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5/이단벤지] Mission: Impossible - Doe's Agency (3)

- Anything 2016. 6. 23. 15:45 posted by Jade E. Sauniere

- Mission Impossible: Rouge Nation - Ethan Hunt/Benji Dunn

- Written by. Jade


Mission: Impossible - Doe's Agency

미션 임파서블: 도스 에이전시



[3. 부재하는 인도자]


  일사는 브랜트가 카페 메뉴판을 보기 전 루퍼트 싱클레어가 전부터 MI6 현 국장과 친했으며 그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IMF의 뜻을 영국 정보부 측에 전달해줄 메신저 역할로 싱클레어 요원이 최적의 선택이라는 확신을 브랜트에게 심어준 것이었다.


  브랜트는 유능한 대변인을 옆에 낀 것처럼 술술 이야기했다. MI6와 IMF 모두 이단 헌트를 추적해야 하는 명분이 있으니 그걸 막지는 않겠으며, 오히려 어느 정도 목표를 공유하는 사이로서 협력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다만 이단 헌트를 곧장 죽이는 일만큼은 반대하고 그가 자의로 범죄와 테러를 일삼을 인물은 아니므로 그를 생포한 뒤 자초지종을 듣는 게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같은 브랜트의 일장연설을 들은 벤지는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루퍼트 싱클레어는 대답에 앞서 커피를 마셨다. 두 미국인은 느긋한 동작 아래에서 저 영국인 양반이 어떻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조용히 궁금해 하고 있었다. 브랜트와 벤지에게는 루퍼트가 꼭 1분씩이나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초지종이라, 그쪽에서도 신디케이트 같은 게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이단은 솔로몬 레인과는 달라요.”


  벤지는 본인이 그렇게 뱉어 놓고 놀라서 입술을 꽉 붙였다. 브랜트는 당황하지 않고 벤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것이 영국 정보부 출신으로서는 꽤나 희귀한 풍경이었는지, 싱클레어 요원의 눈썹이 잠시 위로 올라갔다 가라앉았다. 


  “말씀하신 것 중에 틀린 점은 없는 것 같군요. 국장님에게 당신의 말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루퍼트는 커피를 깨끗이 비운 뒤 일어났고 일사가 뒤를 이었다. 주춤거리며 의자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던 벤지가 눈을 굴렸다. 


  “벤지, 넌 나랑 얘기 좀 해.”


  브랜트가 옆에서 속삭였다. 루퍼트와 일사가 카페에서 천천히 벗어나고 있었다. 

 

  “너는 아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지? 미국에서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뭐?”

  “보관소에서 말이야. 거기서 대체 뭘 본 거야? 정말 싱클레어 말처럼 CIA도 신디케이트 같은 걸 키우고 있었어?”


  그제야 벤지는 무너지는 은행의 천장 아래에서 먼지와 함께 사라져버린 이단의 그림자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너무나도 냉정한 글자들이었다. 일사 파우스트의 지적을 요원들의 진리로 자꾸만 격상시키려 하는, 소름 돋도록 효율적이면서 계산적인 낱말들 속에서 벤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이단이 옛날 일사 꼴이 날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레인은 정보부 요원을 이용해서 정보부라는 체계를 없애버리려고 했잖아. 그 과정에서 일사는 착취당했어. 이단도 그렇게 될지 몰라. CIA는 신디케이트가 아니라 신디케이트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어, 브랜트. 그걸 폐기하지도 않고 때를 재면서 감춰두고 있었다고!”


  “일사는 어쨌든 임무 때문에 신디케이트에 잠입했던 거잖아.”


  “그런데도 그녀는 버려질 뻔했어. 정보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는데도.”


  브랜트는 벤지가 왜 이단을 일사와 비교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이단에게는 일사처럼 공적인 명분도 없었음에도 첩보기관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행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벤지는 입가를 딱 굳히고 브랜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필경 이단 헌트의 비극적인 최후를 논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었다. 


  한편 루퍼트와 함께 MI6로 돌아가도 어색하지 않을 위치의 일사는 다시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카페로 돌아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벤지가 의자에서 솟아오르듯이 일어났다. 그가 일사를 붙잡았다. 


  “일사, 만약 당신이 미국 정보부를 궤멸시키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해봐요. 당신이라면 어떤 방법을 쓸 것 같아요?”


