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ankenstein, Harry Hart & Egssy with Little Henry
- Written by. Jade
The Little Creature
(with Henry The Kid)
에그시가 콧노래를 부르며 책장 앞에서 책을 골랐다. 몹시도 심각해 보이는 제목들을 거쳐서 에그시는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뽑았다. 금색 가루를 빨간색 책 표지에 골고루 뿌려서 한껏 멋을 낸 판본이었다. 에그시는 책을 들고서 침실 안으로 귀엽게 고개를 내밀었다. 동그란 뒤통수에 곱슬머리를 가진 소년이 다리를 까딱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헨리! 책 가져왔지롱.”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에그시가 가슴에 책을 딱 붙인 상태로 그것을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소년은 에그시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는 에그시가 자신을 헨리라고 부른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리는 소년 옆에서 오히려 더 신난 것 같은 에그시를 보고 불쾌하지 않게 미간을 찡그렸다. 에그시는 확실히 소년이 된 헨리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결코 해리와 에그시가 단지 재미 삼아 헨리를 어리게 만든 건 아니었다. 해리는 기사의 이름을 걸고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적인 사고였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시작은 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수석 연구원의 이론이었다. 아무리 인간이 가진 것과 비슷한 심장을 만들어도 헨리가 부적합을 일으키는 이유는 신진대사의 차이일 거라면서, 해리도 쫓아가기 어려운 온갖 그래프들로 유사인간의 몸이 작동하는 게 인간과는 다르다는 걸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구원이 결론적으로 헨리에게 권한 것은 하나의 신약이었다. 다행히도 그 약물은 마터스 같지는 않아서 엉뚱한 방향으로 오용될 리는 없었다. 대신 그것은 약품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발휘해버리고 말았다.
해리는 지나치게 신진대사가 활성화되는 통에 헨리가 어려졌다는 연구원의 변명을 들으면서 눈썹을 꿈틀댔다. 헨리의 존재를 여기저기 소문낼 수가 없어서 가급적 교류를 하는 연구소를 바꾸지 않으려고 했지만, 해리는 갈수록 연구소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약효가 매우 일시적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아무 탈 없이 헨리가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게 유일하게 해리의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사실 몇 가지가 더 있기는 했다. 가령 남성용 드레스 셔츠에 파묻힌 헨리가 한결 차가운 기운이 사라진 눈동자로 해리를 보고서 “아빠?” 라고 불렀던 순간이라든가, 에그시가 헨리를 보고 감격에 찬 눈물을 흘리며 “해리, 진지하게 애를 입양하는 걸 고민해 봐야겠어요.” 라고 말했던 때에는 해리도 흔들렸다. 그 덕택에 연구원은 헨리가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해리는 입술을 안쪽으로 깨물면서 입꼬리를 내리려고 애썼다. 에그시는 책을 읽는 건지, 감상문을 발표하는 건지 모호한 태도로 계속 중얼대고 있었다.
“‘삼촌, 메리 크리스마스, 삼촌께 신의 가호가 있길!’ 활기찬 목소리가 외쳤어요. 스크루지 조카의 목소리였어요. 그가 어찌나 빨리 스크루지에게 다가왔던지, 그 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친밀하게 몸이 닿았지요. ‘헛소리!’ 스크루지가 말했어요. ‘크리스마스가 헛소리라고요, 삼촌? 진심은 아니시겠죠.’ ‘진심인데? 메리 크리스마스라니! 네가 즐거워할 이유가 어디 있고, 네가 즐거워 할 권리가 어디 있냐? 넌 가난하잖니.’ 스크루지가 말했지요. 와, 대박. 이 인간 진짜 나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헨리?”
“음, 뭐가요?”
“스크루지 말이야! 아니, 어떻게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길 권리가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있냐고. 내가 다 성질이 나네!”
에그시는 책을 덮어버릴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린 헨리의 안구가 흰 자위를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스크루지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그렇지. 우리 헨리 착하네.”
헨리의 대답을 듣고 에그시의 표정이 금세 풀어졌다. 에그시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헨리의 곱슬머리를 슥슥 손으로 빗었다. 헨리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에그시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책을 읽었다가,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를 폄하하는 말을 하자 또 화를 냈다. 헨리가 도리어 눈을 깜빡이면서 에그시를 진정시키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얘기 나오는 책 읽으니까 놀이공원 가고 싶어진다.”
“왜요?”
