺼낸 것은 중간 크기의 상자였다.


  고담으로 도망쳐온 남자는 자신이 본능적으로 선택한 피난처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그가 들어본 적도 없는 박쥐 옷차림의 자경단원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그는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다시는 잡고 싶지 않았던 무기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남자는 상자의 뚜껑을 근처에 놓아두고, 조금 전 뒷골목에서 산 총을 꺼냈다. 그가 총의 상태를 재차 확인했다.


  발끝이 간지러워 밑을 내려다봤더니 고양이가 있었다. 총에서 난 찰칵거리는 소리에 반응한 듯했다. 남자는 무언가 부끄러웠다.


  "…누굴 쏘려고 산 건 아니야."


  고양이는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남자를 보았다. 참 사람 같은 시선이었다.


  "난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고양이가 갑자기 그의 다리를 타고 오르려 했다. 남자는 묘하게 고양이 같지 않은 고양이에게 의문을 가지면서도 고양이를 들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동시에 고양이가 총을 만질 수 없도록 총을 잡은 손을 머리까지 들었다. 고양이가 가만히 꼬리를 흔들다가 침대 위를 누비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뚜껑이 열린 상자에 관심을 보였다. 그 안에는 일반인이 소지하기 쉽지 않은 여러 개의 여권과 다량의 현금 다발, 그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를 몇 가지 종이 쪽지들이 들어 있었다. 고양이가 발로 슬금슬금 가장 앞에 있는 여권을 건드렸다. 여권의 표지를 들어올리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

  ―야옹.

  "왜 거기에 관심을 갖는 거야?"

  ―야아옹.

  "……"   


  남자가 여권의 앞면을 펼쳐 보여주었다. 남자에게도 고양이에게도 낯선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양이는 곧 그의 미국 여권에서 관심을 끊고 나머지 여권들을 이리저리 발로 밀었다. 브라질, 러시아, 프랑스, 파리 등등 온갖 나라들의 여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가 가만히 발을 뗐다.


  "…너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고양이가 남자를 돌아보았다.


  "나도 그것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중이야."


  남자가 상자를 회수했다. 고양이는 동그란 눈동자를 남자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권을 한 뭉치로 모은 다음 그 위에 총을 올렸다. 


  "…내가 처음 봤던 금고 안이랑 똑같아졌네."


  남자가 상자를 침대 밑으로 다시 감췄다. 고양이는 여전히 눈동자를 굴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더 안 먹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훈련을 받은 고양이를 대하듯 물었는데, 고양이는 용케 그것을 알아듣고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점프하는 모양새가 아주 깔끔했다. 남자는 자신이 정말 특이한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고양이는 남자를 관찰하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물건을 가지고 놀지 않으려는 행동은 독특했으나 대신 고양이는 조용했다. 그 덕에 남자는 자신의 작업, 즉 무언가를 메모하고 그것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가 일기를 적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어딘가에서 수집해온 정보들을 모조리 암기하고 있다가 그걸 옮겨 적으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대체로 남자의 얼굴과 메모를 번갈아 보았다. 그 가운데 밑줄이 몇 번 그어진 부분이 있었다. 


  [취리히 은행]


  고양이가 눈길을 올렸다. 남자는 온 힘을 다하여 절박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남자는 정말 놀라운 집중력으로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가, 고양이가 서서히 피로함에 젖어갈 즈음에 주변을 정리했다. 남자가 고양이를 들고 욕실로 갔다. 


  그는 옷이 젖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상의는 바깥에 벗어두고 물을 받았다. 고양이는 남자의 등을 보았다. 잘 짜여진 몸에 미세한 상처들이 있었고 총자국처럼 보이는 동그란 흔적도 있었다. 고양이는 눈을 크게 떴다가 남자가 뒤를 돌아보자 참 부자연스럽게 울었다. 남자는 모든 것을 익숙하게 해치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몸집도 큰 고양이를 요령 있게 씻겼다. 몸 구석구석을 슥슥 밀어주는 감촉이 좋아서 고양이는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길고양이는 원래 너처럼 다 사람 같니?"


