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Full-length

[STID/존본즈] Silent Revolution 02

Jade E. Sauniere 2013. 9. 18. 16:00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Chapter 2. 사제장High Priest



  이것은 어떤 역사서에도 기록된 바가 없는 이야기이다.


  각 국가의 정치인들이 은밀하게 자이가이스트에게 협상을 시도하고 몸을 위탁하기 위해 갖은 공작을 펼쳤던 때였다. 기어코 전란에서 살아남은 영국의 고위 지도자 내외가 알렉산더 마커스 위원장을 만났다. 자이가이스트라는 통합체를 구상한 장본인인 마커스는 당시에도 목숨과 권력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만남을 청하려고 애쓰는 인물이었다.


  아직 부서진 잔해들이 정리되지 않아 난잡했으나 짐작컨대 아마 카페였을 것 같은 곳이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귀중품 따위를 기대한 마커스에게 그들은 웬 아기를 내밀었다. 남자는 아이를 마커스에게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유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건 여자의 몫이었다. 


  내외 모두는 불임을 유발하는 요소를 갖고 있어 원초적인 의미의 후손을 가질 수 없었다. 자신들의 핏줄을 키울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한 그들은 차라리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심산을 품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영국 내에서 가장 명망 높은 과학자와 인문학 교수의 세포를 받아 체외수정으로 아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자는 이 아이가 크면 당신이 어느 분야에서든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이라며 마커스를 구슬렸다. 마커스는 능력 있는 이들을 아주 좋아했다. 마커스는 내외에게 아이를 구성하고 있는 DNA의 이전 주인들을 물었다. 마커스가 익히 들어본 지식인들이었다.


  마커스는 아이를 받고 두 사람의 망명을 허락했다. 남자는 아직 아명만 있을 뿐이니 그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 거라며, 그것이 마치 커다란 이점이라도 되는 듯 속삭였다. 


  후에 마커스는 아이에게 존 해리슨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 * *




  리서치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가운 자락을 휘날리면서 한 여인이 부랴부랴 정류장을 향해 달렸다. 버스가 여태 도착하지 않은 모양인지 줄이 길었다. 여인은 가지런히 서 있는 사람들의 뒤꽁무니에 자리 잡고, 아무렇게나 묶었던 머리를 단정하게 한 갈래로 정리한 뒤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바로잡았다. 리사 콜린스라는 글씨가 파랗게 새겨져 있었다.


  줄은 계속 길어지기만 하고 있었다. 리사가 왼쪽으로 상체를 틀었다. 정렬에 벗어나 있는 검은 코트의 사제가 보여 그녀는 깜짝 놀랐다. 사제들은 도움이 필요 없을 때도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우스갯소리는 진실이었다. 리사는 버스에 탑승하면 복용하려고 했던 므네모시아를 꺼내 얼른 입 속으로 넣었다.


  생추어리의 사제들은 자이가이스트의 법전에 맹세코 자신의 청렴결백함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젓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법의(法衣)와 흡사하지만 훨씬 고압적인 복장과 사제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총기는 부차적 이유들이고, 제들이 자이가이스트가 반역으로 지정한 행위를 저지른 시민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게 시민들을 제일 거북하게 만들었다. 리사는 서서히 가까워지는 실루엣을 주시하면서 빨리 므네모시아가 체내로 흡수되길 바랐다. 시민들이 가장 쉽게 저지를 수 있는 반역 행위가 바로 법으로 지정한 므네모시아의 복용량을 지키지 않는 것이었다.


  코너에서 버스가 정류장 쪽으로 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제의 검사가 끝나지 않는 한 승객들은 차에 탈 수 없었다. 리사는 앞에서 다섯 번째 서 있는 중년 남성이 사제의 추궁을 받는 장면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 남성이 목을 뒤로 꺾을 듯 젖혔다. 미처 챙기지 못했던 므네모시아를 삼킨 모양이었다. 그리고 리사는 이동하면서 살짝 각도를 바꾼 사제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었다. 


  리사는 공연히 직장에서 진행할 프레젠테이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 * *





  “리사가 늦네.”

  “아마 검사를 받고 있는 중일 겁니다.”


  닥터의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재빠르게 받은 연구원 하나가 구구절절 설명했다.


