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커크] The Third Memory 05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James Kirk
- Written by. Jade
Chapter 5
그는 이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크로노스에서 혼자 클링온과 맞서던 일은 과거의 한 부분이었다. 성능 좋은 무기들 중에서 자연스럽게 라이플과 캐논을 잡은 그는 마치 전에도 해 봤다는 듯 싸웠다. 까마득한 익숙함 속에 그가 학습했던 논리적인 근거는 없었다.
이어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과거는 이전의 것과 공통점이 많았다. 같은 행성이었고 질 수가 없는 게임에 투입된 플레이어 같은 움직임도 비슷했다. 다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서 때때로 그는 자신의 눈에 먼저 들어 온 적들을 물리치고 일행의 안전을 확보했다.
훌륭한 협업은 임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확고한 요인이다. 그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고 들었던 동료들과도 이런 일을 겪었을 거라고 막연히 떠올렸다. 모두의 뒤는 서로의 몫이기에 자신의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거울을 본다면 옅게나마 웃고 있을 지도 몰랐다.
이후를 더 생각할 수 없어 그는 잠에 들었다.
* * *
“뭐야, 이제 오는 거야?”
맥코이가 어슬렁대는 걸음으로 의무실에 들어온 커크를 보며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잖아. 내가 크게 어디 다친 것도 아니고.”
잔소리 들어서 더 머리 피곤하게 만들 이유가 있겠냐는 말은 생략했다. 어쨌든 얌전히 진찰을 받으러 온 태도가 만족스러워 맥코이가 트라이코더(tricorder)를 들고 일어났다.
개조된 의무실의 한쪽 면은 단단한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마땅한 표식도 붙어 있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공간의 용도를 알았다. 커크가 물끄러미 수술실을 주시하고 있는 걸 발견한 맥코이가 말문을 열었다.
“시술한 거 본 적 있었나?”
“…아니.”
“할 때마다 피부에 흠집을 내서 그 속을 들여다봐야만 해. 뇌 전체에 충격을 줄 수는 없으니까.”
트라이코더의 하얀색 링이 커크의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놈의 머릿속이라면 우리랑 되게 다를 줄 알았어. 워낙 괴물이여야 말이지. 그런데 무슨 전두엽이 하나 더 달렸다든가 좌뇌가 엄청나게 크다든가, 적어도 눈으로 보이는 그런 차이점은 없더라. 그게 너무 힘들어. 내가 이 무섭고 끔찍한 짓을 같은 인간에게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그는 우리와 같지 않아, 본즈.”
단호한 구조를 띤 언어였지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스타플릿 간부들이 등장한 시점에서,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존을 곧바로 쓰러뜨려 시술을 받게 한 스팍의 결정은 옳았다. 그가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건 오히려 성립되지 않으면 이상한 명제와도 같았다. 커크는 진료가 끝났어도 한동안 존이 누워 있을 철문 이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 이제 한 번 들어가 봐야 해서.”
맥코이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커크가 물러나고 무거운 한숨으로 호흡을 정리한 의사가 이중으로 잠긴 수술실의 입구를 열었다. 일부러 침대를 빠르게 지나쳐 바이탈 사인을 점검했다.
“…거기 누구.”
안이 썩 밝지 못해서, 사실 문 여는 소리에 의식을 찾은 존을 못 봤던 맥코이가 어깨를 움찔했다. 그가 버릇대로 말했다.
“젠장, 존! 놀랬다고.”
맥코이는 그 순간까지 어느 구석이 잘못됐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내 이름이 존입니까?”
어두운 내부 덕분에 덩달아 짙어진 눈동자는, 자신의 백짓장에 처음으로 적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순수하고 무감해지는 존을 보며 맥코이는 참을 수 없는 죄책감에 침을 삼켰다. 수석 의료 장교라는 높은 지위를 꿰차고 있는 그는 오차 없이 외웠던 매뉴얼을 상기하다 입술을 짓이겼다.
“그래, 당신은 존이야.”
그러고 나서 맥코이는 엉뚱한 말을 덧붙였다.
“일어나서 다행이네.”
존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과 흡사한 곳에 누워 있었음을 알아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큰 부상이라도 입었던 모양이군요.”
“그걸 대가 삼아 살아난 거잖아.”
정상적인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모니터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맥코이는 존을 피했다. 자신이 마주한 첫 번째 인물이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존은 침대에 바로 누우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의 근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작이 맥코이를 더 괴롭게 했다. 맥코이는 용건도 밝히지 않고 도망치듯 존이 있는 공간을 벗어났다.
