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성자와 죄인Saint and Sinner
Chapter 2. 자기 평가Self-Evaluation
해리는 혼자서 은회색 빛깔의 의료장비 속에 누워 있었다. 유리창 하나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방에 의사가 한 명 있긴 했지만 제대로 따지고 들자면 해리는 혼자였다.
갑자기 해리는 의사가 곁에 없다는 것이 언짢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신체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물질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유리창 건너편에 숨은 것 같았다. 반면 그는 남들에 비해 완전하지도 못한 머리로 방사능을 쐬고 있었다. 해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촬영 사진을 보기 위해서 의사는 의료장비 근처가 아닌 컴퓨터 앞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해리가 반대편에 있는 의사의 위치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는 병실의 천장만큼이나 밋밋한 촬영장비의 면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몹시도 피곤해졌다.
⁂
에그시가 기척을 한껏 줄이면서 방에서 나왔다. 다섯 걸음이면 갈 수 있는 해리의 침실에서는 빛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에그시는 난간을 붙잡고 아래로 엎어지기 직전까지 상체를 숙였다. 해리는 거실에 있었다.
거실에 딱 버티고 있는 킹스맨 요원을 따돌리고 외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서자 에그시는 긴장감에 꽉 잡혀 있던 사지를 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에그시가 서 있는 곳에서는 소파에 앉아 있는 해리의 뒷머리가 보였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디?”
“엄마가 집에 들르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요. 빨리 다녀올 테니까 먼저 주무셔도 돼요.”
“…그래.”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는 에그시가 사라졌음을 알았다. 해리는 조용히 소파 앞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안경과 시계, 더 이상 평상적으로 지나칠 수 없는 물건들이 탁자 위에 정렬되어 있었다. 해리는 그것들이 자신과 닮은 점이 많다고 여겼다.
해리가 전등을 끄고 방금 앉아 있던 자리에서 더 왼쪽으로 옮겨갔다. 에그시가 들어오더라도 거실 안으로 반 이상 몸을 걸쳐놓지 않는 이상 그가 해리를 볼 수 없는 위치였다. 예측컨대 거실에 불이 꺼져 있다면 에그시는 해리가 잠을 자러 들어간 것으로 알고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을 터였다.
해리는 자신의 시선이 어디에 닿아 있는 것인지도 구별할 수 없는 캄캄한 구석에서 침묵했다. 그는 에그시를 감시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해리는 에그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불신하고 있었다.
⁂
캡슐 문이 열리자마자 에그시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멀린을 발견했다.
“해리는?”
“집에 갔다 온다고 둘러댔어요. 근데 여기 오는 걸 왜 해리한테 말하면 안 돼요?”
“너한테 보여줄 게 아직 해리 귀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에그시가 그게 무슨 뜻이냐며 물어보기도 전에 멀린이 파일 모양의 타블렛을 뒤집었기 때문에 에그시는 입을 다물고 안경부터 썼다.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왔어.”
에그시가 대책 없이 해리를 본부로 데리고 오기 이전에, 멀린은 해리가 검사를 받을 병원 하나를 에그시를 통해서 지정해 놓고 결과를 내려 받는 식으로 해리의 상태를 점검했었다. 중간에 끼어 있는 민간 병원은 장비의 수준이나 속도 모두 멀린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멀린은 해리가 본부에 발을 들여놓은 그 날부터 직접 해리를 데리고 검사를 시행했었다. 에그시도 그걸 떠올리곤 심각하게 팔짱을 꼈다.
“…음, 저는 저 사진이 뭘 찍은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멀린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간단하게만 알려주지. 일단 최악은 면했어. 해리가 영영 옛날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 거야. 기억 세포가 서서히 재생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어.”
멀린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에그시는 더욱 진지하게 눈꼬리를 올렸다.
“잘 됐네요. 근데 이걸 왜 해리한테 숨기는데요?”
“해리의 상태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라서야.”
멀린이 화면을 넘겼다. 그동안은 반쯤 멀린의 분위기를 흉내만 내고 있던 에그시가 안경이 뚫어져라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외상이 제때 치유되지 않아서 전에 해리에게 영향을 줬던 발렌타인의 신경파가 손상된 부위에 일부 남아버렸어. 인공적으로 전기 신호를 줘서 남은 파동을 밀어낼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못 해. 정상적으로 치유되고 있는 부분도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에그시는 짙은 회색으로 보이는 뇌의 중심에 불길한 쥐꼬리 같은 발렌타인의 줄기가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버리고는 기겁을 했다. 에그시가 멀린을 붙잡았다.