  “뭐라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진짜 중요하다고요! 빨리요.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브랜트는 의자 등받이를 붙잡고 몸을 돌린 상태였다. 삽시간에 매우 복잡한 관심을 받게 된 일사는 어색해하면서도 두 사람이 원하는 답을 주었다. 


  “사실 한 나라의 중앙정보부를 위기로 몰아넣는 건 어렵지 않아요.”


  “…진심이에요?”


  “대중들에게 모든 것을 폭로하면 돼요. 정보국이 인권을 소홀히 하고 심지어는 자국민도 거침없이 이용하고 타락시킨 경우가 한 둘이 아니잖아요.”



* * *



  얇고 날카로운 물질이 주는 압박감이 버거웠다. 이단은 미간 근처까지 다가온 물체에 밀려 자연스럽게 머리를 뒤로 뺐다. 그러나 그것은 이단의 눈동자에 끈질기게 달라붙었고 이단은 결국 포기하여 눈앞의 종이가 무엇을 표현하는지 보았다. 그는 이태까지 미뤄두었던 포기의 기회들을 빠르게 소모하고 있었다.


  이단이 보고 있는 것은 어떤 청사진이었다. 이단은 눈 사이에 몰려든 무거운 감각이 이마를 타고 머리 곳곳으로 흡수되는 걸 간신히 이겨내면서 청사진에 나와 있는 통로를 따라갔다. 이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길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냈다.


  “이게 어딘지 알지?”

  “…이건 못 해.”

  “내 용건을 들어보지도 않고?” 


  이단은 끝내 눈을 조금 오랫동안 감았다가 떴다.


  “어쨌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일이겠지.”

  “자네가 지금까지 날 위해 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보나?”

  “저긴… 들어갈 수 없어.”


  이단은 부국장급 이하의 요원으로서는 드물게 미국 국립문서 기록관리청의 지하통제구역을 알고 있었다. 내부에 숨어 있던 테러 조직의 끄나풀을 유혹하기 위해 그곳에 침입해야 했던 역사는 마냥 영웅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나, 그 구역에는 이단이 당시 선택했던 자료가 아니라도 반체제적인 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문건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단은 큰 용기를 내어 몸을 일으켰다. 한 장짜리 종이가 팔락이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이단에게 허락된 공간은 너무나 좁아서 그는 침대 위에서 왼편의 스탠드로 옮겨간 것에 그치고 말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층빌딩을 질주했던 요원에게는 얼토당토않은 그 짧은 거리와 움직임이 이단의 기력을 앗아갔다. 


  남자는 계속 청사진을 들고 있었다. 이단은 최선을 다해 그를 외면했다.


  심연부터 탈진해가는 감각이 있다면 아마 이단의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것과 가장 닮아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단은 몇 번의 경험으로 이것이 수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혼신(魂神)이 가루가 되어 쌓여가는 기분은 저 남자가 주는 정체 모를 신호와 명령을 통해서만 잠시나마 해소되었다. 몇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단의 뇌리에 있었지만 이단은 그것이 탄생한 과정을 몰랐다. 


  “현재의 자네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이단은 정말이지 간신히 뒤를 돌지 않고 버텼다. 


  “자네에게 생긴 문제는 나만 알아. 그러니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법도 나만 알지 않겠나?”

  “…난 당신을 안 믿어.”

  “그렇지만 내 말을 완벽히 확인해보려면 자네는 통제구역에 갔다 와야 해.”


  남자의 언어가 취하고 있는 형식은 이단에게 낯설지 않았다. 이단이 솔로몬 레인으로부터 벤지를 돌려받기 위해 날렸던 반격의 한 수였다. 그것이 통하여 이단은 벤지를 되찾았고 레인을 체포했었다. 


  이단은 자신의 수법을 잃었고 그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단의 곁에는 그것을 토로할 동료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이단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해줄 친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무력감에 고개를 숙였다. 


  청사진이 한 번 더 팔락였다. 자신에게 진정한 인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단은 결국 청사진을 받았다.



* * *



  브랜트와 벤지가 미국 행 비행기에 오른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루터가 스캔한 ‘센티넬 프로젝트’의 파일을 완벽히 내려 받고, 지상에 있는 헌리 국장과 안정적인 위성 통화를 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한 둘은 그다지 넓지도 않은 비행기 안에서 잽싸게 흩어졌다. 지금 브랜트는 한창 헌리와 통화를 하고 있었으며 벤지는 타블렛으로 스캔된 서류를 읽고 있었다.