  고양이는 이번에도 부자연스럽게 울었다. 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 * * 




  고양이 배트맨과 CIA 출신 킬러의 일상을 왜 좀 더 보여주지 않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립니다. 실은 말이죠, 이른바 집사와 고양이들이 서로 하는 일은 놀랍도록 똑같습니다. 고양이는 집사에게 귀찮은 일거리과 애교를 반반씩 섞어 던저주고 집사는 당근과 채찍에 휘둘리면서 고양이를 간지럽히죠. 그렇다고 청년 제이슨 본이 벌써 '집사' 단계까지 올랐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엔 고양이가 좀 까칠해서요. 그래도 둘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제이슨에게 핸드폰이 있었다면 배트맨은 더욱 행복해했을 테지만요. 그 자신은 정체도 모르는 집단에게 쫓겨다니느라 제이슨 본은 주변에 어떠한 전자 기기도 두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PC 카페를 갔죠.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에 그런 시설이 남아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말입니다.


  아,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식 삶을 고집하는 제이슨에게 짜증이 나서 한 번은 고양이 배트맨이 그의 손가락을 물었죠. 안타깝게도 고도로 훈련받은 정보부의 암살자는 별다른 위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 심심해?

  

  그리고 배트맨은 성심성의껏 자신과 놀아주는 그에게 휘말려 배를 뒤집고 야옹거리다가 진한 자괴감을 느끼고 저녁 내내 구석에서 고개를 박고 있었답니다.   


  한편 바깥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졌지요. 고담의 모든 악당들을 다 쓸어버리고도 배트맨을 찾지 못한 조커가 결국 엉엉 울면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조커는 훌쩍이며 자신이 배트맨에게 이러이러한 약을 썼는데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면서, 뭔가 배트맨 같은 분위기가 나는 생물체를 발견하면 즉시 연락을 달라고 번호까지 남겼습니다. 악당이 자기 혼내주는 놈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기도 힘든데 말이죠. 


  조커가 그리운 뱃시를 잊지 못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면서 엉겁결에 득을 본 쪽은 배트맨의 유일한 지원군이라 할 수 있는 알프레드였습니다.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는 과연 은밀히 사람을 풀어서 몸집이 평균 이상인 검은색 고양이를 끌어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이걸 보면 조커는 아직도 멀은 것 같지요. 


  그리고 조커의 기자회견을 들은 배트맨 역시 원거리에서 알프레드와 호흡을 맞추기에 이릅니다.




* * *




  ―니야옹, 니야아아….


  검은 고양이는 몇 번 힘 없이 울더니 바닥에 철푸덕 누웠다. 침대에 올라갈 힘도 없다고 시위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상체를 숙였다.


  "며칠새 힘이 없네."


  남자는 고양이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디 아파?"

  ―니이야.

  "이 주변에 동물 병원이 있을 리가 없는데."

 

  남자가 그 말을 하자마자 고양이의 귀가 아래로 축 내려갔다. 꼬리는 미동도 없었고 뜨다 만 눈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남자라 할지라도 그냥 외면하지 못할 가련한 동물이 보내는 신호였다. 남자가 결국 재킷을 챙겼다. 남자의 품에 안긴 고양이는 묘하게 흡족해 보였다.


  남자와 고양이는 주변의 대로에서 택시를 타고 고담의 중심가에 도착했다. 남자는 이제 그 곳에서 동물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는 고담의 사방 어디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본사 건물을 등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담시에 와서 제일 먼저 도시의 지도부터 외운 남자는 이곳의 토박이들만큼이나 길을 잘 알았지만 그가 외운 지도에는 동물 병원의 위치가 나와있지 않았다. 남자는 일단 걸어보기로 했다.


  옷에 말려 남자의 가슴 속에 쏙 들어가 있는 고양이가 움찔대기 시작했다. 그는 고양이를 살살 달래가며 은색 빌딩들을 지나쳤다. 둘은 횡단보도의 신호등 앞에서 멈춰섰다. 무엇이든지 살피는 버릇이 있는 남자는 신호등의 기둥에 무언가가 붙어있는 걸 보고 반사적으로 그걸 읽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약 6일 전 실종. 검고 몸집이 다소 큼. 교육을 잘 받아 얌전하고 사람을 많이 경계하지 않아 다른 길고양이들과 구분됨. 아래의 주소로 연락 바랍니다.]


  남자의 동공이 조금씩 커졌다. 어느새 머리를 내밀고 있는 고양이도 놀라움을 표현하듯이 목을 빼고 있었다.


