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Khan] Narcissistic Cannibal #10 (Finale)
-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Theme from 'End of an Era' by Zack Hemsey
- Slowly and Carefully
- Written by. Jade
칸 누니엔 싱은 오늘 자신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마지막 날임을 직감했다.
강화인간들은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 인간들이 자연적으로 세포를 재생하는 것보다 몇 백 배에 달하는 회복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필요 없을 정도의 민첩함과 날카로운 악력과 비범한 두뇌를 갖고 있다. 칸이 끊임없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강화인간들의 특징을 십분 이용한 덕택이었다. 그는 자신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괴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박사들의 보고서를 훔쳐본 뒤로 그것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 칸은 자신이 어디서 추출하고 어떻게 접붙인 유전자로 탄생했는지조차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약 그들이 패배를 맞이한다면 이런 방식일 줄을 예감했다.
아무도 그들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다. 이제 인류도 강화인간에게 검은 무기를 들이대는 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총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화인간들이 하나씩 무너진다. 이제 한낱 동료가 아니라 동족의 절대적인 지도자가 된 칸은 타의에 의해 뒤로 밀렸다. 도시의 차가운 바람이 더 날을 세워 그의 뺨을 할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황제가 장대한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세운 도시이며, 황제들은 대개 자비가 없기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뼈로 도로를 닦아 만들어진 도시였다. 칸은 그 의미에 미소 지었다.
적이 없는 가운데 칸을 벽으로 밀어낸 강화인간들이 쓰러졌다.
엘리자베스 헤렌은 캐서린 헤이스팅스에게 편지를 보낸 적은 없지만, 줄리안에게 보낸 적은 있었다. 그리고 줄리안은 캐서린에게 연락했다. 자신의 연인에게 말하지 못한 창피한 사실을 박사는 친구에게 모조리 털어 놓고 울었다. 자신이 숨 가쁘게 가슴을 내어 놓았던 칸 누니엔 싱에게는 속 시원히 보일 수 없었던 깊은 눈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지독하게 귓가에 달라붙어 있는 피조물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떼어 내려 애쓰는 캐서린의 음성에서 위안을 찾았다. 칸의 복수는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캐서린의 복수는 그 자신을 불태울 기반을 찾지 못했기에 잠잠했고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잭 브리지스가 캐서린 헤이스팅스의 메시지를 내밀었다. 그는 인류의 패배를 기록했고, 정복자의 복수를 기록하다가 인류의 기사회생을 기록할 역사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칸은 쪽지를 받지 않았다. 펼쳐보지 않아도 캐서린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이기에 지금도 무사할 수 있는 잭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몸뚱이로 패배의 경계선을 그어 내리고 있는 동료들을 응시하고 있는 칸을 물끄러미 보았다. 잭은 곧 쪽지를 땅바닥에 버렸다.
복수호가 태평양을 잔혹하게 찢어놓고 있을 때, 캐서린 헤이스팅스는 마침내 자신의 복수를 성공시켜 줄 열쇠를 찾아냈다. 조작된 염색체를 분리하는 바이러스가 그녀의 손 안에서 꿈틀댔다. 그들의 지도자가 가장 잔인하게 자신의 창조자를 지배하면서 캐서린은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확신했다. 캐서린은 가운을 입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엘리자베스 헤렌이라고 새겨진 명찰이 달랑거렸다. 연구소의 모든 것은 칸 누니엔 싱이 파괴했기에, 그것은 캐서린이 스스로 만든 명찰이었다.
칸은 이곳의 이름이 한때 레닌그라드였음을 기억했다. 그는 그것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훨씬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잠시 거점으로 삼았던 땅은 하필 성인의 도시였다. 칸은 이태까지 한 번도 논리적이지 못한 상징을 믿은 일이 없었지만, 다른 곳에 발걸음을 세워두는 게 더 나을 뻔했다고 조소했다. 성인의 도시에서 올바르게 태어나지 않은 피조물이 스러지는 건 당연하다. 캐서린 헤이스팅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잭은 칸의 웃음을 보면서 그의 옆에 있을 수 없었다. 잭은 캐서린을 찾으러 나갔다.
칸은 혹시나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강화인간은 산소를 호흡하지 않지만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바이러스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몸을 공격할 것이었다. 칸은 문을 열려고 했다. 누군가 그 앞을 무너지는 몸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칸은 옅은 웃음으로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칸은 조심스럽게 문 근처에서 월터를 치워냈다. 월터가 입을 벙긋거렸다. C, A, P…. 복수를 조선한 뒤 무리들 사이에 유행처럼 돌았던 호칭이었다. 칸은 자신의 얼굴에서 마지막 미소를 거둬들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과 반대로 흩날리는 하얀 가운에서 칸은 엘리자베스와 캐서린을 동시에 보았다.
