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sed on <The King's Speech>, starring Colin Firth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2015/02/27
- Written by. Jade
The King's Confession
얼굴을 가려줄 그늘이 절실했으나, 청년은 차마 눈앞의 남자를 두고 모자를 쓸 수 없어 그것을 옆구리에 낀 채 말했다.
“복무지가 정해졌어요.”
청년이 옆으로 미끄러지려 하는 모자에 힘을 주었다.
“영국을 떠나게 됐어요. 아마 저 모로코까지 내려갈 지도 모르겠어요.”
“…알고 있다.”
영국 해군 제독의 정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 그 명예로운 유니폼과 어울리지 않게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그는 청년의 뒤쪽에 있는 잘 깎인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정숙하지 못한 움직임을 다잡았다. 그 때 남자의 낯빛을 살핀 청년은 남자가 자신에게 시선을 두고 있지 못함을 알았다. 그래서 청년은 목소리를 높였다.
“공평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억지로 끌어 올린 음색에서는 금방이라도 금 가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저만 특별 취급 하셨으면 폐하께 화를 냈을 걸요. 저는 그런 특혜를 노리고 폐하 옆에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에그시.”
남자의 눈길이 다시 청년에게 닿았다. 청년은 이태까지 영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엄숙한 정원을 소유했다는 것 이외에 남자가 가진 너무나 많은 직책과 위상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었다. 그러나 청년은 그 모든 역사를 내려놓고 남자를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남자는 자신을 가장 명랑하고 씩씩한 자세로 대해 주었던 빛이 자신을 지나쳐 크게 회선을 그리는 걸 목격했다.
“왜 굳이 힘든 길을 택했지?”
“무슨 말씀이시죠?”
“입대 지원서를 봤다. 애초에 너는… 이 땅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비어 있는 청년의 팔이 들썩였다. 청년은 멋쩍게 머리를 긁으려다 말았다. 자신이 저 멀리 프랑스령까지 내려가 진을 치면서 보호해야 하는 존재 앞에서 취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반박은 하지 않을게요.”
“설명을 듣고 싶다.”
“시간 없으실 것 같은데. 폐하 기다리는 사람 많잖아요. 국방장관도 있을 것이고, 수상님도….”
“내가 이태까지 너와 공유했던 나날들마저 모욕하려 하지 마라.”
남자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인 청년의 왕이자 그에게 부정할 수 없는 애틋함을 품은 이로서 말했다. 그는 가장 빈틈없는 사실마저 회색빛 선전으로 찢겨지는 곳에서도 드물게 진솔함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경험도 부족하고 배운 것도 많지 않는 청년조차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그러한 점이 바로 청년이 자신의 머리 위로 그늘을 끌어들이고 싶은 이유를 제공하고 있었다.
“전쟁이 제가 폐하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는 명분을 주었어요.”
“…더 자세하게 얘기해 보거라.”
청년은 순간 자신이 모자를 옆에 끼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팔을 벌렸다.
“폐하도 폐하 형처럼 저랑 있자고 그 자리에서 나오실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하실 수도 없으시잖아요. 폐하는 성실하시고 책임감도 강하시고 영국 시민들을 사랑하세요. 폐하가 지켜낼 가치가 있는 왕좌와 국민을 사랑하시잖아요.”
남자는 청년의 말에 의하여 순식간에 국왕으로서만 그의 앞에 존재하게 되었다. 아직 탁해지지 않은 바람이 온갖 색깔들로 엮인 가슴팍의 장식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그것들 역시 남자에게 단 한 가지 지위를 강조하고 있었다.
“계속 그래 주세요. 그게 폐하에게 좋아요. 옳은 일이에요.”
“왜 너마저 나를 배경과 혈통에 함락된 사람으로 보는 것이냐.”
“저는 폐하를 비하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버릴 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걸 참아 왔다. 그런 내가 단 한 가지, 나에게 오롯하게 허락하고자 하는 걸 네가 지금 부정하고 있어.”
