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to Heart

- Talk with Themes 2016. 6. 23. 15:37 posted by Jade E. Sauniere



헨리는 자신의 심장을 찾고 있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심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잘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숨이 끊겼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헨리는 그의 '완벽한' 심장을 찾고 있었다. 


  이 기이하지만 꼭 필요한 여정은 세 사람의 현관문 밑으로 쑥 날아온 작은 편지봉투에서 시작했다. 편지의 작성자는 해리 하트가 무슨 일을 하며 그의 동거인들이 저마다 어떠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또 자신을 재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이름을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과학자라고 소개하면서, 그 능력에 맞지 않게 참 불안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헨리 하트를 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헨리는 그 과학자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는 걸 믿을 수 있었다. 과학자는 정말 놀라운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자는 헨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주기 앞서 검사를 통해 인공 심장이 헨리의 조직과 98% 이상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비록 여러 분야에서 능숙함을 발휘하는 그가 취약한 쪽이 과학이긴 해도, 헨리는 자신을 곤란하게 했던 이전 사례들보다는 과학자의 작품이 훨씬 더 완성도가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과학자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과학자는 자신의 인공 심장은 헨리와 짝을 이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성공적인 예시에 가장 근접한 현대의 복제인간 1호의 자질을 더 보고 싶다는 헛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과학자는 폐쇄된 지하철 역 내부를 연상케 하는 이상한 곳으로 헨리를 던져 놓았다. 게다가 헨리는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복제인간이 경계해야 할 최대의 적은 성격 이상한 과학자인지도 몰랐다.


  헨리는 딱히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그는 걸었다. 다행히 불빛은 충분했고 그는 인간적인 욕구를 가능한 한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력도 갖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에그시가 읽는 소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헨리는 끝이 갈라지지도 않으면서 끝없이 늘어져있기만 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헨리는 완벽한 심장을 가져야 했다.


  해리 하트는 훌륭하고 책임감 있는 보호자여서 여전히 헨리를 자립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었다. 헨리는 그의 작업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음을 알았다. 성장은 지속적이였다. 헨리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해리도 발달학 서적 같은 걸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헨리는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꽤 정직하게 성장과 독립과 추억의 단계를 밟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인연을 보존하고 보관하는 방법은 이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또 멀지 않은 곳에는 불빛이 있었다. 헨리는 물리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는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소리를 냈다.


  "어이구, 맙소사!"


  꽤나 구수한 감탄사의 주인공은 핸드폰의 플래시라이트로 앞을 비추고 있었다. 헨리는 위로 번지는 불빛을 통해 그녀를 보았다. 갱도를 연상케 하는 어두운 통로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인상에, 나이도 그보다―헨리는 아직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그가 외양을 빌리게 된 해리보다 훨씬 어려보였다. 그녀는 플래시라이트를 휙 올렸다가 놀라서 팔을 내렸다.


  "당신이 여기서 뭐해요?"


  헨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당황했다.


  "일단 같이 나가요. 빨리요! 우리는 여기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요!"


  그녀가 화려하게 제스처를 곁들이면서 말했다. 그녀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헨리가 벽이든 천장이든 아주 두껍고 거대한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보다 속도를 먼저 나누었다.


  여성은 그런대로 헨리를 잘 따라가는가 싶더니 점점 호흡이 막힌다는 듯 입을 쉴 새 없이 벌렸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심박동이 올라가는지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불빛을 내고 있는 핸드폰을 악착같이 붙잡았다. 헨리는 자신이 그 핸드폰을 들어주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팔을 뻗었다.


  그때 여성의 지친 다리가 엇갈리면서 그녀가 중심을 잃었다. 팔을 휘젓지도 않고 곧장 중력에 몸을 맡기는 모양새를 보니 바닥에 얼굴을 부딪히면 정신을 차리는 일이 아주 어렵게 될 것 같았다. 마침 헨리는 그녀를 향해 팔을 내밀고 있었다. 헨리가 빠르게 그녀의 왼팔을 잡아 반대쪽으로 당겼다. 여성은 꼭 그에 의하여 들어올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눈을 껌뻑였다. 헨리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을 했다.


  "계속 가야 하지 않겠나?"


  그 말만 듣고 여성은 곧장 정신을 차렸다. 이후 그녀는 아주 잘 달렸다. 헨리가 걸어온 길은 그다지 갈림길이 없었고, 두 사람은 그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적절하게 속도만 내면 되었다. 여성이 들고 있는 불빛이 마치 땅을 쓸듯이 좌우를 오가면서 두 사람의 발을 한 번씩 비추었다. 그 와중에 머리 위가 또 한 번 우르릉 울려서 둘의 움직임이 순간 빨라졌다.


  여성보다 두 걸음쯤 앞서 있던 헨리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녀가 바닥을 세게 밟으면서 멈췄다. 


  "앞이 막혔군."

  "에?"


  그녀가 핸드폰을 한 차례 휘저었다. 


  "길이 막혔는데 어떻게 왔어요?"

  "내가 이 부근을 지날 때는 열려 있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한 명의 평범한 여성과 복제인간 한 명의 힘으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돌덩이가 통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 때 헨리는 문득 생각했다. 자신은 멀쩡한 심장을 찾으러 온 것인데 그걸 위해서 걸어왔던 길을 왜 동반인 하나와 함께 되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것은 그의 심장을 얻기 위한 여정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그는 나아가야 했다. 헨리는 옆을 돌아보았다. 여성은 미묘한 믿음이 느껴질 것만 같은 눈빛으로 헨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먼저 이곳을 지나온 자였다. 그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논리적인 수순이었다. 


