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 & Montgomery Scott

- Written by. Jade


Engineer's Log





Log 1


  23세기의 기술로 우주 내 도약이 가능한 함선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일 남짓이었다. 물론 이후 각종 기능들을 테스트하는 데 배를 건조한 만큼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함선의 모양이 갖춰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50일이다.


  늘 대단할 정도로 짧다고 여겨졌던 그 50일에 스콧은 처음으로 화를 냈다. 엔터프라이즈호를 다시 만드는 일에 50일이 걸린다는 건 그만큼 그가 스타플릿이 던져준 임무에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평화와 안락함이 가득한 요크타운이 아닌 무시무시한 샌프란시스코의 본부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전범 한 명을 무찔렀더니 더욱 극악무도한 범죄자와 같은 공간을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스콧은 정말로 열고 싶지 않은 문을 쳐다보았다. 문틈 아래에서 하얗게 응결된 한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스콧이 그 문을 열고 싶지 않은 데에는 안쪽이 춥다는 것 말고도 너무나 많은 이유가 존재했다. 얼굴이 거칠고 과묵한 스콧의 친구조차도 이 일에선 멀어지고 싶다면서 요크타운 어딘가에 숨어버렸다. 스콧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카드키를 바라보았다. 영광스럽게도 그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스타플릿에서도 몽고메리 스콧 한 명밖에 없었다.


  스콧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면서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트레이닝을 잘 받은 장교가 10명쯤 있어도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문이 고맙게도 스콧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스콧은 김이 서린 내부마저 이겨내고 윤곽을 드러낸 73개의 캡슐들을 무겁게 쳐다보았다.


  스타플릿은 하필 전범들의 수용소를 고칠 수리공으로 스콧을 골랐다. 이에 스콧을 비롯한 엔터프라이즈호의 주요 승무원들의 반응은 몹시도 뜨거웠다. 커크는 막말을 쏟아냈고 스팍은 함선이 파괴되는 위기와 생명의 위협을 간신히 지나온 장교에게는 충분한 육체적 및 정신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으며, 맥코이는 인체에 해가 되지 않지만 아주 요란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물은 아주 많다며 스콧에게 귀띔했다. 스타플릿은 단 한 마디로 승무원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스타플릿 최고의 엔지니어 자리를 다투면서 강화인간들의 잔인함을 몸소 체험한 바 그들에 대한 환상을 품지 못할 인물이 스콧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스콧은 극저온 캡슐들이 보관된 창고에 서 있었다. 인류를 멸망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스콧은 말없이 컴퓨터를 켰다.





  ―…그게 다인가? 기계가 낡아서 그런 거라고?


  "엄밀히 따지자면 이 캡슐들은 3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겁니다. 진즉에 망가졌어야 하는 물건들이에요. 이 시대에 캡슐과 맞는 부품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수리도 여의치 않습니다. 차라리 캡슐을 새로 제작하는 게 나아요."


  스콧은 개인 트랜스포터 장비에 오를 때 이미 예상했던 결과를 읊고 있었다. 극저온 캡슐도, 그 안에 들어있는 존재들도 너무나 오랜 시간을 견뎠다. 사실 이런 경우에서 엔지니어들은 가장 큰 무력감을 느낀다. 그들이 배운 학문은 시간을 초월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캡슐을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네. 그 때까지는 캡슐들의 동결 시스템은 작동해야 해. 그렇게 만들 수 있겠나?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완벽한 수리는 불가능합니다. 전처럼 동결 온도를 유지하려면 물리적으로 냉매를 넣는 게 가장 안전할 겁니다."


  알아보도록 하지. 


  그 말과 동시에 스콧은 소리 내어 숨을 뱉으려다가 급히 입을 붙잡았다. 통신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그 자의 캡슐에는 문제가 없나?


  스콧은 부가적인 설명 없이도 질문을 이해했다. 


  "다른 것들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이전보다 온도가 올라가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다른 강화인간들도 그 온도에서 생명 반응을 보여주고 있진 않아요. 아직까진 버틸 수 있어요."


  알겠네. 그 부분은 특히 신경써주길 바라지. 그리고 앞으로 일지 형식으로 캡슐의 점검 상태를 기록해놓으면 네트워크를 통해 이쪽에서 확인하겠네. 수고하게. 


  화면이 꺼졌다. 스콧은 목구멍 아래에서 틀어막혔던 숨소리를 시원하게 흘렸다. 그의 호흡은 희미한 연기를 피우다가 사라졌다.


