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해리슨 찬양기33333
: 이번에도 모든 어구들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이란 책에서 인용 혹은 재인용되었습니다. 아니 머리를 굴려 보려고 이런 책을 읽는 건데 존 해리슨만 생각나서 미치겠네요. 아무래도 그냥 소설책이나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닼ㅋㅋㅋㅋㅋ 난 아직 내가 생각한 걸 다 쓰지도 못했어!! 방학동안 다 못 쓸 거라고!!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OTL
여러분, 존 해리슨은 사랑입니다. 왜 이 경이로운 캐릭터를 파지 않으세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셨으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마구 흩뿌리는 것들을 좀 가져가 주세요(....)
아무래도 '더 로그' 형식으로 언젠가는 풀어야 할 것 같은, 이 수많은 존 해리슨에 대한 상념을 보시라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수단과 목적을 구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이 스탈린주의의 큰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의 자유를 원했으나 그들이 행했던 방법은 정반대였습니다.
-> 오늘 또 발견한(...) 존 해리슨의 매력은, 그가 존 해리슨이면서 칸 누니엔 싱이기 때문에 그 이름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는 칸 누니엔 싱으로서 정복자이기도 하지만 스타플릿의 존 해리슨은 홀로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외롭게 싸우는 투사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의 두 가지 정체성에 모두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맥락만 괜찮다면 훌륭하게 풀어낼 수 있는 말이에요. 내가 진짜 존 해리슨이고 싶다-_-
"만약 당신이 열 명의 사람을 살해한다면 당신은 살인자이지만, 수백만 명을 죽인다면 당신은 역사적인 영웅이다." (요새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 없는 구제금융 등을 다루면서 하는 얘기지만, 이거 HBO의 Too big to fail이 생각나는데, 여튼 나는 책의 맥락따윈 고려하지 않는다!orz)
-> 이거는 지이이이이인짜아아아아아아로오오오오오오 존 해리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저 말은 스탈린이 했던 발언이라는데, 언젠가 칸 누니엔 싱으로 군림했을 시절 분명히 한 번 있었을 법한 일입니다. 분명 저렇게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저 말을 체화하고 있겠지요. 그가 정말 스타플릿을 다 쓸어버렸다면 그는 어쨌든 신제국을 건설한 역사적인 군주로 다시 발돋움했을 테니까요. 46명에서 그쳤기 때문에(??????) 존 해리슨은 테러리스트가 되었..... 여하튼 저 발언은 존 해리슨의 입에서 나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말입니다.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지젝은 오늘날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세속적 좌파가 실패한 결과인 동시에, 세속적 좌파를 통해 실현될 수 없었던 '혁명적 잠재력'과 '불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임을 지적한다. 이는 곧 좌파의 실패로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세속적 좌파'의 출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 결국 요새 정치에서 열정을 가진 건 근본주의자들뿐이다.)
-> '정치에서 열정을 가진 건 근본주의자'라는 얘기가 뒤에 나오므로 여기서는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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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는 이러한 것들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문화도 필요도 없는 원칙들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바닥에 침을 뱉지 마세요.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식당이 유럽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식을 강요받을 이유가 없지요. 이것이 바로 한 사회의 윤리적 표준입니다.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그러한 표준들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즉 저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사회란 누군가가 "강간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갔어?"라면서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 이거는 솔직히 존본즈(...)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다가 덧붙이게 되었는데요. 존 해리슨이 스타플릿과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저 문단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자신에 대한-한 생명의 착취)을 고민하고 심지어 엇나가는 인간들이라면서요. 'The Log'에서 한 번 시도했듯이 이런 걸 받아치는 데에는 커크도 적절합니다만 본즈라면 아주 낙관적이지만은 않으면서도 나름 현실적인 답안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문제는 내가 그걸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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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에게 숨겨진 계획이나 음모가 있는지 찾아내려 하고 그러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앉아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공개되어 있는데 왜 이러한 짓을 하는 겁니까? 이것이 좌파의 은밀한 저항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즉 어떤 것을 숨기는 방식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숨기지 않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마치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처럼 혼란을 주는 방식 말입니다.
-> 이거는 뭐랄까요, 앞에서 말했던 대로 레지스탕스 존 해리슨이 아닌가 생각되어요. 어떻게 보면 그는 진실과 거짓을 능수능란하게 섞는 달변가이자 영악한 전략가에요. 하지만 조금 시선을 달리 한다면, 존 해리슨이 스타플릿 중령으로서의 가짜 정체성을 뚫고 나와 동료들을 구하러 가는 것. 복수의 함정(벤전스호)를 탈취해 함장석에 오르는 것,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계략을 숨겼을진 몰라도 자신의 목적은 숨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의 목적을 알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거꾸로 흘러가 그의 계략도 스타플릿이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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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Homo Sacer: 어원상 로마 시대에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한 자를 이르던 말로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 '법 바깥의 영역으로 추방된 존재'를 의미했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이 개념은 오늘날 법질서 바깥으로 완전히 추방된 자들, 또는 그러한 위험에 항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정치적/경제적 난민의 폭발적 증가라는 상황과 함께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 이런 이들이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젝은 말하는 듯하다.)
