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Saint and Sinner 04

- Kingsman/Full-length 2015. 5. 13. 21:28 posted by Jade E. Sauniere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성자와 죄인Saint and Sinner

Chapter 2. 자기 평가Self-Evaluation






  신발을 털고 들어온 순간부터 에그시는 해리를 찾아 집 안을 돌아다녔다. 양손을 점퍼 주머니에 꽂고 거실과 주방을 휙휙 둘러본 에그시는 해리의 서재에 켜진 불을 쫓아갔다. 에그시가 곧장 문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해리?”

  “들어와.”


  처음으로 범죄 현장이 아닌 곳에서 노크를 해본 에그시가 어색하게 문고리를 당겼다. 해리는 에그시가 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처럼 의자에 앉아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있었다.


  “여기 들어오신 적 별로 없으셨잖아요.”

  “그랬지. 잠깐 앉거라.”


  에그시는 전에도 앉아본 적이 있는 푹신한 검은색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전에 자네가 내 방에 붙어 있던 신문지에 대해 언급했었지.”


  에그시가 멀뚱히 눈만 굴렸다.


  “내가 왜 그것들을 붙여 놓았는지 알고 있나?”


  해리는 벽 쪽으로 살짝 꺾어 주었던 손목을 다시 편하게 쉬게 해줬다. 반면 에그시는 해리가 왜 가만히 있느냐는 눈짓을 받고 나서야 펄떡 뛰었다.


  “진짜요?”

  “뭐가 말인가?”

  “진짜로 궁금하세요?”

  “…자네의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면 내가 굳이 질문을 할 필요가 없지.”

  “이런 젠…이 아니고 맙소사.”


  에그시가 입술을 톡톡 때렸다. 이번엔 해리가 물끄러미 에그시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에그시가 들뜬 안색으로 발표를 하듯 신문기사들을 등지고 섰다. 


  “이 지면들 뒤편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저라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다 들려주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것들이 다 당신이 스파이… 그니까 킹스맨 요원 일을 하면서 달성했던 업적들을 의미하고 있다는 건 장담할 수 있어요.”

  “아무리 봐도 내가 관련 있는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킹스맨들의 업적은 언제나 비밀로 남으니까요.”


  에그시가 팔을 쭉 뻗어 맨 윗줄의 기사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당신이 첫 번째 임무를 맡았을 때에요. 대처 수상의 암살을 막았다죠. 이건 뭐랬더라, 펜타곤에서 스파이 조직들을 소탕했던 날의 기사랬어요. 당신이 파리에서 핵폭발을 막기도 했었대요.”

  “…내가?”


  비록 자신의 과거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그시는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는 뿌듯함을 맛보고 있었다. 에그시가 고급스러운 상품을 다루듯 기사들 아래에 자신의 손바닥을 갖다 댔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세계를 구하신 것 같네요.”


  에그시는 해리가 오묘한 낯빛을 띄워 올리기 전에 자세를 바꿨다. 해리는 독일과 영국 간의 경기도, 거대한 폭발을 저지했다는 비밀스러운 기적도 상기시켜 주지 않는 신문 기사를 바라보았다.  


  “여기 빈칸이 좀 남는데, 제 것도 하나 달아 놓으면 안 될까요?”


  에그시가 명랑하게 말했다. 


  “저도 서로 죽고 죽이려던 사람들을 살린 적이 한 번 있거든요. 당신을 감옥에서 꺼내줬던 바로 그 날. 집에 오자마자 냉큼 스크랩부터 했죠.”

  “…그렇게 해.”


  에그시는 그 말에 곧장 찢어 놓았던 신문지 한 쪽을 가져오려다가, 그것이 해리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생각해 내고 소득 없이 한 바퀴를 빙 돌았다. 


  “에그시.”


  에그시가 반으로 접은 다리 한 짝을 올린 자세로 고개를 틀었다. 


  “내가 정말 사람들을 구하고 다녔나?”


  에그시는 처음엔 가장 확실한 예시가 바로 앞에 서 있다고 말하려 했다. 헌데 그것보다 더 멋들어진 대사가 있을 것 같아 에그시는 턱을 잡았다. 해리는 간신히 입술을 붙들고 에그시가 답을 빚어내길 기다리고 있었다. 


  “전 당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 적 있었죠. 왜 하필 그걸 당신에게 배웠을까요?”


  해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자 에그시가 그의 몫까지 웃어주었다. 


  “당신이 남들 인생 살리는 덴 선수거든요.”