  잠시 후 스콧은 의자를 홱 돌리며 일어났다. 그는 맨 앞쪽에 놓인 캡슐을 마주본 자세로 멈춰 섰다.


  얄팍한 얼음이 맺힌 투명한 외관부를 통해 보이는 콧대와 입술이 있었다. 스콧은 그 선명도가 이전에 비해서 얼마나 옅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강화인간들을 가두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봉인되는 일에도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스콧은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이기도 한 칸 누니엔 싱의 불완전한 실루엣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캡슐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때 칸은 분명히 잠들어 있었다. 





Stardate 2262. 58


  캡슐 내부의 온도는 영하 180도였다.


  여전히 한기라는 단어로는 아우를 수 없을만치 냉혹한 환경 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한 강화인간의 세포가 꿈틀거렸다. 고작 16도가 달라졌을 뿐인 혹한과 혹한의 변화를 기어코 감지한 육체는 소리 없이 한 번 펄떡였다. 하지만 캡슐 안은 여전히 추웠다. 고도로 섬세하게 빚어져 같은 종족들 사이에서도 그 완성도를 자랑했던 자질이 발생되기에는 일렀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도는 영하 179도로 내려갔다. 강화인간은 일어날 수 없었다.


 칸 누니엔 싱은 자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깨어나고 있었다.





  커크는 스콧이 연락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통신을 받았다. 그는 스콧과 하나된 마음으로 엔터프라이즈호의 위대한 기관실장을 전범 수용소로 유배 보낸 스타플릿 간부들을 한참 욕해준 뒤에야 스콧의 안부를 물었다. 스콧이 할 말은 '목숨은 잘 붙어 있고 무지 춥네요' 정도 뿐이었다. 커크는 50일 내내 스콧이 잡혀있는 일은 없도록 힘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다행스러운 사실이 있다면 커크가 즉시 스타플릿 제독들과 담판을 벌이지 않아도 잠은 원하는 곳에서 잘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스콧은 오늘의 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니터에 일지 프로그램을 띄워놓았다.


  "어, 으음… 엔지니어 일지, 2262년 81일."


  스콧은 자신이 빚어낸 표현이 낯설어 눈썹을 찡그렸다.


  "시설에 와서 극저온 캡슐을 처음으로 점검했다. 짐작했던 대로 캡슐의 하드웨어가 노후화되면서 핵심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시킬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었다. 꼭 필요한 부품을 만들어볼 수야 있겠지만 고쳐야 하는 캡슐이 73개나 되니, 냉매를 억지로 주입해주지 않으면 한창 내가 수리를 하고 있는 도중에 깨어난 강화인간들이 내 등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일단 나는 엔지니어지 화학자가 아니라서 냉매에 대한 부분은 부탁을 넣어 놓았다. 스타플릿은 캡슐의 온도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고 난리를 피우면서 나를 불렀지만 기록을 비교해본 결과 이전의 정상적인 온도와는 최대 15도가 차이났다. 그러니까 그렇게 호들갑을 떨 수준은 아니었다는 거다. 일단은 하루에 4번씩 온도를 체크하려고 한다."


  술술 일지를 녹음하던 스콧이 잠시 입술을 매만졌다.


  "윗사람들은 아직 그들을 더 재워놓고 싶은 모양이다. 캡슐이 새로 제작되기만 한다면 그들은 천 년은 지나야 깨어날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콧의 입이 굼뜨게 움직였다. 스타플릿 간부들이 확인하게 될 일지에 사견을 집어넣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보고가 아닌 일지를 작성하는 자들은 탐험가나 역사가이지 타인의 가치관을 두려워하는 족속이 아니었다.   


  "나는 그걸 옳다거나 잘못 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지 종료."


  스콧이 모니터를 껐다. 극저온 캡슐은 지속적으로 구동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시끄러운 전자기기 하나가 꺼지자마자 내부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스콧은 뒤를 돌아보았다. 하단부에 형광빛 표식을 단 캡슐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위급 상황 시 동일하게 생긴 캡슐들 사이에서 '가장 위험한' 분자를 찾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있었다.


  원하지 않는 곳으로 생각이 나아가는 것 같아 스콧은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얼마 되지 않는 소지품들을 챙겼다.




* * * * *



Stardate 22**. **


  칸은 소리를 들었다.

  그가 들은 첫 번째 소리는 어떤 암호가 담긴 주파수나 의미가 담겨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칸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칸은 몸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로 자신이 의식을 되찾아버렸음을 깨달았다.