  "주인이 있었어?"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는 신호등의 불빛이 초록색으로 바뀐 것을 외면하고 방향을 돌렸다. 그는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 남자는 웨인 엔터프라이즈 빌딩 앞에 서 있었다. 고양이는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얌전히 웅크리고 있어서 얼핏 보면 남자가 그냥 옷가지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자신이 전화를 건 이를 기다리면서 그 주인이 정말 고양이를 잘 훈련시켰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자신에게도 많은 걸 가르쳐준 사람이 분명 존재할 거라는 데에 상념이 닿자 남자는 무겁게 숨을 쉬었다. 그 순간 고양이가 살짝 몸을 뒤척였다.


  "전화를 주신 분이십니까?"


  남자를 맞이한 건 훌륭한 양복을 입은 노신사였다. 검은 고양이와 잘 어울린다는 감상이 단번에 들었다.


  "예."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남자가 옷을 걷었다. 얼굴을 드러낸 고양이가 필사적으로 꼬물거렸다. 


  "고양이가 먼저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군요."

  "…네, 제가 키우던 아이가 맞습니다."


  남자가 서서히 팔을 풀자 고양이는 곧장 노신사에게 뛰어들었다. 남자의 표정이 약간 어색해졌다. 그가 짐이 되어버린 옷을 팔에 걸었다.   


  "감사합니다. 답례를 하고 싶은데 성함이라도…."

  "괜찮습니다."


  남자는 노신사가 그를 붙잡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노신사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좋은 사람을 만나셨군요, 도련님."

  ―야옹.

  "약물을 만든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약효가 지속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독된다고 하더군요."

  ―야옹.

  "수트와 장비들은 벌써 점검을 다 마쳤으니 나중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조커를 꼭 붙잡으셔야겠군요.

  ―…야옹. 




* * * 


 


  거처로 돌아가는 제이슨의 손에는 가판대에서 사온 신문이 들려 있었다. 간밤에 터진 소식들은 고담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일들이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이방인이었지만 최대한 그걸 감추는 법을 알았다. 신문을 옆구리에 낀 그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비죽 튀어나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돌아온 배트맨, 조커를 체포하다]


  제이슨 본은 다양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이 들어갈 공간의 문틈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침입자의 그림자부터 부비트랩의 여부까지 많은 걸 확인할 수 있는 현관의 틈새에서 그는 하얀색 봉투를 발견했다. 훈련받은 요원이 자신의 미간을 좁혔다. 아직까지 얇은 편지봉투에 장착할 수 있는 폭탄은 발명되지 않았다. 제이슨 본은 복도의 양쪽을 한 번씩 살핀 뒤에 봉투의 앞면을 확인했다. 뜻밖에도 웨인 엔터프라이즈 사의 로고가 찍혀 있었으며, 봉투의 안에 들어있는 쪽지엔 본이 더욱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신의 과거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어. 날 만나러 와주길. - 브루스 웨인]


  제이슨은 봉투를 그대로 갖고 방으로 들어갔다. 2분 뒤 그는 옷 속에 무기를 감추고 밖으로 나왔다. 




* * *




  그 날은 브루스 웨인 회장을 위해 일하는 비서가 너무나도 기다린 하루였다. 그녀의 다이어리에 적힌 웨인 회장의 공식적인 일정이 최근 두 달간 가장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기대했던 대로 웨인 회장은 그녀에게 일찍 퇴근해도 된다는 허락을 내려주었다. 오늘도 웨인 엔터프라이즈에 충성을 맹세한 사원이 한 명 늘었다.


  고요해진 빌딩의 최상층에서 브루스 웨인은 홀로 서류를 읽고 있었다. 신중하게 서류를 나누던 그가 문득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가 기다리는 손님은 어쩌면 노크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경력을 고려하자면 기대하기 어려운 매너였다. 브루스는 양쪽이 모두 편할 수 있게 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그 후 보육기관 지원 사업과 관련된 서류를 집중해서 읽던 브루스 웨인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자신의 손님이 서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브루스가 그를 보고는 서류를 옆으로 밀었다.


  "제이슨."

  

  제이슨 본이 순간적으로 권총을 들었다.


  "날 어떻게 알지?"

  "우린 만난 적이 있어."

  "원하는 게 뭐야?"

  "당신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나보단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되어서 공유해주고 싶은 것뿐이야. 당신이 의문을 갖는 모습들을 창조해낸 사람들을 찾아냈어."