“지금 세계는 전쟁 중이에요.”
“나는 이미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거로는 모자라요!”
인내심이 바닥났을 때, 길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던지거나 주먹을 날리면 된다는 법칙이 몸에 익어버린 청년은 또 다시 국왕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청년은 이대로 왕을 모독했다는 죄로 교수대에 걸리는 게 차라리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왕은 그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보다 더 많이 배우신 분께서 왜 그걸 모르세요? 전시의 지도자는 무조건 완벽해야 해요. 그래야 평범한 사람들이 기댈 수 있죠.”
청년의 잇새에서 그도 예상치 못한 물기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완벽해지세요. 그리고 완벽한 국왕은 저 같은 하찮은 이를 곁에 두지 않습니다, 폐하.”
말을 마치고 나서도 청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왕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아서 청년은 시야에 들어오는 신발코를 통해서만 그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말에 일리가 아예 없지는 않다.”
보이지 않게 불안과 죄책감에 빠져들고 있던 청년의 의식을 남자의 한 마디가 끌어올렸다. 청년이 힘겹게 현실로 돌아왔다. 왕은 여전히 송구스럽게도 청년의 앞에 있었다.
“다만 나는 내 불완전함을 유예하는 거라고 표현하고 싶다. 전쟁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을 거야. 물론 두려움도 있다. 완전함을 가장하고, 흠이 있을지언정 틀림없는 나의 진실인 것을 옆에 미뤄두고 있다가 그 유예가… 소멸하고 종결만이 남을 것 같아서.”
정치적이고 추상적인 화술을 연마해야만 했던 남자는 그 의미가 견고히 굳어져 있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다행히도 청년은 남자의 말을 해독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국왕이 얘기하는 진실이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이라는 것과, 미래를 위해 꾹 눌러두고 있던 어떤 귀중한 것이 영영 땅 속으로 스며들 가능성을 염려하는 그의 속내를 읽어냈다. 그런데 남자의 말을 다 이해하고 나자 청년은 더 가슴이 답답해졌다.
“젠장, 다른 거 다 고쳤으면서 왜 이렇게 고집 부리고 그래요.”
남자가 청년의 험한 표현을 듣고 눈동자를 살짝 크게 떴다.
“사실 전 지금도 몸이 달달 떨린다고요. 당신은 너무나 고귀해. 태양이 되라고요. 저 강변에서 상인들이 파는 싸구려 전등으로 추락하지 말고!”
청년은 저도 모르게 그 뒤에 덧붙이려던 사족을 억눌렀다. 남자가 그 자신이 다스리는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음을 청년이 굳이 짚어줄 필요는 없었다. 과연 남자도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고 있는지, 청년이 경솔한 말씨로 저지른 각종 위반 사항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걸 원한다면 지금 무릎을 꿇어라.”
“네?”
“네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어서.”
청년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국왕의 명령을 따랐다.
“이제 내 허락이 없이는 죽지 않겠다고 말해.”
“…예?”
“귀족, 평민을 가리지 않고 국왕에게 하는 맹세는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너의 왕에게 전쟁 속에서 살아남겠다고 약속해라. 네가 태양이 본디 가지고 있어야 할 빛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이렇게라도 네 목숨을 붙잡아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청년이 더듬더듬 얼굴을 올렸다. 빛을 받으며 서 있는 국왕의 자태는 몹시도 진중했으며 또한 존귀해서 청년이 의심을 가질 만한 여지를 주지 않았다. 청년은 다시 아래로 고개를 처박고 왕에게 맹세를 올리는 절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다급히 생각해보았다. 물론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청년이 구제할 길 없이 협소한 자신의 상식에 대고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고 있을 무렵 왕이 살짝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년은 본능적으로 왕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청년이 천천히 읊었다.
