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Worship in the Bedroom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Worship in the Bedroom
“세상에는 대속자라는 것이 필요하단다.”
언제부턴가 에그시의 머릿속에 맴돌게 된 말이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에그시는 물었다.
“대속자라는 게 무엇인가요?”
“남의 죄를 대신 치러주는 사람이지.”
에그시는 자신이 왜 그러한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작 이십대를 앞둔, 어리다면 어린 소년이었고 그는 자신이 대신 죗값을 받아야 할 정도로 커다란 죄를 지었으면서도 자신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몰랐다. 에그시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나쁜 인간은 그의 양아버지였다. 그리고 에그시는 그의 거대한 죄를 떠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언급한 건 아주 의외의 존재였다.
“네 여동생이 깨끗하게 자라려면 네가 희생을 해야 한단다.”
에그시는 깜짝 놀랐다. 그의 여동생은 무척이나 어렸고 순수하고 환한 미소를 가진 착한 아이였다. 에그시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꾸했다.
“제 동생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러자 목소리는 에그시의 반응을 이미 예상이나 한 것처럼 따뜻하게 설명했다. 자녀를 방임하고 있는 여인과, 건전한 노동이 아닌 추악한 죄로써 살아가고 있는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은 잉태된 그 순간부터 유죄를 선고받는다는 것이었다. 에그시는 충격에 빠졌다. 햇빛을 쐬기라도 하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금색 머리카락을 지닌 자신의 여동생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다니! 에그시는 몸을 덜덜 떨면서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그와 대화하고 있는 목소리는 대단히 절대적인 신성성과 권위를 가진 자가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에그시는 조금도 비판적인 사고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에그시는 양 팔과 다리보다도 더 떨리고 있는 눈동자를 겨우 들어올렸다. 신성한 자가 에그시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에그시는 그제야 그가 왜 대속자라는 어려운 단어를 자신에게 알려주었는지 깨달았다. 에그시는 동생의 대속자가 되어야 했다. 그 어여쁜 아이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낙인을 에그시가 정성스럽게 핥아서 지워내야만 했다.
에그시는 마침내 결심했다. 에그시가 신성한 자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에그시를 칭찬하면서 순진하고 연약한 자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교리가 숨 쉬는 곳으로 에그시를 안내했다.
에그시는 대속자라는 말 만큼이나 난해한 말들과 표현들을 들었고, 그것을 외워야만 했다. 에그시는 복도를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팠다. 완전하지 못하고 부족했다….”
에그시는 사실 그 복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여동생의 금발을 떠올리게 하는 태양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에그시가 희생을 배우는 장소였다. 에그시는 몇 번 더 읊조렸다. “인간은 모두 속죄해야만 한다.”
빛이 부족한 깊은 구석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에그시가 그 미소를 발견하고는 다리를 꽉 붙이고 똑바르게 섰다. 에그시의 소중한 스승님이자, 그의 여동생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잘못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수 있게끔 기회를 준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에그시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신성한 자였다. 에그시는 얌전히 고개를 수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받았다.
에그시는 언제부턴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환청을 듣게 되었다. 인간은 모두 속죄해야 하며, 그 중에서도 못되고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특히 악이나 다름없다는 앙칼지고 가슴 아픈 선고였다. 에그시는 너무도 두려워서 아침 기도조차 드리지 않고 신성한 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에그시는 그의 품에 안겨서 자신이 들은 환청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에그시에게 따뜻함을 주면서 그가 얼굴을 감출 수 있는 그늘을 제공했다. 에그시는 자신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잠시 생각한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네 여동생의 대속을 위해서는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구나.”
“뭐든지 할게요. 동생만 괜찮게 해주세요. 죽으라면 죽겠어요.”
그 말에 신성한 자는 고개를 모로 저었다. 에그시가 죽어버리면 대속을 지속할 수 없다면서 에그시에게 살아 있으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짐짓 부드러웠으나 에그시는 그것을 하나의 명령처럼 들었다. 에그시는 인도와 명령의 차이점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에그시에게는 어차피 다 똑같았다. 그가 이행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다음 날부터 에그시가 기도를 드리는 장소가 바뀌었다.
에그시가 그 방으로 들어가면서 제일 처음에 느낀 인상은 향기가 정말 좋다는 것이었다. 청량하고 고급스러운 자연의 향이 훌륭한 조향사의 기교를 거쳐 봉인되어 있다가, 적절한 소유주를 만나서 활짝 피어난 것만 같았다. 에그시는 그 향기를 맡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신성한 자가 에그시를 위한 고해와 속죄 작업을 준비하자, 에그시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진지해지려 애썼다. 그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몹시도 따가운 햇볕이 안으로 들어왔다.
신성한 자는 에그시를 보면서 침대를 향해 팔을 뻗었다. 에그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에그시는 어수룩하게도 장소가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그시는 자신의 여동생이 그 어느 것에도 발목을 잡히지 않고 아름답게만 자라나 준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침대에 얌전히 앉은 에그시에게 신성한 자가 다가오더니, 친절하게 그의 자세를 고쳐주었다.
