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Novelette

[STID/Khan] Narcissistic Cannibal #9

Jade E. Sauniere 2013. 9. 18. 17:23

-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Written by. Jade





  잭 브리지스가 작게 접힌 편지를 건넸다. 제 딴에는 가장 우직해 보이면서 지위도 높을 것 같은 사람을 고른 거였다. 그는 몰랐지만 월터가 그것을 가지고 정복자의 거처로 사라졌을 때에도, 잭은 자신이 글 쓰는 시간을 방해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세 장의 종이를 빼곡하게 채웠을 때 들리는 노크 소리에 잭은 의아했다. 잭은 눈앞의 남자를 보고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코트 자락만 봐도 잭은 남자가 인류를 멸종 직전까지 몰아넣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뒤편에서 문을 닫아주었다. 잭은 어쩔 줄 몰랐다. 그의 방은 단출했고 무시무시한 복수호가 잘 보인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이점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일단 남자를 세워둘 수는 없었으므로 잭은 책상 앞 의자를 비워 주었다.


  "일단 여, 여기라도 앉으시죠."


  칸 누니엔 싱은 인간을 힐끗 쳐다보고는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잭은 살짝 떨어져서 섰는데 마치 갑판 아래의 선실 같은 공간이라 천장이 그의 머리에 닿을 듯 아슬아슬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지금 잭이 잔뜩 움츠러든 것은 아니었다. 잭은 칸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려다가도 그의 차가운 안구를 보고는 잽싸게 시선을 내렸다. 그 때 칸이 입을 열었다.


  "이건 언제 받았나?"

  

  그의 긴 손가락에 잭이 전했던 편지가 끼어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베개 옆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창문 틈을 이용해서 몰래 흘려 넣은 모양입니다."

  "읽어봤나?"

  "아, 아니요."

  "저항군 무리에는 얼마나 끼어 있었지?"

  "예? 아, 오래 되진 않았습니다. 1년은 조금 넘긴 것 같군요."

  "당시에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그로서는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고, 얼떨결에 그 모든 것들을 고분고분히 답하고 있다가 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닥터 캐서린입니까?"

  

  이번엔 칸이 조금 표정을 바꾸었다. 근본 자체는 바뀔 수 없다는 것처럼,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닥터들이 맴돌았다. 칸은 전장에서 녹색 옷을 나풀거리고 다니는 기록자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 추리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고차원적인 첩보전을 벌이기에 대륙은 넓었고 바다는 깊었다. 칸은 잭 브리지스에게 지시했다.


  "아는 대로 얘기해."

  "캐서린 헤이스팅스 박사는 아마 인류에 남은 몇 안 되는 최고의 지식인 중에 하나죠. 사실 당신들…이 태어난 연구소에 합류하려다가 전에 있던 곳의 프로젝트가 길어져서 일정이 맞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로서는 아마 행운이었겠죠."


  말 많은 문필가 특유의 버릇을 못 버리고 잭은 벌써 몇 번의 실언을 했다. 다행히 칸의 안색이 잠잠했으므로 잭은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인류 저항군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워낙 바쁜 분이라 저 같은 역사가가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요. 무기 만드는 곳에는 거의 출입하는 걸 못 봤고, 아무래도 전용 연구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칸은 잠시 생각했다. 강화인간을 만드는 데 참여하려고 했다면 유전공학에 밝다는 뜻일 테고, 그렇다면 미묘한 경고의 뉘앙스를 품고 있던 편지의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정복자와 그들의 동족들에겐 살상 무기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것도 아는 영특한 여인이었다. 그 순간 잭이 막 떠올랐다는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엘리자베스 헤렌 박사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더라고요."


  칸이 눈동자를 곧게 떴다. 덕분에 역사가는 움찔해버렸다.

  

  "…확실한가?"

  "저한테 언젠가 부탁을 했습니다. 쓰는 책에 그녀에 대한 내용을 넣어 달라고.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친구라고 짧게 말해주더군요."


  제 아무리 역사가라도, 칸과 엘리자베스 사이에 있었던 일 등을 알 리가 없는 잭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정복자는 꼭 회상과 더불어 급박한 사고를 돌리는 듯한 기색이었다. 제 아무리 인간을 복수의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 칸 누니엔 싱이라고 해도 자신의 박사와는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역사가는 가정과 추측에 익숙하지 않다. 대신 잭은 슬그머니 물었다.


  "대체 닥터 캐서린이 무슨 편지를 보냈기에…?"


  칸은 대답 대신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의 함선을 발견했다. 복수의 이름이 빛났다. 캐서린 헤이스팅스 박사 역시 진하게 언급했던 단어가 검은 선체 위에 당당하게 새겨져 있었다. 


  복수와 복수가 맞붙는다. 여러모로 잘 어울렸다. 일조량이 3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도시의 공기는 차갑다. 그도, 엘리자베스 헤렌도 상징과 은유를 좋아했다. 사실 닥터 헤렌은 그가 가지고 있던 은유적 가치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칸은 형식적으로나마 귀중한 정보를 알려준 역사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흘려주었다. 잭이 순간 입을 쩍 벌리고 놀라버렸다. 잭 브리지스는 정말로 고마운 일을 해 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는 빨리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