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 Impossible Exchange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Impossible Exchange
칸의 기억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논리를 펼쳤다. 그는 왜 태어났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가 앞으로 전쟁을 벌이게 될 명분은 무엇이 될 것이며, 패배자들을 지배하는 정당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등등 온갖 것들을 일일이 이성과 논리로 다졌다. 그는 자신이 절대로 그들의 생각을 여과 없이 수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와 그를 디스플레이 너머에서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틀은 비슷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존재하지도 못할 강화인간의 우두머리로서 그는 여러 가지를 갖고 있었다. 인간들이 탐낼 만한 다수의 요소를 빼고서도 말이다. 이를 테면 인간의 행동을 자신의 격정으로 소화하는 능력이라든가, 뭐든지 기억해서 그것들에 하나씩 짝을 붙여 주는 일도 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 마커스의 짝은 그의 속내만큼이나 야만적인 죽음이었다. 오만했던 과학자들은 연구소와 함께 산화하는 운명과 짝을 맺었다. 그리고 칸 누니엔 싱의 모든 통찰력은 그의 동료들을 정 반대편에 둔 교환의 항이었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였던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 하나가 보였을 때 칸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각성과 무엇을 연결시키려 시도했다.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빛 저편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추측했다.
"바이탈 사인은 정상인데, 아직 정신이 멍해?"
원근법 때문에 시야 속에서 팽창한 하얀 물체 뒤에 누군가의 얼굴이 있었다. 칸의 눈앞을 맴돌다가 이마 쪽으로 트라이코더가 올라간 후 의사가 그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칸은 대답 없이 생각을 재개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의사가 저울에 무엇을 올려놓을 것인가. 혹은 의사의 손을 거쳐 스타플릿이 자신의 깨어남과 맞바꾸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트라이코더가 곧 내려와 칸의 앞을 가렸다.
"의식은 다 돌아온 것 같은데…."
엔터프라이즈의 수석 의료 장교는 아예 칸의 목을 검진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반응이 없으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가설이라도 세운 모양이었다.
"이유를 묻고 싶군."
칸이 낮은 음성을 내자 맥코이가 트라이코더를 치웠다.
"대단한 건 아니야. 이제 보니 윗사람들이 아주 똑똑하진 않은 것 같더라고."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요인이 남아 있지는 않을 텐데."
"네 동료들을 말하는 거라면 완전 빗나갔어."
맥코이는 곧 데이터를 옮긴 자신의 패드에 집중했다. 칸은 의식적으로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의 은색 저울 옆에는 언제나 그의 동료들이 놓여 있었다. 분한 감정과 관계없이 그는 그것이 논리적인 측정이라고 결론짓고는 고개를 돌렸다.
정확한 날짜는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 있었던 일이다. 심리 상태를 체크하다겠다는 이유로 과학자들은 강화인간들에게 일기를 쓰도록 했다. 칸은 종종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암호를 적용한 뒤 인간들을 비웃기도 했지만 노골적인 단어도 자주 사용했다. 그는 그 때 공책의 한 면을 온통 어구 하나로 채웠다. 정당한 거래, 정당한 거래.
그것은 몇몇 위선적인 여성 과학자들이 칸을 부드럽게 대한다면서 억지로 짜낸 표현이었다. 그녀들은 칸이 앞으로 자행할 일을 전쟁이라고 애써 못 박지 않았다. 모자란 족속들에게 그들의 복종을 받는 대신 그의 우월함을 내주는 거래라면서 꾸며댔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지만, 그녀들 탓에 아마 그는 가치를 오로지 수학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칸은 언제나 마음속에 저울을 두고 다녔다. 72명의 선원들이 올라서 있는 거대한 쟁반은 아직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안쓰럽게 주저앉은 반대쪽 쟁반에 그는 자신의 시간을 하루하루 쌓아 올렸다. 인간들에게 지나치게 유용한 일을 해 줬을 때에는 거기에 무거운 추를 섞었다. 가치가 쌓여갔다.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그가 자신의 회복력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여러 번의 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중 하나의 밤에 깔끔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칸에게도 방은 있었지만 그가 잠글 수는 없고 누구나 열 수 있었다. 그의 동공을 자주 기웃거리는 게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하나는 무기였고, 하나는 자타를 구별하지 않는 피였고, 마지막은 레너드 맥코이의 트라이코더였다. 언젠가 칸으로부터 끈질긴 인간이라는 평을 들은 맥코이는 태연하게 철제 의자를 끌고 앉아 도구함을 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양호한 편이네."
혼자서 파편이라든가 이물질을 상당수 제거하는 편이었지만 의사의 눈초리는 이런 부분에서는 칸보다 예리했다. 맥코이가 한숨과 함께 인상을 찡그렸다. 상처를 보기가 괴로워서가 아니라, 저절로 치유되고 있는 부위를 벌려야 한다는 게 언제나 내키지 않는 탓이었다.
"처음에 당신이 나를 살폈던 건, 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겠지."
"…표현이 뭐 그래. 네가 무슨 기계냐?"
칸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 나를 치료해주는 건, 더 신속하게 나를 내려 보내기 위함인가? 더 많은 임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인가."
"지나치게 친절한 생각이네."
상처를 봉합하고자 맥코이가 바늘을 들었다. 예리하게 빛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수뇌부들은 그것까지 고려하면서 일일이 명령을 내리진 않아. 그냥 우리가 올리는 보고서나 휙 보고 말 뿐이라고. 이거는 그냥…."
부드럽게 짜 맞춰지고 있는 자신의 피부보다 칸은 레너드 맥코이의 대답에 관심이 있었다. 맥코이는 손을 움직이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반갑지 않은 행동이다."
"뭐라고?"
"너는 이것을 네가 습관처럼 해온 의무로 가벼이 넘기고 말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아. 내가 감당해야 할 가치가 커진다. 내가 나의 능력과 짝을 지을 수 있는 건 동료들에게 한정되어 있다."
"너 잘난 거 아니까 말 좀 쉽게 하지,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그런 것까지 신경 써? 내버려 둬. 너는 네 할 일 해. 나도 내 할 일 하는 건데 뭐가 어때서."
맥코이는 휙 바늘을 거둬가는 손짓만큼이나 칸의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다. 거즈에 소독약을 툭툭 묻혀 그의 피부를 닦는 솜씨도 대담했다.
칸은 내키지 않았지만 반대쪽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접시에 레너드 맥코이의 수고를 올려놓았다. 그런데 순간 그를 본 맥코이의 눈빛이 그것을 도로 가져가 깨뜨려버렸다. 칸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교환과 거래를 준비하는 대상은 여전히 72명의 동족으로 묶였다. 대개는 분노마저 무심해 보이는 청록색 눈동자가 미묘하게 일그러지자 맥코이는 툴툴거렸다.
"…내가 돌봐주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아예 다치질 말든가."
상처와 함께 천칭의 접시마저 봉인해 버린 레너드 맥코이가 말없이 소지품을 정리했다.
칸은 혼란스러운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