  “요새 사제들이 불시에 므네모시아 투약 여부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장소를 가리지 않지요. 저희는 어느 길목을 가도 사제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지요.”


  리서치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맥코이는 직접 체험해 본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움찔했지만 곧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젠테이션에 늦지는 않을 겁니다.”


  연구원은 위대한 레너드 맥코이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할 수 없다는 듯 아주 부드러운 말투를 구사했다. 그는 동료를 기다리는 동안 닥터가 지루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라도 한 것인지 이야기를 늘려갔다.


  “사실 시민들은 그들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전쟁 이후에는 유물처럼 인식되던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오싹할 판인데,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혹하니까요. 게다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퍼져있는지 가끔은 버스 안에서도 검사가 이루어진답니다. 그들이 조만간 리서치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을까 슬그머니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특히 사제들의 리더 존 해리슨은 소문에 의하면….”

  “죄송합니다, 닥터! 제가 늦었죠?”


  헤어스타일이 한층 단정해진 리사가 급하고도 정중하게 브리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앉아 있는 동료들의 등을 종종걸음으로 지났다.


  “정류장에서 사제장의 검사를 받느라 지체했습니다.”

  “괜찮아.”


  리사가 미소를 보이면서 한 손으로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뒤적거렸다. 그녀의 허벅지 한 쪽을 다 가릴 정도로 큰 가방에서 레이저 포인터며 프레젠테이션 원고 따위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동료가 대신 프로젝터를 작동시켜 주었다. 


  짧지만 활기찬 준비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맥코이는 자신이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사안을 곱씹고 있었다. 자이가이스트에서 유일하게 무장이 허락된 집단이 고작 약을 제대로 복용했는지를 검사한다는 게 의아했다. 이마 밑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말끔히 넘긴 리사가 눈썹을 으쓱거리며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갈색 눈이 닥터에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었다. 


  “아, 시작해.”


  리사가 환하게 웃는 바람에 방금 넘겼던 머리카락 하나가 다시 내려왔다. 맥코이는 그것을 보면서 연상했다. 사제들이 므네모시아의 투약 여부를 굳이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 관한 의문이 저 머리카락과 같았다. 맥코이는 앞에 있던 종이에 메모를 휘갈겼다. 알약 분석하기. 이윽고 확실하지만 사소한 그 느낌은 연구원이 자료를 읊는 목소리에 자리를 내주었다.




* * *




  주택에서 줄줄이 사람들이 끌려 나왔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신부의 의복을 본떠 제작한 유니폼의 뒷모습이 또 한 번의 선고를 마치자 곧바로 대문이 거칠게 열리고 주민 몇몇이 연행되었다. 생추어리의 권능을 피해 므네모시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첩보가 심심찮게 쌓이는 걸 불쾌하게 여긴 사제장 존 해리슨이 대대적으로 그들을 숙청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하고 고작 삼 일이 지났다. 그리고 사제들이 적발한 반역자들의 아지트는 벌써 3개를 넘어서는 중이었다. 


  검은 등은 이어 다음 칸을 노렸다. 그와 한 조를 이루고 있는 두 명 중 하나가 문고리를 해체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가 조용히 총을 잡았다. 미세한 소음이 그에게 정의를 실행할 것을 종용했다.


  문이 완전히 엎어져 열린 틈으로 그가 빠르게 내부 입성했다. 창살을 뜯어내고 밖으로 도망치려는 부부의 뒤에 대고 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어른들이 탈출구를 마련할 동안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년은 멍하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살인자를 보았다.


  “너는 정기적으로 므네모시아를 복용했는가.”


  부엌을 수색하다가 서랍 구석에 숨겨져 있던 다량의 므네모시아를 발견한 대원이 전했다.


  “약이 잔뜩 있습니다. 세 사람 몫의 분량인 게 분명합니다.”


  소년은 자신의 팔을 붙잡으려는 남자를 피해 고꾸라진 부모의 옷자락을 쥐었다. 그것만으로는 즉결 처분을 집행할 수 없었다. 그는 대원들에게 소년을 데리고 나가라고 고갯짓했다. 


  “난 안 가요.”


  대원들이 멈칫했다. 검거를 속행하기 위해 복도로 나가려던 남자도 몸을 돌렸다. 


  “그러면 도망가도록.”

  “..사제장님?”


