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칸월터] The Brave Knight
- Narcissistic Cannibal, Khan Noonien Singh/Walter
- 오리지널 캐릭터 페어링 주의.
- Written by. Jade
The Brave Knight
안타깝게도 과학자들은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소홀했다. 이를테면 그들은 강화인간들에게 맑은 공기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본질적인 기회를 박탈했고, 수면욕을 대폭 축소시켰으며 변질된 유전자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후대를 이을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를 모조리 잃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칸의 복수심을 자극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것이 월터의 복종을 이끌어 낸 원인도 아니었다.
그가 용기를 내어 추대한 위대한 지배자이자 동족들의 제왕은 기어코 수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다 채울 작정인 모양이었다. 선잠이 들었던 월터는 곧 자신의 우두머리를 기억하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동료가 부스럭거리더니 눈빛으로 물었다.
‘어딜 가는 건데.’
사실 동료도 월터의 대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그 분에게 쉴 여지를 줘야겠어.’
동료는 희미하게 웃으며 월터를 보내주었다.
실상 월터는 칸의 방을 딱 한 번 찾아간 경력이 있을 뿐이지만 영특한 머리는 금세 길을 기억해냈다. 태양이 휘휘 물러가고 밤이 차가운 입김으로 투덜대는 시각이었다. 칸은 대개 문을 열어 놓는다. 월터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는 동족들을 자신의 피지배자가 아닌 동등한 동료로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완전히 거두지 못했다. 월터의 발자국 소리가 이미 하나의 노크로 다가왔을 것이므로 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목소리를 냈다.
“주무시지 않는 거 알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월터의 옆자리에 있었던 동료는 단번에 이렇게 평했을 것이었다. 누가 귀족 출신이 담당자가 아니랄까봐 기사도가 제대로 몸에 박혔구만.
칸의 책상은 전략가의 그것처럼 크게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월터는 책상 대신 두뇌에 의지하여 칸이 온갖 생각을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맨손의 악력만으로도 전장을 지배하지만 그 이전에 철저한 준비를 잊지 않는 침착한 사령관이다. 월터는 감으로 그가 추대한 지배자가 70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음을 추측했다. 이제 칸은 고작 2시간을 버틸 수 있을 뿐이었다. 칸이 특별히 그를 물리지 않았으므로 월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은 2시간을 다 채우려고 하셨다가는 재생력이 급속도로 떨어질 겁니다.”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몰두해 있는 그에게 월터의 목소리는 마치 3층 정도 위에 있는 이웃이 속삭이는 것처럼 아련하고 희미하게 들려왔다. 월터는 칸의 사고를 짐작했다. 기실 그의 방 주변에 많은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고, 밤이 깊어 수면을 취하는 동족들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깨어 있는 이들은 차라리 밖에 나가는 걸 선호하는 시각이다. 월터는 아주 고귀하지만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러 향하는 듯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주군에게 다가갔다.
월터의 담당자는 귀족의 후손이었고, 몇몇 이들이 장난삼아 부르기는 했지만 기사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담당자의 유전자가 월터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는 없음에도 월터는 박사의 그러한 일면을 닮았다. 그는 어렵지만 옳은 말을 꺼낼 줄 아는 심지가 곧은 기사였다. 그리고 그는 무기도 잘 썼다. 월터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그의 촉감이라든가 온도를 느낄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칸은 월터에게 관심을 두었다. 청록색 안구의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월터는 기다렸다. 기사가 신중하게 귀중한 육체에 손을 올렸다. 칸의 생각이 끝났다.
“당신은 쉬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월터는 드러나 있는 칸의 피부를 손끝으로 꼼꼼하게 짚는 것이었다. 칸이 조용히 물었다.
“그 말과 행동의 상관관계는…?”
“당신에게 깊고 진한 휴식을 드리기 위함이지요.”