  브루스가 서류 밑에 있던 파일 하나를 들었다. 미 중앙정보국의 엠블럼과 함께 일급 기밀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제이슨이 눈을 좁혔다.


  "…CIA?"

  "저녁에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갈 예정인데. 같이 가면서 보지 않겠나?"


  제이슨은 파일 하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냈다. 그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지?"

  "당신과 나는… 무슨 관계지? 당신은 왜 날 도와주지?"


  브루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수상한 기운을 읽은 제이슨 본이 그의 미간을 조준했다. 브루스의 대답이 지체되자 암살자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20초 뒤에는 모든 것을 함정이라고 판단할 작정이었다.  


  제이슨이 숫자 12를 셌을 때 브루스 웨인이 대답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동물은 없으니까."


  그의 목소리가 끄트머리에서 떨렸다. 그렇지만 제이슨 본은 그것이 거짓말에서 비롯된 긴장감 탓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제이슨이 약간의 혼란에 빠진 사이 브루스는 홱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기나 해."


  브루스가 제이슨 본의 품에 파일을 안겨주었다. 제이슨은 영문을 모르는 순진한 남자가 되어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할 부끄러움에 시달리는 웨인 회장님을 따라갔다.


  "왜 얼굴이 빨개진 거지?"

  "…시끄러워."

  "아까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어. 나랑 당신이 무슨 관계였냐고 물었잖아. 잠깐, 미스터 웨인!"

[Crossover/본브루스] Better Life

- Anything/Crossover 2016. 8. 31. 16:16 posted by Jade E. Sauniere

- Jason Bourne & Bruce Wayne Crossover

- Written by. Jade


Better Life




  브루스 웨인의 한쪽 눈동자는 조금 전에 확인해서 이미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버린 핸드폰에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알 수 없는 이름unknown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자책하는 일밖에 알지 못하던 인물이 있었다. 브루스는 하필 그가 이 순간에 최고의 능동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을 것은 뻔했으므로 브루스는 곧장 비상구로 향했다. 도중에 핸드폰을 한 번 켜보았지만 도착한 메시지는 없었다. 문을 크게 열고 난간을 잡은 브루스는 절실하고 정확하게 달렸다. 30층도 넘는 층을 계단만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다소 좌절스러운 사실은 브루스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브루스가 핸드폰을 꺼냈다.


  "알프레드, 웨인 엔터프라이즈로 배트윙을 보내줄 수 있어요?"

  ―진심이십니까, 도련님?

  "이 시점에서 내 정체를 숨기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보내줄 수 있죠?"

  ―…준비하겠습니다. 15분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드론 조종 모드로 수트까지는 배달해드릴 수 없습니다.

  "괜찮아요."


  브루스는 통화를 끊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새로이 도착한 메시지는 없었다. 브루스는 달리면서 부디 자신의 손이 기계의 진동으로 움찔하기를 바랐다. 다급한 인영이 비상계단에 온도와 숨소리를 남겼다. 지상 로비보다는 옥상에 더 가까운 그의 위치에서 아래의 혼란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배트맨의 몫이었고, 브루스 웨인은 그러한 이유에 의해 계단을 올랐다.


  아직 배트맨이 오지 않은 지상의 소요에는 잿빛 머리칼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브루스 웨인이 하나의 문자 메시지를 눈동자 위에서 완전히 지워내고 있지 못하듯이, 몇 개의 음성들을 귓가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그 소리들은 그가 본래부터 사람을 죽이는 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이슨 본은 이번만은 반쯤 그 말에 동의해보기로 했다. 그가 코너 뒤로 사라지자마자 건물의 입구에서 폭발음이 났다. 무장경비에게 빌린 총이 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알프레드는 원격 조종으로 배트윙을 몰면서 배트케이브 밖에서 펼쳐지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차들이 적은 도로를 고른 경찰차들이 모여드는 중이었고 멀찍이서 보이는 웨인 엔터프라이즈 빌딩은 아직 성한 모양새였다. 알프레드는 고도를 조정하면서 빌딩을 스캔해보았다. 층마다 빼곡하게 있어야 하는 직원들의 열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알프레드는 그것을 조금 의아하게 여겼다.


