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커크] Falling into Darkness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James Kirk
- Written by. Jade
Falling into Darkness
혹시 캡슐을 보관할 다른 곳이 있을까? 칸과 그 동료들을 분리시키려는 겁니까, 캡틴? 어뢰가 터진 걸 보고 놈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칸이 그 놈하고 엇비슷한 괴물 72명하고 붙어먹는다면 우리들이 제 아무리 날뛰어도 그를 막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그가 혼자 고립되어 있으면 최악의 상황도 대처할 수 있어. 한 번 막아 봤잖아. 칸이 깨어난 건 마커스 제독이 그를 깨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다시 그를 욕심낸다면?
자신이 아주 머리가 좋은 인물인지는 언제나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이지만 커크는 자신이 스팍과 나눴던 그 대화 하나는 기억했다. 함장의 감정과 부함장의 이성이 믿을 수 있는 극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칸의 대원들이 어디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상징성이 너무도 큰 한 존재만이 위기의식과 더불어 이따금씩 끓어오르는 욕망을 자극했다. 제임스 커크가 걸음을 멈추었다.
긴급한 보고를 받고 내려온 지하실은 거의 공동 수준으로 비어 있었다. 그것이 옳은 모습이었다. 커크는 차가운 캡슐에 반쯤 몸을 걸치고 앉아 있는 칸을 보았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이용할 수 있는 첨단 장비들, 어쩌면 그가 모조리 뚫어낼 수 있는 숱한 방어 장치들과 시스템 속에 숨어 있는 바리케이드들이 커크의 눈엔 가득 보였지만 깨어난 존재는 그것들 모두를 응시하고 있지 않았다. 커크의 시선에 칸의 앞코에 걸리는 몸뚱이가 들어왔다. 그의 악마적인 방식대로 머리가 완전히 부서진 형태인 누군가는 분명 환상에 사로잡혀 칸을 다시 깨운 장본인이었으리라. 커크는 이제 그에게 꽤 가까이 접근했지만 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당신을 깨워준 사람이잖아.” 칸이 눈동자를 올렸다. 커크는 잠깐의 악연 동안 그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본 바가 있었다. 무감정하거나 폭력성에 사로잡혀 있을 때, 언행과 맞지 않는 계략이 깃들어 있는 듯한 눈빛, 심지어는 그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까지. 안구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적막한 칸의 검은 눈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혹시 나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알아냈나?” 예상치도 못한 물음에 커크가 미간을 좁혔다. “또 무슨 속셈이지.” “죽이지도 못할 거면 다시 재워라.” 그리고 칸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가 처음 생명을 얻고 눈을 떴을 때는 아주 확고한 목적을 부여받았을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단지 재미 삼아서 유전자 조작으로 전쟁 병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커크는 아직 모르는 어떤 일을 겪고 난 뒤에 마커스가 그를 깨웠을 때는, 꽤나 굴욕적인 상황들을 많이 겪었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동료들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복수심도 있었을 것이다. 세 번째 각성 만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된 칸의 내면은 지독하게 비어 있었다. 이제 그는 다시금 마커스 제독으로부터 모든 인간들까지 복수의 대상을 넓히는 데에도 권태로움을 느낀 것 같았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으로서 커크는 그의 감정을 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캡슐에서 완전히 내려오면서 시신을 발로 치운 칸이 커크를 향했다. “적어도 내가 네 놈이 활개 치던 시절에 살아 있었다면 너를 끌어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겠군.” “..무슨 소리지?” “지도할 무리가 없으면 허수아비 꼴이 되어 버리는 종류야 말로 공략하기 쉬운 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커크가 돌아섰다. 칸의 목소리가 약간의 의아함을 담았다. “날 이대로 놔 둘 것인가?” 존경과 촉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플릿의 함장은, 이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 중 하나일 인물을 뒤로 하고 금방이라도 출구 쪽으로 걸어 나갈 듯했다. “여기서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만 알아둬.”
커크는 기어코 자신이 칸을 동정했음을 인정했다.
* * *
손끝이 키패드 위를 빙빙 돌았다. 커크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신뢰해 마지않는 스팍을 비롯해서 모든 대원들은 그를 재워버리는 것이 우주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짐 커크는 이상하게도 지금 당장 칸을 동결시켜버린다면, 그것은 우스울 정도로 부조리한 자신의 동정심을 감추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느낌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칸이 깨어난 뒤로 약 반나절이 흘렀다. 감시 카메라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기 오기 전에 커크는 역사 공부를 했다. 칸의 위세가 드높던 시절의 자료를 자세히 찾아보았다. 어떤 거창한 목적으로든 존재를 탄생시켜 놓고, 사형 선고를 내렸으면서 지금처럼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진공의 공간 속으로 보내버렸다. 사실 지금까지도 칸과 함께 있는 72명의 이름 중에서, 커크는 그의 아내라고 알려진 사람 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커크는 잠시간 발도 제대로 딛지 못하고 목적으로 빚어진 존재를 바라보았다.
