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STID/존본즈] Doctor's Ideal

Jade E. Sauniere 2013. 10. 30. 18:27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Doctor's Ideal




  레너드 맥코이에 대해 칸이 배운 점이 있다면 그가 진심을 말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나 절박하고 진실해지는 순간을 직업적으로 많이 겪은 탓인 듯했다.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칸은 일생을 결심과 판단으로 소모해야만 했던 삶을 살았다. 그는 모든 것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레너드 맥코이가 현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마친 그것을 직접 당사자의 입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해가 게을러지는 계절의 일이었다.


  “늦어서 미안.”


  급하게 걸친 가운의 주름을 손으로 툭툭 펴내면서 맥코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별 의미 없이 파래지고 비둘기가 날아다니던 인공의 천장이 순식간에 백지화되고 칸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안으로 들어간 옷깃을 잡아 빼는 담당의의 모습을 짧게 평했다.


  “그냥 내일 오지 그랬나.”


  의사에게서는 소독약이라고 넘겨 짚을 수 없을 정도의 알코올 향이 났다. 맥코이는 눈가를 문지르면서 어쩐지 민망한 표정으로 도구들이 놓여 있는 은색 카트를 밀었다. 칸이 검사대 위에 앉았다.


  “다른 거면 몰라도 너랑 관련된 걸 어떻게 미룰 수 있겠어? 좋은 직장에서 내쫓길 일 있나.”


  맥코이가 디스플레이를 길게 끌고 왔다.


  “그리고 나 몇 잔 안 마셨거든.”

  “그래봤자 담당의가 자신의 예약 일정에 음주 상태로 임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할 말이 없어진 맥코이는 버릇 같은 중얼거림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일단락했다. 레너드 맥코이는 현재 지상 근무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는 그가 병원에서 일하는 일반적인 의사로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의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극한의 상황을 나누는 벗으로 동료에 술을 첨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 저번에 어디였더라.”


  칸이 식은 눈빛으로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그를 여러 차례 겪은 맥코이는 거기에 강화인간의 섬뜩한 서늘함보다는, 약간의 어이없음과 인간에 대한 한심함 등이 섞인 복합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읽어낼 정도의 경험이 있었다. 맥코이는 결국 빽 소리쳤다.


  “됐어! 기억났거든!”


  칸은 잠시 웃었다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맥코이가 그의 등으로 다가섰고 칸이 옷을 아래로 내리자 맥코이가 펜으로 표시해두었던 부분이 나타났다. 두 선분이 교차된 형태의 상징은 맥코이가 조직을 채취해야 할 정확한 지점을 가리켜주었고 맥코이가 카트 위를 뒤적여 도구를 수색했다. 본래 생검은 마취를 하고 진행하는 게 정석이었음에도 검사자가 그것을 매우 귀찮아했기 때문에, 맥코이는 본의 아니게 보통 의사가 하면 안 될 행동을 벌이고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어? 갑자기 체온이 상승했다든가….”


  제임스 커크 대령을 위시한 윤리적인 온건파들의 활약으로 칸은 부드럽고 뜻깊은 실험에 동참하게 되었다. 불치병에 대한 치료제 개발에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다만 세포를 채취해 보관 후 이용하려 하면 특유의 재생 작용으로 조직이 세 배가 불어나는 기괴한 상황을 거듭 겪고 나서, 칸은 독감 주사를 맞듯 직접 피부층에 병균을 주사당해야 했다. 그렇지만 레너드 맥코이가 희석한 것들만 사용되었고 무엇보다 칸이 그러한 처사에 나름대로 만족하였다. 그는 이것을 자신이 거쳐본 가장 고통스럽지 않고 시시한 실험이라고 일축했다.


  “매번 묻는군.”

  “절차니까. 별 일 없었다는 대답으로 알아들을게.”


  맥코이가 어깨까지 내려진 칼라를 위로 올려주자 칸이 앞섶을 여몄다. 칸이 자리를 이동하는 맥코이를 응시했다.


  “술 때문인가.”

  “거 참, 또 뭐가.”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군. 박사는 이 실험의 시작부터 전보다 훨씬 안색이 좋았지만.”


  맥코이가 유리관 안으로 곧 정밀 검사에 쓰일 칸의 조직을 흘려 넣었다. 유리와 금속이 맑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전보다?”

  “박사가 날 가지고 행했던 첫 번째 연구보다.”