  의식이 활성화되는 느낌이 갈수록 뚜렷해지자 칸은 문득 현재의 날짜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30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도 몰랐다. 칸은 자신이 또 얼마나 오래된 유물이 되었는지 알고 싶었으나 자신의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답답해했다.

  "…엔지니어 일지, 2262년 86일."

  단서는 또 청각을 통해 들려왔다. 칸은 목소리의 주인을 추리하기에 앞서 날짜부터 헤아렸다. 2262년, 자신이 잠들고 나서 고작 3년밖에 흐르지 않았음이 확실해졌다. 벌써부터 이것을 어떻게 분석하여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벌써부터 몇 가지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칸은 그것들을 다 제쳐두고 목소리 자체에 집중했다. 낯설지 않은 음성이었다. 그는 앞서 들었던 엔지니어 로그라는 말도 곱씹었다. 금세 정답이 도출될 것 같았다.

  "오늘은 맥코이 소령이 강화인간들의 심층적인 조사를 하기 위해 다녀갔다."

  칸은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 

  "맥코이도 현재 캡슐이 유지하고 있는 온도에서 생명체가 깨어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의 일은 그것으로 다 끝나는게 아니란다. 의사 양반도 고생 좀 하실 것 같다."

  그가 내뱉는 특정한 어구들과 독특한 음색이 칸의 머릿속에 충분히 저장되었을 때 칸은 정답을 얻을 수 있었다. 캡슐 바깥에는 3년 전 엔터프라이즈호의 기관실장이었던 장교가 있는 것이었다. 칸은 기척의 정체 때문에 자신이 함선에 실려 우주를 유영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기 계속 있으니까 진짜 춥네. 이거 확인하시면 안에 난방기구 하나라도 들여놓을 수 있게 해주세요. 어우, 진짜."

  칸은 곧 자신의 가설을 폐기했다. 이곳이 엔터프라이즈호라면 남자는 '기관실장 일지' 라며 말머리를 열었을 것이었다. 칸은 지금도 재직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3년 전까지만 해도 엔터프라이즈호의 기관실장이었던 남자와 함께 지상의 어느 공간에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확인한 캡슐들의 상태는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맥코이 소령이 캡슐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 오작동을 일으킨 캡슐이 하나 있긴 했지만 긴급한 부분은 보수를 해 놓았다. 소령에겐 굳이 밝히지 않았지만 하필 그 캡슐이 가장 온도 변화가 심한 요주의 녀석이라서 신경이 쓰인다. 빨리 냉매가 도착해야 할 텐데, 생명을 얼리는 용도로 쓰일 만한 냉매가 지금 시대에서는 그야말로 역사 속 유물이기 때문에 애를 먹는 것 같다."

  칸은 남자가 언급하는 캡슐이 자신의 것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칸의 캡슐에 문제가 생겼다면 인간들은 그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상황을 설명할 확률이 높았다. 강화인간 중에 이름이 알려지고 역사에 기록된 자는 칸이 유일했다.

  이름에 관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던 칸은 불현듯 일지를 녹음하고 있는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제임스 커크가 그를 스콧이라고 소개했었다. 

  "만약 그 캡슐이 기어코 강제 배출을 일으킨다면 정말 큰일이 날 것이다. 강화인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회복 캡슐에서도 강제 배출이 벌어진다면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쇼크를 겪게 된다. 몇 년 간 영하 196도에 갇혀 있다가 역시 영하 100도보다 훨씬 낮은 환경에서 강제로 밖으로 꺼내지게 된다면 아무리 우월한 생명체라고 해도 쇼크사를 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스콧의 음성이 살짝 아래로 꺾였다. 

  "그리고 오늘 맥코이 소령이 칸과 에디슨 함장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쟁이 있어야만 자신의 가치를 찾는 자들. 소령의 말을 듣고 나자마자 나는 그것이 적응력의 문제보다 윤리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고 단정했었다. 이성을 가진 존재에게는 자신이 처한 배경과 시대가 추구하는 목표라든가 사상에 대해 판단하고, 그것이 만일 옳지 않을 경우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는 에디슨과 칸 모두에게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갑자기 노이즈가 줄어들었다. 변동을 거듭하던 내부 온도가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 전부터 칸은 스콧의 말을 알아듣는 데 무리가 없었으나 덕분에 그는 더욱 쉽게 청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번 생각해보니 경우가 복잡했다. 에디슨은 아마 처음부터 스타플릿의 함장 역할을 맡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 행성에 불시착하여 선원들을 잃고 구조마저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를 그 행성까지 보낸 스타플릿과 행성연방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분노한 것 같다. 이렇게 봐도 에디슨의 방향은 틀린 것이 맞다."