* * *
스타플릿을 잔뜩 곤두서게 만들었던 클링온과의 대립은 케사에서의 소규모 전투로 한 번에 불꽃을 터뜨렸다가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식어버렸다. 이번에도 영웅적인 성과를 올린 엔터프라이즈였지만, 커크는 이번 일만큼은 제대로 기록이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모두가 이 위기와 해소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을 안다. 다른 면에서 분석해보자면 아무도 무기의 존재를 특별 취급해 역사서에 올리지 않는다.
지구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 못한 엔터프라이즈는 아직 우주에 정박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전후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크로노스에 간 함선들과 같이 지구로 내려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반면에 정치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은 다른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클링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풀어 놓았던 존을 여기서 정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뻔했다.
바깥 사정과는 무관하게 존은 무료하고 평화로웠다. 세 번의 삭제술을 받는 동안 급박하게 임무에 시달렸던 그에게 당분간은 할 일이 없는 셈이었다. 그는 조용하게 함선 내부를 돌아다니거나 방에서 우주를 보며 자주 생각에 잠겼다. 전장을 그리워하는 오싹함이 아닌 투명하게 은하를 그대로 머금은 동공은 가끔 지나가는 선원들의 발길을 붙잡아 두기도 했다.
그가 드물게 이 두 선택지를 벗어났다면, 존은 대개 의무실에 있었다.
“있습니까, 닥터.”
“…들어와.”
말끔히 떨어지는 동작으로 문을 닫는 존의 왼쪽으로 공연히 피곤해 보이는 본즈가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위급한 환자는 없었지만 나름의 사정에 시달린 듯한 안색이었다.
“왜 왔어?”
존은 앉지 않고 맥코이와 살짝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걸 택했다.
“수면제를 처방받고 싶습니다.”
한 번 실수한 경력이 있어 맥코이는 약이 흡수되기도 전에 네 세포가 수면제를 다 깨부술 거라는 실언은 하지 않았다.
“잠이 안 와?”
맥코이는 내심 불안했다. 피로감을 느낄 일이 거의 전무할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진 것일까. 수면제를 삼켰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아주 기이한 사건이라 맥코이는 어떤 종류의 약을 줘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단순한 수면이라기보다는, 꿈이 목적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맥코이가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꿈을 꾸기 위해서 잠을 자고 싶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어차피 깨어나고 나면 잘 생각나지도 않잖아.”
“무의식적인 자극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느릿한 영상을 보는 것처럼 존이 눈꺼풀을 닫았다가 여는 모습이 선명하게 맥코이의 눈앞에 지나갔다. 천이 한 번 유리구슬을 닦았다가 밑으로 스르르 내려가는 장면이 겹쳐졌다.
그의 우수한 두뇌는 모든 걸 안다. 기억상실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곱씹어보면서, 큰 부상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자신의 기억을 앗아갔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다가 보통 무의식이라도 일컬어지는 심연을 탐색하는 방법에까지 생각이 닿았다면? 자신이 함선 내 의료와 건강을 담당하는 치프를 고심케 만드는 줄도 모르고 존은 태연하게 맥코이에게 또 하나의 짐을 얹었다.
“…차라리 네 잃어버린 과거가 궁금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나와 친밀했던 동료들은 다 죽었다고 했잖습니까. 여기 승무원들에게 묻는다고 알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고. 언제나 반쪽짜리 진실이다. 맥코이는 뒤늦게 발버둥치는 윤리의식과 지극히 이기적인 욕구에 샘솟은 한 마디를 겨우 억눌렀다. 그는 새로이 마음을 닫고 서랍을 열었다. 만일에라도 라벨을 알아볼까 빈 통에 알약을 나눠 담았다.
존이 반사적으로 약병을 받아들기 위해 더 거리를 좁혔다. 맥코이가 수면제를 넘겼다.
“…이래서 네가 꿈을 꿀 수 있을까.”
이미 사라진 그에게 맥코이가 말했다.
* * *
존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창밖을 내다보기 위해 의자대신 사용하고 있는 침대의 시트가 주름도 없이 매끈했다. 곧장 직진해 침대에 길게 앉은 그가 플라스틱 약병을 손가락으로 굴렸다.
엔터프라이즈, 크로노스, 수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여러 정보들이 힘없이 그의 사고를 배회했다. 존이 엄지손톱으로 뚜껑을 열었다. 수면제를 두 알이나 먹어도 되는 건가. 개성 없이 하얗고 동그란 알약이 존의 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그 때 수면제에 취한 몸이 꿈을 볼 수 있는 여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엔터프라이즈의 수석 의료 장교도 놓친 부분이었다. 되돌아보니 레너드 맥코이는 복용량을 알려주지도 않고, 그가 꿈을 원한다는 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몇 분간 가만히 있던 존이 수면제를 삼켰다. 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이던 그가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약물에 의지하여 잠에 빠진 존과 달리 맥코이는 오늘 밤도 불편하게 책상 앞에서 펜을 딸깍이고 있었다. 정작 분석의 대상이 된 장본인은 열람해 본 적도 없는 유전학적 자료들과 연구 데이터가 모종의 손길을 기다리듯 널려 있었다. 그 시각 스팍은 본부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고, 커크는 이유 없이 손가락으로 벤전스에서 날아온 귀환 명령서를 밀었다가 당기는 행동을 반복했다.