  그리고 소년이 창살을 말아 쥐는 순간 남자가 총을 쐈다. 소년은 죽은 부모의 등에 그대로 안착했다. 


  “명령에 불복종할 의사가 명백하게 드러나야 사살할 수 있다는 조항, 잊었나.”


  양장된 성경 대신 총을 든 사제장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으로 건너갔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기 위하여 권위는 잃어버렸으나 친숙함은 여전한 종교적 단어들을 재활용한 마커스의 방책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집행관 혹은 심판자쯤의 명칭을 얻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제장이었다.


  압축된 총성을 용케 들은 주민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복도로 나와 돌파구를 찾는 이들도 있었고 요란하게 유리창을 내리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새어나왔다. 대원들이 양쪽으로 흩어져 고함을 쳤다.


  “협조하지 않으시면 즉결 처분이 감행됩니다! 진정하세요!”


  사제장은 소요 직전의 공간에서 오롯이 생각했다. 자신이 현재 어느 정도의 탄약을 보유하고 있으며 밖으로 도주하는 자들의 움직임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거주민들의 대다수를 끌어낸 덕분에 다른 사제들이 인원 통제에 무리가 갈 시간까지 빼놓지 않았다. 


  옆에서 대원들이 숫자를 셌다. 셋을 셀 동안 동작을 멈추지 않으시면 발포하겠습니다, 하나! 사제장은 그에 맞춰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둘! 그가 양 손에 총을 쥐었다. 셋!


  건장한 남성의 외침이 순식간에 묻히고도 남을 괴성이 솟구쳤다. 심지어는 총을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사제들 또한 놀라서 몸을 수그렸다. 그 곳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차분히 걸어가는 것은 사제장뿐이었다. 탄환은 기둥 하나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위법자의 가슴에 박혔다. 필사적으로 비상구를 향해 달려 나가던 그들은 맥없이 쓰러져 피를 뿌렸고, 그 잔인한 집행의 현장에서 다른 사제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의 재판장을 더욱 넓혀주는 것뿐이었다. 잠긴 문고리를 끊어내고 현관을 개방하자마자 사제장의 총알은 어김없이 범법자들의 뒷목을 붙잡아냈다. 


  한 차례 탄창을 비운 사제장은 왼팔을 쉬게 하고 계단을 찾았다. 꿈틀거리는 죄인들의 숨을 깨끗하게 끊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나직하게 명령했다.


  “대기 중인 사람들도 모두 처분하도록 지시해.”


  사제 하나가 통신기를 꺼냈다. 과거에는 신을 대신해 가장 부끄러운 죄도 용서해 주었다고 하는 성직자가 내려서는 곳에 총성이 가득 울렸다.


  “임무를 종료한다.”


  누군가가 공동묘지가 된 건물과 광장에 불을 던졌다.




* * * 




  범죄자들에게는 더없이 가혹하다는 사제장이 직위를 받고 2년 만에 위트가 늘어 자신의 프로젝트에 엑소시즘(Exorcism)이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았으리라. 맥코이는 ‘존 해리슨의 엑소시즘, 반역자 집단 다수 퇴치’라는 표제를 진하게 내건 신문의 앞면을 읽었다. 천천히 문단을 넘어가면서 방치해 두고 있던 므네모시아를 서랍에서 꺼내려던 맥코이가 제자리에 우뚝 섰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게 버릇처럼 굳어진 맥코이의 행동 범위는 원하지도 않던 면책 특권을 받은 뒤로 더 좁아졌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을 경외하는 눈길이 어색해 절로 움직임이 위축되었다. 차츰차츰 마커스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서 그가 진행시키는 사안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반발 심리도 있었다. 게다가 므네모시아를 강제로 배부하는 마커스의 행적에 반발심을 키우고 있다가, 맥코이는 단순히 법관이라고 여겼던 사제들이 대규모의 사형을 집행하고 다닌 사실을 놓쳐버렸다. 


  서랍장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멈춰 선 맥코이가 계속 신문을 읽었다. 현대적인 엑소시즘에 의해 불타는 것은 악령이 아니라 므네모시아를 잊었을 뿐인 일반 시민들이었다. 맥코이가 신문을 천천히 내리고 팔을 뻗어 서랍을 열었다. 그는 늘어서 있는 약병들 중 하나를 무작위로 집었다. 누구도 자신의 부모님처럼 죽지 않길 바랐고, 자신과 비슷한 18세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탄생시킨 작품이 알알이 들어 있었다.