벤지는 파일들을 휙휙 넘겨서 그가 미처 미국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에 집중했다. 센티넬이라는 걸 설계한 작자는 다행히도 제어장치보다 더 안정적인 무언가도 구상을 해 본 듯했다. 벤지는 약간 기대를 하며 내용을 읽었다.



  ‘센티넬’이 요원들에게 몇 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경우, 그것은 칩과 연결되어 있는 제어장치가 감당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센티넬’이 전달하는 스트레스 신호가 요원들의 정신에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임무 종료 뒤에도 잔상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이 드물게나마 존재한다. 


  그런 경우에 책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책이 ‘가이드’이다. ‘가이드’ 역시 ‘센티넬’처럼 인간의 몸에 정상적으로 주입이 가능한 마이크로칩인데, 따로 제어장치가 있지는 않으며 요원을 조종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가이드’는 ‘센티넬’의 신호를 나눠 받는 보조 도구이다. 


  ‘센티넬’이 감당하는 신호, 혹은 그것의 잔상이 지나치게 강하고 제어장치로도 관리할 수 없을 때 ‘가이드’가 주입된 요원은 ‘센티넬’이 주입된 요원과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신호를 떠안고 상대방의 판단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한 사람에게 ‘센티넬’과 ‘가이드’를 모두 집어넣는 것은 효과가 없다. ‘가이드’는 아주 거칠게 말하면 ‘센티넬’이 발생시키는 부담을 현실적으로 떠안으면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이드’는 ‘센티넬’이 이식된 요원의 책임자, 혹은 그 요원과 짝을 이루는 파트너, 외부인 중에서 찾아야 한다면 요원의 아내나 가족 등에게 이식하는 것을 권한다.



  벤지는 자신의 행동이 별 효력이 없을 걸 알면서도 눈을 한 번 비비고 타블렛을 가까이 들었다. 당연히 활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벤지는 기가 막혀서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시간이 난다면 이 제안서를 작성한 인간을 찾아서 머리카락을 아프게 비틀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CIA의 비상식적인 잔인함에 다소 주의를 뺏겼던 벤지는 제안서의 내용을 곱씹어보다가, 말 그대로 의자에서 펄쩍 뛰었다. 


  “…뭐야, 벤지, 왜 그래?”


  통화를 마친 브랜트가 용수철마냥 뛰어오르는 벤지를 보고 한 발짝 물러났다. 벤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도리질을 치더니 급기야 저편으로 멀어졌다.


  벤지의 예상대로라면 이단은 나 홀로 센티넬을 주입받은 지경에 놓여있을 것이었고, 언젠가 그에게 ‘가이드’가 절실해지는 상황이 닥칠 것이었다. 그런데 가이드를 받는 자는 반드시 타인이어야 했으며 이단은 다수의 정보국을 노리는 범죄자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었다.


  벤지는 그 자가 이단에게 절대로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어쩌면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조차 비밀에 부칠 거라는 가설에 자신의 비디오 게임 컬렉션을 걸 수도 있었다. 


  “벤지? 괜찮아?”

  “…아니. 전혀.”

  “그럼 너는 도착하면 쉬어. 이단이 나타날 것 같은 장소에는 팀 하나를 통째로 파견하지, 뭐.”


  멍하게 긍정을 표하려던 벤지가 정신을 차렸다. 


  “랭글리 말고 또 있어?”

  “워싱턴에 국가 문서를 관리하는 시설이 있잖아. 국장님은 거기에도 인력을 파견해야 할 거라고 하시는데? 거기에도 악당들이 눈독을 들일 게 많대.”


  말을 마치자마자 브랜트는 벤지의 놀라운 힘에 이끌려 털썩 의자에 앉았다. 벤지가 진지하게 타블렛을 브랜트 쪽으로 돌렸다. 그 덕에 브랜트도 그들이 구해야 하는 동료가 일촉즉발의 폭탄 위에 올라서 있다는 걸 실감하여 한동안 넋을 빼고 있었다.