표정은 아직 굳건했지만, 그는 아주 조금씩 자신의 몸이 내부에서부터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잭 브리지스는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역사가의 녹색 상의를 가져오거나 필기구를 가져오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세포가 정지할 듯한 격통 위로 얼어붙으려 하는 대기가 내려앉았다. 칸도 캐서린도 입을 열지 않은데 주위가 오히려 부산했다.
"캐서린."
그가 드물게 엘리자베스를 불렀을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팔락이는 가운 속 옷은 얇아보였다. 캐서린은 분명히 추울 것이다. 엘리자베스도 때때로 연구실에서 추위를 호소했다. 칸은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고 그저 멈춰 섰다. 아득히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칸은 저절로 검은 파편을 사방으로 튀어 올리는 복수를 떠올렸다. 칸이 캐서린에게 말했다.
"복수를 얻은 것을 축하한다."
빙결한 하늘 위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잭 브리지스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반쯤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종이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손을 움직였다. 캐서린은 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좁혔다. 그는 아파 보이지도 않았고 오랫동안 쓰러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캐서린이 말했다. "왜 무너지지 않지?"
본능에 이끌려 잭은 그녀의 말을 받아 적었다.
칸이 대답했다. "나한테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걸 얘기해."
이번에 잭은 곧바로 칸의 말을 받아 적지 못했다.
캐서린이 결국 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녀는 눈앞에서 칸 누니엔 싱의 위태로운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잭 브리지스는 그녀의 걸음이 헛될 것을 알았다.
캐서린은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칸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만일 칸이 웃었다면 캐서린은 그의 허세에 차가운 조롱을 날려주었을 거고, 찡그리고 있었다면 네 놈도 고통에서는 무사하지 못한 모양이라며 그에게 독한 비수를 꽂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 모두를 빗나가 캐서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칸은 자신이 다섯 걸음 정도 밖에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멈추었을 뿐이지만, 캐서린은 그 행동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캐서린은 결국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인공적으로 박힌 안구에서 읽을 게 없었다. 캐서린은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게 빛나는 칸의 눈동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긴급하고 훌륭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그의 동족들은 대부분 살아나지 못할 것이며, 칸 역시 이대로 잠들어 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당장 강화인간들이 유전자가 터져 나가며 죽을 줄로 예상했다. 그녀가 빠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복수를 얻었다면서."
칸이 작게 대답했다.
"복수는 실행한 그 순간 얻어지는 것이다."
캐서린은 그에게 화를 냈다.
"왜 죽지 않아? 네 놈한테 죽은 놈들이 몇인데, 그 유령들은 네 발을 잡아 지옥으로 끌고 갈 힘도 없나? 왜 서 있어? 왜 당신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지 않아!"
칸은 일일이 대응해주지 않았다.
"네가 엘을 유린하고 이용하고 죽였어. 네가 신경도 쓰지 않은 사이에 줄리안도 그런 식으로 죽었겠지. 난 그들을 위해 복수했어. 내가 복수를 얻었다고 했잖아!"
칸은 이번엔 어떠한 진실도 응용하지 않고 거짓을 말했다.
"복수하기 위한 자의 도움을 받아 완벽한 복수를 하고 싶다면, 방법을 말해주겠다."
캐서린의 눈동자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빨개졌다. 칸은 자신의 밑에 놓여 있던 엘리자베스의 눈을 그 위에 덧대 보았다. 똑같았다.
다섯 발자국밖에 걸을 수 없던 기력을 온 몸으로 분산시켰다. 그러고도 칸은 자신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를 몰랐다. 그가 이용할 실질적 증거들이 없었으므로 그는 거짓을 지어냈다.
"내 목숨을 가져가야 네 목표가 이뤄지는 거라면 너는 평생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거다."
캐서린은 이제 거의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나를 봉인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해라. 그러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어."
"엘리자베스는?"
"그녀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죽었으니 적어도 억울함은 없을 거다."
"줄리안은?"
"난 그 인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모든 인간에게 저마다 죽은 이유를 붙여줄 수 없는 것처럼."
추운 성인의 도시에서는 태양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해는 빨리 저물고 하늘은 밤이 올 것처럼 변했다. 잭 브리지스의 자세도 변했고, 캐서린 헤이스팅스의 표정도 변했지만 칸 누니엔 싱만이 고고했다.
캐서린은 끝내 눈물을 흩뿌리며 손을 거두었다. 뿜어져 나오던 바이러스가 멎었다. 곧바로 동족들이 일어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칸은 그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칸은 살짝 눈동자를 좁히고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캐서린은 더 이상 그를 마주하지 못했다. 온몸을 보호구로 꽁꽁 감싼 덩치 큰 남자들이 그를 붙잡으러 나왔다. 굳어버린 잭의 펜은 종이에 구멍을 낼 것 같았다. 잭 브리지스는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공간적 배경과 캐서린 헤이스팅스의 눈물, 마지막으로 칸 누니엔 싱의 올곧음을 어떻게 버무려야 할지 골똘히 고민했다.
캐서린이 등을 돌린 뒤에야 칸은 웃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마무리된 것은 오로지 20세기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