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WarsⅦ/카일로렌] Undercover Boss
- Based on the Saturday Night Live Episode, hosted by Adam Driver
- Written by. Jade
Undercover Boss
그러니까 때는 스타킬러 베이스가 이글거리는 하나의 태양으로 바뀐 이후, 퍼스트 오더의 기지가 재건되던 시기였다. 당시 행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이 많아, 스타 디스트로이어 등 우주를 유영하는 함선에 근무하는 승무원들 및 스톰트루퍼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기존 근무지뿐만 아니라 기지 재건을 위해 차출당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인력이 많이 충원된 상태였으나 아직 훈련과 교육이 필요한 인원이 훨씬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킬러 베이스의 폭발 이후에도 가장 온전한 구조를 갖추어 퍼스트 오더의 핵심 전력이 된 렌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카일로 렌의 위치가 퍼스트 오더 내에서 다시 급부상한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렌은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래도 전보다 자신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건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카일로 렌은 자신이 퍼스트 오더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렌은 일시적으로 염색한 노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일반 장교들이나 스톰트루퍼들 앞에서는 투구를 벗은 일이 없었지만 그는 그래도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그의 노란빛 머리카락을 보면 그가 아무도 카일로 렌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리라. 광선검을 휘두르며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포스를 운용하는 렌 기사단의 단장의 투구 아래에 곱슬거리는 노란색 머리카락이 있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렌은 자신의 변장에 만족했다.
렌의 계획을 흔들어놓을 만한 요소라면 역시 헉스 장군이었다. 그는 렌의 얼굴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므로, 렌이 염색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기지를 돌아다니는 걸 발견한다면 분명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모든 걸 폭로해버릴 게 뻔했다. 그래서 렌은 본격적인 암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헉스 장군의 방에 침투했다.
“렌? 아니, 그 머리는….”
헉스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렌은 포스에 의해 정신을 잃고 잠들어버린 헉스를 맨 처음엔 침대에 눕혀 놓을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옷장의 문을 열었다. 렌은 헉스를 옷장 안에 구겨 넣고 문을 닫았다. 그가 최대한 방에서 늦게 나올수록 렌에게는 이득이었다.
렌은 양쪽 복도를 잘 살핀 후에 헉스 장군의 방에서 나왔다. 평범한 엔지니어 복장을 입은 하얀 얼굴의 청년이 고위 장교의 방에서 눈치를 살피며 나온다는 게 더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음을 렌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렌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부지런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복도를 걸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신선하게 다가왔다. 렌은 새로운 기분을 하나씩 머릿속에 입력해 가며 코너를 돌았다. 사전 조사를 통해 그는 지금 승무원들이 식사를 하는 시각이라는 걸 알았다.
렌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승무원들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렌은 왜인지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승무원들의 식당을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다는 걸 처음부터 팍팍 드러내고 말았다.
“안녕, 제군들.”
굉장히 이상한 말투에 몇몇 사람들이 렌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맷이라고 해. 음, 다들 식사 맛있게 하도록.”
승무원들의 눈을 세모꼴로 뜨고 렌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그의 태도가 영 이상할지언정, 그것이 기술자 맷을 곧바로 카일로 렌과 연결시켜주는 건 아니었기에 승무원들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뒤이어 렌은 빠르게 테이블을 스캔하듯 훑었다. 마침 스톰트루퍼 한 명과 장교 한 명이 앉아 있는 자리가 보였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기에 적합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렌이 옆에 앉는 걸 허락해주었다. 이에 렌은 어색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은 마치 몇 년간 자신이 누구한테 고맙다는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기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렌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렌은 슬그머니 때를 보다가 장교와 스톰트루퍼에게 말을 걸었다.
“일은 할 만한가?”
그 말에 장교가 무심히 대꾸했다.
“일은 일이지, 뭐.”
렌은 그 나름대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는 몇 번 이야기를 돌리다가 비로소 자신이 가장 궁금해 했던 질문을 꺼냈다. 그는 정말이지 자신이 카일로 렌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카일로 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가 다스 베이더가 시작한 걸 끝낼 거라는 말이 있던데.”
스톰트루퍼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스 베이더가 시작한 게 뭐길래?”
렌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가 다스 베이더에 알고 있는 모든 걸 설명하고 싶었다. 역시나 퍼스트 오더에 갓 들어온 신참들 중에는 위대한 베이더 경의 업적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장교가 입을 열어서 기술자 맷이 ‘수상한 태도를 가진 다스 베이더 광신도’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불상사를 막았다.
“내 생각에 그건 조금 잘못된 소문 같고. 나는 그 사람 꽤 인상적이라고 봐. 은하 역사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는 걸 목표로 삼고 있잖아? 모든 걸 지배한다니, 배포가 커. 존경스러울 정도라니까.”
“그렇지!”
렌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너무나 솔직한 자신의 반응에 놀란 모양이었다.
“…음, 그러니까, 그렇다고.”
╳
기술자 맷이 본격적으로 기술자다운 일을 할 순간이 왔다. 그는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덮개가 열린 콘솔 옆에 붙어 있었다. 렌은 긴장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들 사이에 흐르는 신비로운 힘에 대해서는 박식했으나 기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단해. 하소기를 다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고.”
렌은 주의 깊게 고민했다.
“그러니까 이걸 제거하면 된다는….”
렌은 언제나 행동이 앞서 나가는 타입이라 그 자신이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그의 손은 회선 하나를 빼서 손에 쥐고 있었다. 그걸 본 다른 기술자가 펄쩍 뛰었다.
