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A Simple Procedure






  에그시는 해리 앞에 서서 요리조리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해리의 양 어깨에는 어색함이 넝쿨처럼 붙어서 그의 팔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해리는 입을 여는 게 좋겠다고 결심을 했다가, 어느 때보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에그시의 표정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에그시가 씩 웃으면서 손거울을 들었다. 해리는 다 사라지지 않은 상처가 멋스럽게 내린 머리칼에 묻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걸 확인했다. 해리는 미소를 짓다가 만 것처럼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괜찮구나.”

  “그럼 이제 나갈까요?”


  에그시는 해리의 손을 잡았다.


  넓게 보면 런던 안에 포함된 동네이기는 했으나 해리가 사는 곳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사람이나 자전거보다는 그늘 아래에 세워진 차가 훨씬 많았으며, 이따금씩 열려있는 문에서는 조곤조곤한 말소리나 가곡이 들려오는 지역이 바로 해리의 거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역 신문에 날 정도로 드물게 화창한 날씨를 맞이하는 움직임이 이곳까지 밀려온 것인지 승용차들은 쏙 들어가고 편안한 신발을 신은 주민들이 느릿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에그시는 동네의 집이 반 정도는 비어있는 게 분명하다고 단정 내렸던 과거의 생각을 고쳤다.


  해리는 에그시의 옆에서 걸으면서 간간이 인상을 찡그렸다. 태양이 유독 해리를 쫓아다녔다.


  “눈 아파요, 해리?”

  “…선글라스를 가져올 걸 그랬구나.”


  그러자 에그시가 싱글거렸다. 해리가 에그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쓰세요.”


  에그시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해리가 자주 쓰는 갈색 선글라스였다. 눈과 머리를 크게 다친 해리에게 선글라스의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임을 에그시가 모를 리 없었다. 해리는 에그시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선글라스를 꼈다. 


  “이쪽으로 가면 괜찮은 공원이 있더라고요. 거기로 가요.”

  “그래?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되게 오래 살지 않으셨어요?”

  “그렇지.”

  “그런데 근방에 있는 공원에도 가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세상에.”


  에그시는 장난기를 섞어서 고개를 저었다. 물론 에그시는 해리의 사정을 이해했다. 해리는 집에 있는 시간만큼이나 비행기 위에서 하늘을 떠도는 생활을 했었다. 에그시는 이 기회에 해리에게 동네 탐방이나 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종의 이유로 해리가 사는 곳을 몇 번이고 도느라 근처의 지리를 다 익히게 되었다는 속사정은 밝히지 않았다.


  공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분홍색이나 노란색 주스가 꼭 그림을 그리듯이 돌아다녔다. 에그시는 작고 투명한 트럭에 과일을 한가득 담아두고 그 자리에서 곧장 과일을 갈아주는 남자의 위치를 외워두었다. 


  해리가 선글라스를 쓰느라 잠시 떨어졌던 두 사람의 손이 어느새 붙어 있었다. 늘 먼저 해리의 손을 찾았던 에그시는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익숙한 따뜻함이 갈라진 손가락 사이마다 느껴지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안정감을 받을 뿐이었다. 에그시는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씩 훑었다. 이를테면 그것도 하나의 준비였다. 단 한 번도 목숨을 잃어본 적이 없는 자가 당연히 수행해줘야 하는 임무와도 같았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니?”


  결국 에그시는 해리에게 바쁘게 굴러다니는 자신의 눈동자를 읽혀버리고 말았다. 에그시가 목을 쳐들면서 고갯짓을 했다.


  “아니에요,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 좀 했어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렴.”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해리야말로 편하게 얘기해요. 저 주스는 아무래도 공원 앞쪽에서 파는 것 같고, 저 아이스크림은 아직 어디서 파는지 못 봤고…. 샌드위치는 다른 상점에서 사왔을 거예요.”

  “세세하게도 관찰해뒀구나.”

  “네? 아닌데요. 걷다보니 눈에 띄더라고요. 별 뜻 없어요. 진짠데요?”


  해리는 이번에도 시치미를 떼는 에그시를 내버려두었다.


  햇빛과 그늘이 번갈아서 두 사람의 정면과 발끝, 그리고 어느 누군가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하나의 접촉을 바라보다 갔다. 그들의 음성에 실린 언어들은 그 어느 순간보다 평범했다. 해리는 과연 뉴스에도 실릴 만한 햇볕이라면서 이 행운과 다름없는 날씨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았고, 에그시는 앞으로는 공원 같은 곳이라도 돌아다녀야 근육량이 줄지 않을 거라면서 해리의 건강을 걱정했다.


  산보객들이 많아서 비어 있는 벤치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덕분에 해리와 에그시는 계속 걸었다. 공원 끄트머리로 갈수록 운동화가 마른 바닥을 밟는 소리보다는, 자연이 찰랑이는 소리가 더 짙게 들려왔다. 두 사람은 공원의 입구 쪽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길목을 만나기 직전 빈 의자를 찾았다. 에그시가 손등으로 먼지를 한 번 휙 쓸었다.


  “앉아요, 해리.”


  에그시의 그러한 말은 별 소용이 없었다. 해리가 앉자 에그시는 자동적으로 해리의 팔에 이끌렸다. 


  햇빛과 움직임으로 인해 살짝 뜨거워졌던 몸이 그늘 밑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식었다. 해리는 잠시 선글라스를 벗었다. 에그시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틈을 최대한 피해서 시선을 조절하는 해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너무나 예민해졌다. 에그시의 곁에서 숨을 쉬기까지 해리가 지불했던 것들은 하나같이 몹시도 비쌌다. 몸의 일부분을 뜯겨가면서 그 비용을 충당해야 했던 흔적이 해리의 모습 곳곳에 남아 있어, 에그시는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혹은 해리를 붙잡고 한참을 자신의 손과 피부를 빈자리에 붙여주고 싶었다.


  해리는 선글라스를 접어서 오른손에 쥐었다. 그가 불쑥 말했다.


  “아름다운 곳이구나.”


  에그시는 아직 자신의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영 몰랐을 뻔했어.”

  “…네?”

  “나는 네가 있어서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말이다.”


  에그시는 그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해리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만약 에그시가 해리의 책장에 있는 문학책들을 좀 더 많이 읽어서 문장을 꾸며낼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면, 그것과 아주 비슷한 말을 해리에게 바쳤을 것이었다.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리면서 순간적으로 햇빛이 해리의 얼굴을 덮쳤다. 해리가 눈을 감았고 동시에 에그시가 팔을 뻗었다. 해리의 눈동자는 따가운 볕으로부터 안전했다. 


  해리는 조금 더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에그시도 그에 맞춰서 해리의 눈앞을 가렸다. 그것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무엇보다도 희소하고 소중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