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To the Lighthouse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To the Lighthouse
세상의 모든 무게와 습기가 에그시의 발밑에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덕분에 에그시는 달리는 게 너무 버거웠다. 그럼에도 에그시는 뒤에서 자신을 떠미는 불꽃이 있고, 앞으로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하나의 이유가 있어 뛰어야만 했다. 총알이 가로막히니 칼바람으로라도 슈트를 찢어버리겠다는 기세로 까만 무리들이 방아쇠를 당겨댔다.
순간 다리가 꼬여서 에그시는 휘청거렸다. 그는 허겁지겁 코너로 숨어들었다. 오로지 전진하는 것에만 관심이 쏠려 있던 에그시는 비로소 자신이 발을 들인 구역을 바라보게 되었다. 붉고 푸른 철제 컨테이너들이 끝없이 정렬되어 있어 사방에 그림자가 가득했다. 에그시는 자신이 몸을 감출 곳이 꽤 많지 않을까 싶어 컨테이너 하나의 문을 당겨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소음만 냈을 뿐 에그시를 위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에그시의 얼굴에 낭패라는 기색이 스쳤다. 적들이 탄창을 새 것으로 바꿔 끼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서 에그시는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캄캄한 밤 아래에서는 하늘과 에그시의 지척에 있는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다. 빛이 없어서였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은 하나의 신기루와 다름없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에그시가 속삭였다. 그 말을 듣는 청자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멀린은 지원군을 모으느라 바쁜 모양인지 에그시가 보낸 통신에 대답하지 않았다. 에그시는 부지런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수류탄 두 개는 진즉에 소모해 버렸고 남은 탄약은 10발 남짓이었다. 에그시는 입술을 깨물고 소중한 총알 두 개를 날려 보냈다. 밤의 지평선이 일그러진 듯한 검은색 덩어리가 살짝 줄어들면서 움직임을 뚝 멈췄다가, 크게 화를 내면서 에그시를 추적하려고 했다. 에그시는 일부러 안경을 몇 번 만지작거렸다. 멀린은 답이 없었다.
에그시는 벌써 자신이 총에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언젠가도 맛본 바 있는 익숙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때도 에그시는 구석에 몰렸었고 듬직하게 자신을 지켜줄 탄창이 부족했으며 아무에게도 구조 신호를 보내지 못했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의 목적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자신이 서 있는 땅은 자꾸만 깎여 없어지는 것 같은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에그시에게 위태로움은 하나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었었다.
에그시가 다시 뛰었다. 그가 방금 전까지 머무르고 있던 자리에 45구경 탄환이 박혔다.
—에그시?
에그시가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쉬었다.
“젠장, 멀린! 이제 반응하는 거예요? 살려달라고요!”
바닷가 근처에 컨테이너들이 정박한 곳들은 으레 넓고 길다는 사실은 에그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쭉한 길을 다 달려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바닷물이다. 에그시는 밤과 물이 빚어내는 차갑고 날카로운 기류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에그시.
건너편에서 멀린이 말했다. 에그시가 이번에는 파란 컨테이너 뒤에 붙었다. 본래는 채도가 강한 색이었겠지만 주변이 어두워서 그것은 에그시가 입고 있는 양복과 똑같은 색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그시의 근처에서 에그시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총성이 들렸다. 그 소리는 빛이었다. 정박장의 끄트머리에 다 와 가던 에그시는 멀지 않은 곳에 하얀색 등대가 서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총성은 빛이 될 수 있었다.
—널 구해줄 사람이 거기 도착했어.
고결한 기사의 무기가 공기를 갈랐다. 에그시의 구둣발 앞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총에 딱 맞는 새 탄창이 배달되었다.
에그시는 자신감 있게 그것을 집으면서 해리 하트의 옆에 붙었다.
해리 하트는 언제나 에그시의 시간에 새로운 시작점을 찍어주었다. 해리 하트의 첫 번째 점을 통해서 에그시는 하찮은 실패만이 그득하던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두 번째는 기대하지도 않은 조력과 같았고 그로 인하여 에그시는 다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해리 하트는 에그시가 영속되기를 바라는 반복이었다. 마치 소금기 묻은 인생을 살았던 이들이 등대의 불빛이 끊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수평선을 훑어주길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해리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에그시는 가끔씩 해리의 그러한 모습을 훔쳐보았다. 해리가 있는 지점을 대각선 방향으로 쭉 늘리면 소리에 빛을 부여해 주었던 놀라운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리와 에그시가 나란히 가벼워진 권총을 거두었을 때는 뭉쳐 있던 적들이 모두 바닥에 흩어진 뒤였다. 해리가 팔을 내렸다. 에그시는 해리를 따라하지 않고 그를 꽉 안았다. 똑같은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재킷 자락들이 나풀거렸다.
“이젠 괜찮단다, 에그시.”
해리는 아슬아슬한 위기에서 벗어난 에그시가 동요했다고 생각을 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손길을 에그시에게 나누어 주었다. 해리를 안고 있는 에그시의 손가락 끝에 걸려 있던 권총이 기어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리 하트는 에그시에게 늘 새로웠으나 동시에 진실했다. 해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빛의 영역에 도착한 에그시는 이 순간 누구보다도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