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to Heart
헨리는 자신의 심장을 찾고 있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심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잘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숨이 끊겼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헨리는 그의 '완벽한' 심장을 찾고 있었다.
이 기이하지만 꼭 필요한 여정은 세 사람의 현관문 밑으로 쑥 날아온 작은 편지봉투에서 시작했다. 편지의 작성자는 해리 하트가 무슨 일을 하며 그의 동거인들이 저마다 어떠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또 자신을 재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이름을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과학자라고 소개하면서, 그 능력에 맞지 않게 참 불안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헨리 하트를 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헨리는 그 과학자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는 걸 믿을 수 있었다. 과학자는 정말 놀라운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자는 헨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주기 앞서 검사를 통해 인공 심장이 헨리의 조직과 98% 이상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비록 여러 분야에서 능숙함을 발휘하는 그가 취약한 쪽이 과학이긴 해도, 헨리는 자신을 곤란하게 했던 이전 사례들보다는 과학자의 작품이 훨씬 더 완성도가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과학자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과학자는 자신의 인공 심장은 헨리와 짝을 이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성공적인 예시에 가장 근접한 현대의 복제인간 1호의 자질을 더 보고 싶다는 헛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과학자는 폐쇄된 지하철 역 내부를 연상케 하는 이상한 곳으로 헨리를 던져 놓았다. 게다가 헨리는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복제인간이 경계해야 할 최대의 적은 성격 이상한 과학자인지도 몰랐다.
헨리는 딱히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그는 걸었다. 다행히 불빛은 충분했고 그는 인간적인 욕구를 가능한 한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력도 갖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에그시가 읽는 소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헨리는 끝이 갈라지지도 않으면서 끝없이 늘어져있기만 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헨리는 완벽한 심장을 가져야 했다.
해리 하트는 훌륭하고 책임감 있는 보호자여서 여전히 헨리를 자립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었다. 헨리는 그의 작업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음을 알았다. 성장은 지속적이였다. 헨리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해리도 발달학 서적 같은 걸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헨리는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꽤 정직하게 성장과 독립과 추억의 단계를 밟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인연을 보존하고 보관하는 방법은 이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또 멀지 않은 곳에는 불빛이 있었다. 헨리는 물리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는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소리를 냈다.
"어이구, 맙소사!"
꽤나 구수한 감탄사의 주인공은 핸드폰의 플래시라이트로 앞을 비추고 있었다. 헨리는 위로 번지는 불빛을 통해 그녀를 보았다. 갱도를 연상케 하는 어두운 통로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인상에, 나이도 그보다―헨리는 아직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그가 외양을 빌리게 된 해리보다 훨씬 어려보였다. 그녀는 플래시라이트를 휙 올렸다가 놀라서 팔을 내렸다.
"당신이 여기서 뭐해요?"
헨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당황했다.
"일단 같이 나가요. 빨리요! 우리는 여기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요!"
그녀가 화려하게 제스처를 곁들이면서 말했다. 그녀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헨리가 벽이든 천장이든 아주 두껍고 거대한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보다 속도를 먼저 나누었다.
여성은 그런대로 헨리를 잘 따라가는가 싶더니 점점 호흡이 막힌다는 듯 입을 쉴 새 없이 벌렸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심박동이 올라가는지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불빛을 내고 있는 핸드폰을 악착같이 붙잡았다. 헨리는 자신이 그 핸드폰을 들어주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팔을 뻗었다.
그때 여성의 지친 다리가 엇갈리면서 그녀가 중심을 잃었다. 팔을 휘젓지도 않고 곧장 중력에 몸을 맡기는 모양새를 보니 바닥에 얼굴을 부딪히면 정신을 차리는 일이 아주 어렵게 될 것 같았다. 마침 헨리는 그녀를 향해 팔을 내밀고 있었다. 헨리가 빠르게 그녀의 왼팔을 잡아 반대쪽으로 당겼다. 여성은 꼭 그에 의하여 들어올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눈을 껌뻑였다. 헨리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을 했다.
"계속 가야 하지 않겠나?"
그 말만 듣고 여성은 곧장 정신을 차렸다. 이후 그녀는 아주 잘 달렸다. 헨리가 걸어온 길은 그다지 갈림길이 없었고, 두 사람은 그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적절하게 속도만 내면 되었다. 여성이 들고 있는 불빛이 마치 땅을 쓸듯이 좌우를 오가면서 두 사람의 발을 한 번씩 비추었다. 그 와중에 머리 위가 또 한 번 우르릉 울려서 둘의 움직임이 순간 빨라졌다.
여성보다 두 걸음쯤 앞서 있던 헨리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녀가 바닥을 세게 밟으면서 멈췄다.