  해리는 에그시가 구사한 어투 때문에 그가 농담을 한 줄 알았다. 그로서는 전혀 신용을 내줄 수 없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지라 해리는 더욱 에그시와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이해가 안 돼요? 당신이 직간접적으로 살린 사람을 세려면 한 달 밤낮은 새야 할 걸요? 당신 정말로 좋은 일 많이 했다고요. 거 참.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본 게 은근 충격이셨나. 아니, 제가 그렇게 말할 형편은 못 되네요. 저도 해리한테 고맙다고 한 적이 없네.”


  해리는 이제는 어투가 아니라 에그시가 엉망으로 말을 잇는 흐름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걸 파악한 것처럼 에그시가 유리알처럼 아무 것도 담지 않은 해리의 눈동자를 붙잡았다. 


  “고마워요, 해리.”

  “…나한테?”


  해리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당신이 내 인생도 살려서 완벽하게 가꿔놨잖아요.”


  그렇더라도 해리는 에그시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워싱턴에 있는 인쇄소들에서 끊임없이 종이 뽑히는 소리가 났다.


  한 뭉치씩 쌓이고 있는 종이더미 위에는 흐릿한 사진 하나가 찍혀 있었고, 사진의 주인공을 깨끗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화질을 감안하여 그 옆에는 여러 가지 안내말들이 적혀 있었다. 185cm 이상의 체격을 가진 남성, 갈색 빛이 도는 곱슬머리, 안경을 착용했으나 벗은 모습도 가능할 수 있음 등등. 더불어 그 모든 것의 위에는 용의자를 쫓고 있다는 위압적인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렇게 FBI가 다수의 인쇄소들에게 의뢰하여 찍어낸 수배 전단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워싱턴 D.C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어느 은색 고층 빌딩에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대체 뭐야.”


  커피 한 잔으로 평화롭게 하루를 열려던 한 남성이 아침에 도착한 각종 서류들 중에서 맨 위에 놓여 있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지나가던 여인 하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이 전단지 말이야, 오늘 FBI에서 뿌린 건가?”

  “네. 켄터키의 한 교회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더군요.”


  그가 수배 전단을 자신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의 낯빛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당장 본부와의 직통 회선을 열어.”


  여인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왼쪽으로 돌았다. 남성은 그대로 오른쪽으로 직진해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갔다. 타이밍 좋게 그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세 번째 전화기에서 불빛이 점멸했다. 

 

  —상담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워싱턴 지국의 제퍼슨입니다. 갤러해드와 통화하고 싶습니다만.”


  곧 통신을 암호화하기 위한 기계음이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첩보기관의 미국 지부의 일원이 본부와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었으니, 남자가 수화기를 계속 붙잡기 어렵도록 노이즈는 지속되었다. 4분 정도가 지나서야 전화기 너머에서 사람의 육성이 들렸다.  


  —본부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남자가 갸웃했다.


  “…멀린?”

  —제퍼슨?


  미국에서 활동하는 킹스맨 요원들은 미국의 독립 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에 서명한 위인들의 이름을 코드네임으로 삼고 있었다. 미국의 영광스러운 건국 시조들 중에서도 제일 명망 깊은 인물의 성을 사용하고 있는 남자가 그 무게감에 걸맞는 목소리를 냈다.



  “난 교환원한테 갤러해드와 얘기하겠다고 말했는데 왜 당신이 받는 겁니까? 갤러해드는?”


  —그는 지금 본부에 없습니다. 특별히 갤러해드를 찾는 용건이 있습니까?


  제퍼슨은 할 수만 있다면 멀린에게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부터 FBI가 뿌렸다는 수배 전단을 들고 있는데 말이죠. 죄목이 아주 화려하군요. 켄터키의 한 교회에서 70명이 넘는 교인들을 죽인 걸로 의심된답니다. 교회 안에 마침 감시 카메라 한 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럭저럭 몽타주가 나왔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멀린은 말이 없었다. 제퍼슨이 문장을 마무리 지었다.


  “갤러해드와 많이 닮았네요.” 


  제퍼슨은 그러면서 수배지에 나온 사진을 재차 보았다. 어느 때에 갤러해드가 입었던 적이 있는 양복의 빼어난 자태를 알아볼 수 있는 제퍼슨은 실상 사진에 찍힌 남자를 7할 이상 갤러해드라고 점치고 있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갤러해드가 나서서 해명을 할 법 한데요. 멀린, 당신이 해줄 겁니까?”


  멀린이 길게 숨을 내빼는 소리가 전해져왔다. 


  —…오늘 전단이 나왔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그건 미국에만 배포된 것이군요. 인터폴로 넘어가지는 않았고.


  제퍼슨이 발끈했다. 


