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Public Evil 05

- Kingsman/Novelette 2015. 8. 3. 16:28 posted by Jade E. Sauniere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Eggsy, and Galahad

- Written by. Jade


공공의 악

Public Evil



* 해리Harry




  해리는 귀에서 떼어 낸 핸드폰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가 전화를 하면 잽싸게 응답을 해주는 그의 조수가 벌써 두 번째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리는 진중하게 다섯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렸다.


  이번에 해리는 재다이얼 버튼이 아니라 숫자들을 눌렀다. 에그시가 애용하는 정보원들 몇몇과, 그가 특히 친하게 지내는 경찰들이라면 에그시의 행선지를 알 확률이 있었다. 비록 전화를 건 상대들마다 해리에게 불만족스러운 답변을 건넸지만 그는 크게 실망하지 않고 들리는 소식이 있으면 꼭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전화가 모두 끝나자 핸드폰은 바탕화면으로 돌아왔다. 해리는 액정을 눌러서 40분 뒤에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을 해 놓고 휴대폰을 뒤집었다. 40분을 기다렸는데도 조수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면 경찰서에 정식으로 실종 신고를 접수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서 해리는 놀랍도록 집중력 있는 속도로 서류 작업을 해치워갔다. 


  알람을 맞춰놓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판례집과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와 서류 형태의 자료 사이를 오가다보니 해리는 에그시가 퇴근이나 외근을 한 것이 아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해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 자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을 기억했다. 


  해리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려고 하는 차에 조수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해리가 전화기를 귀에 붙였다.


  “에그시?”


  그는 남은 손으로 흩어진 서류를 그러모으며 말했다.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단다. 어디니?”

  —에그시는 나랑 같이 있는데.


  해리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걸려온 통화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상황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숙고해 볼 만한 문제였다. 그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당신이 찾아올 가치가 있는 사람.


  해리의 입장에서는, 전화를 받고 있는 상대방이 그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라는 걸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리는 에그시를 잊지 않았다.


  “에그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해리는 책상에 놓여 있는 유선전화의 수화기를 잡았다. 해리는 그가 주로 맡는 의뢰인들의 특성상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었다. 그가 사정을 설명하면서 도움을 청하면 지금 걸려온 전화의 신호를 추적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이 수두룩했다. 


  해리가 두 번째 숫자를 누른 순간이었다.


  —저 정도 상처로는 안 죽어. 

  “…뭐라고?”

  —20분 정도는 살아있을 것 같군. 그 안에 불러주는 장소로 와서 같이 이야기 좀 하지.


  통화는 그 뒤로 1분도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일단 신속한 동작으로 현재 시간을 확인했으며, 겉옷과 핸드폰을 챙겼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책상에서 녹음기까지 꺼내 사무실에서 나왔다. 해리는 망설임 없이 택시 기사에게 웃돈을 쥐어주며 빠르게 목적지로 가 달라고 요구했다. 기사는 쉽게 승낙했다.


  택시가 멈췄다. 소요 시간은 14분이었다. 해리는 지불을 마치고 꼼꼼하게 자신이 핸드폰 너머로 들은 호수가 예약이 되어 있는지도 체크한 다음 승강기에 올랐다. 해리가 정중한 솜씨로 문을 두드렸다.


  체격이 좋은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자연히 시선을 올리던 해리는 헛기침이 나오려는 걸 꾹 눌렀다. 해리 하트가 해리를 위하여 길을 열어주었다.


  “편한 곳에 앉아.”


  아주 친한 친구나 피를 나눈 형제에게 쓸 법한 허물없는 말투였다. 해리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주머니에 넣고 있던 한쪽 손으로 녹음기의 전원을 켰다. 자리에 앉을 때가 되자 해리는 재킷의 단추를 풀기 위하여 천연스러운 동작으로 두 손을 바깥으로 노출시켰다. 


  “에그시는 괜찮나?”

  “상처는 잘 꿰맸고 지금은 잠들어 있지.”


  문틈으로 빛이 새어나오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해리는 우선 그것에 대해서는 파고들지 않았다. 


  “원하는 걸 말해봐.”

  “최근에 당신이 맡은 의뢰인 중에서 로버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로버트는 무척 흔한 이름에 속했다. 해리가 물었다.


  “성은 모르나?”

  “그것보다 더 확실한 정보를 주지. 그는 길버트 플레이스에서 도망쳤어.”


