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over/브루스웨인&제이슨본] Essence of Justice
- When Bruce Wayne meets Jason Bourne
- Original Date 2016. 07. 24
- Written by. Jade
Essence of Justice
브루스 웨인은 어디를 들어가든지 그 장소의 테이블 위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구전처럼 도시를 돌아다니는 그의 버릇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무언가를 테이블에 펼쳐놓는 매너를 발휘하게 했다.
브루스 웨인은 투명한 유리처럼 빛을 내뿜을 것 같은 책상에 붙은 쪽지를 발견했다.
—그의 이름은 제이슨 본입니다.
브루스는 고개를 돌렸다. 새로 건설한 시설의 모든 구석구석이 깨끗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직 자신을 위하여 조성된 공간인 만큼 브루스는 앉은 자리에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반대될 수 있을 만한 요소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그를 바라보았던 작은 스코프는 분명 존재했었다.
브루스 웨인은 회상했다.
그는 여기서 알프레드에게 온갖 실없는 소리를 했었다.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될 줄 알았다면 경영학이 아니라 공학이나 신소재 학문을 전공했을 거라는 얘기부터 자신은 미술에 소질이 없다며 손수 그린 설계도를 팔락거린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자신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는 소리를 했다가, 알프레드에게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그의 성격이 사실이라면 당장 집사 일을 그만두었을 거라는 일격을 당했었다.
물론 끝없는 번뇌와 고통도 있었다. 아무것도 떠올라 있지 않은 모니터 화면 위에 이제는 자신의 비틀린 동력이 되어가는 과거를 출력하며 스스로를 짜냈다. 울진 않았어도 기이하게 신음한 일은 한 두 번 있었다. 브루스는 자신이 마지막에서야 발견했던 스코프가 어떠한 모습들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브루스 웨인의 시선이 넓은 호선을 그렸다. 아무리 봐도 저격용 스코프 같은 게 숨어 있을 만한 위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자신이 어느 건물 옥상에서 그것을 결국엔 발견하게 된 사건이 신기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의 관찰자는 그 자신의 임무를 종료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브루스 웨인은 쪽지를 힐끗했다. 그조차도 스코프를 쥐고 있던 장본인에 대해 고작 메모지 한 장에 들어가는 정보를 얻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 그는 적힌 이름이 그 자의 본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고담시의 뒷골목 서늘하게 얼어붙게 만드는 암살자 같은 족속들도 그토록 은밀하고 비밀스럽지는 않았다. 브루스 웨인은 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어둠보다 조용하고 은닉의 화신들보다 비밀이 많은 관찰자가 붙게 되었는지 여전히 궁금해 했다.
그래서 브루스는 그의 관찰자에게 사연을 물었었다.
바람이 참 요란스럽게 불었던 날이었다. 고층 건물의 옥상이라는 공간적 특징으로 인하여, 평소에는 별로 경험해 볼 일도 없는 온갖 대기의 성질들을 몸소 체험하며 브루스 웨인은 남자를 응시했었다. 남자의 얼굴은 평범했다. 특징도 없이 그저 짧게 자르기만 한 머리칼에 짙은 색의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 말이 없었다.
삼각대가 달린 장총은 아직 옥상의 난간에 걸려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브루스 웨인을 쏘지 않을 것처럼 그에게 등을 돌린 채였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에서, 브루스는 오직 그것만이 자신을 움직이게 한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사고 속의 브루스 웨인은 목소리로, 그리고 현재의 브루스 웨인은 머리와 가슴으로 그렇게 물었다.
알프레드는 두 사람이 케이브라고 부르는 기지와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본사, 브루스의 유리 별장에도 누군가가 침입하거나 감시 데이터를 읽은 흔적이 없다고 보고했었다. 달리 말하면 브루스는 그 남자가 언제부터 나타나 어느 곳까지 자신을 주시했던 건지 지금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브루스 웨인은 상상해야만 했다.
남자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리더인 브루스 웨인을 본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물려받게 된 회사에 꽤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모양이었다. 성실한 기업인이라는 것 외에도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자체에 꽤 깊은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범죄 단신을 보는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이번에 생긴 일 때문에 새로운 아이들 몇 명이 방문할지도 모르겠다며, 그들을 잘 대해달라는 당부를 그가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 보호 시설에 전했다. 전화를 마친 그가 순간 얼굴을 차갑게 굳힌 것 같았다.
추가적인 일정이 없으면 브루스 웨인은 퇴근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었다. 다양한 주제의 잡지나 책을 읽거나 집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 아니면 혼자서 한 잔의 와인을 즐기는 것으로 그는 밤을 흘려보냈다. 이 모든 수가 빗나간다면 브루스 웨인은 십중팔구 묘소에 있었다. 남자는 끊임없이 묘비 근처의 꽃을 갈아주고 그 앞에서 침묵하며 생각하는 브루스 웨인을 눈에 담았다. 그러면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탄에 시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고귀한 폭력이 되려는 브루스 웨인을 보았다.
남자는 너무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관찰하면서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이지만 브루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말했다.