  "…이 길은 원래 열려 있었지."

  "그래서요?"

  "계속 열려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벽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울림은 정수리 위가 아닌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분명히 다급하지 않고 꾸준하게 바닥을 누르는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헨리는 그녀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여긴 왜 왔나?"


  헨리가 불쑥 물었다. 대단히 요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있던 여성이 부르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었다. 당신은?"

  "어… 글쎄요."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마도 나는…."


  여성은 말을 잇다가 말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영화 속 공성전에서나 울릴 법한 거창한 마찰음이 두 사람의 귀를 연거푸 때려댔다. 헨리는 그가 늘 상비하고 다니는 무기를 꺼내는 대신 그저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이지, 어떤 비극이나 죽음을 맞이하러 오지는 않았다는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사실이 그를 지탱했다. 그리고 그것은 헨리를 넘어서 여성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바위가 와르르 무너졌다. 더불어 돌덩이가 쪼개지면서 흩날리는 부스러기와 먼지 구름만으로도 이미 가득 차버린 빈틈을 하나의 그림자가 비집으려고 했다. 여성은 눈을 크게 떴다. 아주 복잡한 이유로 축 늘어진 그녀의 목소리가 '맙소사!'를 연발했다. 


  두 사람의 눈 앞에 몸통으로 바위를 들이받은 낙타가 나타났다. 모래가 아닌 돌덩이를 양쪽으로 흘려 내보내면서 그 황토빛 몸은 윤기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목을 조금만 빳빳하게 들었다가는 천장에 구멍을 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낙타는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얌전한 동작으로 발을 마저 굴러주었다. 그새 낙타의 발 사이에 끼었던 돌멩이가 반대편으로 굴러갔다. 여성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눈치로 데굴거리는 그 돌멩이를 눈으로 쫓았다.


  "덕분에 길이 뚫렸군."


  헨리는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것은 여성의 생각이었고, 헨리의 말은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낙타는 유유히 그 무겁고 거대한 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발걸음은 어디까지나 유일무이한 복제인간의 심장을 찾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곧 빛이 들어왔다.



  헨리는 자신의 허공을 더듬었다. 동거인들이 없는 집안은 무척 조용했다. 헨리는 자신이 특이한 꿈을 꾸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은 그의 머릿속에 충분한 여운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독특했지만 헨리는 어렵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해리와 에그시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요청한 걸 잊지 않았다. 그는 집에 있다고 해서 에그시처럼 언젠가는 버리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 늘어난 티셔츠를 입지는 않았으므로 상의 하나만 더 걸쳤다. 그의 특별한 박동음은 옷이 팔락이는 작은 바람 소리와 섞여 하나의 흐름처럼 지나갔다.


  현관을 나가자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런던이 그를 반겼다. 헨리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고 그것만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행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보행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헨리의 바깥에는 그처럼 끝없는 이야기가 흘렀다.


  횡단보도를 지나면서 헨리는 물줄기가 흐르는 분수대와 가까워졌다. 그가 지나야 하는 길목에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이 있었다. 한 명도 겹치지 않는 인파들이 분수대를 기웃거리고 광장을 찍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고, 헨리의 눈길이 그들에게 살짝 닿은 건 그가 방향을 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필경 분수대의 물이 튈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한 사람이 분수대를 등졌다. 그녀는 사진을 찍으려는 듯 핸드폰을 들었고, 그녀의 얼굴은 광장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노출되었다. 그 때문에 헨리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웃는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핸드폰의 얇은 측면을 잡았다. 헨리는 그 핸드폰의 뒷면에서 좁고 밝은 불빛이 나오는 걸 상상했다. 


  상상은 의심이라는 요소가 들어가지 않는 가장 순수한 사고이다.


  헨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답을 듣지 못한 물음을 다시 한 번 던지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반쯤은 자신이 답변을 알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For your first birthday and final freedom.

Now you are free.

Original Date 2016. 03. 13.


  About John Harrison, "Antropomorphic Fiction"

(2013. 6. 27)


  시도때도 없이 존 해리슨에 대한 상념이 떠올라서, 당장 글은 못 쓰겠고 에세이 형식으로라도 풀어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지 글로 적지 않으면 연성마다 각 내용이 일종의 동어반복이 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유전학적으로 조합되어 만들어진 인간 아닌 인간이라는 존 해리슨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파헤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먹히지 않은 유일한 아들 제우스라는 생각은 이미 짧게나마 표현한 바가 있고, 그가 만든 함선인 벤전스와의 연관성은 나중에 단편으로 조금 더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내가 여기서 다루고 싶은 존 해리슨의 특성은 두 가지이다. 칸이라는 그의 본명과, 오늘 우연찮게 알게 된 '인격화된 허구(Antropomorphic Fiction)'라는 개념과의 연관성이다.


  스타트렉의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지인이었다던 사람, 킴 누니엔 싱이라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존 해리슨의 본명이 킴도 아니고 칼도 아닌 ‘칸Khan’이라는 것 자체부터 굉장히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그의 일면이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그는 이름부터가 대원들의 우두머리가 될 사람이었으며 지도자와 정복자가 될 의미를 타고난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필자는 조금 생각해 보았다. 이름도 성격도 대단히 좁은 형태로 한정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를, 그가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해서. 역사적으로 온화한 카리스마를 뽐낸 위인들도 많았거늘 하필 가차 없는 정복전쟁을 벌인 민족들의 언어를 따온 게 아니겠는가. 그의 까슬한 인공적 미학은 굳이 영화에서 제공되는 온갖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빼 놓더라도 그 이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격화된 허구’라는 개념은 나레이터(narrator)를 생물학적 사람과 연관짓지 않기 위한 이론적 단어이다. 학자 이름은.. 자세히 보지 않아서 과감하게 생략하겠다(..) 앞의 얘끼는 간단했지만 명색이 멋들어진 개념어를 끌어 왔으니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다.