존은 꿈을 꾸지 못했다. 커크는 침대 위에 벌렁 누워버렸고 맥코이는 한참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스팍만이 간신히 수정을 거듭하던 보고서를 완성했다. 아무래도 지구에서야 크고 작은 소란들이 수습될 모양이었다.
* * *
함장 개인 일지, 우주력 2260.21.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일지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쓸 거다. 누구한테 제대로 알릴 수도 없는 사실이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스팍이나 다른 동료들도 제 나름대로 답답하고 우울할 테니까 하소연을 하기엔 내가 다 미안할 정도라서 이 수밖에는 없는 듯하다.
맨 처음에 존 해리슨, 그니까 칸의 각성을 반대했던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투명한 문을 사이에 두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힘없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생생하다. 폭격에 터져나가는 데이스트롬 회의실에서 유언 몇 마디도 하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던 파이크 함장님도. 그를 이용한다는 것에 앞서서, 나에게 가장 많은 죽음을 안겨 주었던 존재가 깨어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정말 개인적인 감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입장에 놓이면서, 당시에는 공포와 적대감에 억눌려 있던 것이 고개를 내민 것 같다. 오늘 마치고 온 회의가 너무나도 불편하다. 클링온과의 전쟁이 끝났으니 본래의 목적을 다한 그를 다시 잠들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이제는 전과 다른 이유에서 그를 캡슐 안에 눕히고 싶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군요.”
커크와 스팍이 입술을 꾹 깨물고 데이스트롬을 나온 시각은 저녁이었다. 이 시간에 생도들은 거의 돌아다니지 않고, 당직을 맡았거나 처리할 업무가 많은 장교들이 이따금씩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할 뿐이었다. 대화를 트고자 넌지시 입을 연 스팍을 본 커크는 아무데나 앉아도 괜찮겠냐고 눈짓했다. 벤치가 없어서 둘은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주는 임무는 하나도 고맙지 않아.”
커크가 소리 나게 숨을 뱉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칸이 주는 효율성과 힘에 취해버렸어. 이것저것 일이 겹치긴 했지만 누가 전쟁이 이렇게 빨리 끝날 거라고 예상했을까. 그게 오히려 자극이 됐겠지.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우리만 그를 이 상태로 깨워두는 일에 찬성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를 지구 밖으로 돌리려는 거야. 젠장, 구실이 좋지.”
이번에도 명성에 맞는 훌륭한 실적을 낸 엔터프라이즈를 치하하는 뜻에서 회의체는 해당 함선과 승무원들에게 5년간 우주를 탐사하고 오라는 임무를 주었다. 선례가 없었던 그 긴 일정은 다양한 행성과 새로운 문명을 동경하는 탐험가들의 꿈과도 같았다. 커크 역시 자신이 그런 장기 탐사를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왔지만 간부들의 속내가 지나치게 뻔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한가득 안고, 커크는 당분간 스타플릿의 적이라고 할 만한 세력이 정리되었으므로 그만 칸 누니엔 싱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자는 제안을 내놓았었다. 충분히 논리적이라고 생각했고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스팍은 그의 곁에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지는 함장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설마 너도 은근 그 인간들한테 동조하는 건 아니지?”
잠자코 있던 스팍에게 휙 시선을 돌린 커크가 그를 뜯어보았다.
“그를 냉동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는 결국 당장 그를 투입시킬 만한 구실은 없지만 재차 봉인시키기에는 아까워서 고집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버리고 싶지 않은 카드라는 거죠. 저 역시 칸은 동결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함장님의 이유는 이것 말고도 더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무슨 소리야?”
“함장님을 한 번 죽였던 존재에게까지 정의와 일종의 선한 감정을 적용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평소처럼 막힘없이 발언을 쏟아내고 나서, 스팍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사선으로 내렸다.
“…제 눈에는 함장님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증표로 보입니다.”
그 말이 아직도 커크를 죽인 원수로 칸을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좁은 판단을 비교하며 탓하는 듯해 커크는 부드럽게 스팍의 어깨를 쳐 주었다.
“근데 이걸 본즈한테 대체 어떻게 말하지….”
* * *
부함장이라는 직함도 거뜬히 맡을 수 있는 중령이 걸어가는데 인사하는 이가 없다. 그의 비범한 감각을 알기 때문에 생도들은 그가 멀찍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의 본명과 전과에 대해 입방아를 찧었다. 그의 무표정한 시선이 바로 근처에 있으면 그들은 서둘러 방향을 틀거나 아예 넋을 놓기도 했다.
