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공공의 악
Public Evil
* 에그시Eggsy
허리와 침대가 딱 달라붙었다. 침대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허리가 부러진 듯이 아팠다. 목구멍마저 따가워서 몸의 위쪽과 아래쪽이 골고루 불편했다. 칼에 찔려 피를 잔뜩 쏟아낸 데다가 그 뒤에는 리조또밖에 먹질 못했으니 몸살에 걸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더 자기로 했다. 내 집도, 사무실도 아닌 곳에서는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허리를 밀착시키고 눈을 감았다.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침실 안쪽이 고요해졌다.
갤러해드는 눈으로 에그시가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린 채 자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침실에서 나왔다. 갤러해드가 나가기 직전 에그시가 끙끙대는 소리를 냈으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갤러해드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갤러해드가 침실로부터 그럭저럭 멀어졌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액정에 떠오른 발신인의 이름을 읽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해리.”
갤러해드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해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소를 불렀다. 통화는 짧게 끝났다. 갤러해드는 그의 허리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셀러를 열었다. 갤러해드는 밑바닥이 앞쪽으로 나와 있는 몇 개의 병을 보면서 고민에 빠져있는 것도 같았다. 갤러해드의 뒷모습은 워낙 건조해서, 그의 등만 보고는 그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행동에 몰입하고 있는지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갤러해드는 다리를 잡고 병 몇 개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미동에 속할 만한 동작들이 침실에 있는 에그시를 깨우지는 못하겠지만, 갤러해드는 굳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다.
에그시는 깨어나지 않았고 갤러해드는 셀러 앞에서 몇 분을 더 소모했다. 갤러해드가 선택한 것은 샴페인이었다.
초인종이 눌렸다. 갤러해드는 얼음과 샴페인 병을 함께 넣을 철제 통을 꺼내는 일에 집중했다. 곧 갤러해드가 현관으로 가지도 않았는데도 문이 열렸다. 해리가 들어왔다. 그는 갤러해드가 샴페인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한 잔 줄까?”
“됐네.”
갤러해드는 웃으면서 입구가 좁은 유리잔에 샴페인을 채웠다. 갤러해드가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해리는 군소리 없이 갤러해드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에그시는 어디 있나? 여기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방에서 자고 있어.”
해리가 앉은 상태에서 뒤를 돌았다. 갤러해드는 해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샴페인을 마셨다. 에그시가 누워 있는 침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해리가 약간의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꺼냈다.
허리가 아프니 깊은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양쪽으로 한 번씩 뒤척였다. 옆으로 누워도 허리가 아픈 건 같았다. 몸살에 걸린 것이라면 모름지기 무릎도 쑤시고, 뒷목도 뻐근해야 하는데 허리가 너무나도 아팠다. 아마 허리의 고통이 가장 커서 다른 곳도 편하지 않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결국 바로 눕기로 했다. 허리에 무언가가 닿으니 한결 나았다. 눈은 그런대로 뜰 수 있는 것 같은데 머리에 힘이 하나도 가질 않았다. 나는 계속 누워 있었다. 어차피 방에서 나가봤자 내가 볼 사람은 갤러해드밖에 없었다. 나는 잠을 자려고 애썼다.
두 개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대고 얘기를 했다. 그 두 가지가 놀랍도록 일치해서, 나는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이 갤러해드와 해리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해리를 많이 걱정하고 있었나보다. 정작 악질 범죄자에게 잡혀있는 건 나였는데도 나는 자주 해리를 생각했다. 물론 갤러해드, 놈을 외면하기 위해서 해리를 끌어들이는 점도 있었다. 어쨌든 나를 여기서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해리였다. 내가 해리를 생각하는 건 조금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해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건가?”
아니, 이건 놈의 말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지. 그런데 그 질문이 무슨 쓸모가 있나?”
“나한테 로버트를 넘겨줄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내 호의를 사보겠다는 속내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은 처음부터 혼자였나?”