* * *



  루퍼트 싱클레어는 두 번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카페인에 예민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이 커피로 인해 새벽 2시까지는 깨어있을 수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천천히 커피를 머금는 루퍼트의 앞에는 배터리가 꽂혀 있어 화면이 꺼지지 않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이단 헌트가 산탄데르 은행에 출몰하여 한바탕 건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던 건 비극이었고 MI6의 실책이었지만 덕분에 얻은 것도 있었다. 영국 정보부 측은 감시 카메라가 오작동을 일으킨 시점들을 정밀히 파악하여 도굴꾼 같은 침입자가 본부에 머문 시각과 목표 등을 거의 알아냈음에도 그가 무엇을 노렸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이단 헌트의 출현은 바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파일이 복사된 흔적이 없었고 측정된 시간이 다소 짧았음을 고려하여 루퍼트는 침입자, 9할 이상의 확률로 이단 헌트일 그 범인이 상위 몇 개의 계좌 정보만을 외워갔으리라 추측했다. 이에 덧붙이자면 MI6 측에서 새로 정렬한 정보들의 맨 상단에는 영국의 은행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루퍼트가 커피잔을 기울이면서 남은 양을 확인하는 그 순간에 노트북이 경보를 울렸다. 두 번째 습격이었다.


  아무리 체력 좋은 관광객이라도 아침을 다 날리지 않기 위해 침대로 기어들어가야 하는 야심한 시각, 루퍼트 싱클레어는 도로를 질주하며 진압 팀의 선두에 섰다. 차들이 시끄럽게 급정거하는 소리에 몇몇 건물의 창문이 열렸다.


  회전문 주변에서 망을 보는 자가 있어 루퍼트가 방아쇠를 당겼다. 차에 탑승하기 전 자동권총에 달아 놓았던 소음기는 멋지게 제 역할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쓰러진 적의 몸이 요란하게 바닥과 부딪히면서 적들의 시선이 회전문 쪽에 집중되었다. 


  루퍼트는 은행 사설 경비가 앉는 데스크로 뛰었다. 놈들이 지폐 뭉치를 내려놓고 서둘러 무기를 잡았다. 루퍼트는 의자를 오른쪽으로 휙 빼고 자신은 정중앙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의자 바퀴가 끼익 밀리는 소리에 몇몇은 오른쪽을, 다른 몇몇이 한 번 뒤집어 생각해서 왼쪽으로 총구를 돌리는 사이에 루퍼트의 사격이 한바탕 적을 휘저었다. 게다가 절치부심한 기동대원들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과격함으로 삼면을 봉쇄했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해지자 루퍼트가 훌쩍 책상을 타고 넘었다. 그는 돈을 가장 열심히 챙기고 있던 남자의 헬멧을 벗겼다. 각진 턱이 인상적인 그 남자는 루퍼트가 찾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단 헌트는 어디 있지?”


  그는 그렇게 물으며 총을 더 똑바로 쥐었다.


  “이단 헌트는 어디 있냐고.”

  “혁명적 전환을 위한 자리에.”


  그러고 남자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루퍼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맹신과 광기가 어우러져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러한 악질적인 순교를 제일 싫어했고 혁명이란 위대한 단어를 더럽히는 족속은 더욱 경멸했다. 루퍼트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폈다.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총소리 한 번 나지 않았는데 범죄자들의 몸뚱이가 하나 둘씩 풀썩 쓰러졌다. 그들은 입 안에 똑같이 피를 물고 있었다. 일종의 전언 같은 모습을 목도하면서 루퍼트 싱클레어는 저러한 족속들 사이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갇혀 있는 이단 헌트를 생각하고 말았다. 그는 소요를 변화의 움직임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그들의 분수에 넘치는 수단을 가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비행기는 워싱턴의 공항에 착륙한 뒤 승객을 태우지 않고 격납고로 들어갔다. 랭글리에는 보관소를 감시할 인원이 차고 넘친다는 벤지의 지적을 받아들인 브랜트는 벤지가 그 자신의 목적지로 마음에 두고 있던 워싱턴의 기록 관리청에 함께 가기로 했다.


  택시를 잡은 두 사람은 사이좋게 벤지의 타블렛을 보았다. 벤지는 행여나 민간인인 택시 기사의 귀에 국가 기밀로 취급될 수 있는 정보가 흘러들어갈까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단을 뒷조종하고 있는 놈들이 원하는 건 통제구역에 있을 거야.”

  “…너도 그걸 알아?”

  “이단을 백업하면 이래저래 머리에 들어오는 게 많아. 나도 IMF가 예민하게 다뤄줘야 하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브랜트는 한숨을 쉬었다.


  “네 파일에 그 문장을 추가하도록 할게.”

  “역시, 믿음직한 부국장님.”