“크리스마스에 놀이공원에 가서 원 없이 놀고, 맛있는 거 먹고 방방 뛰는 건 모든 소년소녀들의 꿈이라 할 수 있지. 거기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유독 맛있고 말이야. 진짜 내일 놀이공원이나 갈까? 해리, 어때요? 그러고 보니 오늘 산 헨리 옷들 중에서 나들이 갈 때 입으면 딱 어울리는 게 있었잖아요.”
에그시가 고개를 홱 돌려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눈동자가 일품이었다. 잠시 후에는 헨리도 에그시를 따라서 해리를 보았다. 에그시의 흐름을 완벽하게 쫓아가긴 어려워도, 놀이공원이라는 게 나쁘지는 않다는 눈치였다.
해리에게는 이를테면 이것도 헨리가 자신을 아빠라고 불렀던 것처럼, 의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으나 막상 받아보니 썩 나쁘지는 않은 경험이라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에그시는 입술을 가만히 놔두질 못하면서 과일을 깎았다. 파란색 플라스틱 포크를 들고서 한바탕 노래라도 부를 기세였다. 해리는 간간이 웃으면서 프라이팬 위의 계란을 굴렸다.
“아, 진짜 완전 좋다. 왜 진즉 셋이서 놀이공원을 갈 생각을 못 했나 몰라요.”
에그시가 큼직한 딸기를 반으로 자르면서 말했다.
“헨리보다 네가 더 신난 것 같구나.”
“충분히 들뜨는 일이라고요. 근데 헨리가 안 내려오네요. 시간이 꽤 됐는데.”
“내가 올라가보지.”
해리가 2층으로 올라갔다. 침실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그는 신사답게 먼저 노크를 했다.
“헨리?”
“…잠시만요!”
헨리는 재빠르게 대답하고서 다시 앞을 응시했다. 매트리스 위에는 보랏빛이 나는 재킷과 하얀색 셔츠, 반바지와 긴 양말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홍매색 나비넥타이였다. 하얀색 물방울무늬가 그려져 있어 더욱 깜찍함을 더하는 그 아이템은 해리와 에그시가 모두 좋아했지만, 정작 헨리를 난감하게 하는 물건이었다. 헨리는 울상으로 발전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나비넥타이를 바라보았다. 유서 깊은 거부감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헨리가 아이답지 않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눈을 꼭 감았다가 뜨기도 했다. 그런다고 해서 나비넥타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헨리는 온갖 동작들로 눈앞을 채우고 있는 현실을 납득하려고 했었다.
“헨리, 무슨 일 있니?”
해리가 두 번째로 노크했다. 헨리는 저도 모르게 도리질을 쳤다.
“아, 아니요.”
“불편한 점이 있으면 편히 말하거라.”
“아니에요, 괜찮아요.”
헨리가 셔츠를 살살 들어올렸다. 소년은 매우 중대한 결심을 마쳤다.
에그시가 진중하게 턱을 잡고 도시락 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은 이미 꽉 차 있어서 더 이상 넣을 게 없는데도, 에그시는 여간 내부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보다 못한 해리가 뚜껑을 닫았다. 에그시가 입술을 비죽였다.
“그런데 헨리는 방에서 뭐한대요?”
“곧 내려올 거라고 했는데.”
과연 천천히 헨리가 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그시가 두 손을 비비면서 한껏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리의 얼굴도 슬쩍슬쩍 옆으로 움직였다. 하얀색 긴 양말이 난간을 잡으면서 차분하게 내려오고 있는 헨리의 다리를 가리고 있었다. 헨리가 바닥을 디뎠다.
에그시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훌륭해!!”
헨리는 나비넥타이가 영 불편하다는 안색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에그시의 환호에 응해주었다. 에그시는 당장이라도 런던 시민들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작고 예쁜 유사인간을 자랑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해리, 빨리 나가요! 아, 이리와, 헨리.”
에그시가 헨리를 자신과 해리 사이에 세웠다. 에그시가 휙 헨리의 왼손을 잡았다. 해리는 에그시보다는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헨리의 오른손을 감쌌다. 헨리는 어쩐지 당황한 것 같았다.
세 사람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단란한 가족이었다.