  먼저 인격화되었다는 것은 사실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칸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다만 ‘인격화’라는 단어가 본래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혹은 그렇게 가정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어서, 좀 더 칸에게 적합하게 들어맞는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의 형상을 띤 환상, 픽션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칸과 그의 대원들을 빚으면서 과학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추측되는 것은 그들의 학문적 야심이다. 우수한 유전자들을 고르고 골라 최고의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학자들이 이룰 수 있는 거대한 목표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칸의 말을 믿어보자면 그들은 우주의 평화를 위해 칸의 존재들을 만들어냈다. 정말 그 과학자들이 우주의 평화를 끔찍하게 소중히 여겼든 아니면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기 위한 무기로서 그들을 설계했든, 어느 쪽이든지 거만한 욕구가 드러나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자의 가설을 따른다면, 그들은 과학적이지만 잔인한 수법을 동원한 것이며 그 이면에 숨어 있었을 그들의 어두운 폭력성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바는 그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합쳐진 존재를 잘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1차적인 의미에서의 환상이다. 인간에 의해 태어났지만 칸과 그의 무리들이 인간을 자신들과 동급으로 보지는 않았을 거다. 즉 그들이 추출해야 하는 열등한 존재에 인간 역시 포함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칸이 무자비한 정복자의 성격을 입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학문적 야심, 거만한 욕구, 어두운 폭력성이 인간의 형태를 갖추어 태어난 것이 존 해리슨이고 칸 누니엔 싱이다. 저 세 가지 요소들은 비뚤어진 과학자들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융합되기도 힘들었을 가치들이며 누군가가 밖에서 뜻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하나의 야심만 해도 얼마든지 인간을 궤도 밖으로 밀쳐낸다. 그런 요소들에서 태어난 칸은 그야말로 현실에서 구현이 불가능하며 억지로 만들어낸 허구가 아닌가. 픽션이라는 건 그를 명쾌하게 정의내리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그 근본마저도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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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해리슨 찬양기444444

- Talk with Themes 2013. 9. 18. 20:16 posted by Jade E. Sauniere

단언컨대 존 해리슨은 제가 만난 최고의 최애캐입니다!!!!!@@@!!!!!


 저는 가급적 토요일에 오는 신문은 챙겨 보는 편입니다. 뒤에 가보면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잖아요? 책을 읽진 않아도 서평 정도는 관심있게 볼 수 있는 거라서 슬금슬금 보는데, 어이고 저를 낚는 헤드라인이 있었으니 저는 그 날로 가까운 교보문고로 뛰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건 무엇? OHOH영광스러운 내 최애OHOH 아 진짜 칸 누니엔 싱은 세상의 가치 반은 품을 수 있을 정도의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겠어요 미쳐버리겠다고요 엉엉엉


  이제 또 제가 써먹는 말들의 본문은 『고대 희랍, 로마의 분노론』이라는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책은 으음, 고대철학을 전공한 교수가 고대 그리스 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분노에 대한 나름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이제 왜 제가 이걸 읽으러 서점까지 뛰어갔는지 아실 것 같은데요(....) 하드커버에 두껍고 비싸기도 해서 서점에서 열심히 말을 옮겨 적었어요. 인용도 있고 재인용도 있고 그렇습니다.



  -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손을 피로 물들여 그의 집을 정화시키지만, 자신의 피 묻은 손은 결코 씻지 않는다.

  - 분노의 복수 행위 -> 때때로 응징적 정의의 실현이 될 수 있음.

  - 오디세우스의 분노의 복수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의 분노가 이성적인 숙고와 조화된 감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자신의 복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줄 앎.


  : 음 솔직히 별로 코멘트를 할 게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랔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몇 개 제 메모도 들어가 있고요. 칸은 복수에 의한 빌런이지만 그는 영화 내에서 Vengeance, Revenge, 혹은 Vendetta 라는 어휘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Response in kind'라고 표현을 했거든요. 은연중에 그가 구사한 언어들만 하더라도 저 논리적이고 누군가에겐 정의마저 될 수 있는 복수의 감각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칸의 분노다 이얏호!!!<<<


  - 분노가 기본적으로 명예의 분배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 

  - 법과 같은 합리적인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합당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호메로스 사회에서, 분노는 일종의 합당한 분배적 정의를 요구하는 사회, 정치적인 감정적 표현 내지 반응으로 볼 수 있다. 

   

  : 두 번째 줄에서 격침한 게, 칸은 현대적이지만(가장 현대적인 생명공학 기술로 만들어졌으니) 그에게 법 따위가 해당이라도 됐겠나요. 과학자들은 그에게 전쟁기술을 가르쳤지 법전을 가르치진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저 부분을 읽고 나서 그는 현대적이지만 고대의 인물일 수밖에 없는 일면도 얼핏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과녁을 빗맞히기는 쉽고 맞히기는 어렵듯이" 잘못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범할 수 있는 반면, 올바르게 성공하는 것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 두 극단 가운데 하나(ex.비겁함)은 더 잘못된 것이며 다른 하나(ex.만용)은 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땅함에 따른 중용"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겐 최선책이었으므로)


  : 개인적으로는 마커스와 커크의 차이점이 보였는데요.. 으음, 칸이 인간을 구별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거는 본즈에게도 커크에게도 요리조리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래서 그는 굳이 스타플릿 안에 있어야 한다면 엔터프라이즈를 선택하겠지요.


