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John Harrison, "Antropomorphic Fiction"

(2013. 6. 27)


  시도때도 없이 존 해리슨에 대한 상념이 떠올라서, 당장 글은 못 쓰겠고 에세이 형식으로라도 풀어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지 글로 적지 않으면 연성마다 각 내용이 일종의 동어반복이 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유전학적으로 조합되어 만들어진 인간 아닌 인간이라는 존 해리슨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파헤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먹히지 않은 유일한 아들 제우스라는 생각은 이미 짧게나마 표현한 바가 있고, 그가 만든 함선인 벤전스와의 연관성은 나중에 단편으로 조금 더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내가 여기서 다루고 싶은 존 해리슨의 특성은 두 가지이다. 칸이라는 그의 본명과, 오늘 우연찮게 알게 된 '인격화된 허구(Antropomorphic Fiction)'라는 개념과의 연관성이다.


  스타트렉의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지인이었다던 사람, 킴 누니엔 싱이라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존 해리슨의 본명이 킴도 아니고 칼도 아닌 ‘칸Khan’이라는 것 자체부터 굉장히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그의 일면이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그는 이름부터가 대원들의 우두머리가 될 사람이었으며 지도자와 정복자가 될 의미를 타고난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필자는 조금 생각해 보았다. 이름도 성격도 대단히 좁은 형태로 한정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를, 그가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해서. 역사적으로 온화한 카리스마를 뽐낸 위인들도 많았거늘 하필 가차 없는 정복전쟁을 벌인 민족들의 언어를 따온 게 아니겠는가. 그의 까슬한 인공적 미학은 굳이 영화에서 제공되는 온갖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빼 놓더라도 그 이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격화된 허구’라는 개념은 나레이터(narrator)를 생물학적 사람과 연관짓지 않기 위한 이론적 단어이다. 학자 이름은.. 자세히 보지 않아서 과감하게 생략하겠다(..) 앞의 얘끼는 간단했지만 명색이 멋들어진 개념어를 끌어 왔으니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다.


  먼저 인격화되었다는 것은 사실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칸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다만 ‘인격화’라는 단어가 본래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혹은 그렇게 가정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어서, 좀 더 칸에게 적합하게 들어맞는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의 형상을 띤 환상, 픽션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칸과 그의 대원들을 빚으면서 과학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추측되는 것은 그들의 학문적 야심이다. 우수한 유전자들을 고르고 골라 최고의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학자들이 이룰 수 있는 거대한 목표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칸의 말을 믿어보자면 그들은 우주의 평화를 위해 칸의 존재들을 만들어냈다. 정말 그 과학자들이 우주의 평화를 끔찍하게 소중히 여겼든 아니면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기 위한 무기로서 그들을 설계했든, 어느 쪽이든지 거만한 욕구가 드러나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자의 가설을 따른다면, 그들은 과학적이지만 잔인한 수법을 동원한 것이며 그 이면에 숨어 있었을 그들의 어두운 폭력성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바는 그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합쳐진 존재를 잘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1차적인 의미에서의 환상이다. 인간에 의해 태어났지만 칸과 그의 무리들이 인간을 자신들과 동급으로 보지는 않았을 거다. 즉 그들이 추출해야 하는 열등한 존재에 인간 역시 포함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칸이 무자비한 정복자의 성격을 입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학문적 야심, 거만한 욕구, 어두운 폭력성이 인간의 형태를 갖추어 태어난 것이 존 해리슨이고 칸 누니엔 싱이다. 저 세 가지 요소들은 비뚤어진 과학자들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융합되기도 힘들었을 가치들이며 누군가가 밖에서 뜻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하나의 야심만 해도 얼마든지 인간을 궤도 밖으로 밀쳐낸다. 그런 요소들에서 태어난 칸은 그야말로 현실에서 구현이 불가능하며 억지로 만들어낸 허구가 아닌가. 픽션이라는 건 그를 명쾌하게 정의내리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그 근본마저도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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