  그 말에 브랜트는 자신의 지위가 생각났다는 듯이 중앙정보국 내 독립기관의 관리인다운 눈빛을 띠고는 벤지에게 딴 소리는 집어 치우고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벤지가 헛기침을 하며 화면을 넘겼다. 


  “크흠. 통제구역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느 층에 뭐가 있는지는 관리청장만 알아. 그래서 두 곳을 전부 살펴봐야 해.”


  “알아. 그러니까 흩어져야지.”


  “흩어지는 건 그렇다 쳐도, 문제는 위급 상황 시에 우리가 재빠르게 한 장소로 모여서 행동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는 거야.”


  “어째서?”


  벤지가 두 손가락으로 내부 구조도를 확대했다. 


  “보여? 통제구역에는 비상계단이 없어. 한 층 차이라도 이동을 하려면 복잡한 인식 단계를 거쳐야 하는 중앙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해.”

  “젠장.”

  “그러게 말이야.”


  택시가 신호에 걸려 잠깐 멈췄다. 브랜트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링컨 기념관의 지붕이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속삭였다.


  “위층, 아니면 아래층?”


  동료를 되찾을 수 있는 적기의 시작이 동전 던지기와 다를 게 없다는 현실에 벤지의 표정이 조금 우울해졌다. 택시는 부지런히 워싱턴 DC의 주요 명소들을 지나쳐 마지막 커브를 준비했다.


  벤지가 전부터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기록관리청의 건물이 훅 커졌다. 인도의 가로등들은 모두 켜져 있었는데 정작 관리청 입구에 세워진 기둥 모양의 전등은 깜깜해서 관리청이 상대적으로 새카맣게 보였다. 벤지는 출입구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미국의 국가 기관들 중에는 신전 같이 생긴 건물들이 참 많았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콘솔 게임과 동등하게 예술을 존중하는 벤지에게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단을 눈앞에 있는 석조 건물로 들여보내면서 벤지는 반쯤은 혼잣말로 그에 대해 불평을 했었다. 그러자 이단은 어쨌든 그것이 그 건물이 가진 최초의 모습이니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처음이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서.


  벤지가 다른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브랜트가 만약을 대비하여 백업 팀을 불렀다. 정말로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딱딱한 굽의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끈한 대리석 바닥은 두 사람의 발소리를 크게 증폭시켜 사방으로 힘껏 던졌다. 온갖 비밀스러운 장치의 보호를 받고 있을 마그나카르타가 겉으로는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고, 로툰다 형태로 조성되어 있는 정면의 공간에는 독립선언서의 원본이 성조기의 얇은 그림자를 둘둘 감고 있었다. 브랜트가 핸드폰으로 플래시라이트를 켜서 구석으로 쑥 들어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엄숙하게 동쪽과 서쪽을 감싸고 있는 그림을 지나쳐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일조차도 만만치 않아서, 벤지가 핸드폰으로 도식화된 코드를 받아 인식을 시키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그는 척척 두 개의 버튼을 눌렀다. 먼저 내리는 사람은 브랜트였다. 브랜트는 엘리베이터에서 나가기 직전 귀에 리시버를 찔러 넣었다.


  “네가 있는 층에 이단이 나타나면 무조건 지원을 불러. 알았지?”


  벤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브랜트가 사라졌다.


  성능 좋은 엘리베이터는 20초도 안 되어 벤지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벤지는 곧바로 문이 닫히지 않게 엘리베이터 사이에 발을 끼우고, 승강기 내부의 밝은 빛을 최대한 등에 업고 눈을 홱홱 굴렸다. 


  벤지는 임시 손전등이 된 핸드폰을 들어 올리면서 자신에게 이단 헌트가 어디에 나타나길 바라는지 질문했다. 이단이 ‘센티넬’로 인하여 세상에서 가장 불우하고 위험한 인간이 되었다면 벤지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벤지는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이단이 했던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IMF의 현장 요원에 불과했다. 그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벤지는 더 자세하게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했다. 당장 이단에게 필요한 존재도 아니고, 몸싸움을 벌여서 이단을 막지도 못할 자신보다는 조금이라도 승산을 노려볼 수 있는 브랜트가 있는 위층이 여러모로 이단이 등장하는 장소여야 했다.


  벤지는 진심으로 자신이 흔드는 불빛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걸려들지 않기를 바랐다. 그 소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라고 벤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필 왼쪽부터 차근차근 더듬어보자는 계획을 탓할 수 있는 인물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도 벤지 자신뿐이었다.