  맥코이는 브리핑실에서 적었던 메모의 내용을 지금 당장 해치우기로 맘먹었다. 그가 므네모시아 한 알을 꺼내 들고 옆방에 설치된 연구실로 들어갔다.




* * *




  현관문을 열면서 코트를 벗는데 확 피 냄새가 끼쳤다. 존 해리슨은 옷을 들고 욕실로 가서 일단 핏물이라도 빼려다, 앞으로도 기습해야 할 지역이 너덧 군데는 남았다는 걸 상기하고는 옷을 버리기로 했다. 그는 주머니를 비우고 소각할 쓰레기들을 넣어둔 봉지에 벗은 코트를 접어 넣었다. 


  사제장의 개인 소지품은 간소했다. 넉넉히 구비하는 통에 오늘도 다 소비하지 않고 남은 탄창과 두 자루의 총이 제일 먼저 나왔고, 군청색 손수건과 매끈한 통신기가 뒤를 따랐다. 해리슨은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귀에 꽂혀져 있던 이어폰을 제거했다. 삭막하리만치 특색 없는 물건들 가운데서 작은 공간을 차지한 상자를 우연히 보게 된 해리슨은 중요한 사실을 기억했다.


  그가 코너를 돌면서 상자 뚜껑을 열고, 주방에 설치된 찬장에서 므네모시아를 꺼냈다. 귀가하지도 않고 생추어리의 수면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어 그는 여러 알의 므네모시아를 가지고 다녔다. 케이스에 들어 있던 마지막 약을 오늘 아침에 삼킨 고로, 상자 안은 비어 있었다. 해리슨이 약을 케이스에 옮겨 담았다. 사제장의 직함과 함께 동시에 받은 므네모시아는 존 해리슨과 유독 조화로웠다.


  몸을 씻기 위해 해리슨은 욕실로 향했다. 므네모시아로 꽉 채워진 상자는 어느새 그의 총 옆에서 가만히 입구를 다물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의 개성과 관계없이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는 자이가이스트의 현명한 시민성이었다.


  레너드 맥코이가 므네모시아를 열어보기 전까지 므네모시아는 모두에게 그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 * * 




  로비를 지키는 경비원은 하마터면 비상 단추를 누를 뻔했다. 사제장의 차가운 안구를 마주한 이들 치고 위기의식을 느낀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존 해리슨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을 아직 비상 단추에서 떼지 못한 경비원을 아무런 지시 없이 저지했다.


  “가운데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킬 수 있겠나.”

  “그건 닥터께서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저희는 손을 댈 수가….”

  “보수나 점검할 때 부득이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실내의 어두운 빛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처럼, 본래 청록색인 그의 눈동자는 새카맣게 변해 경비원을 똑바로 겨누고 있었다. 사제장에겐 리서치를 방문할 이유가 있었고 경비원에겐 그를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경비원이 서랍 깊숙이 손을 뻗어 열쇠 하나를 꺼냈다.


  “가시면 버튼 아래에 열쇠 구멍이 있습니다. 거기에 꽂아 넣고 돌리시면 닥터가 아니라도 임시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작동할 수 있게 됩니다.”


  사제장이 열쇠를 받아들고 나갔다. 로비 근처를 거닐던 연구원 하나가 그의 얼굴을 보곤 어깨를 잔뜩 굳혔다.


  구역 하나를 상대하는 규모의 임무가 아니라면 대개 존 해리슨은 수행원이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사제들의 검은 코트는 특색이 없고 그들의 상징과 같은 무기가 옷자락 밖으로 쑥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다. 외관상 그가 두려운 존재라고 못 박을 증거는 전무했으나 그를 보는 사람들마다 반사적으로 커지는 압박감을 호소하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존 해리슨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닥터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과연 상행 버튼 아래에 조그맣게 열쇠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가 사라지자 곧바로 연구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제장이 성역이나 다름없는 곳에 들어갔다며 입방아를 찧어댔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엘리베이터 밖 여전히 부드러운 은회색으로 덮여 있는 곧은 입구에서도 존 해리슨은 검은색 거대한 이물질처럼 보였다. 자이가이스트의 가장 강력한 집행자로서 그는 특별히 맥코이의 방문을 열 수 있는 암호와 카드키를 임시로 발급받았다. 벽에 딱딱한 태도로 붙은 키패드가 그나마 존 해리슨과 가장 친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암호를 입력하고 카드키를 인식시켰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곧 존 해리슨만의 노크였다. 그는 거슬리지 않도록 문을 밀었다. 창문가에 서 있던 레너드 맥코이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순간적으로 보고 있던 무언가를 가슴 아래로 내려 가렸다. 해리슨은 못 본 척했다. 


