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 Musical Conquering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Musical Conquering
그 스스로가 건반보다 강하며 어디까지나 자신은 이 악기를 지배한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은 비정상적으로 길고 날카로웠다. 그는 무엇이든지 쉽게 눌렀고 쉽게 쥐었다. 냉정한 코멘트로 유명한 어느 평론가는 그의 방식을 매우 고압적이며 악마적이라고 일축하면서도 강력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레너드 맥코이 또한 그랬다.
남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을지언정 맥코이보다 모자를 것이 없는 그 아티스트가 그를 유린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장을 세우는 맥코이에게 무기와도 같은 손가락을 들이대며 그의 턱선을 긁었다. 그 얇은 자극에도 맥코이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검지로 시작해서 점차 숫자가 늘어가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그의 굳은 안면을 조롱하듯 쓰다듬다가, 다른 손으로 거칠게 옷깃을 잡아 당겼다. 맥코이는 순간 신음을 낼 뻔했다. 심장은 떨고 근육은 딱딱해진 맥코이의 볼썽사나운 모습과는 다르게 조명마저도 하나의 장식처럼 멋지게 두르고 있는 음악가가 입꼬리로 웃으며 움직임의 강도를 높였다. 자존심처럼 쥐고 있던 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무도 숨이 막혔던 맥코이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냉혹하게 손을 놀리고 있는 그가, 맥코이가 보란 듯이 천천히 다가왔다. 검은 양복이 서서히 빛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갑자기 큰 박수소리가 들려서 맥코이는 정신을 차렸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감상을 적기 위해 잡고 있었던 펜은 정말로 떨어져 있었고 수첩 한 면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맥코이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무대 위에 일어서 있는 한 남자를 향하여 박수갈채를 보냈다. 맥코이도 그 공연의 관객 중 하나였다. 연주자 존 해리슨은 객석 구석구석을 향하여 인사를 한 다음 대기실로 향했다. 절대적이면서 오만한 실력처럼 그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일이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는 듯 부시럭대기 시작했다. 실내가 조금 밝아지면서 인터미션을 알렸다. 맥코이는 아직도 곡을 들으면서 보았던 환상에 두 팔을 감쌌다.
최고의 피아니스트 존 해리슨은 오늘 레너드 맥코이의 소곡을 하나 연주했다. 실제로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을 뿐인 그의 손이 자신을 잠식하는 상상을 했을 때, 맥코이는 그가 연주하는 자신의 곡을 듣고 있었다. 실황 연주를 감상하면서 어떠한 풍경이나 그림, 다른 작품들이 떠오르는 경우는 있었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맥코이가 느릿하게 펜을 주웠다.
맥코이는 처음에 존 해리슨의 프로그램에 자신의 곡이 끼어 있는 줄 몰랐고, 일종의 경험 혹은 자극이라고 생각하면서 표를 샀었다. 물론 목록을 보고 어깨가 으쓱거렸던 건 사실이었다. 어느 작곡가라도 그가 제 작품을 표현하는 일을 말리진 않을 것이었다. 맥코이는 해석의 자유를 넘어서 폭력적이고 사악했던 그의 연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가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는 사이 휴식 시간이 끝나 존 해리슨이 돌아왔다. 그가 꼿꼿하고 기품 있는 자세로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밀하게 꾸며낸 고갯짓과 시선이 순간 맥코이에게 향했다.
이제 맥코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존 해리슨은 일부러 그의 곡을 갈기갈기 해체한 것이었다.
말이 짧고 사교적이지도 않은 존 해리슨을 인터뷰한 경력이 있는 몇 안 되는 문화부 기자에 따르면, 그는 공연이 끝나고 콘서트홀 근처에서 가만히 혼자 있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 시간 안에 인터뷰를 해치우느라 진땀을 뺐다는 기자의 사족은 중요하지 않았고 기억나지도 않았다. 맥코이는 때를 기다려 늦게 홀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예술가들의 조형물 옆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벤치에서 존 해리슨을 찾을 수 있었다. 맥코이가 순간 흥분할 뻔한 걸음걸이를 가라앉혔다.
“거기 존 해리슨 씨 맞죠?”
맥코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해리슨을 불렀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을 뿐 대답이 없었다. 맥코이가 공연이 끝나고 내내 속으로 외우던 말을 속으로 다시 한 번 준비했다.
“당신이 현대 음악을 연주한다고 써 붙여 놓으면, 그 작곡가가 고마워서든 호기심이 생겨서든 아니꼬워서든 공연장에 결국은 오게 된다는 거 알고 있죠.”
존 해리슨은 맥코이의 정체도 묻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그런데도 내 노래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칠 수가 있어요?”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존 해리슨의 눈동자가 더 깊어지고 신비로워진 것 같았다. 적어도 그의 눈은 음산하지 않았다. 악마처럼 오싹하게 붉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꽤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맥코이는 그저 그렇게 시선을 맞추고 있는 해리슨에게 울컥해버렸다.
“사람이 물으면 대답 좀..”
“대신 당신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맥코이는 당연히 반말로 짧은 대답이 튀어 나올 걸로 예상해 한 차례 놀랐다. 처음 들어본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의외였고, 또 쉽게 저의를 파악할 수 없는 말에 의문을 품었다. 존 해리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장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는데 그의 키는 꽤나 컸다.
“보통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려야 반응이 더 빨리 오더군요. 내가 훌륭하게 소화해줬어도 굳이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오진 않았겠죠.”
“...그 말 지금, 일부러 그렇게 쳤다는 소리에요?”
거기에 답하듯이 존 해리슨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맥코이는 환상이 현실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밤바람을 쐬고 있던 그의 손은 따뜻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수치심이 들 정도로 강압적이거나 자극적이진 않았다.
“내 연주를 들으면서 뭘 느꼈습니까, 레너드?”
하지만 그가 피아노를 다루듯 지배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