  -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 즉 공포심은 인간이 무질서나 압제 하에서 살지 않도록 해주는 공동체를 위한 순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 새로운 문명사회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서 가족 내에서의 윤리적이며 규범적이 원리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에리뉘에스 여신의 분노가 여전히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복수의 여신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다른 중요한 점은 작품의 후반부에서 에리뉘에스 여신들이 단순히 복수의 여신들이 아닌 올바른 일에 대한 호혜와 자비의 여신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이다. 복수의 여신들은 단순히 복수의 피맛을 보고자 하는 공포의 신에서 이제 상벌 모두에 관여하여 몫을 바르게 돌려주는 폴리스의 신상필벌의 정의의 여신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 순간 저는 나르시시스틱 카니발 시즌2를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죠. 칸은 원작 공인 Best tyranny란 말입니다. 저 문장들은 칸의 지배 방식에 대한 강력한 단서에요. 앗시.....ㅇ-<-< 최애님 왜죠 당신은 왜 나의 최애님이죠


  - 공적 영역에서 분노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술과 맺는 상관관계

  - 이 때의 분노는 이성의 올바른 명령 내지 지시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자존감의 상실에서 비롯한 수치심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치심<- 분노가 고상함을 자랑하는 영혼의 부분으로 이해될 수 있음) 

  - 부당한 부정의에 대항하는 분노

  - 숭고한 목적을 위해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거나 표출할 줄 아는 자가 고귀한 사람, 튀모스적 분노를 기본적으로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판단과 관련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 "이성을 위한 무장"

   

  : 주로 커크가 떠올랐던 부분들이었어요. 그래 존커크도 써야 하는데 내 차애커플님 오오오오ㅗ..... 어려운 말들은 다 넘어갑시다. 저도 책 다 읽은 게 아니라서 잘 모르니까욬ㅋㅋㅋㅋ 그런데 뭐랄까요, 순진하면서도 올곧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엔터프라이즈의 함장님이 우주 테러리스트와 연관을 맺을 수 있는 점이 바로 저런 곳에서 나오지 않나 싶었어요. 그는 마커스와는 정말로 다른 인물이거든요. 아 그런데 대체 이런 생각들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서..


  - 승리와 명예를 추구하는 전사계급은 단순히 외부의 적과의 싸움에서뿐만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찬 다중들의 탐욕을 억제하는 통치술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정치적 삶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성과 조화된 고상한 튀모스를 담지한 전사계급은 폴리스의 안전이 위협받고 시민들의 생명이 위험하게 되거나 부정의하게 고통받고 있을 때 고상한 분노를 표출한다.


  : ...이쯤되면 월터가 이끄는 강화인간들에게 기사단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지경인데요.


  - 분노는 충동적이고 고통스러운 욕구다. 그것은 누군가 자기 자신이나 혹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의 인격을 근거 없이 경멸했을 때 가지게 되는 볷의 욕망이다. 모든 분노의 감정에는 복수하고자 하는 희망이 주는 쾌락이 뒤따르게 된다.

  - 그가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러한 모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과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모욕을 간과하는 것은 노예적인 것이다.

  - 분노에 따른 복수에의 욕구는 그것이 발생하기 전에 필히 모욕(경멸, 악의, 모독)에 대한 지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인 점검 및 판단 과정"

  - 소망만이 이성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욕구다.

  - 습관화된 교육을 통해 기개가 이성적인 판단과 설득에 영향을 받고 변화될 수 있다. 


  : 이 부분은 전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들입니다. 위의 전사 계급 어쩌구는 플라톤의 얘기지요. 그리고 저는 이 문장들에서 72명의 강화인간들과 그들의 지도자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본딩 및 끈끈한 감정에 온갖 정당화를 다 보았다고 하는데요 아씨 저는 미쳤나봅니다ㅠㅠㅠㅠ 미쳤어요ㅠㅠㅠㅠ 방학도 아닌데 왜죠ㅠㅠㅠㅠㅠㅠㅠ 제 손에도 브레인이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모르는 사이에 나르시시스틱 카니발 스핀오프든 시즌2든 써줬으면 좋겠네요 이제 칸에 대한 사유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제 최애는 위대합니다. 단언컨대 존 해리슨이며 칸 누니엔 싱은 제가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최애캐인 것입니다. 아 돌아가시겠네 정말......



존 해리슨 찬양기33333

- Talk with Themes 2013. 9. 18. 20:16 posted by Jade E. Sauniere

  : 이번에도 모든 어구들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이란 책에서 인용 혹은 재인용되었습니다. 아니 머리를 굴려 보려고 이런 책을 읽는 건데 존 해리슨만 생각나서 미치겠네요. 아무래도 그냥 소설책이나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닼ㅋㅋㅋㅋㅋ 난 아직 내가 생각한 걸 다 쓰지도 못했어!! 방학동안 다 못 쓸 거라고!!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OTL 

  여러분, 존 해리슨은 사랑입니다. 왜 이 경이로운 캐릭터를 파지 않으세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셨으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마구 흩뿌리는 것들을 좀 가져가 주세요(....)


  아무래도 '더 로그' 형식으로 언젠가는 풀어야 할 것 같은, 이 수많은 존 해리슨에 대한 상념을 보시라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수단과 목적을 구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이 스탈린주의의 큰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의 자유를 원했으나 그들이 행했던 방법은 정반대였습니다. 

