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The Cloth of Wish
에그시가 총을 거두었다.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북풍에 실려 에그시의 눈이 감기게 만들었다. 극지방이 가까운 지역의 바람은 습기와 스모그가 찬 런던과도 달랐고, 마땅한 쓸모를 찾을 수 없는 나무만이 무성한 미국의 남부와도 달랐다. 그 낯설음은 딱 사람 한 명이 오갈 수 있는 창문의 틈을 통하여 에그시를 깨우려는 것처럼 또 다시 그의 머리카락을 때렸다. 바람에 못 이겨 총을 들어 올리려던 에그시는 고개를 저으면서 팔을 다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정유 사업장에 기름 냄새가 아닌 피 냄새가 가득했다. 거기다가 총성이 더해지자 에그시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해리 하트가 살육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해리.”
에그시의 목소리보다 누군가가 쓰러지면서 내는 비명이 더 컸다. 해리는 에그시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빈 탄창이 휙 내던져졌다. 아마 해리는 이곳에서 자신이 얻어야 할 정보라든가 파일 따위를 이미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해리 하트가 충족하고자 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었다. 그는 쉬지 않고 바스락거리면서 부스러지는 낙엽이었다. 에그시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오늘 에그시는 자신이 첫 번째로 수여받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작은 나이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무자비한 폭력의 기술 아래 무릎을 꿇었다. 에그시가 입은 것과 똑같은 재킷 자락이 나풀거렸다. 자신의 시야에 그것이 보일 정도라면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할 텐데도, 에그시는 총을 차마 놓지는 못할 뿐 여전히 그것을 들어서 사용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해리.”
두 번째로 창문이 깨졌다. 에그시는 눈이 깔린 바닥에 이미 가슴이 꿰뚫린 남자가 떨어지는 작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에그시가 신경을 다른 곳에 둘 자리는 탱크에서 콸콸 새어나온 듯한 피 웅덩이와 그것을 꾸며놓은 장본인밖에 없었다. 에그시는 별 수 없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모든 장애물이 거둬지니 이제는 해리도 에그시를 보게 되었다. 해리는 탄창을 갈아 끼우기 직전에 남은 탄환 한 발을 죽은 시신을 향해 아무렇게나 소비했다. 해리가 품속에서 새 탄창을 꺼내 권총에 끼웠다.
해리는 곧장 에그시를 겨누지 않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원증도 유니폼도 걸치고 있지 않은 에그시의 모습을 분석하는 것 같았다. 에그시는 그저 총을 자신의 손바닥에 붙인 채 무기를 최대한 가리면서, 해리가 자신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에그시가 가진 게 없었다.
모든 것이 극단적이었다. 정유 회사가 있는 건물은 미국 본토보다는 극지에 가까운 땅에 위치해 있었고 온도는 너무도 낮아 입술의 핏기를 빼앗아갔다. 이 대지 어디에나 묻어 있는 눈송이가 가끔가다 얹힌 바람은 눈꺼풀을 찢어버릴 정도로 강력하여 자연의 자비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케 만들었다. 해리와 에그시가 서 있는 방향에도 타협이라는 건 없었다. 그리고 반대쪽에 서 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해리가 피와 시신으로 조성한 끔찍한 오솔길이 놓여 있었다.
에그시는 이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게 하필 총과 방탄 양복과 통신 기능이 탑재된 안경밖에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실로 쓸데없는 물건들이었다. 첫째로 눈앞에 해리가 있으니 통신기는 필요가 없었고, 에그시가 해리를 쏠 용기가 없어 총은 무의미했다. 방탄 양복은 사정이 조금 다를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해리가 에그시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면 그것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어질 것이었다.
에그시가 해리에게 주고 싶은 비탄과 애정과 절실함은 그의 손에 없었다. 에그시는 이 일을 떠안은 이래 처음으로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했다. 에그시는 공허한 두 손바닥을 벌렸다. 그가 쥐고 있던 총은 허리의 홀스터에 들어가 있었다.
“당신이 날 쏴서 정신이 들 수 있다면, 제발 그렇게 해요.”
해리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약간 피로해보였다.
해리 하트는 자신이 죽인 민간인들의 피로 이루어진 융단을 밟아야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다. 에그시는 자신이 입고 있는 재킷이 아주 길게 펴졌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에그시의 겉옷은 천국에서 뽑아온 금색과 은색의 옷감은 아닐지언정 썩 고급스러웠다. 해리가 자신이 밟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한 눈빛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에그시는 그런 작은 행동이라도 해리를 위해서 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에그시는 해리와 피를 한 뼘만큼이라도 떨어뜨려 놓는다면 해리의 눈동자가 다시 반짝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지도 몰랐다.
해리의 긴 손가락이 권총의 손잡이 부분을 고쳐 쥐었다. 에그시는 일부러 눈을 감지 않았다. 벌어진 에그시의 두 팔은 해리의 앞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펼쳐놓고 있었다.
해리가 걸음을 옮겼다. 또 다시 바람이 불어친 데다 갑자기 눈이 매워져서 에그시는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해리가 축 늘어진 다리와 팔을 차례대로 넘었다. 해리가 가지고 있는 총은 킹스맨들의 것이 아니었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지 못하면 발포하는 즉시 그 충격이 고스란히 해리에게 전해질 터였다. 해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걸었다.
“해리.”
어떤 여인의 머리를 건너느라 해리의 속도가 느려졌다.
“나를 그냥 지나가지 마요.”
해리의 오른발이 에그시에게 더 가까워졌다.
“나를 짓밟아도 된다고요.”
해리의 손목이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해리의 안쪽으로 휘어져서, 아마 어깨에 매달려 있을 총집에 피스톨을 끼우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에그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모로 흔들고 있었다.
재킷이 다 가리지 못한 총과, 희미하게 섬유에 배어 있을 화약 냄새와 자신과 일치하는 옷차림을 목격하고서도 해리는 에그시가 전혀 수상하다는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그를 지나갔다. 해리는 여전히 그를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에그시가 반사적으로 자신을 부른 것도 무시하며 해리는 살짝 피가 눌러 붙은 구두 소리를 냈다.
그 때에 에그시가 가지고 있던 건 해리가 자신을 보고 욕망에 못 이겨 총을 쏜 찰나, 동공을 크게 확장시키면서 이전의 해리 하트로 돌아오리라는 가녀린 소망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몹시도 에그시가 궁핍했음을 뜻했다. 에그시는 결국 해리를 빈손으로 보내야만 했다.
내가 만약 천국의 수놓인 옷감을
황금빛 은빛으로 수놓이고
밤과 낮, 여명의 푸르고 희미한
어두운 옷감을 가질 수 있다면,
나 그 옷감을 당신의 발 앞에 펼치리라.
그러나 나 가난해 그저 꿈만을 갖고 있으니,
내 꿈들을 당신의 발 앞에 펼치오.
그러니 부드럽게 밟으시라, 당신은 내 꿈을 밟고 있으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는 천국의 옷감을 소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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