  그리하여 벤지는 자신을 향하여 온 힘을 다해 혀를 찼다. 이단 헌트의 마른 동공이 갑작스레 나타난 빛에 의해 작아졌다. 


  “…이단.”


  순간적으로 벤지가 핸드폰을 든 팔을 아래로 떨궜다. 엉겁결에 빛을 맞은 이단의 재킷이 그만 벤지에게 무기를 노출하고 말았다. 벤지가 시선을 바로잡았다.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벤지의 앞에는 이단이 있을 것이었다. 벤지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들은 네 자신을 되찾아주지 않아, 이단.”


  그 말은 아무런 계산 없이 튀어나간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단은 벤지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 벤지는 빛을 감추며 핸드폰 단축키를 눌렀다. 기록관리청에서 2블록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는 팀에게 긴급 문자가 발송되었다.


  “…이단? 내 말 들었어? 난 너한테 뭐가 필요한 지 알아.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벤지는 적당한 때를 노려 다시 불빛을 앞으로 뿌리려 했다. 이단 헌트의 어둠은 고요했다. 벤지는 주춤거리다 마음을 굳게 먹고 빛을 들었다. 이단의 귓가에 거머리처럼 이어플러그가 붙어 있었다.


  이단이 소리 없이 무언가를 말했지만 이어플러그를 보고 있던 벤지는 이단의 뜻을 읽지 못했다. 벤지는 한 발 늦었고 이단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총소리가 나면서 바닥에 단단한 표면을 가진 물체가 떨어졌다. 현장 요원인 벤지는 탄피가 떨어지는 걸로는 그렇게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목을 약간 빼서 바닥에 떨어진 게 무엇인지 확인하려 했다. 


  작고 동그란 원통을 포착한 벤지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단은 어느새 탁자 위를 쓸어 담고 있었다. 벤지는 속수무책이었다. 총성은 끝없이 이어질 듯했으며 이단은 자신의 말에는 한 단어도 덧붙여주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려고 했다. 결국 벤지가 목구멍을 열었다.


  “이단, 넌 지금…!”


  하얀색 연기가 벤지를 덮쳤다. 벤지는 반사적으로 코과 입을 막고는 뒷걸음질로 자리를 피했다. 떨어진 물건은 어떤 가스가 들어있는 통인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연기가 퍼지자 시야 확보가 어려워진 총잡이들이 더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벤지는 아직 연기가 침범하지 않은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상태에서 벤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단이 의미 없는 사격은 자신의 일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며 놀랍도록 짜증스럽고 고압적인 어투로 말했고, 벤지에겐 낯선 음성은 정보부 나부랭이가 죽지 않았다고 되받아쳤다. 그 날카로운 대화는 벤지에게 희망이 되어 날아왔다. 그는 슬쩍 그림자를 내밀어볼 작정으로 바닥에 붙은 엉덩이를 비볐다.


  경쾌한 효과음 한 마디가 울려 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지원팀은 보호구를 쓰고 있었으므로 연기를 보고 야단법석을 떨지는 않았다. 단지 인위적인 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기에 정석적으로 무기를 들었다. 아무리 느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피할 수 없는 찰칵거림에 벤지는 놀라 엉덩이를 뒤로 끝없이 물리다가 벽에 부딪혔다. 그는 더 이상 총탄과 연기를 모두 피할 수 없었다.


  이단이 살포한 것은 신경가스의 일종인 듯했다. 벤지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싶은 현기증에 몸을 까딱거렸다. 자신이 사지를 붙이고 있는 모든 세상이 흔들리는 괴팍한 감각 속에서 벤지는 특이하게도 이단이 무시무시하게 화를 내는 걸 들었다. 벤지는 왜 이단이 화를 내는지 궁금했다. 가스를 뿌린 건 본인이었고, 설마 자신을 잡으려고 다른 팀이 대기하고 있었을 걸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닐 터였다. 벤지는 이단이 화를 내지 않길 바랐다. 이단 헌트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더는 나타나지 않아야 했다. 그는 이미 충분히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벤지는 제어장치와 가이드의 보호를 모두 받지 못한 센티넬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이단 헌트 이전에 센티넬은 없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가이드가 없다. 벤지는 안타까움과 어지러움에 패배하여 의식을 놓았다.




Original Date 2015. 09.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