  브루스 웨인은 난간을 잡은 자신의 팔로 몸을 밀어가면서 계단을 올랐다. 10층 정도만 더 올라가면 옥상에 있는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핸드폰은 잠잠했다. 그가 단어 하나라도 찍어서 보내주길 바라고 있는 인물은 핸드폰이 아니라 다른 걸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이슨 본의 손에 감긴 총이 처음으로 불을 뿜었다. 수제 폭탄을 의기양양하게 내던지려던 놈이 발목을 맞고 미끄러지면서 폭탄이 엉뚱하지만 적절한 폭발을 일으켰다. 본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라고는 침착하게 발휘할 수 있는 사격 실력뿐이었다. 그는 속으로 자신이 쏠 수 있는 탄환의 갯수를 하나 줄이다가, 그 가운데서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배트맨이 있다고 알려진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본사는 악당들과 경찰들에게 겹겹이 싸인 꼴이 되었다.


  "경찰이다,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모두가 그 말이 악당들에게 보내는 미란다 법칙처럼, 경찰 쪽에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대사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은 언제나 무시당했다. 악당들은 대답 대신 총알을 뿌리기 시작했고 경찰들도 당황하지 않았다. 마침내 자신과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여겼던 총성을 태연하게 들으며 제이슨 본은 전진했다. 


  마침 그가 걷는 길에 소화기가 있어 본은 냉큼 그걸 들고 바닥에 던졌다. 알맞은 힘을 받은 소화기는 어려움 없이 총격전 현장까지 굴러가다가 어떠한 세련됨도 없이 그저 빗발치기만 하는 총알에 맞았다. 하얀 가루가 터져나오며 연기를 일으켰고 그 순간 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가 두 팔을 들었다.


  한편 빌딩의 옥상에 배트윙을 앉히려던 알프레드는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경찰 측에서 띄운 헬리콥터가 배트맨에게 경고를 보냈다.


  ―배트맨, 가까운 착륙장에 내려라. 지시를 어길 시 사격하겠다.


  알프레드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시점에 브루스는 마지막 문을 발로 차고 옥상에 막 당도한 참이었다. 착륙장에 배트윙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던 브루스는 경찰 표식을 단 헬기 2대에 꽁무니가 잡힌 것처럼 보이는 배트윙을 발견했다. 


  "알프레드."


  알프레드의 목소리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옥상에 도착하셨군요.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보이시겠지요.

  "일단 경찰이 원하는 걸 들어줘요. 내가 탈 때까지 조종간은 놓지 말고요."

  ―배트윙이 착륙하는 곳에 도련님이 계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게 밝혀진다고 해서 배트맨이 영영 활동을 못하게 되지는 않아요."


  브루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알프레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제이슨은 위험해질 겁니다."


  브루스는 핸드폰을 집어넣은 손을 밖으로 빼지 않은 채 움직였다. 배트윙이 서서히 빌딩에 내려앉으려 했다. 브루스는 이제 핸드폰에서 관심을 떼기로 했다. 그는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를 위하여 그가 멀리 하라고 권했던 무기를 잡은 이를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것이었다. 


  브루스가 재킷 안감에서 박쥐 모양의 표창을 꺼냈다.   


  자신이 간수해야 하는 물건인 것만 같아서 일단 옆에 두고자 했던 남자에게 비밀이 탄로났던 당시를 생각하면 브루스 웨인은 늘 웃음이 났다. 고담 시에 반년도 머무른 적이 없다던 남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트맨의 심판 현장에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다음의 기억은 더욱 실소가 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좀 궁금하군.

  ―서랍에서 무기 설계도를 찾았어. 그 이후에는 쉬웠고.


  잠금 장치에 위장까지 덧씌웠던 기억이 생생한 서랍을 열었다는 게 그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비밀을 찾는 데 노련한 자들은 오히려 그 덕분에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브루스 웨인의 유리 별장으로 돌아갔었다.


  "웨인 씨?"


  그들은 다시 돌아가야 했다. 배트맨이 표창을 던졌고 잠자코 있던 배트윙이 승객 없는 헬리콥터의 날개를 쏴 맞췄다. 경찰들은 당황한 얼굴로 배트맨의 탈것에 탑승하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을 쳐다보았다.


  "배트맨은 우리 거야. 방해하지 마!"

  "저 놈들을 빨리 쏴버려!"


  킬킬 웃으며 동시에 화를 내는 악당들이 기관총을 난사했다. 지역의 특성상 그 어떤 차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진 고담의 경찰차에도 볼썽사나운 구멍이 났다. 기껏해야 45구경 권총을 소지하고 있을 뿐인 경찰들은 차를 방패 삼아 탄약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으악!"