  “의례적인 검사입니다. 협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방 안을 수색할 수 있게 허락하시면 됩니다.”


  맥코이는 창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해리슨은 그의 방관을 허락이라 이해하고 곧바로 서랍을 뜯을 듯 열었다. 손을 세로로 세워서 들어갈 수 있는 틈은 빼놓지 않고 훑었으며 책장의 뒤편까지 확인했다. 맥코이는 정확하고 차별 없이 수색에 임하는 사제장의 행동을 말없이 눈으로 지켜보았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가 가슴으로 가리고 있는 무언가 뿐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맥코이가 서 있는 창문가에는 침대와 가까이 붙은 낮은 서랍장이 있었다. 닥터의 므네모시아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해리슨이 가라앉은 눈으로 맥코이를 응시했다. 맥코이가 비켜났다. 지극이 평상적인 손길에 끌린 서랍이 거의 빠질 듯이 돌출되어 나왔다. 해리슨은 거기에 숨어 있던 므네모시아의 개수를 세었다.


  늦게나마 마커스의 법률에 조목조목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 맥코이는 단 한 번도 므네모시아를 삼킨 적이 없었다. 해리슨이 손으로 알약을 모았다.


  “한 번도 복용 수칙을 지키지 않으셨군요.”


  맥코이는 부정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알약을 굴리면서 다시 한 번 개수를 센 해리슨은 맥코이가 단 한 개의 므네모시아를 소비한 사실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것이 레너드 맥코이를 숱한 위법자 중 하나로 인식한 존 해리슨의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당신은 즉결 처분이 불가능한 상대이므로, 먼저 당신의 처분을 중앙에 물은 뒤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각광받기 시작한 성직자들의 우두머리 역시 법률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법전보다 우월한 레너드 맥코이를 무정한 시선으로 동공에 담았다.


  “안녕히 계십시오, 닥터.”


  존 해리슨이 돌아서자마자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해리슨은 맥코이가 태연함을 유지하면서도 감추고 싶어 하던 것이 종이, 서류, 혹은 편지라는 것을 직감했다. 위법한 인물은 해부에 가깝게 파헤치는 게 사제장의 원칙이었고 성미였지만 그는 별 말 없이 박사의 방을 나갔다. 맥코이가 편지를 꼭 쥐었다.



  닥터 레너드 맥코이에게. 이 편지가 제대로 도착을 할지, 혹은 당신이 이것을 펼쳐 읽어 볼 아량과 여유가 있는 인물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지만 당신이 므네모시아의 발명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난잡한 손글씨에 대해서는 양해 바랍니다. 여기는 전자기기가 없는데다가 모종의 이유로 지금 손이 떨리고 있거든요. 


  닥터는 사제장이 아니니까, 제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며칠간 므네모시아를 복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굳이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여행을 하고 있던 도중 약을 잃어버렸고, 여기는 외딴 동네라서 통제 센터와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하지만 그 행운이 닥터에게 편지를 쓰게 하고 비극을 폭로할 용기를 주었군요. 


  근래 들어 박물관이나 영화관 등이 급속도로 손익이 떨어져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한다는 현상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조사해 보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므네모시아를 먹기 시작하고 두세 달이 지나고 두드러진 사건들입니다. 대학에 있을 시절 학생들의 걸음걸이가 점점 통일되어 간다는 것을 발견했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하루 한 번 므네모시아를 먹는 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사제들에 의해서 무참히 살해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떠한 동정도 표현할 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보았습니다.


  저는 이제 닥터에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자이가이스트를 휘두르는 므네모시아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다리로 걷는 거친 여행길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인식할 수 없었을 중요한 회의입니다. 이에 대한 닥터의 해답을 구합니다. 제임스 커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