"앞이 막혔군."
"에?"
그녀가 핸드폰을 한 차례 휘저었다.
"길이 막혔는데 어떻게 왔어요?"
"내가 이 부근을 지날 때는 열려 있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한 명의 평범한 여성과 복제인간 한 명의 힘으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돌덩이가 통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 때 헨리는 문득 생각했다. 자신은 멀쩡한 심장을 찾으러 온 것인데 그걸 위해서 걸어왔던 길을 왜 동반인 하나와 함께 되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것은 그의 심장을 얻기 위한 여정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그는 나아가야 했다. 헨리는 옆을 돌아보았다. 여성은 미묘한 믿음이 느껴질 것만 같은 눈빛으로 헨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먼저 이곳을 지나온 자였다. 그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논리적인 수순이었다.
"…이 길은 원래 열려 있었지."
"그래서요?"
"계속 열려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벽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울림은 정수리 위가 아닌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분명히 다급하지 않고 꾸준하게 바닥을 누르는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헨리는 그녀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여긴 왜 왔나?"
헨리가 불쑥 물었다. 대단히 요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있던 여성이 부르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었다. 당신은?"
"어… 글쎄요."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마도 나는…."
여성은 말을 잇다가 말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영화 속 공성전에서나 울릴 법한 거창한 마찰음이 두 사람의 귀를 연거푸 때려댔다. 헨리는 그가 늘 상비하고 다니는 무기를 꺼내는 대신 그저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이지, 어떤 비극이나 죽음을 맞이하러 오지는 않았다는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사실이 그를 지탱했다. 그리고 그것은 헨리를 넘어서 여성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바위가 와르르 무너졌다. 더불어 돌덩이가 쪼개지면서 흩날리는 부스러기와 먼지 구름만으로도 이미 가득 차버린 빈틈을 하나의 그림자가 비집으려고 했다. 여성은 눈을 크게 떴다. 아주 복잡한 이유로 축 늘어진 그녀의 목소리가 '맙소사!'를 연발했다.
두 사람의 눈 앞에 몸통으로 바위를 들이받은 낙타가 나타났다. 모래가 아닌 돌덩이를 양쪽으로 흘려 내보내면서 그 황토빛 몸은 윤기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목을 조금만 빳빳하게 들었다가는 천장에 구멍을 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낙타는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얌전한 동작으로 발을 마저 굴러주었다. 그새 낙타의 발 사이에 끼었던 돌멩이가 반대편으로 굴러갔다. 여성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눈치로 데굴거리는 그 돌멩이를 눈으로 쫓았다.
"덕분에 길이 뚫렸군."
헨리는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것은 여성의 생각이었고, 헨리의 말은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낙타는 유유히 그 무겁고 거대한 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발걸음은 어디까지나 유일무이한 복제인간의 심장을 찾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곧 빛이 들어왔다.
헨리는 자신의 허공을 더듬었다. 동거인들이 없는 집안은 무척 조용했다. 헨리는 자신이 특이한 꿈을 꾸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은 그의 머릿속에 충분한 여운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독특했지만 헨리는 어렵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해리와 에그시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요청한 걸 잊지 않았다. 그는 집에 있다고 해서 에그시처럼 언젠가는 버리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 늘어난 티셔츠를 입지는 않았으므로 상의 하나만 더 걸쳤다. 그의 특별한 박동음은 옷이 팔락이는 작은 바람 소리와 섞여 하나의 흐름처럼 지나갔다.
현관을 나가자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런던이 그를 반겼다. 헨리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고 그것만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행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보행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헨리의 바깥에는 그처럼 끝없는 이야기가 흘렀다.
횡단보도를 지나면서 헨리는 물줄기가 흐르는 분수대와 가까워졌다. 그가 지나야 하는 길목에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이 있었다. 한 명도 겹치지 않는 인파들이 분수대를 기웃거리고 광장을 찍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고, 헨리의 눈길이 그들에게 살짝 닿은 건 그가 방향을 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필경 분수대의 물이 튈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한 사람이 분수대를 등졌다. 그녀는 사진을 찍으려는 듯 핸드폰을 들었고, 그녀의 얼굴은 광장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노출되었다. 그 때문에 헨리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웃는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핸드폰의 얇은 측면을 잡았다. 헨리는 그 핸드폰의 뒷면에서 좁고 밝은 불빛이 나오는 걸 상상했다.
상상은 의심이라는 요소가 들어가지 않는 가장 순수한 사고이다.
헨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답을 듣지 못한 물음을 다시 한 번 던지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반쯤은 자신이 답변을 알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For your first birthday and final freedom.
Now you are free.
Original Date 2016. 0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