“폐하께서 저에게 죽음을 명령하시기 전까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 땅에서 발을 떼지 않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청년이 국왕의 손을 놓았다. 하지만 왕은 팔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청년의 한쪽 볼을 감쌌다. 청년은 자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리를 폈다. 청년보다 키가 두 뼘은 더 큰 왕이 자신의 소중한 육체를 굽혀서 청년과 같은 눈높이로 내려왔다. 거룩한 입술이 청년의 이마에 닿았다.
“…가도 좋다.”
⁂
“폐하, 안에 계십니까.”
보좌관이 노크를 하며 말했다. 곧잘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대답을 내려주던 집무실의 주인은 어쩐 이유에선지 잠잠했다.
“폐하?”
궁내부원으로부터 왕이 잠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온 보좌관이 미세하게 눈썹을 찡그렸다. 보좌관이 결례를 무릅쓰고 문에다 귀를 대어보았다. 깔끔한 음성 대신 무엇인가가 갈라지는 소음이 들렸다.
“폐하, 제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달리 말씀이 없으시면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보좌관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국왕은 반응이 없었다. 보좌관은 세 번째 손가락을 펴면서 문고리를 돌렸다.
영국의 왕은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안에 계셨었군요. 저는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내가 뉘우치지 않는 잘못이 뭔지 모르겠네.”
보좌관은 그 말을 듣고 저절로 과거의 한 지점을 떠올렸다. 현재 낯빛을 감추고 있는 남자가, 왕위 계승자로서 지녀야 할 책임 의식이 부재한 형을 대신해 억지로 왕명을 정하고 그 이름으로 서명해야 하는 서류를 떠안았을 당시였다. 그는 하마터면 대관식 절차가 적힌 종이에 눈물 자국을 찍을 뻔했다.
보좌관은 들고 온 파일을 근처 테이블에 내려두고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왕은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누르고 있었는데, 사실 그는 두 눈이 아닌 다른 것을 눌러 없애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맙소사, 해리, 왜….”
그가 극소수만 혀끝에 올릴 수 있는 국왕의 본명을 부르면서 그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국왕이 왕립해군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그의 경쟁자이자 벗 노릇을 해왔던 안경 쓴 남자가 다리를 굽히고 친구의 안색을 살폈다.
“무슨 일인가? 왜 울고 있어?”
“나는 말을 더듬고 싶지도 않았고 여자 하나 때문에 의무를 져버리기로 결심한 형을 두고 싶지도 않았고 왕좌에 앉고 싶지도 않았어. 내 주변엔 내가 원하지도 않은 것들만 가득해.”
왕이 겨우 자신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내 머리엔 보이지도 않으면서 지독히 무겁고, 텅 빈 왕관이 올라가 있어 나를 짓누르지.”
14세기부터 살아 있는 인간보다 강력하다는 왕의 책무를 비유해 온 표현은 아직까지도 그 힘을 보존하고 있었다. 지독하게 유구하며 변하지도 않는 정의에 속박되어 20세기의 국왕은 괴로워했다.
“이 공허한 왕좌를 감내하면서 내가 단 하나 품었던 소망은 그 순수한 청년을 옆에 두며 위로를 받는 것이었네. 그것조차 나에겐 허락되지 않은 건가?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를 차지한 대가로 난 희망할 권리를 박탈당한 건가? 그런데 나는 이 자리를 원하지 않았어. 국왕이 가져야 하는 무거운 의식이 내 안에 처음부터 깃들어 있던 신념인 것도 아니었지. 젠장, 나는….”
“오, 해리….”
“나는 단지 그 청년만이 들려줄 수 있는 작은 재잘거림을 바랐던 것뿐인데.”
국왕의 몸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해리 하트는 친우의 품에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질 지경이 되도록 울었다.
그러나 국왕은 그 뒤에 프랑스령의 모로코와 알제리로 파병될 예정인 젊은 군인들을 독려하는 연설을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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