  -> 오늘 또 발견한(...) 존 해리슨의 매력은, 그가 존 해리슨이면서 칸 누니엔 싱이기 때문에 그 이름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는 칸 누니엔 싱으로서 정복자이기도 하지만 스타플릿의 존 해리슨은 홀로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외롭게 싸우는 투사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의 두 가지 정체성에 모두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맥락만 괜찮다면 훌륭하게 풀어낼 수 있는 말이에요. 내가 진짜 존 해리슨이고 싶다-_-

  

  "만약 당신이 열 명의 사람을 살해한다면 당신은 살인자이지만, 수백만 명을 죽인다면 당신은 역사적인 영웅이다." (요새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 없는 구제금융 등을 다루면서 하는 얘기지만, 이거 HBO의 Too big to fail이 생각나는데, 여튼 나는 책의 맥락따윈 고려하지 않는다!orz)

  -> 이거는 지이이이이인짜아아아아아아로오오오오오오 존 해리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저 말은 스탈린이 했던 발언이라는데, 언젠가 칸 누니엔 싱으로 군림했을 시절 분명히 한 번 있었을 법한 일입니다. 분명 저렇게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저 말을 체화하고 있겠지요. 그가 정말 스타플릿을 다 쓸어버렸다면 그는 어쨌든 신제국을 건설한 역사적인 군주로 다시 발돋움했을 테니까요. 46명에서 그쳤기 때문에(??????) 존 해리슨은 테러리스트가 되었..... 여하튼 저 발언은 존 해리슨의 입에서 나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말입니다.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지젝은 오늘날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세속적 좌파가 실패한 결과인 동시에, 세속적 좌파를 통해 실현될 수 없었던 '혁명적 잠재력'과 '불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임을 지적한다. 이는 곧 좌파의 실패로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세속적 좌파'의 출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 결국 요새 정치에서 열정을 가진 건 근본주의자들뿐이다.)

  -> '정치에서 열정을 가진 건 근본주의자'라는 얘기가 뒤에 나오므로 여기서는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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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는 이러한 것들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문화도 필요도 없는 원칙들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바닥에 침을 뱉지 마세요.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식당이 유럽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식을 강요받을 이유가 없지요. 이것이 바로 한 사회의 윤리적 표준입니다.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그러한 표준들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즉 저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사회란 누군가가 "강간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갔어?"라면서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 이거는 솔직히 존본즈(...)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다가 덧붙이게 되었는데요. 존 해리슨이 스타플릿과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저 문단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자신에 대한-한 생명의 착취)을 고민하고 심지어 엇나가는 인간들이라면서요. 'The Log'에서 한 번 시도했듯이 이런 걸 받아치는 데에는 커크도 적절합니다만 본즈라면 아주 낙관적이지만은 않으면서도 나름 현실적인 답안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문제는 내가 그걸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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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경찰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에게 숨겨진 계획이나 음모가 있는지 찾아내려 하고 그러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앉아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공개되어 있는데 왜 이러한 짓을 하는 겁니까? 이것이 좌파의 은밀한 저항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즉 어떤 것을 숨기는 방식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숨기지 않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마치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처럼 혼란을 주는 방식 말입니다.

  -> 이거는 뭐랄까요, 앞에서 말했던 대로 레지스탕스 존 해리슨이 아닌가 생각되어요. 어떻게 보면 그는 진실과 거짓을 능수능란하게 섞는 달변가이자 영악한 전략가에요. 하지만 조금 시선을 달리 한다면, 존 해리슨이 스타플릿 중령으로서의 가짜 정체성을 뚫고 나와 동료들을 구하러 가는 것. 복수의 함정(벤전스호)를 탈취해 함장석에 오르는 것,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계략을 숨겼을진 몰라도 자신의 목적은 숨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의 목적을 알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거꾸로 흘러가 그의 계략도 스타플릿이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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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사케르Homo Sacer: 어원상 로마 시대에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한 자를 이르던 말로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 '법 바깥의 영역으로 추방된 존재'를 의미했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이 개념은 오늘날 법질서 바깥으로 완전히 추방된 자들, 또는 그러한 위험에 항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정치적/경제적 난민의 폭발적 증가라는 상황과 함께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 이런 이들이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젝은 말하는 듯하다.)

  -> ..이것도 개인적으로는 영락없는 존의 처지인 것 같아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르르르르


  ..여기 있는 이 책은 제가 산 것이고 이것은 물질적인 유형을 가진 물건이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전달되는 지적인 생산물들은 누군가의 소유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생략) 유전자를 사유화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아주 흥미롭게 생각하는데요. 나중에는 정말 말 그대로 우리의 유전자가 회사 소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데카르트적 코기토만 남겠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오는 겁니다. 

  -> 뒤를 주목하시면 됩니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무언가'라는 표현에만 주목하시면 됩니다. 칸 누니엔 싱의 인공적인 성질은 진짜 뭐 어디 안 맞는 데가 없네!! 그의 지성이라든가 전투 능력, 치유 능력, 심지어 동료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그 성미마저도 그가 타고난 건 아닐 겁니다. 제 자신들의 보존이나 동질감, 심지어는 자기애의 투영으로 칸이 동료를 아끼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스스로 저 표현에 격침당해 부글부글 가슴이 끓고 있네요. 이렇게 훌륭한 캐릭터를 만난 것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둘 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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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예이츠의 유명한 시구가 생각납니다. 자신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그는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약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고 말했죠. 오늘날 정치에 있어 우리는 어디서 열정을 찾을 수 있습니까? 오직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입니다. 

