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WarsⅦ/카일로레이] Integration of Dreams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Rey
- Written by. Jade
Integration of Dreams
그곳은 육지와 바다가 똑같은 넓이로 펼쳐진 행성이었다.
레이는 다리를 끝까지 뻗은 채 발끝으로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바닷물이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발가락을 적셨다가 물러나길 반복했다. 레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발을 흔들었다. 그녀는 언제나 지금과 같은 일을 꿈꿨다. 작은 게가 서슴없이 모래사장 위를 굴러다니고, 둥근 자갈들이 맑은 바닷물 아래 깔린 그곳은 레이의 소원 그 자체였다.
레이의 작대기를 빌려갔던 츄이는 그것을 가지고 낚시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츄이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작대기를 한 번 바닥에 꽂고 울었다. 레이가 그걸 보고 악의 없이 웃는 순간 츄이가 들어 올린 작대기 끝에 물고기 한 마리가 대롱대롱 걸린 채 나타났다. 레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츄이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레이는 바닷가에 왔으니 생선을 먹는 게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 안 할래?”
핀이 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핀은 당장에라도 물속으로 들어가도 좋을 듯한 차림새를 갖추고 있었다.
“나 수영 못 해.”
“진짜?”
“사막에서 자란 애가 수영을 배울 일이 있었겠어? 나 정말로 수영 못 해.”
“그럼 오늘부터 배우면 되겠네!”
핀이 레이의 손목을 잡고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가는 바람에 레이도 덩달아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기우뚱거리는 다리가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바닷물을 밟았고 튀어 오른 물방울은 레이의 허리 위까지 올라왔다. 핀이 뛰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레이는 핀에게 붙잡힌 팔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볼썽사납게 물속에 빠졌다.
핀이 위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나 수영 못 한다니까…!”
핀은 우스꽝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더니, 레이가 수영을 못 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으로 레이를 따돌렸다. 분한 마음에 레이는 몇 번 물장구를 쳤다. 그러나 레이는 정말로 수영을 못 해서 핀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발랑 넘어갔다. 레이가 가라앉은 자리에 작은 물거품이 남았다.
물을 젓는 레이의 팔이 나타나지 않자 핀은 곧장 레이가 걱정되었다. 핀이 한달음에 물거품이 사라져가는 지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레이? 레이, 괜찮아?”
그 순간 레이의 양 팔이 위로 솟구치더니 핀의 뒤통수를 내리눌렀다. 핀의 다리가 중력을 거슬렀으며 요란하게 물이 찰박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분 뒤 바닷물을 쪼르르 토해내며 핀이 고개를 들었다.
“한, 저 잘 했죠?”
레이가 지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레이는 자신의 발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를 그리듯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칭찬을 기대하는 일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한 솔로가 레이를 향해 씩 웃었다. 그곳은 육지와 바다가 똑같은 넓이로 펼쳐진 곳이면서 동시에 레이가 행복할 수 있는 장소였다.
느리게 모래 위를 걷는 한 솔로의 등 뒤에는 숲이 모래사장과 아슬아슬한 경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카일로 렌은 숲과 모래밭에 모두 발을 걸치고 서 있었다. 그는 해변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적어도 얼굴을 가리거나 망토를 두르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렌의 발은 몇 번 태양이 내리쬐는 모래밭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으나, 그늘을 벗어나면 너무 눈이 부셔서 렌은 금세 숲의 안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렌은 레이와 한 솔로가 있는 밝은 곳을 응시했다.
그때 묵직한 바구니 하나가 렌의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같이 들어주지 않겠니?”
레아 오르가나가 부드럽게 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척 보기에도 양이 많아 보이는 열매들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렌은 반사적으로 그녀가 감당하고 있던 무게를 가져갔다.
“다른 사람들이랑 나눠먹자.”
레아가 빛나는 땅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렌은 더듬더듬 자신의 어머니를 따라갔다.
츄이는 어느새 잡은 물고기들을 줄로 꿰어서 어깨에 메고 있었다. 많은 것들이 풍족했다. 레이와 핀이 물을 털어내고 있었고 한 솔로가 낚시에 취한 듯한 츄이를 불렀다.
“잠깐만 기다리렴. 껍질을 벗길 만한 도구가 있을 거야.”
렌이 천천히 열매들을 내려놓았다. 레아가 가방을 뒤적거렸다. 소매를 전부 걷어 올린 레아의 옷차림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게다가 아무도 그녀를 장군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렌은 덜 익은 부분도 없이 구석구석 빨간 열매 하나를 매만졌다.
물 위로 올라오는 츄이의 그림자가 유독 길었다. 레이와 핀은 츄이의 몸이 물 밖으로 다 나왔는데도 끝없이 이어지는 물고기들의 행렬을 보더니 입을 쩍 벌렸다. 렌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이 많은 걸 혼자 다 손질하려고?”
한 솔로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그가 한쪽 눈썹을 올리고 렌에게 물었다.
“그건….”