  “멀린, 지금 그의 죄를 덮어주려고 하는 겁니까? 그가 무슨 임무를 맡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수십 명의 민간인을 죽인 건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되지 않을 겁니다.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간 거라면 모를까.”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뭐라고요?”

  —해리는 약 3주 전까지만 해도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제퍼슨은 이 순간 하트퍼드셔와 통화할 수 있는 회선에 화상 장비가 들어있지 않다는 걸 통탄해했다. 제퍼슨은 대체 멀린이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전설적인 킹스맨 요원의 죽음을 단정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키가 낮은 집들과 자연이 홀로 일구어낸 식물들이 지평선을 채우고 있었다. 하품이 나올 만치 흔한 정경에는 유명인의 생가를 제외하면 별 볼일  없는 영국의 한 시골 마을이나, 아니면 농장만 가득한 미국 남쪽 지역을 연상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극악무도한 학살자라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버릴 곳에서 해리 하트는 총을 쥐고 서 있었다. 


  해리는 자신의 시야가 맑아지길 기다렸다. 그의 눈동자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면서 해리는 아마추어가 모작한 듯한 성화라든가 한쪽 다리가 부러진 의자 따위를 식별해냈다. 내부의 한쪽 면은 뻥 뚫려서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창문 흉내를 내고 있었다. 해리는 더 새로운 무언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선반 위에 넘어진 촛대 하나와 아랫부분이 부러진 십자가가 있었다. 


  그가 초반에 봤던 성화가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자신이 있는 곳이 교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도 못했었다. 해리는 어렵사리 보수 공사가 시급해 보이는 건물에 꼬리표를 달아주고, 교회 안에서 총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 총으로 저도 죽이실 건가요?”


  기척도 없이 등장한 에그시가 해리에게 말을 걸었다. 해리는 그것이 자신이 몇 번이고 들었던 대사와는 살짝 다르다는 걸 눈치 챘다.  


  “너도 죽일 거냐고…?”

  “네.” 

  “여기에 너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어.”

  “그렇다면 저 자국은 뭐죠?”


  해리가 고여 있는 피를 보고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순간 그는 이 꿈이 며칠만 반복되면 자신이 피와 함께 죽은 사람을 목도하게 될 거라고 직감했다.   


  “나는 몰라. 네가 설명해.”

  “절 죽이지 않으실 건가요?”

  “내가 널 쏘면 난 잠에서 깨어나. 하지만 널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그걸 아는데도 왜 당신은 매번 절 죽였죠?”


  해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에그시에게 연거푸 총을 쏘는 그 강렬한 상항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도를 숙고해본 적이 없었다. 해리가 총을 잡고 있는 손목을 움직였다.


  “왜냐하면….”


  에그시가 흔들림 없이 해리를 응시했다. 해리는 그것을 견고하다기보다는 증오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너를 간절히 죽이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해리는 에그시를 쐈다. 에그시가 뒤로 휘청거리면서 꿈이 끝나기 직전, 해리는 에그시가 가리고 있던 수많은 시신들을 본 것 같았다. 


  해리는 불이 꺼져 까맣게 보이는 천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비가 오려고 하는지 하늘은 우중중한 회색 천을 펼쳐놓고 있었다. 해리가 커튼을 걷었다. 에그시가 막 후드를 쓰고 뛰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해리는 꿈에선 살의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머리를 날려버렸던 청년이 갑작스레 그리워졌다. 





  하늘이 천연스럽게 비를 뿌렸다.


  에그시가 조깅을 하러 나간 지 35분이 흐른 시간이었는데, 해리는 그 정도라면 에그시가 소호까지는 충분히 넘어갔을 거라고 짐작했다. 해리가 창문 밖으로 손을 뻗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피부가 흠뻑 젖었다. 아무리 세상을 구한 전력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라도 이겨내기 쉽지 않을 듯한 빗줄기였다.


  해리가 마침내 코트를 입고 현관으로 내려왔다. 그가 우산꽂이에 있던 두 개의 장우산을 휙 낚아챘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묵직했다. 해리는 반사적으로 코트와 함께 챙겼던 안경을 십분 활용해 에그시를 찾으러 다녔다. 해리가 인영 없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줌을 200%로 활성화시키고 동네를 누빈지 20분 가까이가 되자 해리는 물을 털듯이 팔을 퍼덕거리면서 뛰고 있는 에그시의 실루엣을 분간할 수 있었다. 해리가 걸음 속도를 높였다. 정신없이 빗물을 닦아 내리던 에그시는 낯익은 우산을 보고 세게 눈을 비볐다.


  “해리?”


  에그시가 정지했다. 정확히는 너무 놀라서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상이었다. 