-> ..이것도 개인적으로는 영락없는 존의 처지인 것 같아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르르르르
..여기 있는 이 책은 제가 산 것이고 이것은 물질적인 유형을 가진 물건이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전달되는 지적인 생산물들은 누군가의 소유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생략) 유전자를 사유화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아주 흥미롭게 생각하는데요. 나중에는 정말 말 그대로 우리의 유전자가 회사 소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데카르트적 코기토만 남겠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오는 겁니다.
-> 뒤를 주목하시면 됩니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무언가'라는 표현에만 주목하시면 됩니다. 칸 누니엔 싱의 인공적인 성질은 진짜 뭐 어디 안 맞는 데가 없네!! 그의 지성이라든가 전투 능력, 치유 능력, 심지어 동료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그 성미마저도 그가 타고난 건 아닐 겁니다. 제 자신들의 보존이나 동질감, 심지어는 자기애의 투영으로 칸이 동료를 아끼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스스로 저 표현에 격침당해 부글부글 가슴이 끓고 있네요. 이렇게 훌륭한 캐릭터를 만난 것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둘 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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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예이츠의 유명한 시구가 생각납니다. 자신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그는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약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고 말했죠. 오늘날 정치에 있어 우리는 어디서 열정을 찾을 수 있습니까? 오직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입니다.
(주석 : 예이츠의 시 '재림'은 현재 우리가 처한 곤경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듯하다. 지젝이 언급한 이 구절은 무기력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적인 근본주의자 사이의 균열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선한 자들'은 더 이상 전심을 다해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가장 악한 자들'은 광적인 인종주의적/종교적/성차별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여전히 적극적인 참여를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예이츠 만세 저건 뭐 너무 말할 필요가 없어서.. 저 시구만으로도 단편 나오게 생겼네 역시 명불허전 예이츠다 우아아아!< 네 조만간 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존 해리슨의 위대한 언어를 빌려서... (...) 진정하고 좀 설명을 덧붙여보자면, 물론 지젝의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하는 게 제일 바람직한 것 같긴 합니다만, 칸이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이미 오래 전에 잃었을 게 분명한 그이므로 그의 눈에는 행동할 수 있는 선한 자들이 보이지 않는 거죠. 그리고 자신을 게걸스럽게 물어 뜯으려는 악한 인간들만이 눈에 띌 겁니다. 아 어디서 물이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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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들의 목표는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여기 우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함인 겁니다. 거기엔느 "우리는 보다 많은 정의를 원한다"는 식의 어떠한 긍정적인 메시지도 없습니다. 이는 폭력의 거대한 분출이었죠. 그들이 전한 메시지란 고작 "안녕, 여기 우리가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 의례적 의사소통phatic communication(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사되는 의례화된 관용어구 by 로만 야콥슨), 관념적인 불만
-> 이것마저 존 해리슨에게 정당화시키려고 메모해 놓은 것은 아니었고.. '의례적 의사소통'과 '관념적인 불만' 두 가지 키워드 때문에 여기다 적게 되었습니다. 전자는 당연히 스타플릿에 몸담으면서 그가 어쩔 수 없이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야 하는 '인간적인' 관습이었을 테고. '관념적인 불만'은 칸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그가 다크니스 배경에서 인간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의 우생학적 사고를 들먹이지 않아도요), 타인이 칸이라는 인물에게 막연히 가지는 두려움이라든가 반감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탕 아래에서 칸이 전쟁과 테러를 저지르고 다녔기 때문에 옳거니! 하고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멋대로 다룬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타 트렉 다크니스에서 칸의 정확한 기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300년도 넘는 과거를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어요. 매우 바람직하다.
방어적 폭력이란 알랭 바디우가 제안한 개념으로, 국가 권력에 거리를 두고 그 권력의 지배에서 빼낸 자유 영역들을 건설하며, 오직 이 '해방구들'을 분쇄하고 재전유하려는 국가의 시도에만 물리력을 동원해 저항하는 것이다.
-> 이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존 해리슨이 칸 누니엔 싱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 쵱캐니까 쵱캐 위주로 마구잡이 해석을 시도하게 되는데(...) 덕심이 깊으면 이렇게 됩니다orz
아 진짜 칸은 너무 위대하네요 더 찬양할 수도 없어... 제가 이렇게 최애를 떠받드는(...) 적도 드문데 말입니다. 이번에도 결론은 존 해리슨 짱짱맨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