—내가 당신을 발견했는데도 왜 날 쏘지 않았지?
브루스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자신을 응시하던 남자의 모습을 기억했다. 바람이라도 불지 않았다면 그는 일종의 자연물처럼 움직이지 않고 브루스에게 시선을 보냈을 것 같았다. 그것은 고도로 훈련받은 이의 행동 양식이었을까. 그렇지만 브루스가 지금 거울을 봤다면 남자가 그 때에 자신의 몫으로 가진 회상과 추측을 진행하고 있었음을 알았을 터였다.
남자가 아는 많은 것들이 순서를 지켜 부상했다.
저 억만장자가 비밀리에 꾸미고 있는 시설을 발견했을 때 그가 받은 임무 저변에 깔린 요소들이 명백히 드러났다. 권력자들은 진실하고 충실한 자경단을 제일 두려워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억지와 같은 희박한 가능성을 들어 그 존재를 제거하려 드는 것이다. 저들이 더욱 성장하게 될 때, 권력과 법을 대체하고 소름 돋도록 민주적인 신임을 얻을 때를 세상에서 둘도 없는 공포로 여기면서 말이다. 더불어 그들의 궤변은 그들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변질되는 정의들 덕택에 힘을 얻었다.
브루스 웨인은 그에 대해 자신의 정당성을 맹세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고민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남자를 인식하고 있지도 못하면서 남자에게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굴었다. 브루스 웨인은 단 한 번도 총을 잡지 않았다. 그의 품은 펼쳐 보인 두 손바닥처럼 깨끗했다. 그 때도 그러하였다.
정의로 인정받은 것은 더 이상 정의가 되려 하지 않고, 아직 정의가 되지 않은 것은 그 무엇보다도 정의에 가까워지려 한다.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문장이 끝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셈인가?
남자는 마침내 브루스 웨인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돌아가.
—…나를 처리하는 게 당신의 임무였을 것 같은데. 날 돌려보내줘도 된다는 건가?
남자는 브루스 웨인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를 그림자처럼 수호하듯 바라보는 용도로 쓰였던 총을 문득 떠올렸다. 슬프게 솟구친 물감처럼 무성하던 풀밭 뒤편의 묘소로 그를 따라 들어갔을 때 이미 그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남자는 그것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브루스 웨인은 기어코 또 말했다.
—왜 당신은 나를 위해서 죽으려 하지?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을 총에 대해 알기라도 하듯이 브루스 웨인은 남자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줄곧 생명이었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그래야 했다. 남자는 많은 걸 생각했으나 정작 그 안에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한 마디를 꺼냈다.
—괜찮아.
브루스는 남자의 시선을 잃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브루스의 표정이 남자의 눈동자를 사선으로 스쳐지나간 것 같았다.
—아니!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던 두 사람은 브루스가 몸을 돌리면서 다시 하나의 선상에 서게 되었다.
—세상에 죽어도 괜찮은 사람은 없어.
남자는 그 짧은 말이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질책하였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당신이 준비하고 있는 일을 정말로 실현하고 싶다면 인간을 재단하는 법을 배워야 해. 이 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살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모두가 남자를 향해 질릴 정도로 주입하던 법칙이었다. 정작 남자는 이태까지 그걸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역사는 이제 부정되었다. 남자는 혼자서 항이 비어있는 부등호를 채웠다.
—그것이 정의의 본질이야.
브루스 웨인은 어느새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이 적힌 쪽지의 모서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남자의 말을 끝으로 회상을 중단했다. 정체불명의 감시자가 던진 충격에 넋을 잃고 있다가 뒤늦게 지상으로 내려갔을 무렵에는 까맣게 타고 있는 자동차만 있었을 뿐이었다. 기름을 먹고 타오르는 불길이 너무 강렬해서 사고 현장에는 제대로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브루스 웨인은 허망하게 눈을 깜빡였었다. 그는 누군가를 구하기도 전에 어떤 남자를 죽인 꼴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의 모든 것은 재가 되었다. 남자가 두고 갔던 총은 아마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경찰에 넘어갔겠지만 소유주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브루스 웨인에게 남아있는 것은 본명인지도 확실치 않은 이름과 너무도 짤막하기만 했던 몇 마디의 말들이었다.
브루스가 이름을 적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밀어보았다. 잉크가 다 말라서 글씨는 번지지 않았다. 이상한 것이 선명했다. 세상의 모든 무거운 것들이 잠시 브루스의 표정에 머물다가 사라졌다.
브루스 웨인은 일어섰다.
오늘 그가 기지에 온 이유는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브루스는 벽면에 손을 갖다 댔다. 그의 모든 것을 가려주되 그에게 남은 것을 이루어줄 갑옷이 완성된 형태를 드러냈다. 회상을 마친 브루스 웨인은 현재에 다시 입성했다.
In Flames by Lungley
오늘 밤 천사는 죽을 것이고
천국은 그 죽음을 위해 슬퍼하는 걸 잊으리
불길 속에서 우리의 이름은 맹세된다
불길로부터 우리 둘은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