  에디슨이라는 자의 얘기는 생소했다. 칸은 일단 경청했다.  

  "반면에 칸은 모든 것이 인간에 의해 제작된 인공적인 존재다. 또한 나는 그가 가진 어느 부분까지 인간의 설계가 닿아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복잡해졌다. 인간이 칸의 파괴적인 사고에도 손을 댄 것이라면 내가 맨 처음 속단했던 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콧은 말이 없었고 칸은 입술을 움직일 수 없어 말을 하지 못했다. 불완전하게 정립된 화자와 청자와의 관계는 냉기와 침묵 사이를 몇 분간 떠돌았다.  

  "…하지만 뭐,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이 또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의 사고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지. 모쪼록 그 놈이 쭉 잘 잠들어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길고 깊은 문장은 발화되지 않았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한 사람이 기지개를 켜며 흘리는 신음이 들렸다. 창고에서 홀로 의식을 가진 자가 되어버린 칸은 그 지위를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생각했다.




  19**년 **월 **일


  모든 생명들에게 최초의 기억은 일종의 수수께끼이다. 순간순간이 기억으로서 뇌리에 남아도 그것이 최초이기에, 당장 그 생명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장 의미가 깊은 조각은 다신 헤집을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최초의 기억은 일종의 수수께끼지만 영원히 풀 수 없는 인생의 난제이기도 하다. 

  칸도 마찬가지였다. 그조차도 자신이 눈을 뜨고 나자마자 겪은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보통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문제를 해체한 것은 첫 번째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탓이었다.

  신비로운 구경거리를 보듯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칸의 인큐베이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7분이나 일찍 일어났다는 말을 했었다. 칸은 일부러 그 인간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아마도 7분쯤 칸의 얼굴이며 빛나는 눈동자 따위를 꼼꼼히 관찰하고 있다가 다른 인큐베이터들에서도 반응이 오자 서서히 흩어졌다. 

  한 남성이 중앙에서 느닷없이 목청을 높였다. 칸은 그의 이름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 남자의 이름과 존재까지도 없애버린 칸은 훗날 그의 말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의 허영에 찬 연설을 기억하고 있었다. 칸의 머릿속에서 증오스러운 인간 남자가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들이 창조한 생명체들의 행복은 연구원들을,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의 부활이라는 대목에서 온 인간들이 열광했다. 

  부활이라는 단어의 뜻을 배우고 나서 칸은 인간들이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제물의 희생이 뒷받침되어야만 부활의 기적이 발생했다. 어느 날 내몰린 전장에서 아무런 무기도 건네받지 못한 칸은 자신과 그의 동족들이 부활의 위업에 숨겨진 그림자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들은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폭력을 허락받은 것임을 체득했다. 

  그 뒤로 인간과 강화인간은 서로 증오했다. 300년의 간극이 칸에게는 너무나도 무용해서 그는 줄곧 인간을 증오했다. 그의 기억력이 무뎌지지 않았듯이 인간도 변화하지 않았다.

  여기서 칸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비참하게 여긴 날이 존재하는 건지, 그것이 자연히 잊혀졌는지 혹은 억지로 감춰졌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STID/존본즈] Travelers in the Universe

- Star Trek Into Darkness 2016. 8. 31. 16:20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Travelers in the Universe




  모름지기 우주의 시선 아래 모든 생명들은 평등한 것이다. 존재들은 우주가 제공해 준 공간에서 자신의 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이다. 자신들 각자의 시간과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장소를 여행하는 타고난 여행자들이다. 


  우주와 시공을 넘나들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진 시대에서, 그와 같은 오래된 진리를 곱씹는 자들이 있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창밖만 보다가 별 한 개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에 질리다 못해 충격을 받은 신참 승무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안정제를 고르고 있었다. 항해 이틀만에 2주는 못 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는 그 승무원에겐 의술의 힘이 절실했다. 맥코이는 작은 약병에 알약 몇 알을 나눠담은 뒤 복용법을 적은 스티커를 정면에 붙였다. 