  해리의 두뇌는 즉각 그 장소에 반응했다. 그의 머리가 급히 사고했고, 로버트가 기를 쓰고 도망치려고 했던 자가 오싹하게도 자신과 꼭 닮은 눈앞의 남자라는 추리를 이뤄냈다. 해리는 내심 놀라면서도 당국이 그렇게 소리 높여 소탕하려고 하는 조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정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조직범죄의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장본인의 외모가 해리와 일치했음에도 그는 단 한 번도 범죄자로 오인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자신의 주머니 밑에서 열심히 소임을 다하는 중인 녹음기를 끄고 싶었다. 녹취 파일을 경찰에 갖다 줘도 그들은 단서를 끌어내기는커녕 해리를 의심할 것이었다. 그가 준비해온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해리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변호사라고 사건이 끝날 때까지 의뢰인이랑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지내는 건 아니야.”

  “요점은?”

  “나도 로버트가 어디 있는지 몰라.”


 남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해리를 향하여 꼭 부담 가질 것 없이 계속 이야기해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주변에 대한 경계가 병적일 정도로 심하더군.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사람이니 그럴 만하지. 그는 직접 경찰서에 나가지도 않고, 나를 만나는 횟수조차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내가 곧장 그를 넘겨줄 상황이 안 돼.”

  “그럼 시간을 주지. 당신의 조수는 그 때까지 내가 데리고 있겠어.”


  해리는 에그시를 인질로 잡겠다는, 명령문과도 같은 남자의 언어에 반박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생김새부터가 수상쩍으면서 난해한 남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만일 로버트를 찾게 되면 내가 어떻게 연락하면 되나?”


  남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먼저 당신을 찾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 


  해리는 그렇게 호텔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표정을 구겼다. 결국 구구절절 진실을 밝힌 쪽은 해리뿐이었다. 


  실제로 로버트는 문제의 현장에서 나온 뒤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경찰서에 숨어있는 첩자가 없을 것 같냐며, 자신은 경찰서에 절대로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 때문에 사법기관 측에서 로버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그걸 해리가 종이에 옮겨 적어서 로버트에게 주고, 다시 그로부터 답변을 담은 녹음 파일을 경찰서에 가져다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해리에게 그나마 호의적인 사실은, 내일 오후 늦게 로버트와 만나기로 전부터 일정이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호텔 건물에서 빠져나온 해리는 사무실까지 걸으면서 로버트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고심하기로 하였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잠깐 협박을 받았다고 해서 의뢰인을 팔아넘기는 변호사는 되고 싶지 않다는 하나의 반발이었다. 일종의 죄악이라도 불러도 손색이 없을 치부가 사악한 족속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리는 민간인인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로버트의 거주지를 알 수 없는 이유를 짜내려 애썼다. 그리고 해리에게 아주 익숙한 은빛 빌딩들의 열이 등장했을 때, 그는 답을 찾았다.





  해리는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근무 시간을 채웠다. 전화를 돌려서 코앞으로 다가온 재판의 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살아 움직이는 활자마냥 여기저기서 글자들을 흡수하고 그것들을 종이에 새겼다. 의미 없는 시간은 고맙게도 빨리 사라져주었다.


  해리가 로버트를 만나기로 한 시각은 오후 5시였다. 해리는 정확하게 7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로버트를 기다리면서 아예 핸드폰 액정을 켜 놓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로버트는 양 손을 주머니 속으로 단단히 감추고 등장했다. 해리는 두 개의 주머니 안에 각각 칼날이 접히는 단도와 휴대용 권총이 들어있다고 확신했다. 


  “두 번째 파일이에요.”


  로버트가 검은색 USB를 건넸다. 


  “얼굴빛이 별로 좋지 않군.”

  “그럴 수밖에 없죠.”

  “밤에 잠을 잘 못 자나? 원한다면 수면 유도제를 처방받아 줄 수 있는데.”

  “약기운에 취해 잤다가 속수무책으로 봉변을 당하는 것보다야, 그냥 피곤한 게 낫습니다.”

  “자네가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한 번 고려해줬으면 좋겠어.”


  로버트가 한 쪽 눈썹을 올렸다. 그는 얼굴까지 흔들어가면서 내키지 않는다는 심정을 강력하게 표현했다.