  (주석 : 예이츠의 시 '재림'은 현재 우리가 처한 곤경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듯하다. 지젝이 언급한 이 구절은 무기력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적인 근본주의자 사이의 균열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선한 자들'은 더 이상 전심을 다해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가장 악한 자들'은 광적인 인종주의적/종교적/성차별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여전히 적극적인 참여를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예이츠 만세 저건 뭐 너무 말할 필요가 없어서.. 저 시구만으로도 단편 나오게 생겼네 역시 명불허전 예이츠다 우아아아!< 네 조만간 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존 해리슨의 위대한 언어를 빌려서... (...) 진정하고 좀 설명을 덧붙여보자면, 물론 지젝의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하는 게 제일 바람직한 것 같긴 합니다만, 칸이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이미 오래 전에 잃었을 게 분명한 그이므로 그의 눈에는 행동할 수 있는 선한 자들이 보이지 않는 거죠. 그리고 자신을 게걸스럽게 물어 뜯으려는 악한 인간들만이 눈에 띌 겁니다. 아 어디서 물이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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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그들의 목표는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여기 우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함인 겁니다. 거기엔느 "우리는 보다 많은 정의를 원한다"는 식의 어떠한 긍정적인 메시지도 없습니다. 이는 폭력의 거대한 분출이었죠. 그들이 전한 메시지란 고작 "안녕, 여기 우리가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 의례적 의사소통phatic communication(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사되는 의례화된 관용어구 by 로만 야콥슨), 관념적인 불만

  -> 이것마저 존 해리슨에게 정당화시키려고 메모해 놓은 것은 아니었고.. '의례적 의사소통'과 '관념적인 불만' 두 가지 키워드 때문에 여기다 적게 되었습니다. 전자는 당연히 스타플릿에 몸담으면서 그가 어쩔 수 없이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야 하는 '인간적인' 관습이었을 테고. '관념적인 불만'은 칸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그가 다크니스 배경에서 인간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의 우생학적 사고를 들먹이지 않아도요), 타인이 칸이라는 인물에게 막연히 가지는 두려움이라든가 반감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탕 아래에서 칸이 전쟁과 테러를 저지르고 다녔기 때문에 옳거니! 하고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멋대로 다룬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타 트렉 다크니스에서 칸의 정확한 기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300년도 넘는 과거를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어요. 매우 바람직하다. 


  방어적 폭력이란 알랭 바디우가 제안한 개념으로, 국가 권력에 거리를 두고 그 권력의 지배에서 빼낸 자유 영역들을 건설하며, 오직 이 '해방구들'을 분쇄하고 재전유하려는 국가의 시도에만 물리력을 동원해 저항하는 것이다. 

  -> 이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존 해리슨이 칸 누니엔 싱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 쵱캐니까 쵱캐 위주로 마구잡이 해석을 시도하게 되는데(...) 덕심이 깊으면 이렇게 됩니다orz


  


  아 진짜 칸은 너무 위대하네요 더 찬양할 수도 없어... 제가 이렇게 최애를 떠받드는(...) 적도 드문데 말입니다. 이번에도 결론은 존 해리슨 짱짱맨이로군요. 




존 해리슨 찬양기22222 feat. 로마 신화

- Talk with Themes 2013. 9. 18. 20:14 posted by Jade E. Sauniere

  저의 위대하고 고귀하신 최애캐 존 해리슨이시자 칸 누니엔 싱께서는 에브리띵베터하신 그 위력을 저 자신을 섬기는 덕후들에게 골고루 뿌려주시니, 마침내는 온갖 철학 서적을 거쳐 이제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봐도 덕질할 거리가 떠오르며 칸을 찬양하는 개념들을 자꾸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차마 이것을 어떻게 글로 풀어 볼 요령은 없어 그냥 닥치고 찬양이나 해볼까 합니다. 존 해리슨 만세. 우주빌런 믿으세요. 세상에 이렇게 멋진 캐릭터는 내 생애 또 못 만날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존 해리슨 파시죠? RIGHT NOWWW


  존경하고 사랑하는 칸께서 저에게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툭 건네셨던 지라, 저는 지성이 넘치는 분에게 조금이라도 수준을 맞추고자 교양 시간에도 외면하였던 책을 낼름 빌렸습니다. 로마 신화 책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제우스가 뛰어다니는 그리스 신화와 다를 게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 선에서 익히 아는 이야기들도 나오지요. 하지만 내 요점은 그게 아니야 칸을 찬양하기 위해서라고 이 우월한 종족의 우두머리를 말입니다 이얏호




  1. 프로메테우스와 데우칼리온의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인간들을 위해서 불을 훔쳤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너무나 유명하고, 저 데우칼리온이라는 사람이 누군가 하니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입니다. 더불어서 유피테르(로마식으로는 요렇게 부릅니다. 우리가 아는 그 제우스)가 인간의 야만성을 혐오하면서 홍수로 인간 세상을 밀어버렸을 때 아내와 더불어 살아 남은 선한 인간이지요. 이 데우칼리온 부부가 등 뒤로 돌멩이를 던져 다시 인간들을 만들어 냅니다. 근데 여기서 제가 어떻게 칸의 처지를 떠올렸는가 하니.