 “이미 비를 많이 맞았구나. 그래도 일단 받으렴.”


  해리는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대를 어깨와 목 사이에 잠시 끼우고 나머지 우산을 직접 펴 주었다.


  “아니 어떻게….”

  “네가 맨몸으로 나가는 걸 봤다.”


  에그시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밖으로 삐져나온 해리의 팔 때문에 잽싸게 우산을 받아들었다. 해리가 부드럽게 옆으로 비켜났다. 


  “고마워요.”


  “천만에. 들어가자.”


  에그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웃음을 흘렸다. 킹스맨의 표식이 둘러져 있는 우산이 상식적이고 평범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것도 웃겼고, 해리가 자신을 마중 나와 준 것은 멀린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에그시는 재채기를 한 번 하고 본격적으로 방실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해리는 검은 천으로 교묘하게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인적도 드물어지는 시간에 한 양복점의 걸쇠가 풀렸다. 슥 하는 소리도 없이 멀린이 나타났다.  


  “제퍼슨,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서.”


  제퍼슨은 눈 주변에 퀭해진 멀린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아서의 자리가 공석이니 이해합니다. 폰티악 작전도 갤러해드가 착안했다고 해서 여전히 그가 당신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은가 보군요.”

  “그의 잘못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에서 다루도록 하죠.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멀린은 다른 대륙에서 날아온 동료를 크게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표시하며 제퍼슨을 다이닝룸으로 안내했다. 


  “혹시 그 전단지를 가져오셨습니까?”


  제퍼슨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길게 접힌 종이를 꺼냈다. 멀린은 그것을 펼치자마자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국에 있는 요원들 중에서 갤러해드와 직접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거지요. 아직 다른 사람들은 이 자가 같은 요원이라는 걸 모릅니다.”


  제퍼슨은 멀린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여 살며시 수배지를 치웠다. 


  “수배 전단이 영국에 오는 걸 막으려면 FBI가 인터폴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걸 방해하는 쪽이 가장 잘 먹힐 겁니다. 시도는 해볼 수 있어요.”


  “그러면 범인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젠장, 교회 안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해리가 송신한 영상으로 한 번 봤으면서도 손을 쓰지 못했어요. 진즉에 처리했었어야 하는 건데.”


  멀린은 이마를 압박하는 것으로 가벼운 자책을 마친 다음 현실로 돌아왔다. 


  “머리를 짜낸다면 FBI가 해리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해리가 카메라 영상 외에 다른 증거물을 남기지 않았다면요. 그가 가져갔던 총도 희귀한 종류는 아니었고, 그의 지문은 이쪽 데이터베이스에다 직접 돌리지 않는 이상 그 주인을 알 수는 없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건 해리가 자신이 한 짓을 알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무리 불가항력이었다는 점을 강조해도 그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제퍼슨은 워싱턴 기념탑 앞에서 흥미로운 담화를 나누었던 신사를 되짚어봤다. 아서 왕에게 가장 충실했다는 기사의 이름을 받은 그는 부드럽고 사려 깊었으며, 자신이 특수 요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각종 특권보다는 책임 의식을 통감하는 인물이었다. 제퍼슨은 멀린의 걱정을 이해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가 미국으로 가서 자수를 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멀린은 만약 자신과 해리가 숨바꼭질을 한다면 누가 승리할지 한 치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FBI에게 잡히겠다면서 자취를 감춘 킹스맨 최고의 에이전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는 제퍼슨도 멀리 하고 싶은 난제였다.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해리가 일단 기억을 찾아야 이 얘기를 들어도 충격이 덜 할 텐데….”


  멀린은 이태까지 논의한 것은 문제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그를 붙잡고 있는 거지같은 요소들이 떨어질 줄 모르는군요.” 





  제퍼슨은 행여 영국에 들어온 유일한 FBI의 수배전단지가 불운의 회로를 거쳐 해리 하트에게 흘러드는 것을 막고자 그것을 멀린에게 주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까지는 한 사람을 제외하면 미 연방 수사국이 추적하고 있는 용의자가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는 걸 아는 자는 없었다.


  정작 자신이 필사적으로 보호받고 있음을 모르는 당사자는 외출 후 귀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열쇠를 꺼내던 해리는 우체통이 아니라 현관 귀퉁이에 꽂아져 있는 봉투를 발견하고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멀린은 우체국을 애용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에그시는 해리의 집에 정식 거주인으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해리는 마지막으로 집 주변 골목을 훑어본 뒤에 봉투를 들었다. 봉투 앞에는 그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곧이어 ‘지명 수배’라는 글자가 해리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