에그시는 침대 위에서 축생처럼 큰 소리를 냈다. 그가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속죄를 외치면서 입으로 뜨거워지고 있는 주변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 섞인 기분 나쁜 죄악들이 에그시의 목구멍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신성한 자가 에그시를 위하여 특별히 날카롭게 벼린 칼이 에그시를 연거푸 찔렀다. 에그시는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남의 죄를 대신 겪으면서 그것을 없애버리는 일은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한 자가 가엾은 에그시를 끌어안으면서 그가 외쳐야 할 말을 가르쳐주었다. 에그시는 그대로 따라했다. “선하신 주여, 제 삶을 바치겠습니다…!” 에그시가 눈물을 흘리면서 얼굴을 숙였다.
열정적인 예배를 마치고 나서 에그시는 방에서 나왔다. 나가기 직전에 에그시는 방 안의 냄새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고급스러운 향기는 다 사라져버리고 텁텁하고 끈적끈적한 냄새가 났다. 에그시는 그것이 자신이 육성으로 내뱉은 죄악의 언어들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에그시는 눈물을 닦으면서 복도를 걸었다.
이틀 뒤에 에그시는 여동생으로부터 귀여운 카드 한 장을 받았다. 표지에는 노란색 해바라기를 큼직하게 그려 넣고, 안에는 보라색 나비와 분홍색 꽃잎들로 모서리를 장식한 여동생의 편지를 읽으면서 에그시는 너무나 행복해했다. 여동생은 에그시가 자신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가 노력해준 덕분에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방과 후 수업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썼다. 에그시는 카드를 가슴에 꼭 안고서 기쁨에 흐느꼈다. 더 강력해진 에그시의 속죄 작업이 효과를 발휘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 날 오후에 에그시는 다짐을 하고 신성한 자를 찾아갔다. 내일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는 예배를 오늘 밤으로 앞당겨서, 아침까지 해보겠다는 당찬 각오를 밝힌 것이었다. 그는 에그시를 크게 예뻐하면서 침대가 있는 예배당의 문을 열어주었다.
에그시는 그 날 밤에 분명히 느꼈다. 에그시가 처음 방에 들어가면 그 안은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에그시가 한껏 남아 있는 여동생의 죄를 씹어 삼키고 그의 내부를 오므려서 속으로 넣고 나면, 뱀의 가죽처럼 미끈거릴 듯한 역겨운 냄새가 들어찬다. 에그시는 자신이 예배를 마치고 나서도 부디 방 안이 향긋하기를 바랐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에그시는 그것을 자신이 대속을 마쳤다는 하나의 훈장으로 여기고 여동생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에그시는 열심히 침대에 앉았고, 짐승처럼 엎드렸으며 끊임없이 칼날을 맞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프다. 어딘가 부족하다. 완전하지도 못하다. 인간은 쉬지 않고 속죄해야만 한다. 그러니 선하신 주여, 제 삶을 바칠 테니 부디 가져가 주소서.” 한밤중에 에그시는 복도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예배당의 문이 열렸다. 에그시는 거의 탈진해서 쓰러질 듯이 열심히 기도했다. 그를 지켜보는 신성한 자는 에그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동생이 보내는 카드의 그림은 갈수록 발전해서, 늘 앞면에 그려지는 해바라기에서는 이제 꽃내음이 날 것 같았다. 에그시는 그렇게 카드를 받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예배 시간을 앞당겼다.
그 날 밤도 같았다. 에그시는 벌써 여동생에게 13번째 카드를 받았다. 에그시는 카드를 모으긴 했지만 자신의 대속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는 헤아리지 않았다. 신성한 자가 그런 날짜를 세는 건 아주 오만한 짓이라면서 첫 날에 단단히 주의를 준 덕분이었다. 에그시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건 예배당에 감도는 향기였다. 그리고 그 향기는 여전히 에그시가 다녀가고 나면 흉해졌다. 에그시는 자신의 여정이 끝나려면 멀었다는 걸 알았다.
오늘따라 에그시는 더 열의를 가지고 예배당의 침대에 누웠다. 그가 존귀한 존재를 그리면서 헐벗고 진실한 몸을 만들었다. 에그시가 입을 벌렸다. 이 모든 일에 익숙해진 에그시는 그저 자유에 굶주린 상태였으며, 그 자유로 자신을 이끌어줄 속죄에 굶주려 있었다. 신성한 자가 에그시에게 자랑스럽다는 미소를 보냈다. 그가 칼을 갈았다. 평소에 그가 칼을 갈고 그것을 내리꽂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는데, 오늘 신성한 자는 에그시를 조용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에그시는 의아해했다.
한없이 차분하고 부드러웠던 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동시에 에그시는 자신이 예배를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그 시간이 끝난 뒤에야 공간에 감돌던 냄새를 맡았다. 에그시에게 칼이 꽂혔다. 그것은 대속이나 속죄가 아닌 보다 더 깊은 죄악을 여는 악마의 인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