“야! 제정신이야! 그게 하소기로 보이냐고!”
렌의 눈썹이 순간 움찔했다.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 겁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그 때 입술 안쪽을 깨물면서 렌이 되새긴 건 두 가지였다. 기사는 언제나 자신의 라이트세이버와 함께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끼 안쪽에 라이트세이버를 넣어 놓았지만 가급적 켜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기술자에게 말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렌은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카일로 렌은 퍼스트 오더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의 존재와 그들의 의무를 존중한다. 렌은 다시 콘솔에 집중했다.
“다시 해봐. 나 머핀 좀 먹으러 가자고, 응?”
몇 분 뒤 그 기술자는 자신의 머핀을 찾으러 가버렸다. 렌은 아직 그 콘솔 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렌은 외양은 완벽하게 감추었으나 기술자의 머리까지는 이식하지 못한 자신의 미흡함을 탓했다. 퍼스트 오더의 평범한 기술자로 살아가는 건 예상만큼 쉽지 않았다. 스톰트루퍼 한 명이 지나가다가 그의 공구를 발로 차 버렸을 때 그는 최고난도의 장애물과 직면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다. 적어도 그 순간은.
“기지 안에서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를 발견했어.”
기술자 맷이 난데없이 굳은 얼굴을 하고 승무원들의 휴게실에 나타났다. 평범한 기술자인 맷은 놀랍게도 조금 전에 자신의 공구를 멀리 날려버렸던 스톰트루퍼를 정확히 찾아서는 이글거리는 라이트세이버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스톰트루퍼는 기겁을 했다. 라이트세이버의 극악무도한 위력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맷의 표정도 굉장히 섬뜩했던 탓이었다.
“워워, 위험한 물건이잖아. 꼭 어린 애들이 만든 것처럼 흔들린다고.”
그와 동시에 한낱 기술자가 시원스럽게 던진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가 스파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지켜보던 잭이라는 장교는 기술자 맷이 카일로 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
물론 하루 종일 렌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기술자 맷은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장교 잭의 말을 들었다.
“올해는 특히 힘들었어. 음, 아들이 스톰트루퍼 프로그램에 있었는데 아들이 죽었거든.”
“정말 유감이군.”
렌이 안타깝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정말이야. 아주 힘들었겠어.”
죽은 아들 생각이 났는지 장교는 결국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렌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그 장교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편협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었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렌은 그 날 심각하게 엽서를 그렸다. 최선을 다해 색칠을 하고 삼색 무지개를 오려 붙였다. 그 다음에 렌은 그 장교에게 어떠한 말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펜을 들었다. 아무래도 필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선 대문자로 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당신 아들을 죽여서 미안. - 카일로SORRY, I KILLED YOUR SON! :( - KYLO’
╳
한편 헉스 장군은 신음을 내면서 눈을 뜨다가, 자신이 눈을 떴음에도 눈앞이 밝아지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있는 공간이 아주 좁고 답답한 공기가 들어찼다는 걸 감지했다. 헉스는 기지가 느닷없이 습격이라도 받아서 자신이 반란군들에게 잡힌 게 아닌가 추측했으나 곧 충격적인 헤어스타일을 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왔던 카일로 렌을 기억해냈다.
잠시 후 헉스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벌떡 일어났다.
“렌, 이 놈이 진짜!”
헉스는 오래간만에 자신의 옷매무새조차 확인하지 않고 방을 박차고 나왔다. 복도를 돌아다니던 스톰트루퍼 두 명이 헉스 장군을 보고 급하게 경례를 붙였다. 그들은 헉스가 사라진 뒤 장군이 대놓고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례적인 현상을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비록 같은 행동을 카일로 렌이 했다면 오늘도 태양이 무사히 떴다는 진부한 자연의 이치였겠지만.
헉스가 날카로운 발소리를 내면서 기지를 누볐다. 카일로 렌을 찾고자 감각을 곤두세운 그의 귀에 일련의 소란이 들려왔다. 헉스는 곧장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자동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외쳤다.
“카일로!!”
한창 카일로 렌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내던 스톰트루퍼 한 명이 음식도 목구멍에 걸린 데다 포스에 사로잡히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노란색 곱슬머리를 드러낸 카일로 렌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공중에 잡혀 있던 스톰트루퍼가 등을 벽에 박고 뒹굴었다.
“그걸 네가 먼저 밝히면 어쩌자는 거야! 그건 내 몫이라고!”
그러나 모두가 이미 기술자 맷이 카일로 렌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어서 맷의 또 다른 정체가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정체불명의 힘을 운용하는 신비로운 어둠의 대명사, 렌 기사단의 수장인 카일로 렌과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퍼스트 오더 최고의 냉혹한 지휘관인 헉스 장군이 서로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희대의 구경거리라 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순간, 카일로 렌이 라이트세이버를 꺼내들거나 손을 들어 헉스의 목을 조르지 않은 걸 보고 몇몇 승무원들은 그래도 렌이 아예 분별없는 막무가내는 아니라고 그를 높게 평가했다. 물론 의심이 많고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헉스 장군이 카일로 렌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떠들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자신이 무려 노란색 곱슬머리를 흔들어가면서 헉스와 싸우는 걸 본 승무원들의 머릿속에서 일일이 기억을 지우느라 렌 기사단의 단장은 이틀간 특수 임무에서 빠져야만 했다고 한다.
Original Date 2016. 0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