타인의 기척에 순간 반응한 칸이 옆을 돌아보았다가, 커크를 보고는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가 이제는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텅 빈 저 안구에 작은 실마리만 흘려주어도 저것이 온갖 술수와 열망으로 빛날 것을 커크는 예상할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했다.
“...지금이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혼자서 가동되고 있는 극저온 캡슐 덕분에 칸의 주변이 차가웠다. 커크는 안팎으로 서늘함을 느꼈다. “동료들을 추모하는 것 정도는 허락해 줄 수 있을 거다.” 폭주와 절제 모두가 몸에 밴 그는 요란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다만 자신이 만든 함선의 밑에서 터져버린 이들이 언급되는 것조차 견디기 버거워 보일 뿐이었다. “네가 결국 동료들을 죽인 꼴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다면.” “겨우 회복한 인생을 위험할 정도로 남용하는군, 함장.” 그의 음성 하나하나에 서리가 낀 듯 했다. 커크는 실로 경호부대도 없이 기본적인 무장만 갖춘 상태였다. 이미 칸의 대원들에 관해서 거짓말을 한 커크는 자신에게만 중요할 뿐인 진실을 말했다.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아주 오랜 시일이 걸려야 할 것 같은 일이 딱 두 개가 있어. 하나는 인간의 욕심을 모조리 잠재우는 것과, 너를 얼려버리는 게 아니고 영원히 잠재울 수 있는 방법.” 유리알 같은 검은 눈이 커크를 노렸다. “그래서 지름길을 택해보기로 했다.” 커크가 허리에 매달아 놓았던 총을 뽑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칸이 순식간에 제압해 버릴 수 있는 장난감과도 다르지 않았지만 일단 구색은 갖춰야 했다. “일어나.”
칸은 자신을 조준하는 총구가 아니라 커크의 심리를 꿰뚫어 보려는 것 같았다. 그런 맥락에서 칸은 순순히 커크의 말을 들어 주었다. “너도 날 부려먹을 생각인가?” “아니, 넌 나랑 벤전스 호로 간다.” 커크는 최대한 칸에게 밀착하여 그의 머리를 겨냥했다. 차라리 심장보다 머리를 쏘는 게 잘 먹힐 거라는 계산이었다. “너의 죄는 네가 직접 봐야 해.” 칸은 여전히 자신의 대원들이 몰살했을 것이라는 거짓에, 커크는 자신만이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건설적인 가능성은 이 길이 맞다는 자기기만에 휩싸여 있었다. 칸은 커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끝없이 부서진 잔해를 치우는 것만큼이나 옮기는 것도 문제였던 존 해리슨의 벤전스 호는 마치 하나의 짐짝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워낙 몸집이 커서 수리에도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 함선은 결국 엔지니어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스타플릿의 기록될 만한 위협이었으며, 또한 사욕에 물들었던 제독의 그림자 역시 벤전스 호를 버려두는 일에 무게감을 실어 주었다. 칸은 존 해리슨 같은 모습으로 함선으로 다가갔다. 커크는 총을 다잡았다.
어뢰 폭발과 대규모의 추락이 빚어낸 상처가 가득했다. 상당 부분이 파손되었음에도 칸은 망설임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칸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커크는 그의 외모에서도 비인간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안면 근육은 대개 정지해 있고 흥분을 해도 안색은 창백하다. 오로지 그의 눈동자만이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고 있었다. 커크는 다시 자세를 수정하며 칸을 겨누었다.
반성, 후회, 그것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아주 작은 소리도 없이 몸을 굽히고 부서진 바닥을 만지는 칸의 검은 뒷모습은 불가사의했다. 떨림 하나 허락할 수 없는 진실하고 고독한 슬픔만이 명백했다. 커크는 칸을 보면서 할 말을 골랐다.
와중에 칸이 너무도 움직임이 없어 커크가 거리를 좁혔다. 철면에 꽂힌 눈물방울은 단 하나였다. 더 이상의 눈물을 생성해 내지 못하는 것도 같았다.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은 형상에 커크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늦추었고, 그 순간 칸이 몸을 돌려 커크의 목을 쥐었다. 반죽이 일그러지듯 칸의 표정이 파손되고 있었다. 금세 뼈마디들이 부서져 혈관을 찌를 것 같은 고통과 공포가 몰려왔다.
그 때 아직 눈가를 흐르고 있던 칸의 눈물이 커크의 뺨에 묻었다. 이에 칸도 커크도 놀라버렸다. 칸의 언짢은 표정은 꼭 한낱 인간에게 자존심을 내준 상황을 표현하고 있었다. 내내 말과 행동을 고르던 커크는 겨우 옆으로 굴러 나와 헉헉댔다. 커크가 손등으로 칸의 눈물을 닦아냈다.
커크는 칸의 죄책감과 반성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다만 그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슬픔으로 몰아 넣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