존은 빈번하게 지나가는 그 비슷한 광경을 사람들이 예의가 없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 크로노스에서 있었던 전투담이 과장되어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존은 그러한 태도들에 나름 익숙했다. 그가 처음 만난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이 그러했기에, 그는 텅 빈 머리에 은근한 두려움이 섞인 눈동자들을 하나의 공식처럼 새겨 넣은 것이다.
직속상관은 아니라면서 존에게 가장 자주 찾아오는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 며칠째 지령서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이틀간 스타플릿 본부를 꾸준히 돌아다닌 존은 그와 타인 모두가 불편하지 않을 만한 한적한 곳에서 패드를 꺼냈다. 액정을 몇 번 클릭하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굳었다. 검색어를 입력할 수 있는 작은 창을 띄워놓고 화면은 멈췄다.
그는 자신을 처음 존이라고 불러준 의학 장교의 목소리를 되짚었다. 존이라는 흔하고 단순한 이름만 목소리에 섞였다. 늘 자신들이 걸어갈 길에 바빴던 사람들은 그의 온전한 이름을 말해줄 겨를도 없었다. 그렇다면 제임스 커크는, 스팍은? 모두가 해당사항이 없어 누군가의 복무 기록을 검색해 보려던 손가락은 결국 허망하게 창을 닫고 말았다.
반쪽짜리 이름만으로는 자신과 인연이 있었고, 수다스러운 타 함선의 선원들이 이리저리 부풀린 무용담을 걸러 들을 수 있었을 과거의 동료들을 찾을 수 없었다. 존이 패드를 내렸다.
중령에게 떨어진 뜻하지 않은 휴가는 비로소 그가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현실을 실감케 했다. 거울이 있어도 청록색 안구를 어둡게 하는 게 고독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남자는, 자신이 걸터앉은 대리석에 왜곡된 형태로 지나가는 생도들을 보았다.
* * *
커크가 한산한 바의 문을 밀었다. 옷을 빼입은 젊은 여자들도 없고 가사 없는 노래만 흘러나오고 있는 그곳에서 그는 어렵지 않게 맥코이를 발견했다. 배멀미만 아니었어도 우주에 훨씬 애정을 붙였을 맥코이의 성미를 아는 커크였다. 그가 부드럽게 맥코이의 좌석에 끼어들었다.
“여기는 뭐하러.”
맥코이가 반만 얼굴을 들었다.
“나쁜 소식하고 더 나쁜 소식이 있는데.”
“젠장, 그런 걸 꼭 찾아오면서까지 말해야 하는 거야?”
맥코이가 마시는 술은 도수가 높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지 않고 정리할 필요도 없는 공간을 사기 위해서 바를 찾는다. 잔을 들면서 커크의 무거운 표정을 본 맥코이와 긴 숨을 흩어 놓았다.
“나쁜 소식은?”
“5년간 우주를 탐사하는 임무를 받았어.”
반사적으로 맥코이가 미간을 구겼다가 풀었다. 그건 다수가 반길 만한 이야기였다.
“그게 나쁜 소식이야? 그럼 다른 건?”
“존 해리슨을 백지 상태로 만들어 놓을 거래.”
커크가 자신이 한 말에 기가 찬다는 반응이었을 보였음에도, 맥코이는 왈칵 되물었다.
“…얼마나 반대했어.”
“회의실을 한바탕 엎어놓을 정도로 날뛰었지! 나는 처음부터 꺼림칙했어. 클링온한테 붙어먹은 어떤 미친놈만 아니었어도 계속 잠들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자고 있어야 한다고, 본즈. 이건 아니란 말이야.”
손짓까지 섞어가면서 열변을 토하고 커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맥코이가 겉돌고 있던 난제에 대한 확실한 실마리를 얻은 사람처럼 차분했다. 트랙이 끝나기까지 몇 십초를 남겨둔 음악이 잔잔한 음을 냈다.
“명분이 어떻든 마커스 제독에게는 죄가 있었어. 그렇지?”
커크가 얼핏 뜬금없이 들리는 말에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
“너나 나나 이게 제독이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 그런데 난 더 이상 죄인이고 싶지 않거든.”
커크는 자신의 동료이자 때로는 보호자 같은 맥코이가 말버릇만 거칠 뿐 매사에 진지하게 임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처럼 비속어가 삭제된 얘기를 꺼낼 때는, 그 내용이 무엇이라도 그것이 확실한 추진력을 얻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니까 나 좀 도와줄래.”
단호한 레너드 맥코이의 눈은 어쩌면 커크가 남몰래 기다려왔던 하나의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