“그럼 당신도 좀 거들든가요.”
어느새 나타난 레아가 당당하게 한에게 주머니칼을 건넸다. 마침 그녀가 챙겨온 칼은 세 개였다. 그리하여 한 가족은 당분이 가득한 과즙이 흐르는 열매의 껍질을 벗겼다.
렌은 미묘하게 표정을 찡그렸다.
세 사람 중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기사 수련을 받은 경험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껍질을 빠르고 섬세하게 깎아내고 있던 렌은, 문득 자신이 세 사람을 고려한 생각을 해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렌은 늘 혼자였다. 수련생들 중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벗어날 마음을 먹었던 것도 그가 유일했고 빛과 어둠을 나란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과제를 받은 사람도 역사를 통틀어 그를 빼면 존재하지 않았다. 렌은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니었다.
칼을 쥔 렌의 손이 열매의 측면을 긁었다. 과육이 조금 붙은 껍질이 모래밭에 떨어졌다. 렌은 괜히 쑥스러웠다.
“…하나 정도는 맛을 봐야 하지 않아요?”
부지런히 껍질을 까고 있던 한과 레아가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렌은 슬그머니 열매를 돌려서 약간 패인 부분을 손으로 가렸다. 그가 묵묵히 열매를 잘게 조각냈다.
“맞는 말이군. 여기에 이상한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어쩌려고.”
“내가 설마 그런 걸 당신이랑 아들한테 먹이려고 하겠어요?”
“당신이 야생 열매에 대해서까지 잘 아는 건 아니잖아. 잘 먹으마.”
한이 열매를 입에 넣었다. 레아가 발끈하면서 뭐라 반박을 하려는 입모양을 만들자 그가 검지를 들었다. 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숨을 탁 뱉었다.
렌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로 열매의 껍질을 계속 깠다. 확실한 건 렌이 지금 슬프거나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레이와 핀은 츄이가 잘 꿰어 놓은 물고기들을 줄에서 하나하나 분리하고 있었다. 츄이는 바닷가에서 레이의 작대기를 씻었다. 작은 일이지만 꼼꼼하게 협동하는 모습은 레이의 꿈이 이루어지고, 렌이 분노하지 않는 이 행성과 참 잘 어울렸다.
그 곳에서 레이와 렌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벤 솔로라고 언제나 그의 가족을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레이 역시 처음부터 혼자였던 게 아니었다. 얼핏 현실이 역전된 것 같아도, 사실 또 다른 진실이기도 한 환상 속에서 두 사람은 시선을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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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로 렌이 눈을 떴다. 그가 머리 위로 손을 내젓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전등에 천천히 불이 들어왔다. 렌은 눈을 깜빡이면서 전등이 완전히 밝아지는 걸 지켜보았다.
자신이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소녀의 머릿속을 뒤지다가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들키게 된 사건 이후로, 렌은 여전히 자신이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소녀와 때때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렌은 그것을 아직까지 자신의 스승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 막연한 연결이라는 걸 끊어버릴 이유가 확실하게 없다는 게 그의 이성적인 설명이었다.
렌은 불을 켰던 자신의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의 손에서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그가 단맛 나는 열매의 껍질을 깠던 건 모두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레이는 렌보다는 조금 야단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상체를 세우자마자 머리를 양쪽으로 털었다. 그러나 흩날린 것은 레이의 머리카락이었다. 이미 눈을 떴으니 레이가 방금 전까지 꾸었던 꿈은 사라졌다. 내실 없는 행동을 한 레이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갔다.
무의식을 공유해버린 두 사람은 침묵했다.
레이가 곧장 루크에게 달려가지 않고, 렌이 으르렁대면서 처음부터 한껏 불쾌감을 표출하지 않은 이유는 같았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미련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막을 벗어난 레이는 한동안 섬에서 살기까지 했으나 그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바다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고독한 렌은 어쩔 수 없이 영원히 지나가버린 단란함을 그리워한다.
레이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카일로 렌의 흔적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거의 웃을 일이 없어서, 웃는 법을 잊어버릴 지경까지 몰린 그의 미묘하지만 편안한 표정이 기억날 뿐이었다. 레이가 가만히 자신의 입술을 한 번 말았다.
렌은 하얀색에 가까운 상의 위에 검은 옷을 걸쳤다. 기사의 복장이 하나씩 그의 몸 위에 쌓일 때마다 그가 맨 처음에 입고 있었던 하얀빛 옷은 흐릿해지고 다른 것에 의해 감춰졌다.
렌은 가면을 쓰기 전에 조금 주저했다. 정녕 그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자신의 순수한 목소리로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레이가 말없이 베이지색 재킷을 걸쳤다. 그녀도 이제는 저항군의 표식이 달린 재킷을 입었다. 카일로 렌도 다른 방도가 없어 가면을 썼다.
카일로 렌이 수련실로 향하는 동안 레이는 그녀의 방을 나섰다. 저항군의 회의실에서는 벌써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