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커크] The Third Memory 03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James Kirk
- Written by. Jade
Chapter 3
클링온들은 선전포고만 하지 않고 있을 뿐, 그에 준하는 도발을 일삼고 있었다. 최근에는 스타플릿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은 민간 우주선을 공격하는 바람에 두 세력 사이에 공격적인 언사가 오고갔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벼랑 끝이나 다름없는 클링온과의 관계에 답답해진 몇몇 이들은 차라리 전투를 하자는 의견을 펼쳤다. 연방 수뇌부들 역시 머지않아 싸움이 붙을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존이 완벽하게 복원해 놓은 벤전스호를 아직 전면에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엔터프라이즈를 제외한 다른 함선에서 제일 수행 능력이 뛰어난 선원들을 벤전스로 옮기는 동시에, 그로 인해 생긴 인력의 공백을 채워야 했다. 함선은 다수의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첨단식이었지만 도리어 배의 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새 승무원들이 일종의 적응 기간을 가져야 했다. 스타플릿은 일당백 역할을 해 줄 벤전스호 없이는 전쟁을 벌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만 날뛰는 클링온들을 견제해 줄 필요는 있었으므로 연방은 중립 지대에 선발대를 보내기로 했다. 당연히 그 역할은 엔터프라이즈가 떠맡게 되었으며 벤전스와 마찬가지로 요긴하게 이용될 존이 탑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언제부턴가 이런 상황이 기묘하게 익숙해진 제임스 커크 함장이 출항을 준비하는 함선에 방송을 송출했다.
“여기는 함교, 모든 선원들은 앞으로 내가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란다.”
커크가 목을 몇 번이고 가다듬었다. 존이 오지 않은 틈에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당분간 이 함선에는 존 해리슨이 탑승한다. 켈빈 문서 보관소를 파괴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존 해리슨이 맞다.”
함선을 돌아다니고 있던 승무원들이 하나씩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여러분은 절대로 그에게 그러한 실상을 말해서는 안 될 것이며, 엄격하게는 그를 해리슨이라고 칭해서도 안 된다. 그는 현재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여러분들과 같은 스타플릿의 장교일 뿐이다.”
함장석에 앉아 있는 커크에게 술루가 작게 벙긋거렸다. 몇 분 뒤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 곧 발발하게 될 클링온들과의 전투에 참전하며 여러 정황상 엔터프라이즈가 그의 신병을 맡게 되었다. 불편하겠지만 다들 조금씩 감수해 주길 바란다. 어려운 일만 맡기게 되어 함장으로서도 유감이다. 이상.”
커크가 방송을 끝내자마자 스팍이 함교로 들어왔다. 차분히 의자에 앉는 부함장을 보면서 커크는 그가 매뉴얼을 모두에게 배포했음을 추측했다.
“존은 어디 있어?”
“셔틀이 이제 막 착륙했습니다.”
“거기서 지령서를 전달할 사람이 이미 대기중일거야. 지시해.”
술루가 명령을 이행했다. 엔터프라이즈가 그를 태우기로 결정이 되었으나 존은 커크가 스팍에게서 임무를 받지 않았다. 커크는 굳이 그에게 매정하게 굴고 싶어서 그를 함선 내부에 입장시키는 걸 막은 게 아니었다. 이번에 존은 홀로 크로노스로 내려가 장거리 스캔으로 확인되지 않는 클링온들의 동태를 세세하게 파악해야 했다.
한편 엔터프라이즈에 오자마자 떠나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존은 묵묵히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일주일을 가까스로 채웠을 법한 과거마저 뺏겨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그가 전에도 본 바가 있는 조작의 흔적과 사람들이 주입한 말이었다.
진실한 정체성 대신에 스타플릿이 존에게 둘러준 것은 그가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대원이라는 맞지 않는 제복이었다. 그가 탑승한 수송선이 두둥실 떠올랐다.
* * *
존은 케사 지방에 당도했다. 명령서에 거점 지역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은 짧지만 명석한 판단에 따라 거주민이 없는 지역을 선택했다. 그곳은 전에 존 해리슨이 비슷한 이유로 자신의 근거지로 선택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거주민이 없더라도 행성 전체를 순찰하는 정찰대는 이따금씩 돌아다닐 것이라, 셔틀을 눈에 띄지 않게 착륙시켜야 하는 게 첫걸음이었고 존은 그것을 잘 수행해냈다. 그가 코트를 걸쳐 스타플릿 표식이 있는 상의를 가렸다. 커크가 봤다면 흠칫할 정도로 그는 존 해리슨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여기 머물러야 하는 기간을 꽤 오래 잡고 있었다. 낮에는 몸을 사려야 하겠고 해가 져야 첩보 활동을 펼칠 수 있을 테니, 며칠 가볍게 있을 정도의 장소는 물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셔틀의 동력은 비상시를 위해 가급적 아껴둬야 했다. 존은 하늘을 한 번 살핀 후에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질서 없이 솟아난 척박한 자연의 풍경을 보니 숨을 곳은 많을 듯했다.