헨리는 인간 카시트를 자청하겠다는 에그시의 열의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스스로 택시의 안전벨트를 맸다. 연령이 달라지고 몸이 줄어들었어도 헨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였다. 또 헨리는 해리가 왜 자신의 아빠가 아닌지 의문점을 제기하면서도 무척 해리와 같이 있고 싶어 했으며,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졌다고 해서 발랄한 수다스러움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었다. 헨리는 지금도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따금씩 발을 올렸다가 내릴 뿐이었다.
잠시 후 헨리는 잠이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에그시가 씨익 웃으면서 해리를 향해 손짓했다. 헨리가 눈을 감은 걸 본 해리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해리는 더욱 신중하게 차를 몰았다. 슬쩍 헨리 옆에 붙은 에그시가 잠든 헨리에게 어깨를 내밀었다. 놀이공원의 표식이라 할 수 있는 둥그런 관람차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해리와 헨리는 형광색 바람개비가 달린 장난감을 흔들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에그시를 감상하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에그시는 헨리를 앞세워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게 맞았다.
헨리는 놀이기구에 직접 앉는 데에는 별 흥미가 없는 듯 보였다. 대신 그 주변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웃고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나비넥타이를 맨 도도한 자태로 회전목마를 응시하고 있는 헨리가 아무래도 신기해서 에그시는 “해리도 어렸을 때 놀러 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했나 봐요?” 하고 물었다. 해리는 어렸을 때 자신은 승마장이라든가 저택의 홀과 더 친했다고 밝혔다. 에그시는 새삼 해리와 헨리의 연결성에 감탄했다. 그러고는 들뜬 발걸음으로 회전목마에 탑승했다.
헨리는 에그시가 해리를 우스꽝스러운 놀이기구에 데려가지 않으면 해리와 함께 에그시를 기다렸고, 해리가 에그시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주면 혼자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헨리의 눈동자가 부지런히 굴러다녔다.
이번에 헨리는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아찔한 높이로 치솟는 열차를 올려다보았다. 키가 아슬아슬하게 작아서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헨리는 해리와 에그시가 탄 열차의 앞쪽 부분을 쳐다보면서, 가끔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많이 달아서 헨리는 사실 그걸 다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리며 선사할 끈적거림이 싫었고, 아이스크림을 사준 해리가 미묘하게 시무룩해져서는 눈썹을 내릴 게 싫었다. 열차는 급강하를 앞두고 정상에서 잠시 멈춰선 상태였다. 강력한 바람이 불어올 것을 대비해 헨리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헨리는 그의 눈에 몹시도 수상해 보이는 2인조를 발견했다. 볼품없는 까만색 선글라스를 쓰고, 놀이공원의 발랄함과 명랑함은 전혀 즐기지 않고 있는 입매로 주변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헨리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주시했다. 소년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기척을 죽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열차가 날쌔게 내려오면서 헨리가 입고 있는 재킷이 양 갈래로 팔락거렸다. 열차는 앞으로 두 바퀴는 더 레일 위를 돌 텐데, 헨리는 그 때까지 그 기묘한 2인방이 자신의 좁은 시야 안에 머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헨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손을 내렸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바닥에 분홍색 자국이 남았다.
헨리는 그 모양새로 천천히 걸었다. 은밀한 동작이 어쩐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소리를 낮춘 소년의 걸음걸이가 어찌나 완벽한지 선글라스 2인조는 어떤 남자아이가 그들의 뒤를 밟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순발력이 떨어진 건 해리와 에그시도 마찬가지였다.
“어?”
에그시가 몇 분 전까지 헨리가 서 있던 자리에서 물음표를 띄워 올렸다.
“헨리 여기에 있지 않았어요?”
순식간에 심각해진 해리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땅에 떨어진 자국을 찾아냈다. 하필 그것의 색깔이 분홍색이라는 점이 해리를 잡아당겼다. 그의 눈동자가 나란히 왼쪽으로 돌아갔다.
“해리?”
“헨리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구나.”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통에 아이스크림 자국은 이리저리 번져 있었다. 하지만 그 방향성만큼은 놀랍도록 일관적이어서 해리는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뒤늦게 해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달은 에그시는 헨젤과 그레텔이 생각난다면서 한 번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아이스크림이 통째로 엎어지기라도 했는지 큼직한 분홍색 웅덩이가 등장했다. 해리는 피스톨이 들어있는 재킷의 속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아니, 놀이공원 가는데도 총을 가지고 왔어요?”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잖니. 모름지기 킹스맨이라면 철저한 준비성을 갖춰야지.”