“기다리면 돌아오는 거예요? 그 발렌타인의 신호는 정말 나쁜 거잖아요. 해리를 미치게 만들잖아요.”
“그건 나도 모르지. 일단은 기다려보는 수밖에.”
화면이 꺼졌다. 에그시가 무언가를 털어내듯 안경을 벗었다.
“어쨌든 위험 요소는 있는 거니까 해리를 최대한 폭력적 상황에 노출시키지 않는 게 중요해.”
“또 해리한테는 자신이 이런 상태라는 걸 알리지 말고요?”
“그렇지. 그의 머릿속에 왜 저런 수상쩍은 게 있는지 설명하려면 교회에서 있었던 일까지 얘기해야 하잖아.”
에그시가 자신의 머리칼을 한바탕 뒤집어 놨다. 멀린은 여러모로 에그시의 행동을 따라할 수 없었으므로 무겁게 타블렛을 옆구리에 끼는 것으로 그쳤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해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저번 일도 어쨌든 잘 해결했고, 여기서 자기가 일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기억을 더듬어보기 위해서라도 자꾸 오려고 할 거예요. 임무를 할당받으려 할지도 모르죠. 인력난 때문에 멀린이 폭발하기 직전인 것도 다 아는데, 뭐.”
멀린은 담담히 에그시의 말에 담긴 설득력을 인정했다.
“젠장, 그러게 말이다.”
⁂
에그시가 해리를 그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본격적으로 그의 곁을 지키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에그시는 해리의 조용함이 의도적으로 연출된 건 아닌지 자신감 없이 의심하면서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풍경 너머에서 무엇을 끄집어내고 있는지 모를 해리 하트의 등 뒤를 맴돌았었다.
그 때 해리는 에그시를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매우 소중히 대하면서도 보살핌과 걱정이라는 명목 아래 둘러진 한계선을 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이 청년은 심지어 해리의 무의식 속에서도 그 어중간한 태도를 고수했다. 반복되는 꿈속에서 해리는 모호한 필요성을 지닌 안경을 쓰고 에그시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에그시는 언제나 빈손이었고, 대신 해리와 흡사한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해리가 그 안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눈앞의 청년을 죽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해리는 늘 자신의 확신을 따라갔고 청년을 죽인 뒤 잠에서 깼다. 그렇게 일어나고 나면 꿈에서 자신이 죽인 에그시가 부서진 토스트 가루를 치우려고 애를 쓰는 장면을 목격했다.
해리는 처음에 그것이 에그시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무의식의 경고라고 이해를 했다. 그는 에그시의 밤 인사를 받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에그시를 죽였다. 기반이 사라진 현실과 기반이 불분명한 꿈을 오가면서 해리는 한참을 헤맸다.
그러던 해리가 자신이 발붙일 시공간을 확정했던 것은 아주 우연한 일에 의해서였다.
해리는 그 날 의도적으로 방문 사이에 틈을 만들어 놓았다. 매번 누군가를 죽이는 꿈도 달갑지 않았기에 해리는 그 날 밤을 통째로 투자하여 에그시를 정탐하려 한 것이었다. 이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침대 위에서 고요히 숨만 내뱉던 해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 해리가 그림자처럼 일어났다.
에그시의 방에서는 찬 공기와 더불어 언어가 포함되지 않은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서리에 처박혀 자신의 흐느낌을 감추려고 했던 에그시는 정작 출입문을 꽉 닫아 놓지 않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게다가 오늘따라 해리는 잠을 자는 일도 미뤘다. 에그시는 자신의 응어리를 풀어내기에 가장 좋지 않은 날을 선택했다는 것도 모른 채 몸을 말고 있었다.
한쪽 눈을 다 밀어 넣지도 못할 공간만으로 해리는 에그시의 굽은 형태와 그것이 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읽었다. 해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나왔을 때보다도 더 해리의 침실은 열려 있었다. 에그시가 모르는 또 하나의 사실이었다.