  “제가 경찰들과는 엮이기 싫다고 그랬잖습니까.”


  로버트는 질색을 하면서 팔짱까지 꼈다. 해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업상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을 단련해야 했으므로, 어렵지 않게 로버트가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걸 찬성해줄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걸 간파해냈다. 해리는 너무도 순식간에 자신의 첫 번째 계획이 엎어진 것을 아쉬워했다. 


  해리는 과장되지는 않았어도 로버트가 능히 들을 수 있게 한숨을 쉬었다. 로버트가 입술을 씰룩였다. 


  “자네는 자네의 보스에 대해 얼마만큼 아나?”


  로버트는 해리의 속내를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요. 그게 증인보호 프로그램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대답해주게.”


  “사실 뭐, 얼굴도 본 적 없는 인간입니다. 지령도 문자 메시지를 통해 받거나 비밀 장소에 숨겨진 봉투를 우리가 스스로 찾는 방식이에요. 그 사람은 적어도 저에겐 글자로만 존재하는 자였어요.”


  “그 얘기만 들어도 그가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걸 알겠군. 그런 자에게서 자네를 지켜줄 수 있는 장소가 자네의 근처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네.”


  로버트는 언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증인보호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제가 지금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곳을 제공하지는 못할 겁니다. 안에 들어간 가구는 좀 더 좋을는지 모르겠지만.”

  “로버트.”


  그것은 일종의 기교였다. 과연 로버트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분류해 놓은 변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도, 어깨를 좁히면서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해리는 로버트가 모든 내용을 확실히 들을 수 있도록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나는 이태까지 내 의뢰인이 죽는 불상사는 겪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 기록을 지켜가고 싶네. 그런데 자네가 죽으면 나도 경찰도 엉망이 되겠지. 게다가 나는 정작 자네의 입과 발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자네의 위치를 모르고 있어. 자네는 어디에서 자네의 안전을 찾고 있지? 간판이 다 떨어져가는 호텔? 아니면 친척의 지인에게 얹혀살고 있나? 객관적으로 그게 최선의 방책이냔 말일세.”


  마무리는 진지하고 솔직한 눈빛이었다. 로버트는 금세 위축되어서는 목소리를 조그맣게 냈다. 


  “…그럼 변호사님이 말씀해보세요. 저보고 대체 어디에 가 있으라는 겁니까?”


  해리의 차선책은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는 더 차분히 식어갔다. 해리는 법정의 뒤편에서 협상을 할 때 꺼내 사용하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로버트의 청각을 지배해나갔다. 


  “만약 내가 괜찮은 집을 제공해준다면 그건 믿음직하겠나? 증인보호 프로그램과는 연결을 짓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법무부와의 접촉을 끊을 수는 없어. 자네가 성실하게 협조해준다면 자네가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당국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할 거야. 좀 더 심화된 증언이 필요하다면 자네가 여기 오는 일 없이 화상 통화를 이용하도록 만들겠네.”


  로버트의 입술이며 턱 윗부분이 요동쳤다. 해리는 자신의 제안이 로버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로버트는 습기 찬 곰팡이 냄새를 풍겼으며, 자신의 수염을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필경 일회용 면도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리라.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여보자는 방안이 폐기되자, 해리가 차라리 자신이 로버트를 잡아놓는 쪽을 선택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로버트가 알고 있는 은신책이라든가 기척을 없애는 비법은 그를 부렸던 자가 눈치 채기에 너무도 쉽다는 게 첫째였고, 로버트를 근처에 잡아둬야 자신이 마음을 놓고 그 수수께끼의 보스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이 둘째였다. 해리는 쉬지 않고 머리를 굴리면서도 미동 없는 눈동자를 유지했다. 로버트가 얼굴을 숙였다가 들었다.


  “…생각하신 곳이라도 있어요?”


  해리는 이 때 자신이 대답을 망설이면 모든 게 틀어진다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이야.”

  “변호사님도 준비 기간이 필요하시겠죠?”

  ”일단은 우리가 만나는 주기대로 보도록 하지. 사무실 근처로 오게.”

  “알겠어요.”


  해리는 굳건함을 불어넣은 손길로 로버트의 어깨를 한 번 감싸주었다. 로버트는 말을 어물거리면서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해리는 로버트가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자마자 핸드폰을 꺼냈다. 해리는 잘 아는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전화를 걸면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