두 사람은 곧 숲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푯말을 만났다. 해리와 에그시는 당연히 주춤할 마음이 없었기에 당당하게 푯말의 옆을 거쳐 가려고 했다.
“데려갈 애들 찾으러 왔어요?”
에그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리는 고개를 저으면서 총을 완전히 뽑아들었다. 이용객들에게 맑은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된 숲에서는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나올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헨리는 과자가 묻은 손을 털면서도 고깔 모양의 종이는 땅바닥에 버리지 않고 손에 쥐었다.
“…그러는 너는 우리보고 데려가줍쇼, 하고 따라왔냐?”
“아뇨. 나한테는 보호자가 두 명이나 있어요.”
“지금은 없잖아?”
“그 사람들은 똑똑해요. 금방 여기 올 거예요.”
“뭐, 그 인간들이 경찰이라도 되냐?”
헨리는 그 말에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아마 경찰보다는 실력이 좋은 사람들일 걸요.”
헨리는 그러면서 슬그머니 옆으로 걸었다. 해리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총을 들었다. 유괴범 세계의 신참내기 둘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헨리는 태연자약하게 해리와 에그시에게 밀착해서는 오면서 쓰레기통을 보았냐고 물었다. 에그시는 헨리가 아이스크림콘의 껍질을 버리는 것보다는 해리를 도와 잠재적 유괴범들의 손을 묶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해리의 총을 피해서 2인조의 손목을 꽉 틀었다. 소년은 여전히 쓰레기통을 찾고 있었다.
헨리는 푯말을 피해 오른쪽으로 돌다가 놀이공원의 청소부와 만났다. 소년의 태도가 워낙 당돌하고 침착해서, 청소부는 숲속에 왜 들어갔냐고 지적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뒤이어 양복 입은 신사에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청년이 선글라스 유괴단을 끌고 등장하자 청소부는 자신의 본분마저 잊어버렸다. 그가 멍하니 해리와 에그시를 쳐다보았다.
“여기다가 놓고 가도 될까요?”
소년은 청소부의 쓰레받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청소부는 자신이 왜 이 놀이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 이리 주렴.”
청소부는 소년으로부터 삼각뿔 모양의 종잇조각을 받았다. 소년은 이제 속이 좀 후련해졌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소년은 근처에서 손짓을 하고 있는 신사에게 쪼르르 걸어갔다. 청소부는 겨우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놀이공원을 돌았다.
“10분 안에 온대요.”
에그시가 핸드폰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벤치에 앉은 선글라스 일당을 해리와 에그시가 둘러싸고 있었고, 그 사이로 헨리가 약간 고개를 들이밀었다. 해리가 헨리의 어깨를 잡으면서 자신의 옆에 단단히 붙게 만들었다.
“아, 그리고 경찰에서 뭐 표창이든 메달이든 헨리한테 뭘 주고 싶은 모양이던데요.”
“…아니에요.”
헨리는 그렇게 대답하며 해리를 슬그머니 올려다보았다. 에그시는 그걸 놓치지 않고 웃음을 흘렸다.
“벌써 애가 기가 죽었잖아요, 해리. 아무래도 해리는 애 보는 데에는 별로 소질이 없을 것 같네요.”
“…뭐?”
“아, 아니에요!”
높낮이가 다를 뿐 비슷한 음색의 목소리들이 앞 다투어 신속한 반응을 보내왔다.
“아니긴 뭘. 눈썹에 기운이 팍 죽어있는데. 어쨌든 평범한 어린애는 하지 못할 일을 했잖아요. 칭찬은 한 번 해주고 주의를 주든 말든 하시라고요.”
이번엔 해리와 헨리가 똑같이 입을 다물었다. 에그시가 해리를 향해 어른이 모범을 보이라는 눈짓을 연거푸 보냈다. 해리가 금방이라도 놓아버릴 듯이 얇게 자신의 바짓단을 잡고 있는 헨리를 바라보았다.
“헨리.”
“…그냥 괜찮을 것 같았어요.”
“뭐가 말이니?”
“전부 다요. 제가 저 사람들을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고, 해리가 제 작은 힌트를 파악해서 와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생각이었을 뿐이죠. 잘못했어요.”
해리는 결국 찡그린 미소를 지었다.
“네 생각에 틀린 점은 없긴 하다만, 아직… 어리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알겠지?”
“명심할게요.”