착륙지점이 예상 외로 쉽게 잡힌 것에 더해 존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따랐다. 누군가가 절묘하게 일구어 놓은 듯한 혼란 속, 내부는 동굴처럼 넓을 것 같은 지점이 눈에 띄었다. 존이 다시 황량한 사막과 비죽한 철제 구조물 따위를 점검했다. 그의 위치에서 클링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내부로 살짝 들어서자마자 거친 발음으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이 뚝 움직임을 멈췄다. 사실 클링온들의 이동 수단은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발견할 수 없는 곳에 세워져 있었지만, 그걸 모르는 존은 침착하게 고민해야 했다. 동태 파악이 전부일 뿐인 자신의 임무에서 사상자를 내도 상관이 없는 것인지. 존은 일단 밖으로 나가 그들의 탈것을 수색했다.
최대 세 명이 일렬로 탈 수 있는 오토바이가 두 대 있었다. 아직 정찰기는 없었고 클링온 여섯 정도는 십 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존은 지금쯤 발진해서 한창 워프 중일 엔터프라이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근처에서 소수의 클링온들을 발견함. 자체적으로 전투 수행. 스스로에게 교전 명령을 내린 존이 곧 엔진을 겨냥하여 오토바이를 폭파시켰다.
펑! 오토바이가 터지는 소리는 의외로 컸다. 존이 인상을 찡그렸다. 클링온 하나가 폭발음의 정체를 확인하려 무방비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정통으로 빔을 맞고 쓰러졌다. 가급적 노출을 삼가겠다는 것이 그가 이번 전투에 임하는 수칙이었다.
동료가 풀썩 고꾸라지자 그제야 클링온들이 무기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으나 좁은 입구는 존에게 호재였다. 육탄전을 벌여도 존이 앞섰겠지만 안정된 위치에서 사격만을 이어가니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존이 침착하게 총을 내렸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기 전 클링온 하나가 지원 요청을 한 것은 존이 예상도 못 했고 막을 수도 없었다. 검은색 기체가 잠잠하던 하늘을 가르는 걸 보며 존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도망치고자 했다면 차라리 셔틀에 탑승했을 것이다. 존은 직감적으로 그 안에 쓸모가 있을 만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여겼고, 과연 존 해리슨이 머물던 아지트에는 뛰어난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들이 있었다. 클링온이 그 곳을 뒤지던 이유가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존은 지체 없이 라이플과 한 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캐논을 잡았다. 본능과 긴장감에 사로잡혀 그는 자신의 통신기가 울리고 있음을 잊었다.
고도를 낮춘 선체가 스피커를 통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존 해리슨이 대답 대신 캐논을 발사했다.
* * *
“왜 응답을 안 하지?”
워프를 마치고 중립 지대에 정박해 있는 엔터프라이즈 내부, 커크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장비에 이상은 없는데 그가 통신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함장님!”
체콥이 무언가 두려운 걸 본 사람처럼 말했다.
“케사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체콥의 앞에 있는 화면 위에서 파란 점 하나가 날뛰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존의 옷에 달린 스타플릿 배지에 심어 놓은 GPS 장치가 계속 미세하게 다른 좌표를 전송 중이었다.
“…우리가 거의 선전포고를 한 수준이군.”
커크가 중얼거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스팍이 일어섰다.
“워프로 데려오는 건 불가능한가?”
“너, 너무 빨라서 위치를 잡을 수가 없어요.”
“함장님, 제가 내려가서 그를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스팍이 함장석에 앉아 있는 커크와 눈을 맞추며 말했고, 함장은 난색을 표했다.
“우리는 지금 상황을 정확히 몰라. 떨거지 몇 명이랑 싸우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비행기 몇 대가 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어차피 우린 전쟁을 앞당기게 됐어. 그냥 가는 건 위험해.”
“그렇기에 더 데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란 점은 여전히 보드 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 *
그 역사가 얼마나 복잡할지라도 존은 기본적으로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것에만 의존했더라면 그는 분명히 셔틀을 타고 엔터프라이즈에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 그는 단지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다소 추상적인 그 한 마디로 자신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존은 자신이 전쟁에 최적화된 정복자로 태어났음을 모른다. 실은 매우 승산 있는 전투에 존은 백지상태로 뛰어들었다.