  기관총과 하나가 된듯 몸을 부르르 떨어대던 놈이 느닷없이 고개를 꺾었다. 차의 측면에 달라붙어 있느라 사격을 할 수 있는 경찰들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제복을 입은 남자들은 서로를 보며 눈을 굴렸다. 경찰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던 악당들도 비로소 고요한 빌딩 쪽에 관심을 두었다. 


  "뭐지?"

  "안에서 누가 우릴 돕나봐요. 진짜 배트맨이 저 건물 안에 있나본데요?"


  그러자 경찰 하나가 딱 봐도 그보다 다섯 살은 젊을 듯한 청년을 때렸다.


  "일단 앞에 있는 놈들부터 처리해! 그래야 배트맨을 체포하든 할 거 아냐! 뭐해, 갈기라고!"


  그제야 경찰들이 오리걸음으로 앞을 기어갔다. 


  본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숫자만이 있었다. 그가 소모한 시간과 그에게 남은 총알의 갯수였다. 본은 빌딩의 최상층부에 있는 브루스 웨인을 밖으로 대피시키지 못했다. 그렇지만 똑똑하고 충성스러운 그의 집사가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마련했을 것 같았다. 브루스 웨인은 살아남는다. 본이 정확히 날짜를 댈 수도 있는 어느 시간에 정해진, 결코 변할 수 없는 명제였다. 마음이 더욱 편해진 그는 남은 탄약을 소비하고자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배트맨이에요!"


  줄곧 배트맨을 언급하던 청년이 기어코 소리쳤다. 남자의 코트가 배트맨의 망토처럼 펄럭거렸다. 청년은 악당을 제압하는 일은 완전히 잊어버렸는지 연신 자신의 앞에 있는 경찰의 어깨를 두드리며 배트맨의 이름을 읊조렸다. 참다 못한 경찰이 고개를 틀었다. 악당을 제압하고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에 익숙한 자가 분명히 로비 안에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찰의 머리 위에 악당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 한 명 더 존재했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폭격에 악당들이 혼비백산하여 몸을 숙였다. 기관총이 고정되어 있던 차량에 불이 붙고 이리저리 흩어진 무기가 조각났다. 웨인 엔터프라이즈 내부에 배트맨이 있다고 믿었던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코트를 입은 남자는 틀림없이 청년의 앞에 있었다. 청년은 지상과 상공을 번갈아 보았다. 


  제이슨 본은 기묘하게 각도를 바꿔가며 조종석을 빛으로 가리는 배트맨과 기어코 눈을 마주쳤다. 가면이 없어 얼굴을 가릴 수 없고, 수트가 없어 목소리를 바꿀 수 없지만 어차피 본의 눈에는 누구보다 순수한 형상으로 보이는 그는 어느 정도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은 탄창이 빈 총을 던지고 핸드폰을 꺼냈다. 브루스 웨인의 이름으로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렇게 할 순 없어.]


  배트윙이 모두의 눈앞을 혼란하게 만드는 바람을 일으켰다. 그곳에서 제이슨 본만이 온전히 서 있었다. 본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바람이 전보다 더 거세게 부는 것 같았다. 악당들은 배트맨의 등장에 꼼짝하지 못했고, 경찰들은 두 배트맨 사이에서 어리둥절해하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본은 빠르고 곧게 걸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청년은 마침내 자신의 기체로 돌아가는 배트맨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배트맨이 훌쩍 날아올랐다.


  본은 콕피트가 열리자마자 조종석 안쪽으로 안전하게 떨어졌다. 브루스가 그의 상태를 슬쩍 확인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브루스는 엉뚱한 말을 했다.


  "가서 나랑 기자회견에 발표할 내용이나 고민하지."


  본은 그 한 마디에 숨어 있는 많은 것들을 간파했다. 브루스는 자신이 한때 추억을 그리듯이 죽음을 상상했던 것처럼 본도 더 나은 죽음을 찾으러 다닌다는 걸 지적하는 한편, 불멸의 존재여야 하는 배트맨으로 지목당한 그의 위치를 상기시켰다. 본은 굳이 말로써 자신이 브루스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걸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 삶이었다. 본은 다시금 브루스 웨인의 곁에 자리잡았다.




There's no better love

That's laid beside me

There's no better love

That justifies me

There's no better love

So darling feel better love



Better love by Hoz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