지금은 가만히 멈춰 있지만 칸이 평소보다 반 정도만 힘을 불어 넣더라도 월터는 손가락 마디가 어긋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사의 손길을 편히 받아들였다. 낡은 의자가 딱딱한 움직임으로 돌아가면서, 월터는 완전히 칸을 마주했다. 전등이 증발한 밤의 달빛보다 뚜렷한 칸의 눈동자를 월터가 손으로 닫아 내렸다. 칸은 이제 눈을 감은 채 월터가 전해주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손을 차분하게 풀어주다가, 온갖 사고에 신경을 집중하는 통에 경련을 억누르고 있던 다리가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고, 기사가 무릎을 굽히는 각도를 재듯 정확하고도 정중하게 올라가는 접촉 속에 칸은 월터가 아주 가까이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다. 호흡으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동족의 움직임은 눈꺼풀 뒤로도 훤히 보였다. 월터는 막판에 입술을 움직여 말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자 칸이 월터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나를 불러봐.”
“어떻게 말입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편히 계십시오, 왕이시여.”
기사에 의해 왕이라 불린 자는 정말로 미동도 없었다. 전장에서 누구와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긴장하는 월터의 팔다리가 아릿하게 떨고 있었다. 월터는 제 나름대로 이 행동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수면을 미뤄왔을 경우, 제 아무리 강화인간의 육체라도 낯선 휴식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축되는 일이 종종 있다. 월터는 순전히 자신이 스스로 받들고 싶어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올린 이를 편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할 말을 마친 월터의 입술이 다른 목적을 위해 벌어졌다. 칸은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칸은 경력이 있어 낯설지 않았지만 월터는 달랐다. 담대한 마음가짐으로 주군에게 농도 짙은 접촉을 시도했던 월터는 막상 순간이 다가오자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월터는 미숙한 기사 때문에 피식 올라가는 왕의 입꼬리를 느끼고 말았다. 월터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다가, 그 때까지도 가만히 무릎 위에 정지해 있던 칸의 손이 월터를 잡았다. 장난스럽게 문을 연 그가 월터를 끌어당겼다.
입술은 소리를 낼 수 없어 대신 손이 칸의 의사를 전달했다. 위치를 고수하게. 월터는 그리하여 피할 수 없었다. 절제된 동작으로 칸은 월터의 등을 한 뼘씩 건너면서 옷에 가려지지 않은 목덜미를 향해 나아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월터는 자신이 더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칸이 슬며시 눈을 떴다. 청록색의 동공을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생성될 수 없는 차분한 시선에 월터도 어쩔 수 없이 눈꺼풀을 올려 칸을 마주했다. 피부가 하나의 얼굴처럼 보이는 거리는 월터에겐 너무도 생소했다. 붙어 있는 입술을 거쳐 다시금 올라가는 칸의 입꼬리가 닿았다. 그 사이에 월터의 목에 손바닥을 댄 칸은 조금 더 오래 기사를 품었다.
“…죄송합니다.”
월터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무엇이 말인가?”
“의도만 가상했을 뿐 제가 원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천성처럼 달라붙은 기사적인 말투는 가시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평소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칸은 월터의 얼굴을 편하게 바라보기 위해 힘을 실어 등받이를 젖혔다.
“내가 효율적인 휴식을 취하길 원하지 않았나?”
월터는 끝내 더듬거렸다. “그,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그 목표는 성취되었어.”
칸이 월터의 가슴팍에 대뜸 손가락을 올린 덕분에, 월터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원하는 대로 잠을 청할 수 있겠어. 수고가 많았군.”
칸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침대처럼 사용하고 있는 소파에 앉았다. 월터는 자신이 왕이 눕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얼른 인사를 올렸다. 칸이 피식 웃었다. 내가 눕는 것조차 마주할 수 없으면서, 방금 전에는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군. 다행히도 기사가 섬기는 주군은 놀랍도록 혜안이 깊어 머릿속에 떠오른 마지막 한 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칸이 소파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등 뒤로 힐끗 그것을 확인한 월터가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