해리도 에그시가 랜슬롯의 메달을 안고 울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사항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허나 해리는 자신이 실제로 에그시를 피하고 심지어 그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지옥이 따로 없군.”
사우스 글레이드 교회의 입구를 열자마자 남자가 내뱉은 말이었다. 마치 재앙이라도 떨어진 듯이 온갖 형태와 사인으로 죽어 널브러진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했다. 남자는 안면을 딱딱하게 굳히고 발을 내딛었다.
“우리 측에서 이 교회를 쭉 주시해 오지 않았나? 이전과는 다른 특이점이 보고된 적은 없고?”
조수 격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남자가 실눈을 뜨면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네, 없었습니다. 사건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날에도 일상적인 예배가 이루어졌던 것 같고요.”
“예배라기보다는 정부를 사탄의 후예로 모는 궤변이라고 해야 맞겠지.”
남자가 입구 주변에 있는 시신 하나를 발을 이용해 바로 눕혔다. 약간의 오차도 없이 심장을 뚫은 총상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아예 쭈그려 앉아 시신들의 상처를 확인하고 다녔다.
“누가 여기에 신경가스라도 풀어놓았었나 봅니다.”
조수는 꽤나 태연하게 시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남자를 내버려두고 천장과 같은 정상적인 풍경으로 눈동자를 채웠다. 그러다 CCTV를 발견한 조수의 눈썹이 바짝 올라갔다.
“난장판이긴 하지만 대부분 솜씨 좋은 한 사람이 죽인 것 같군. 마구잡이로 달려든 게 아니라 한 번 잡은 타깃은 확실히 끝냈어.”
“아마 저 카메라에 찍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감시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방이 있는지 찾아보죠.”
조수가 자리를 떴다. 일곱 명의 사인을 확인한 남자는 한 줌의 질서도 끌어낼 수 없는 부러지고 훼손된 사지들을 건너뛰면서 중앙에 나 있는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형상으로 죽어 있었다. 개중엔 나무 막대기에 목구멍이 뚫린 사람도 있었다.
남자는 계획과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 광경들에서 범인이 가장 빠르게 살인을 행할 수 있는 방법만 택했음을 추리했다. 남자는 오래간만에 무서운 적을 만났다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요원님!”
문가에서 조수가 그에게 크게 손짓하고 있었다. 조수가 안내한 곳은 교회 옆에 붙어 있는 주임목사의 거처였고,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안에 속한 작업실 같은 공간이었다. 조수가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로 서서 키보드를 눌렀다.
“영상에서 건질 수 있는 게 아예 없지는 않더군요.”
양복 덕분에 단연 돋보이는 남성 한 명이 막 교인 하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아래로 흘러내린 곱슬머리 몇 가닥과 안경을 쓴 옆모습이 극도로 작게 보였다.
“몽타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부분은 전부 뽑아놔. 곧장 수배령 내릴 거야.”
남자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교회 앞에 선 SUV에서 등판에 FBI라는 글자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대원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
한편 킹스맨 지부들은 본부로부터 특급 지령을 받았다.
멀린은 런던에서 한 번 시험 절차를 거친 바 있는 해리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정치력 좋은 요원들이 각 정부에게 일어날 통신 대란을 알리며 양해와 협조를 구했고, 마치 통신사의 서버에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활동에 착수한 것처럼 정보들이 뒤집어졌다. 작전명 ‘폰티악’의 발효로 발렌타인의 USIM 칩들이 각국에서 무더기로 폐기되었다.
그러면서 멀린은 은밀하게 발렌타인의 회사를 침몰시키는 일을 거들었다. 스웨덴의 틸디 공주를 비롯해 발렌타인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을 독려하여 그가 저지른 죄와 관련된 증거를 모으고 발렌타인 회사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부추겼다.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는 멀린의 손 근처에는 그의 전투력을 향상시켜주는 해리의 뇌 스캔 사진이 버티고 있었다.
서서히 발렌타인의 회사는 분해되어갔고 주인을 잃은 첨단 시설들이 공정한 절차를 거쳐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직원들과 연구원들에겐 죄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무사히 새 직장을 얻었고 발렌타인의 이름만 끝없이 추락했다. 상처 입은 것들이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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