 

  저도 뭐 신화를 다 아는 건 아닙니다만.. 제 입장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가장 거대한 분노를 산 최초의 인간입니다. 그는 신의 권능이나 다름 없는 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지요. 그토록 신에게 미움 받은 자의 후손은, 모든 인류가 물에 휩쓸려 죽어버렸을 때 신의 동정과 어여쁨을 받아 다시 인류를 재건하기에 이릅니다. 실상 두 사람 모두 사실은 인간의 시작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전에 흙으로 사람을 빚었지요. 그럼에도 프로메테우스는 형벌에 처해지고 데우칼리온이 아포칼립스의 생존자가 될 수 있었던 건, 프로메테우스가 감히 불로 인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지혜를 발휘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진심으로 훌륭한 지혜지만 또한 신들이 인정할 수 없는, 그들을 거역하는 사상이었지요. 칸은 이런 의미에서 데우칼리온보다는 프로메테우스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300년이 지나서도 그는 여전히 절대다수에게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였던 거죠. 그의 말을 직접 빌어보자면 자신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을 기다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 그래서 결론은? : 칸 겁나 멋있습니다 그가 거치는 세계관마다 그를 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짱짱맨이었어요



  2. 디오니소스로 넘어갑니다. 아마 우리가 현실에서 가장 자주 부르짖는 이름이 아닐까요. 바쿠스! 우리의 지친 삶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하시는 와인의 신이십니다. 유명하지요. 두 가지 측면에서 "왜 나의 최애님을 디오니소스에 비유할 수 있는가"를 역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궤변이니.


  책에서는 디오니소스의 별명 중 하나가 '폴뤼고노스'라고 적고 있습니다. '거듭 태어난 자'라는 뜻이지요. 세멜레의 뱃속과 유피테르의 넓적다리를 거쳐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너무나도 직접적입니다. STID 흐름에서 그는 두 번 잠들지 않습니까? 아주 오래 전에 냉동형을 받아 한 번 잠들고, 다크니스 사건 이후 다시 잠들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분을 소설에서 몇 번이고 깨우죠(...) 저에게 있어 칸은 두 번의 각성을 거쳐 마침내 저에게 닿으신 빛나는 최애십니다. 일단 요런 표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한편 디오니소스는 처음에 사람들에게 신으로서 추앙을 받지 못한 듯 합니다. 바쿠스 축제라는 것이 광란의 파티(....)를 띠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고, 그가 술의 신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보통 인간들이 하찮게 치부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여러 예술에 빈번하게 인용되면서 많은 이들의 영감이 됩니다. 저는 적어도 유피테르를 가지고 어쩌구 저쩌구 이론을 전개시킨 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 신들이 직접 권능을 부리거나 괴물 등을 내려 인간들을 벌한 것과 다르게, 이 책에서는 인간의 광기를 이용하여 자신을 업신여긴 자를 처벌한 일화가 나오죠. 이 모든 것에서 저는 칸을 떠올립니다. 남들이 우주오이라고 놀릴 지언정 저에겐 이보다 경이로운 뮤즈가 없으며,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영악할 정도의 기지와 추앙받아 마땅한 측면들을 고루 갖추고 계시지요. 제 눈에 칸은 영락없는 디오니소스입니다. 와 미친 어쩜 이런 캐릭터가 다 있죠? 너무 멋있어


  덧붙이자면 디오니소스는 자그레우스(영혼의 사냥꾼), 마이노미노스(광기를 불어넣는 자), 오르토스(일으켜 세우는 자) 등 정말 여러가지의 별칭을 갖고 있답니다. 


  -> 결론은? 칸 겁나 멋있습니다222222222 신성을 가져와 비유해도 모자른 내 쵱캐시여 오오오오오오오



  3. 이것도 제 머릿속을 얼핏 지나간 바가 있기에 적습니다만.. 이거는 그냥 단순한 생각입니다. 책에 잠깐 레토 여신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여신은 우리가 잘 아는 아폴론과 디아나(아르테미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주신의 자식이지요. 그런데 유노(헤라) 사이에서 나오지 않았지요. 순결한 결혼의 여신님은 연적을 향한 불타는 질투심을 감추지 않으사(...) 대지에 대고 레토가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로 한 자투리의 땅도 빌려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신은 이리 저리 돌고 돌다가, 마침 정처 없이 떠돌던 델로스에 간신히 정착하여 출산을 하지요. 책에서는 "그대는 대지를 떠돌고 나는 정처없이 바다를 떠도는군요." 라는 말이 나옵니다.


  칸을 아폴론 혹은 디아나에게 비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레토 여신의 여정에서 얼핏 저는 칸을 떠올릴 수 있겠더군요. 그에게 진정으로 허락된 땅 한 조각이 없었다는 겁니다. 저만의 망상에서 칸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탄생기를 거쳤을 것 같거든요. 그를 만든 과학자들이 그를 과연 인간으로 대하면서 그가 땅바닥에 발을 붙이는 걸 허락했을까요? 마치 무기를 이리저리 조종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그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구체화하자면.. 일종의 전쟁이라든가, 배타적 사상 같은 게 되겠지요. 이래서 사람은 화목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야... 으으? 여하튼 그의 비틀린 위치는 그를 만들었던 족속들부터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가장 근원적인 사실에서 오는 것도 같습니다.


  -> 그래서 뭐요? 칸한테는 모든 걸 다 접붙일 수 있어요 이런 설정을 다 안고 있는 캐릭터도 없지요 ㅇ-<-<




  ....헛소리가 길었죠? 여러분 위대한 제 최애님 많이 사랑해주세요. 행쇼하는 거 많이많이 보여주세요. 저 영업 진짜 못 해요. 사실 영업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전 요새 이 분 때문에 행복하고 가슴 떨리고 일상 존중이 안 되어서 미칠 것 같아요. 아 젠장 진 로덴베리에게 감사 쌍제이에게 감사 미스터 컴버배치에게 감사 그리고 개봉날 아이맥스를 사수한 과거의 나에게도 감사... 