케사의 지면을 밟았을 때부터 존은 실구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깊은 거리감에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 희미했지만 명백히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그 감정이란 이를 테면 고독감이었다. 엔터프라이즈에 제대로 승선하지도 못한 채 혼자 셔틀을 조종하면서도 덤덤했던 그를 이 지역의 탁한 공기가 뒤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언젠가 여기에 온 적이 있어서, 여기서 무슨 일을 했다면 그것은 아주 무겁고 씁쓸하며 외로운 과업이었을 것 같았다. 존은 이런 부분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합리적인 표현을 적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질 게 눈에 빤히 보이자 슬그머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클링온의 기체와 붙어서 이길 수가 없는 게 상식인데도 그러했다. 때로 감정은 기억에 기대지 않는다. 칸 누니엔 싱이 홀홀단신 스타플릿 본부로 떨어졌을 때부터 축적되어 왔던 우울함과 공허함이 분노에 찬 기지개를 펴겠다며 존의 무의식을 다그쳤던 것인지도 몰랐다. 조금 흩어지는 걸로 멈추는 자신의 머리칼과는 대조적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경비정을 보며 존은 더욱 무기를 휘둘렀다.
그의 붉은 라이플이 이어 날아오는 기체의 왼쪽 날개를 박살냈을 때 스팍이 존의 팔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총구가 스팍을 향해 돌아갔고 추락하면서 쏘아진 클링온의 광선이 둘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스팍이 전투에 취한 청록색 눈에 대고 고했다.
“이제 됐습니다.”
존은 아직 연산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엔터프라이즈, 우리를 워프시켜 주십시오.”
명중 당했던 클링온의 정찰기가 좌우로 흔들리다가 바닥에 홈을 파면서 나아갔다. 스팍에게 팔이 잡힌 채 존이 몸을 돌려 무기를 겨눴다. 잠깐 비어 있던 눈동자가 다시 불꽃을 머금은 것 같았다.
스팍이 존이 쥐고 있던 라이플을 쳐냈다. 동시에 역할을 잃은 캐논이 떨어지면서 조종석이 위치한 부분을 맞췄다.
워프 특유의 하얀 불빛이 벌칸과 유사인간을 휘감았다.
* * *
커크는 솔직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명령대로 그는 정찰을 위해 크로노스로 먼저 내려갔습니다. 주거지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 케사 지역에 도착했다가 클링온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클링온 병사들과 경비정 몇 기가 파괴당했으며 저희 측 부상자는 없습니다.”
말을 잇다가 커크는 은근히 자신의 의견을 찔러 넣었다.
“그가 전투를 유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임무를 수행할 동안 머무를 장소를 물색하던 중 우연히 클링온들과 만나게 되었을 뿐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함장?”
“지원군을 보내주세요.”
어쩐지 존 해리슨을 두둔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커크는 엔터프라이즈를 보호하고자 했고 그 안에는 공교롭게도 존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곧 클링온이 선전포고를 할 것입니다. 엔터프라이즈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벤전스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네만.”
“벤전스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저희만으로는 클링온을 상대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커크와 스팍이 제외된 나머지 스타플릿의 함장과 부함장들은 감흥 없이 화면 속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을 응시했다.
“고의는 아니었다고 하나 결국은 그가 이 지경까지 사태를 악화시킨 것 같군. 전투를 펼치지 않고 귀환했으면 그나마 나았을 걸세.”
순간 커크는 그 발언을 내뱉은 중년의 함장을 노려볼 뻔했다.
“미안합니다, 함장님.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만 지원이 빠를 것 같지는 않겠어요.”
* * *
존이 팔 한 쪽 한 번 긁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했지만, 함선의 의료 장교로서 맥코이는 전투에 가담한 선원들을 한 번씩 진찰해야만 했다. 맥코이가 진료 기구를 갖다 대기도 민망할 정도로 매끈한 그의 얼굴에 미묘하게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지극히 정상이네. 뭐 더 들여다 볼 것도 없겠어.”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색 바닥을 보고 있는 눈에서는 사유의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이제 겨우 클링온 따위들은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는 자신의 특출함 하나를 깨달았을 뿐이기에, 맥코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안도했다.
“…닥터.”
동시에 의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함장이 들어왔다. 맥코이는 즉시 얼굴을 돌렸고 존은 입을 다물었다.
“다친 데는 없지?”
꼿꼿한 자세로 답하고 있는 존의 주위에 어렵게 맥코이를 불렀던 분위기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방금 돌아온 대원한테는 좀 미안한 일이긴 한데, 우리 혼자서 클링온하고 전쟁을 펼쳐야 할 것 같아서. 네 도움이 필요해.”
“…엔터프라이즈 혼자? 다른 함선들이 지원해 주지 않는다는 거야?”
커크가 두 사람에게 동시에 손짓했다.
“작전 회의하러 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