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vS/클락브루스(숲뱃)] The Power of Choice
- Batman v Superman : Dawn of Justice, Clerk Kent/Bruce Wayne
- Written by. Jade
The Power of Choice
그들이 만나는 방에 어떠한 필기구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브루스 웨인이 정한 규칙이었다.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클락 켄트가 그 규칙을 거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클락은 기자들의 필수적인 소지품인 펜과 종이가 아니라, 영장류의 축복이라 할 수 있는 손톱과 입술로 브루스 웨인을 기록하고 경험했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한 저널리스트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었다. 클락 켄트는 다섯 번째로 브루스 웨인의 나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브루스 웨인은 한 번 침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갑자기 모든 자유와 권리를 얻는 듯했다. 클락은 욕실에서 그새 드레스 셔츠까지 걸치고 나온 브루스 웨인을 바라보았다. 펜과 종이가 없고, 대신 이불에 휘감긴 뜨겁고 차가운 시간만 있는 방에서 네 번째 밤을 보낼 때 클락은 꽤나 발칙한 마음을 먹고 브루스 웨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니까 클락은 한 도시의 실권자이자 연출된 존재처럼 너무나 완벽한 유명인사의 몸을 씻겨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브루스 웨인의 피부라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황홀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넷째 날과 같이, 클락은 그의 도움 없이도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난 듯한 브루스 웨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루만에 포기했나보군."
거울을 보고 있던 브루스 웨인이 불쑥 말했다. 클락의 어벙한 시선이 거울에 비춰진 모양이었다. 클락은 맥락이 대폭 생략된 그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훌륭한 기업가이기도 한 브루스 웨인은 효율적인 걸 좋아했다. 기자의 눈치며 일생동안 쌓아온 경험까지 모조리 끌어모았던 클락은 마침내 브루스의 말뜻을 이해하고서는 숨소리를 터뜨렸다.
"뭐에요, 알고 있었어요?"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할 줄 알았나."
브루스 웨인은 갈아 끼운 커프스 단추를 고정하면서 말했다. 커프스의 반짝거림이 브루스 웨인의 손끝까지 미쳐서, 클락이 있는 위치에서는 브루스 웨인의 손가락이 예리한 빛을 뿜어내는 듯이 보였다. 클락은 브루스의 등 뒤에서 그의 곡선을 보았다. 그 아름다움은 당분간 클락이 손에 담기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클락은 왜 아직까지도 브루스 웨인이 하의를 입지 않는 것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어졌다.
순간 반은 옷을 입지 않은 브루스 웨인의 몸이 클락의 시선을 휙 지나갔다. 그는 움찔하면서 시트를 손에 쥐었다. 브루스 웨인이 만든 두 번째 규칙은 그가 모든 옷을 입기 전까지 클락 켄트가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소멸된다는 것이었다. 클락은 시트를 손끝으로 비비면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브루스 웨인의 하반신이 가려졌다. 클락은 다시 그를 응시했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는 않겠다는 거네요, 그럼."
"그렇게 파악한 건가, 아니면 자신을 위한 정당화인가?"
"전자죠. 내가 아무리 들이받는다고 해서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서."
"현명함으로부터 나온 결정은 칭찬해줘야지."
브루스의 손목에 실크 넥타이가 감겼다. 그는 화려하지만 장식적이지는 않은 동작으로 넥타이를 바로잡고 그것을 셔츠의 옷깃 뒤로 감았다. 그 모습을 감상하며 클락이 한 마디 던졌다.
"날 칭찬해주는 게 아니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째서?"
"오늘 옷 입는 게 느려요."
브루스 웨인이 웃었다. 농담을 한 게 아니었던 클락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건 너에겐 기회야."
"왜죠?"
"네가 나에게 질문을 할 수 있으니까."
넥타이가 묶이고 있었다. 클락은 막연히 넥타이의 색깔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양복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기자는 면바지를 입고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지만 늘 그러했듯이 그것이 브루스 웨인을 절대 상처입히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는 있었다. 클락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거울을 통하여 브루스 웨인이 그를 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해 안 가는 점이 하나 있어요."
브루스는 조용히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내 밑에 있어주는 것 같아요."
"나쁘지 않은 표현이군."
"정확하기도 하겠죠?"
"어느 정도는."
"그리고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이 일과 관련해서 나는 한 번도 당신의 사정이랄까요, 속마음이라고 하는 게 낫겠어요.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클락은 혼잣말을 하듯이 이야기했다. 그것은 정말로 일종의 혼잣말이었다. 브루스 웨인에게 직접 발언권을 얻어올 수 있는 경우가 흔치 않으므로 클락으로서는 그 아까운 기회를 한 번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넥타이를 다 매서 잠시간 자신의 주의를 집중할 곳을 잃은 브루스 웨인은 거울에 비춰지는 클락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때 헐벗은 기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명 인사의 시선을 다 받고 있었다. 그것은 클락 켄트에게는 분명한 호재였고 브루스 웨인에게는 자신이 특별히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찰나였다.
"귀찮아."
클락이 눈동자에 물음표를 띄워올렸다. 브루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유일하게 주도권을 쥘 필요가 없는 순간이니까. 그런 드문 시간까지 애쓰기 귀찮다고."
"…그게 이유에요?"
"그런다고 내가 달라지나?"
"네?"
"나는 방금 잠자리에서까지 누구 위에 올라 타는게 귀찮다고 말했어.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가고 난 뒤에 너는 지금 날 보고 있지. 말해봐, 네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달라졌나?"
클락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그러니까 내가 귀찮아하는 거야.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일에 굳이 힘을 쏟을 필요는 없어."
갑자기 클락의 눈앞이 까매졌다. 브루스 웨인이 정장 재킷을 입은 것이었다. 한 번 펄럭거린 게 분명한 옷인데 뒤편에 주름이 없었다. 클락은 그게 정상적인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무해한 행동은 하지 않는 인물이 브루스 웨인이었다. 그제서야 클락은 몇 분 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바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브루스 웨인은 단 한 번도 그의 자유와 권리를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클락은 어느새 틈이 메워져버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쫓아간 브루스 웨인의 등을 떠올렸다. 그는 전날 밤에 입었던 것과는 다른 색의 양복을 입고 클락을 떠났다.
Original Date 2016. 0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