유괴범 둘이 느닷없이 펼쳐진 단란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에그시가 실실 웃으면서 그들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
저녁이 되었을 때만 볼 수 있다는 불빛들을 감상해보자는 에그시의 아이디어에 따라 세 사람은 조금 더 놀이공원에 머물기로 했다. 에그시는 자신이 두 사람을 붙잡아 놓았다는 걸 잊지 않고 부지런히 활기를 발휘했다. 거기에 발목을 잡혀서 헨리는 에그시와 함께 범퍼카를 타고 해리를 공격해야 했지만, 가운데가 뻥 뚫린 튤립 속으로 들어가서 해리와 함께 손으로 V를 그리는 일보다는 나았다. 튤립 밖으로 나와서 헨리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중앙 광장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로등에 부착되어 있던 스피커들이 점점 발랄한 음악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에그시는 어색하게 솜사탕을 뜯어먹고 있었다. 헨리에게 뇌물 증여를 하려다가 실패한 흔적이었다. 해리는 오래간만에 자신이 두 사람의 선생 노릇을 했다는 걸 상기하면서 두 사람이 앉을 지점을 손수건으로 털어주었다. 에그시가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헨리에게 “먹을래?” 하면서 솜사탕을 한 뭉치 뜯었다. 그러나 “괜찮아요, 형 드세요.” 라는 딱딱하고 소년답지 않은 반격이 날아와 에그시는 또 가슴을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곧 시작할 것 같구나.”
해리가 저편을 내다보면서 두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머리띠와 옷자락을 정리하고 있는 놀이공원의 직원들이 보였다. 에그시가 금세 눈을 반짝였고 헨리도 약간 관심을 표했다. 사람들이 바람개비와 풍선 따위를 흔들면서 환호했다.
반복되던 음악에 새로운 음률이 추가되었다. 두 다리가 달린 꽃과 나무와 새들이 나타나서 이용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몇몇 철없는 아이들이 퍼레이드의 경로를 점령하려고 몸을 비틀어대는 반면 헨리는 조용하게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분홍색과 연두색의 옷을 입은 요정이 헨리 쪽을 바라보면서 두 팔을 저어댔다. 헨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해리와 에그시가 흥미롭다는 듯이 헨리를 관찰했다.
요정은 명백하게 헨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헨리의 복장이나 독특한 안구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었다. 요정은 헨리를 보면서 눈을 찡긋거리다가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 소년의 입꼬리가 방긋 올라갔다. 헨리의 어깨 뒤에서 해리와 에그시는 소리 없이 ‘그래서 해리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퍼레이드를 봤다고요?’ ‘놀이공원과 별로 인연이 없었다니까.’ 같은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다.
요정은 끝까지 헨리를 위해 손을 흔들었다. 헨리도 계속 그녀를 응시해주었다.
“솜사탕 같이 먹을래?”
헨리가 기분이 풀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에그시가 남은 솜사탕을 척 들이밀었다. 과연 헨리는 솜사탕을 한 입 물었다. 에그시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기뻐했다.
자신에게 순수한 관심을 보여준 요정이 지나가고 나니 헨리의 관심도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소년은 서서히 졸았다. 에그시는 손짓을 통해 자신이 헨리를 안겠다고 했다. 어린아이를 안아드는 폼이 아주 익숙해서, 해리는 여동생을 키우며 단련한 에그시의 육아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단단히 배웠다.
“이 약효가 언제까지 간다고요?”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이라고 하더구나.”
“에이, 아쉽다. 진짜 우리 똘똘하고 예쁜 애 하나 데려다가 키우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남자든 여자든 갤러해드가 될 운명일 것 같아요. 우리 정말 고민해보면 안 돼요, 해리? 진짜 좋은데. 완전 좋은데.”
“내가 세 명을 돌볼 자신은 없어서 말이야.”
“세 명이요? 아니 왜 셋이… 아니, 전 빼달라니까요? 해리가 저를 왜 돌보신대? 거 참. 문이나 여시죠.”
해리의 인도를 받으며 에그시가 택시의 뒷좌석에 탔다. 에그시의 상체에 꼭 붙어있는 헨리의 얼굴은 완벽하게 잠 속에 묻혀 있었다. 에그시는 해리가 시동을 켜는 소리에 혹시라도 헨리가 깰까봐 소년의 귀를 가렸다. 해리의 잇새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세 사람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가족들이 놀이공원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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