존 해리슨 찬양기, 셜록 핥기의 시작

- Talk with Themes 2013. 9. 18. 20:13 posted by Jade E. Sauniere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sociopath)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상호 작용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의 언어 사용은 언어가 역설적으로 순수한 소통의 도구, 즉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라는 표준적인 언어관에 꼭 맞는다. 그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는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즉, 그는 언어의 수행적performative 차원에 전혀 무감각하다. 이것은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의 도덕적 태도를 규정짓는다. 그는 사회적 상호 작용을 규제하는 도덕 규칙을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하기만 하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한 직감, 즉 외부의 사회적 규칙과는 무관하게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이 없다. 간단히 말해 소시오패스는 공리주의에서 비롯된 도덕의 개념, 즉 도덕이란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면서 행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올곧게 실천한다. 그에게 도덕이란 근저에서 동일시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배우고 따라야 하는 하나의 이론이다. 악을 행하는 것은 계산을 잘못한 것이지 죄가 아닌 것이다.


  -> 이걸 보고 셜록이 싸악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은 내가 정말로 이제 비비씨 셜록을 파겠구나.. 하는 설득력 있는 예상을 증명해주고 말았다. 저걸 완전히 다 셜록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어떤 말들은 모리어티에 더 가까운 것도 같다) 아니!! 그래도 어쨌든 셜록이 팍팍 보이지 않나!!! 저 첫 문장부터 시작해서 도덕을 취해도, 안 취해도 그만인 이론에 가깝게 생각하는 것까지.. 아직 101밖에 복습하지 않아서(이태까지 나는 셜록을 그냥 웰메이드 드라마라고밖엔 생각하지 않았다. 우주빌런이 내 안목을 깨워주셨다) 캐릭터 이해가 부족할 순 있겠지만 여하튼 조... 좋은 소재다.. 여기에.


  & 이 반성적 역전은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내재해 있다. 우리는 소통 행위의 내용 속에 소통 행위 자체를 포함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소통 행위의 의미는 그것이 하나의 소통 행위라는 사실을 반성적으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무의식의 작동 방식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사항이다. 그것은 수레 안에 숨어 있지 않다. 그것은 수레 자체다.


  -> 왠지 잘만 이용하면.... 자아아아아아알 이용하면 셜록과 존의 관계를 예쁘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나 대체 셜록 방영하고 있을 때 뭐했니. 왜 베네딕트에게 반하지 않은 거지. 아이고야 아이고야


  

  주제를 바꿔서




  "인간은 타자로서 욕망한다"는 말은 무엇보다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 상징적 질서가 구조화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내가 욕망하는 것은 대타자, 즉 내가 거주하고 있는 상징적 공간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 내 욕망들이 위반적이거나 사회적 규범에 어긋날 때조차 이 위반은 그것이 위반하는 것에 조건 지어져 있다. 


  우울증자는 상실된 대상에 고착되어 그 대상에 대한 애도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대상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대상을 욕망하게 만든 원인이 소멸되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욕망을 상실한 주체다. 우울증은 욕망이 좌절된 상황을 극단적으로 강조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욕망하는 대상을 얻었지만 그것에 실망하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울증(모든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대상에 대해 실망하는 것, 아무것도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철학의 시작이다. 평생 한 도시에서만 살다가 결국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사람이 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것을 슬퍼한다. 하지만 그를 슬프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평생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장소에의 애착을 상실할 것이라는 보다 미묘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내가 새로운 집단에 통합되리라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중요한 그 장소를 잊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지금의) 욕망을 상실하리라는 인식이다. 


  내가 욕망의 대상에 얼마나 가깝게 접근하는지와는 무관하게 욕망의 원인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빠져나간다. 주체가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것과 욕망의 대상 원인이 지닌 '일정한 속도'(와 일정한 거리) 사이의 프로이트식 해결 방법은 '욕망의 휘어진 공간'에 있다. 때때로 욕망을 실현하는 가장 빠른 길은 대상 목표물을 우회하는 것, 그것 주위를 빙빙 도는 것, 그것과의 만남을 연기하는 것이다.


  주이상스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쾌락보다 더한,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폭력적인 침입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우리에게 퍼붓고 그걸 해내지 못하는 우리를 지켜보면서 즐기는, 잔인하고 가학적인 윤리적 작인인 프로이트의 초자아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 ....어디서 존 해리슨이 퐁퐁 솟아오르지 않습니까? 존본즈가 떠오르지 않으세요?? 도대체 내 필터링은 어디까지 돌아가는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정말.. 진지하게요... 어떤 놀라운 분이 이런 사유를 가지고 뙇! 쓰면 완전 브릴리언트 할 것 같지 않으세요? 내가 너무 콩깍지가 씌여서 저 문장은 칸이다!!! 칸이야아아아!!!! 커맨더어어어!!!! 하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까? 아 미친 더 이상 설명할 수도 없다ㅇ-<-< 우주케미깡패는 이제 무슨 정신분석학과도 케미를 발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명불허전 BETTER AT EVERYTHING 존재시다 대단하시다...


  

  미친 소리 죄송합니다. 사실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모든 발췌문은 지젝의 <How To Read 라캉> 이라는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이론과 말씀을 이딴 식으로밖에 소화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론서에 넉다운된 머리는 이제 뭘 봐도 덕질할 여지를 찾는 것입니다. 쌍제이 덕분에 일상 인투 다크니스 하신 분들에게 모두 장수와 번영을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