  그 신참은 실제로 우주와 맞닥뜨리고 나니 그것이 예상처럼 낭만적인 곳은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긴장과 충격과 감수성이 뒤섞인 그는 그 외에 다른 이상한 말들도 해댔다. 은하수가 고작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로 보이는 우주에서 자신은 그야말로 지나가는 여행자보다 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둥, 신은 다른 게 아니라 그런 보잘것없는 위치에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맥코이에겐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없었지만 그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우주는 그 어떤 존재도 재단할 수 없는 거대함과 위압감으로 차갑게 모든 것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약병을 전해주는 걸 잊어버리지 않도록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둔 맥코이는 의자를 돌려 창문을 한 번 바라보았다. 


  여행자라는 비유는 생각 외로 더 적절했다. 여행자는 자신이 가는 여행지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여행지를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어떤 여행자가 오지 않아도 그곳을 방문할 많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여행지는 존속되며 관광업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없었다. 여행자들이 주로 하는, 사진을 찍고 길을 걷고 여행지가 주는 경험을 곱씹어보는 일들은 그 자신에게만 영향을 줄 뿐이다. 공간은 건재하다. 맥코이가 몇 번을 오가도 똑같기만 한 우주와 비슷했다.


  그러한 평범한 여행자에 자신의 위치가 고정되는 걸 원하지 않던 존재가 있었다.


  맥코이는 그를 떠올리면서도 특별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모두는 일정한 시간과 특정한 공간을 받고 태어난다는 일정한 시작점을 가진다. 그가 자신을 탐색하고 자신이 이루어내는 약간의 변화에 만족하며 살아가지 못했던 것에는 그 시작점을 무효화시킬 만한 깊고 끈질긴 역사가 있었던 탓이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이제 그걸 알고 있었다. 각자의 것인 일생을 탐하면서 영원한 관조자인 우주에 군림하려고 했던 이의 과거를 이해했다. 


  맥코이는 무릎 위에 놓아두었던 개인용 패드를 켰다. 평화로운 항해 속에서 덩달아 평온했던 그 기계에 잠시 파문을 일으켰던 메시지를 켰다. 맥코이는 자신이 그걸 받았다는 걸 함장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맥코이는 비록 소령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같았다.


  메시지는 5일 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 날 맥코이는 지구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를 통해 스타플릿 측에서 개발하던 초고속 소형 비행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아마 우리 존재들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것일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하는 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거지."


  맥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메시지의 마지막 줄을 소리냈다.


  여행자들이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여행지가 아니라 또 다른 여행자다. 길을 잃어 안절부절 못하는 누군가, 낯설고 험악한 자들에게 둘러싸인 사람, 소지품을 잃어버렸거나 다른 일행과 떨어지고 만 슬픈 여행자를 도와줄 수 있다. 그러면 그 여행자는 변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되찾고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도달한다. 그들이 딛고 선 땅에 어떤 선이나 표식을 남길 수 없는 대신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맥코이는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창밖에 한 번 더 시선을 던지게 된 맥코이는 자신의 생각을 확정했다. 우주는 우주 자신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꿀 뿐 정작 우주를 살고 있는 존재들에게는 별다른 영향력을 떨치지 못했다. 레너드 맥코이는 지난 항해에서도 입었던 제복을 입고 의무실에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쾌활한 함장의 지시에 따라 유영을 거듭하고 있고 수많은 승무원들이 함선을 떠나지 않았다.


  맥코이는 창문에 손가락을 가까이 대고 사선으로 그어보았다. 당연히 우주와 세계는 갈라지지 않았고 경계도 생성되지 않았다. 맥코이는 만족했다.


  한동안 조작하지 않은 패드가 꺼졌다. 여행자는 새로운 여행자가 결정한 여정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아마 도움이 필요하다면 먼저 연락을 할지도 몰랐다. 그도 이제는 그런 행동을 실천해보는 법을 배웠다. 우주의 여행자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맥코이는 약병을 들고 의무실을 나섰다. 여행지는 침묵으로써 자신을 제공했다.




Universe and U by KT Tunst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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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over/본브루스] Blue Ocean Floor

- Anything/Crossover 2016. 8. 31. 16:19 posted by Jade E. Sauniere

- When Bruce Wayne finds his hope

- Original Date 2016. 08. 18

- Written by. Jade


Blue Ocean Floor




Piano cover of Blue Ocean Floor originally by Justin Timberlake

Cover by The Theorist





  배의 머리에 매달린 작은 종이 흔들거렸다. 그러자 항구에는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브루스는 물길을 이용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반드시 물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한 생명의 씨앗은 물에 잠겨 있는 상태로 발생하며 그밖에도 숨을 쉴 줄 아는 모든 것들은 물에 뿌리를 내리는 법이었다. 하다못해 어린 브루스 웨인이 장례식장을 뛰쳐나오다 곤두박질친 곳도 우물 안이었다. 물은 시작점이었다.