  칸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챈 맥코이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 때는 시간도 없었고 마음도 무거웠던 데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으니까.”

 

  칸의 안색이 의아하다는 빛을 품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잖나.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던가? 게다가 박사는 의사지 않은가.”

  “그래서 더 문제지.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면 되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족속들이 아니라고. 그런 일은 의사의 이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돼. 아주 위험한 거야.”


  인간들 중에서 칸 누니엔 싱과의 대화를 가장 부담 없이 견딜 수 있는 레너드 맥코이는 이렇게 그의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맥코이는 곧 기계를 돌리기 위해 책상으로 갔는데, 칸은 그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뭐가 다르지?”

  “이건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무엇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야. 아픈 사람 없으면 좋잖아?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고 자연사로 죽는 거. 의사들은 파리 좀 날리겠지만 모두를 위해선 그게 더 건설적이지.”


  역시나 맥코이는 의자를 느릿하게 끌고 와서는 검사대 근처에 앉았다. 등받이도 없는 간소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의사는 오래간만에 때를 만난 것처럼 천천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일을 하다보면 말이야, 좀 이상한 생각이 머리에 박히게 돼. 인간의 가장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관론에 빠져들다가도 기적을 바랄 수 있기에 눈을 부릅뜨게 되거든. 그래서 의사들이 신봉하는 말이 뭔지 알아? 현실적인 이상이야. 사람이 죽는 걸 완전히 막을 순 없어. 그러니 그 과정에 기대를 걸고 인생을 바치는 거야.”


  맥코이의 문장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분석을 완료하던 칸은 말을 멈춘 맥코이를 흘끗 살폈다. 칸이 짧은 논평을 던져도 괜찮은 차례였다. 


  “내가 박사를 본 시선이 틀리지 않았군.”


  맥코이는 입술을 살짝 내밀어 비죽였을 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사가 그것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은 이 실험에 전념하는 것인가?”

  “아니, 네 앞에서 성질 죽이는 거지.”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의자를 돌리고 있던 맥코이는 그 상태에서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반면 휘적거리는 의사가 내뱉은 말이 제대로 사고의 톱니에 걸려버린 칸이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무슨 뜻인가?”


  맥코이는 슥 고개를 들었다가 아무렇게나 눈동자를 고정했다. 칸의 시선을 피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비극과 거짓말하는 일 없이 모두가 영원히 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전공이 정신의학이었나.”


  칸은 맥코이가 술기운에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단정해 농담처럼 대꾸했다. 그런데 맥코이는 갑자기 승리의 미소를 닮은 밝은 표정을 안면에 가득 씌우면서 입꼬리까지 씨익 올렸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그것은 명백히 계획과 의도가 있는 자의 즐거운 음흉함이었기에 칸은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그럼 달리 의미가 있는 것이었냐며 물을 뻔했다가, 최고의 강화인간이란 자신의 위치에 걸맞지 않는 언행이라는 느낌에 간신히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나 칸은 자타공인 현실적 이상주의자라는 의사의 말뜻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타이머가 종료되어 맥코이가 기계로 돌아갔을 때에도 칸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다양한 표정 연출이 자연스럽지 못한 딱딱한 성격이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맥코이는 칸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채 돌아가려고 했다.


  “대체 무슨 술을 마신 거지?”


  맥코이가 눈썹을 쑥 올렸다.


  “뭐라고?”

  “원활한 추리를 위해서 현재 박사와 비슷한 상태를 유도해야겠어.”


  맥코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인 학자로서의 면모가 엉뚱하게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맥코이는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아무도 이해 못할 거야. 신경 쓰지 말고 쉬어. 그리고 어차피 알코올 따윈 들어가자마자 분해해버릴 거 아냐.”


  그리고 맥코이는 끝까지 웃으면서 사라졌다. 칸은 검사대를 떠나지도 못하고 수많은 가설들을 떠올렸다.


  아직 레너드 맥코이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도, 비극과 거짓이 곁에서 물러나줬으면 좋겠다는 대상이 칸이라는 걸 말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강화인간의 이상적인 보편성을 꿈꾸는 그는 잠깐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쑥쓰러워하면서도 칸이 어울리지 않게 궁리하는 장면에 다시 깔깔 웃어버리고 말았다.


  조만간 레너드 맥코이는 문제의 단계에 진입할 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