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Candles
에그시는 3일 전에 아주 믿음직한 친구로부터 들었던 말을 되새겼다. 록시는 공부를 무척 잘했고 착실해서 학교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였다. 그녀는 예뻤고, 그녀가 하는 일을 모두 지원해줄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멋진 애인까지 옆에 두고 있었다. 록시는 에그시와 많이 달랐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에그시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에그시, 사랑은 절대 나쁜 게 아니야. 더군다나 너의 사랑은 결단코 나쁘지 않아.”
록시는 고급스러운 화장품 향기가 나는 손으로 에그시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하고 공공연해야 해. 그게 은밀하고 불행해질 때 잘못이 되는 거야. 네가 불행해지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비밀을 만들고 싶어서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 점이 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말해줘. 에그시, 사랑은 숨겨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야.”
“그렇지만 내 마음은 숨겨야 돼.”
“너는 잘못된 사랑을 할 아이가 아니야, 에그시. 그건 내가 잘 알아.”
그녀는 에그시가 그 자신에게조차 보낼 수 없는 신뢰의 눈빛을 지으면서 에그시를 다독였다. 에그시는 그녀로부터 힘을 얻고, 따뜻한 목소리를 되새기면서 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유독 햇빛이 강해서 강의실 안은 전등을 키지 않아도 밝았다. 에그시는 자신이 앉을 지점을 살폈다. 선글라스나 모자가 없어서 최대한 햇빛이 닿지 않는 좌석을 선택했더니 자리가 아주 모호해졌다. 에그시는 길게 이어진 책상과 연결되어 있는 의자들 중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위태롭게 엉덩이를 걸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한 뼘만 발을 움직이면 딛을 수 있는 중앙 통로를 쳐다보았다. 이 강의실을 사용하는 교수는 한 자리에만 있지 않고 학생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에그시는 꿀꺽 침을 삼켰다.
수업 시작 5분을 앞두고 학생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에그시는 아예 일어서서 안쪽으로 다른 이들이 들어갈 수 있게 배려했다. 에그시의 두 발은 각각 중앙 통로와 의자 밑바닥의 빈 공간을 밟고 있었다. 이름이 나누어져 있지만 실질적인 경계는 아주 희미한 칸들이었다. 에그시는 말없이 자신의 두 발을 보고 있다가, 학생들이 조용해지고 뒤쪽에 나 있는 유일한 출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깔끔한 구두굽 소리에 냉큼 옆으로 들어갔다.
오늘 에그시의 교수는 흰색의 드레스 셔츠를 반 정도 걷어 올린 차림이었다. 저번 주보다 바지 색깔도 옅어졌다. 아무래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를 고려한 듯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의 셔츠 주머니 바깥으로는 몽블랑 사에서 나오는 볼펜이 꽂혀 있으며 그 안으로는 안경이 들어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에그시는 통로와 가까운 자리를 낚아챈 덕분에 그 모든 점들을 꼼꼼히 확인할 수 있었다.
록시가 에그시의 머리에 대고 또 말했다. 너는 잘못된 사랑을 할 아이가 아니야, 에그시.
“오늘은 호손의 대표작 <주홍 글자>를 토대로 그의 진보성에 대해 논의를 해보려고 한다.”
책이 팔락거리는 소리들에 이끌려서 에그시도 책을 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에그시는 경이로운 굳건함을 가진 등장인물을 통하여 작가가 의미하고 싶어 했을 법한 주제들을 던지는 교수의 목소리와, 자신을 자꾸만 높게 평가해주는 친구의 온정어린 말씨를 동시에 들었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상징하는 바는 아마도….”
“네 사랑은 잘못된 게 아닐 거야.”
“내가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도 네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에그시가 불쑥 물었다. 록시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곧 침착해졌다.
“말해봐, 에그시. 나한테는 뭐든지 털어놔도 괜찮아.”
“내가 그 사람의 향기라든가 몸을 궁금해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스스로도 부끄럽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에그시는 문제가 되는 몇몇 단어를 얘기할 때는 음성을 낮췄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듣는 록시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녀는 입가를 매만지면서 차분하게 단어를 골랐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진실한 몸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 한다는 거잖아. 에그시, 그게 가장 나쁜 일은 아니야.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거지. 그리고 네가 오직 그 사람의 몸에 대해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언젠가는 사랑으로 바뀔 지도 모르니까 그 감정을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
“…그런 걸까?”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좋아하게 될 때, 그 때 정말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거야.”
교수가 칠판에 필기를 했다. 에그시는 이번에도 어떠한 압력에 등을 떠밀린 것처럼 연필을 잡고 교수가 적는 문장을 책에 옮겼다.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던 에그시는 자신이 두 줄쯤 엉뚱한 문장을 썼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록시가 해줬던 우아하고 소중한 말이 왜곡되어서는 까맣게 에그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에그시는 몸을 뒤로 빼면서 고개를 돌렸다.
필기를 마치고 다시 학생들 쪽으로 돌아서던 교수는 우연찮게 무언가에 진저리를 치듯 상체를 내빼는 학생을 발견했다. 교수는 조금 의아했다. 그렇지만 그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하게 되면 수업의 흐름이 흐트러질 거라 그는 입을 다물었다. 교수는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작품을 설명해가면서 학생들에게 지적 영감으로 작용할 만한 이야깃거리들을 던졌다. 교수는 책이나 분필을 쥔 채 교탁에 걸터앉았다가, 때로는 일어나 책상의 맨 앞줄을 훑으면서 입술을 움직여댔다. 에그시가 쥐고 있는 연필이 쓰러질 것처럼 진동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어? 네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죄가 되는 일만 벌어지지 않으면 너는 다 괜찮을 거라는 소리야.”
“질문할 게 있니?”
에그시가 눈을 연달아 깜빡였다. 에그시는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든 채로, 금방 강의실에서 빠져나갈 것 같지만 모종의 사정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듯한 모습으로 홀로 책상 앞에 있었다.
“이름이 에그시였던가?”
이번에는 에그시의 눈썹이 단계적으로 올라갔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털어놔 보렴.”
그 순간 에그시는 처음으로 교수의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는 꼭 오늘처럼 햇볕이 뜨거운 날에 그늘 속에서 남들이 질투가 날 만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에그시는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그의 하얀색 셔츠는 고급스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몽블랑 사의 볼펜과 정교하게 깎인 안경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에그시는 그 순간에, 자신의 유일한 친구에게도 귀띔해줄 수 없는 비밀을 가지게 된 자신을 바라보고야 말았다.
- 록시의 대사는 그레이엄 그린의 <사랑의 종말>에서.
'- Kingsm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Kingsman/해리에그시] Only Saying (0) | 2015.08.31 |
---|---|
[Kingsman/해리에그시] A Simple Procedure (for 별가사리님) (0) | 2015.08.31 |
[Kingsman/해리에그시] Worship in the Bedroom (0) | 2015.08.31 |
[Kingsman/해리에그시] Selfish, All Too Selfish (0) | 2015.08.31 |
[Kingsman/해리에그시] Human, All Too Human (0) | 2015.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