“로펌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내가 왜 당신의 호의를 사려고 노력해야 하지?”
“내가 혼자서 로버트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면 내가당신의 심부름꾼을 살려둬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 로펌에서의 일은 힘들었나? 이지적이고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마음에 안 들었어?”
“더 큰 의미를 추구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나는 해리의 곁에서 일하면서도 해리의 과거에 대해서 물어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내가 해리의 사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놈은 해리에게 곧장 답을 받아냈다.
목소리들을 듣다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어쩐지 내가 꿈속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는 게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해리를 떠올리는 맥락은 심사가 뒤틀리면 남한테 칼을 꽂아대는 놈에게 붙잡힌 나 자신에 기초한다. 더 이상 해리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도 않고 있었고, 놈이 요구한 사건에 관해서 얘기하지도 않았다.
나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대화는 계속되었다. 놈은 자신이 사악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고, 해리는 넌 범법자라고 대답했다. 나는 눈을 떴다. 분명히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앞이 캄캄했다. 밤이 됐나? 내가 침대에서 뒹굴다가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다른 곳에 신경을 쏟고 있다가 대화의 흐름을 놓쳤다. 가뜩이나 목소리가 똑같아서 누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헷갈리던 차에, 해리가 하는 말을 구분해내기가 더더욱 불가능했다.
“내가 사악해?”
“당신은 범죄자야. 납치범이고, 살인마일 수도 있지.”
“나는 굳이 누군가를 해하고 싶어서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일들을 저지른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악한가? 내 의도가 순수해도?”
놈은 해리에게 다른 질문을 하다가도 자신이 사악한지에 대해 해리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갈수록 내가 사악하냐고 묻는 놈의 물음이 반복되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해지니 잠이 잘 왔다. 나는 푹 잠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약도 안 먹고, 따뜻한 물도 안 마셨는데도 그랬다. 과연 잠이 보약이었다. 나는 가볍게 몸을 틀었다가 깜짝 놀랐다. 놈이 내 옆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침도 삼키지 못하고 눈을 닫은 놈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숨소리도 일정했고 몸을 꿈틀대는 기미도 없었다. 내가 도망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오지 않으리라.
나는 슬금슬금 침대 모서리로 몸을 비벼가며 움직거렸다. 방바닥에 발을 갖다 대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나는 무릎과 가슴을 붙이고 서서히 걸었다.
어디선가 빨간 불빛이 나타나서 내 이마 위를 맴돌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안을 깨물고 말았다. 빨간 불빛은 내 머리에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꼭 내가 저격수의 목표물이 된 것 같았다. 방문과도, 창문과도 그다지 가깝지 않은 애매한 위치라 나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빨간 불빛이 눈앞을 휙휙 지나갔다.
나는 결국 뒷걸음질을 쳤다. 빨간 불빛은 내 머리와 심장 부근을 오갔다. 나는 힘없이 침대에 주저앉았고 불빛이 차근차근 멀어져갔다. 허망했다. 그 허망함의 원인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자리에 눕자 놈이 내 몸에 팔을 얹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끌어당겼다. 잠결에 그러는 것인지, 나를 일부러 놀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자는 얼굴은 공평하다. 해리가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어도 아마 내가 보고 있는 얼굴과 아주 다르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나를 겨누었던 불빛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했다. 어쩐지 집 안에서는 나를 풀어놓는 것 같더니, 바깥에는 나를 감시할 인원들을 배치한 모양이었다. 살아남아서 해리에게 찾아왔던 그 로버트라는 의뢰인이 놈에게 그토록 중요한 인물인지 나는 사실 확신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로버트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나를 잡아놓고, 저격수를 배치하고 해리와 시간을 보낼 정도로 놈이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거물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놈이 나에게 자신이 사악하냐고 물었다. 하도 그 말을 많이 들었더니 이젠 내가 질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놈의 팔에 꽉 붙들린 채로 그를 향해 수수께끼라고, 소리 없이 답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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