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Sherlock

[Sherlock/셜록존] Expired Pancake

Jade E. Sauniere 2016. 6. 23. 15:17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for cordial

- Written by. Jade


Expired Pancake





  존이 셜록과 한 플랫에서 살게 된 지 네 달쯤 되던 시기였다.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부터 병원에 나갔다가 귀가하고 있는 존은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서 당과 수분을 달라는 애원을 묵묵히 무시하며 걷고 있었다. 셜록은 절대로 마트에 가거나 음식을 해 먹는 일이 없었기에 플랫에는 고작해야 먼지와 종이만이 흩날리고 있겠지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뛰어나온 존에겐 냉장고에 약간 남은 마지막 우유가 절실했다. 모든 것은 그 우유를 다 마신 뒤에 해결해야 했다.


  존은 플랫에 들어가자마자 냉장고를 향해 직진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냉장고를 열었고 5초도 안 되어 인상을 크게 찡그렸다. 배고픔과 갈증에 시들어가는 존의 희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셜록, 냉장고 안에 있던 우유 못 봤어?”


  존의 시선은 아직 냉장고 안쪽을 향해 있었다. 사실 그는 셜록이 자고 있는지, 거실에 나와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방금 썼는데.”


  셜록의 대답은 존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 즉 존의 바로 왼편에서 들려왔다. 존은 빠르게 냉장고를 닫고 한 발짝 물러나 셜록 홈즈를 멀찍이서 조망했다. 그것은 실로 조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존은 셜록이 현미경이 아니라 불 위에서 달궈지고 있는 프라이팬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설마 요리해?”

  “응.”


  그와 동시에 셜록이 완성된 반죽을 프라이팬 위에 부었다. 커스터드 빛이 나는 반죽은 천천히 시럽 향이 섞인 팬케이크 특유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더 입을 크게 벌릴 수 없었던 존의 몸은 아예 어깨까지 늘어뜨리면서 놀라움을 표현했다.


  “주스는 조금 남아 있던데.”


  셜록이 프라이팬을 잡은 손목을 살짝 흔들면서 말했다. 슬금슬금 반죽을 뒤집을 타이밍을 재는 몸짓이 몹시 신기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다. 존은 셜록 홈즈가 팬케이크를 익히는 과정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주스 병을 꺼냈다.


  “먼저 먹어.”


  그 날 존은 이른바 고기능 소시오패스도 자신과 거실을 나눠 쓸 용기를 발휘해준 플랫메이트를 존중할 줄 안다는 매우 유용한 교훈을 배웠다. 셜록은 존의 팬케이크 위에 우아하게 메이플 시럽을 뿌려준 뒤에는 곧장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졌다는 사실도 그것의 충격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그 뒤 다시 몇 달이 지났을 때에는 셜록 홈즈가 팬케이크를 만들었다는 사건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거대한 일이 벌어졌다. 물이 가득 찬 수영장을 옆에 두고 존은 폭탄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셜록은 아무런 장비 없이 오직 권총 하나를 들고 보이지 않는 저격수와 눈앞에 보이는 폭탄을 상대해야 했다. 


  반드시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져야만 끝날 것 같았던 그 밤은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종결되었지만, 존은 남 몰래 하나의 확신 같은 이론을 갖고 있었다. 셜록은 그 때 분명히 바닥에 떨어진 조끼를 보며 자신이 그것을 쏘았을 때 사방으로 퍼져나갈 충격과, 다소 탈진 상태인 존이 발휘할 수 있을 최대한의 속력 등을 계산하고 있었다. 반면 존은 셜록이 떠안고 있는 모든 것이 상수가 없이 미지수로만 이루어진 방정식이라는 걸 직관했다. 그렇기에 존은 두 사람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셜록에게 보낸 것이었다. 


  존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셜록은 그것을 존중했다. 세상에서 유일한 자문 탐정의 곁을 지키며 쌓인 존 왓슨의 경험이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존은 이번에는 그것을 언어를 통해 시험도 해 보았다.


  “욕실은 내가 먼저 쓸 거야.”


  셜록은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그래.”


  팬케이크와 욕실로 따뜻하게 증명되었던 셜록 홈즈 식 존중법이 깨져나간 것은 그로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싱크대 옆을 연 존의 시선에 테이프로 연결된 팬케이크 믹스 2개가 들어왔다. 존은 틀림없이 한 개를 사면 동일한 제품을 하나 얹어준다는 매우 합리적인 이유로 그것을 구매했다. 존은 몇 분의 시간을 투자해 그 기억을 어렵게 떠올려냈다.


  잠시 후 존은 테이프를 제거하고 팬케이크 믹스를 하나 뜯었다. 묶음 상품들의 특성은 유통기한이 짧다는 것이었다. 존에게는 서둘러 그 팬케이크 믹스를 해치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존은 새로운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셜록 홈즈는 하필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존은 몹시도 이기적이며 산 자보다는 오히려 죽은 자에 관심이 있을 때가 훨씬 많은 셜록 홈즈에게 아침을 대접받기도 했고, 먼저 씻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많이 서로를 지켜주었었다. 존은 그렇게 특별한 경험을 갖춘 자신이 어째서 셜록의 최후를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자리에서 그의 머리가 형편없이 짓이겨진 걸 바라만 보는 위치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존 왓슨은 셜록 홈즈의 제대로 된 죽음을 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것을 셜록 홈즈만이 부정했다. 존은 셜록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반죽이 질어졌다. 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우유를 조금 남길 걸, 하고 부질없이 생각했다. 남은 우유를 그냥 털어 넣은 게 잘못이었다. 셜록 홈즈가 가끔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할 때는 우유의 양도 협조적으로 구는 모양이지만 존이 자신의 끼니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흔했다. 존은 일부러 가벼운 동작으로 혀를 찬 뒤 프라이팬을 달궜다.


  존은 그렇게 일상적으로 팬케이크를 구웠다. 


  한편 바다의 수분이 느껴지는 영국의 대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동쪽의 차가운 공기가 도는 땅에서는 이번엔 형태를 지키는가 싶던 편지 하나가 또 찢어졌다. 편지는 그렇게 두툼하지도 않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짧았다. 그것은 아주 먼 곳을 겨냥하는 편지도 아니었다. 시차가 크게 나지 않아 충분히 비슷한 시점에 태양과 달을 공유할 수 있는 어느 섬나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작은 쪽지일 뿐이었다.


  셜록은 마지막 미련처럼 쓰레기통이 있는 바닥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책상에 붙어 있는 종이쪼가리들을 응시했다. 셜록은 존 왓슨이라는 이름 앞에 플랫메이트라는 수식어, 괴팍한 성격의 자문 탐정을 가장 오래 버틴 친구라는 어구가 다 떨어져버린다 하더라도 그를 존중하고 있음을 전하지 못했다.




Original Date 2015.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