  마치 그 진리의 연장선처럼 브루스 웨인이 맑은 눈의 암살자를 만난 것도 바다에 떠 있던 요트 안이었다.


  딴생각을 하다가 브루스는 자신이 종소리가 울린 횟수를 얼마나 세었는지 잊어버렸다. 물론 종소리를 헤아린 것도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장치였기에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열리며 종의 울림에 다시 숫자를 붙여 주었다. 하나. 브루스는 종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그것은 종소리를 하나의 걸음처럼 삼고 있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물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기보다는 끝에 더 가까웠다. 물은 냉정하게 무언가를 죽이기도 한다. 그는 물 속에서 죽어간 사람을 보았고, 그 외에도 물이 아주 많은 걸 없앨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바로 물 속에서 데이비드 웹이라는 남자가 지워져갔고 그의 기억이 부식되었다. 아무런 인정도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물의 흐름엔 너무나도 많은 종결이 묻어 있었다.


  그가 서 있는 판자 아래에서 찰랑이고 있는 물에는 데이비드 웹이 없었다. 거기에 흘러가지 않은 이름들이 몇 개 존재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들은 모두 똑같았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배에 붙어 있는 종이 울리는 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운데 그는 거기서 마땅한 의미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12년의 고뇌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 이후로 본은 무엇의 의미를 수색하는 일을 쉽게 단념하게 되었다. 어떤 사물이 양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사물의 존재나 형태 자체를 역전시키지는 못하는 법이었다. 12년을 돌아 본은 그것을 깨달았다.


  총을 쥔 자는 다시 배 위에 올랐다.


  브루스는 언젠가 선상 위의 암살 사건으로 대중들에게 퍼져나갔던 하루를 더듬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게감도 없는 지루함이었다. 브루스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에 잠을 자려고 비어있는 선실로 들어갔었다. 그는 확실히 어느 순간까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브루스는 자연스럽게 닫히려고 하던 눈동자를 열었다. 그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브루스가 고개를 젖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옛날과는 다르게 그는 똑바른 시야에서 자신을 향하는 총을 목격했다.


  종이 울렸다.


  브루스 웨인은 총을 보면서도 종을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로 자신이 그걸 배에 매달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제이슨 본이 잃어버린 군번줄을 걸어둘 수가 없어 다른 금속성의 물체를 고른 것 같기도 했다. 본은 맨 처음에 브루스에게 군번줄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했다. 그 뒤에 자신이 기관의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버렸었다고 밝히긴 했지만, 본은 데이비드 웹의 증표를 잃어버렸다고 여기고 있었다. 전직 암살자가 털어놓은 최초의 인식이 브루스 웨인에게는 뜻밖의 희망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서 브루스는 총을 지나 한 명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전부 학습했으면서도 그걸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자가 보였다. 과거를 결코 자의에 의해 버렸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브루스 웨인이 순수를 엿보았던 몇 안 되는 남자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제이슨."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졌다. CIA가 키워낸 최고의 암살자라는 인물이 감행한 행동치고는 무척 비논리적이었다. 조금 전까지 브루스의 시야에 포함되지 않았던 총구가 불쑥 나타났으나 브루스는 개의치 않았다.


  약하게 종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잦아든 모양이었다. 브루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데이비드 웹의 군번줄과, 언제나 자신이 볼 수 있었던 제이슨 본의 노력을 떠올렸다. 


  "당신은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지. 나도 지금과는 다른 길을 찾고 있어."


  시작과 끝을 동시에 품고 있는 물의 표면에서 브루스 웨인은 길을 논했다. 그들이 최초로 만났던 요트는 다른 선택을 논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같이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브루스가 손을 내밀었다.




물 속에서 그대는 크게 소리치지만 침묵이 그대를 감싸고 있지

하지만 나는 그걸 들었어

그대가 깊이 낙하해도 나는 그대를 찾으리

나의 붉은 눈동자가 더는 그대를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백색 소음 속에서 그대를 듣지 못해도


그대의 맥박을 보내줘

그러면 나는 푸른 바다 층으로 가리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

그 푸른 바다 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