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enstein/헨리하트] Reformative Identity
- Frankenstein, for Henry 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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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ade
Reformative Identity
헨리 하트는 자신의 뺨으로 손을 가져가 그것의 온도를 느껴보았다. 햇빛에 구애받지 않는 서늘한 공기가 들어오는 창가에 몇 분간 놓아두었을 때처럼, 약간의 따뜻함과 그걸 거의 다 덮을 수 있는 시원함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헨리에게 있어 그다지 비정상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급조된 혈액이 잘 순환하지 않는다. 헨리는 거울이 없어도 자신의 얼굴이 초겨울의 바람을 맞은 듯이 혈색이 없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입구까지는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헨리가 카펫을 밟았다. 놀랍게도 부드러운 직물일 줄 알았던 카펫의 일부가 헨리의 구두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헨리가 살짝 발을 뗐다. 붉은색 덩어리가 뚝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헨리가 있는 세계는 무향의 특성을 고집하고 있어서 헨리는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지만, 그가 카펫이라고 여겼던 게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헨리가 전진하는 만큼 카펫이 사라져갔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위부터 무너져 내렸다. 먼지 섞인 공기가 휘몰아쳐서 헨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헨리는 걸었다. 제복을 입은 궁전의 경비병들은 장식용 총이 아닌 칼날이 날카롭게 살아 있는 세검을 뽑기도 전에 스스로 피를 뽑았다. 헨리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는 그저 걷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도 헨리는 궁전의 정문으로 들어가 경비병들에게 쌍권총을 겨눈 일이 없었다. 다만 약간 다른 방식으로 화려한 위선들에게 심판을 내렸던 게 전부였다.
헨리가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덮칠 재앙을 알았다. 헨리는 궁전이 전부 주저앉기 전에 가장 긴 복도를 가로질렀다. 여기저기 뚫린 구멍에서 독한 바람이 불었다. 정문에서 끝날 줄 알았던 붉은색의 길쭉한 덩어리들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헨리 하트는 피의 융단을 밟은 창백한 안색의 범죄자가 되어 궁전의 테라스로 향했다. 반(反)현실적인 파괴는 공간의 역전을 불러일으켰다. 순식간에 테라스가 꺼져 들어가서 헨리는 부서진 건물의 터에 안착하게 되었다.
특별하게 제작된 슈트가 아니라 일반적인 셔츠를 입은 해리 하트가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는 너무도 놀라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헨리가 홀로 짠 붉은 정의가 파도처럼 크기를 키우더니 해리를 덮쳐버렸다. 헨리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므로 힘껏 뛰어서 해리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의 순간이 지나가면 죄조차 추상이 된다. 헨리는 감각적으로 자신이 쌓았던 업들을 느낄 수가 없었다.
궁전의 잔해들이 씻기면서 땅이 깨끗해졌다. 그러자 이번엔 땅이 부서졌다. 헨리에겐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해리의 팔과 가슴을 끌어안고 해리의 심장이 움직이고 있음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때 해리와 헨리를 조용히 떼어내려는 손이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서 있던 곳은 하나의 섬이 되었다. 헨리는 자신이 해를 끼쳐 정신을 잃고 만 해리를 받치고 있는 에그시를 바라보았다. 유사인간의 안구는 어떤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에그시는 메마른 헨리의 눈을 보고 있었다. 헨리는 말없이 자신의 인공성이 응축된 두 개의 도형이 아니라 다른 것을 봐 달라고 에그시에게 전했다. 에그시의 입술이 벙긋거렸다. 헨리는 어떤 표정을 지었다.
헨리와 에그시가 해리의 두 손을 나누어서 잡았다. 한 교회에서 벌어진 사건 이래로 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휘말려왔던 해리 하트는 평상적인 사람의 온기와 불규칙적인 복제 인간의 심장 소리를 동시에 받아들였다. 해리 하트를 깨어나게 한 것은 그 두 가지였다.
해리가 눈을 뜨기 전까지 그 섬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꼭대기에 있던 십자가가 거꾸로 박혀 있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폐허를 연상케 할 만한 모든 요소가 사라졌다. 헨리는 만족했다. 지극한 행복에 대해서 그가 아는 바는 많지 않았으나, 적어도 이 공간은 헨리에게 충분히 행복한 곳이었다.
해리가 일어나서 기분이 좋아진 에그시가 두 사람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가 에그시는 헨리의 구두를 벗기더니 한 짝을 섬 밖으로 내던졌다. 헨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에그시가 남은 구두를 들어 헨리 앞에서 흔들었다. 헨리는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손짓했다. 해리도 반대하지 않았다. 에그시는 구두 바닥을 모래밭에 쓱쓱 문질러댔다. 가장 완벽한 신사가 고집할 법한 옥스퍼드화가 조금 더러워졌으나 헨리는 해리가 신고 있는 신발과 비교해보고는 에그시가 빚어낸 상태를 순순히 인정했다. 에그시가 모래밭 가운데에 헨리의 구두를 두고 두 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셋은 하늘을 응시했다. 태양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석도 아닌 거대한 동그라미가 점점 선명하게 하늘을 지배해갔다. 에그시는 그 크기에 놀라워하면서 저게 지구랑 충돌하면 지구가 산산조각 나겠다는 말을 했다. 헨리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 그 그림자의 정체를 단정내리고 싶지 않았다.
“하트 씨?”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헨리는 순간적으로 경계했다가 자신이 모든 시간의 총체를 목격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무엇을 보았나요?”
헨리가 긴장을 풀었다. 박사는 헨리가 대답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는 상체를 천천히 들다가 유리창 너머로 에그시에게 뭐라 말을 건네는 중인 해리를 발견했다. 헨리는 이곳에 해리와 같이 오지 않았었다.
해리가 아무래도 꾸중을 쏟아내고 있는지, 슬금슬금 해리의 시선을 피하던 에그시는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헨리와 눈을 맞대고는 아는 체를 했다. 해리가 고개를 돌렸다.
“하트 씨?”
“…나쁘지 않군.”
“예?”
해리가 유리창 밖에서 헨리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헨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기다리는 일행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박사님.”
헨리는 당황한 박사를 뒤로 하고 방에서 나왔다. 벽면에 붙은 ‘스피리추얼 코칭Spiritual Coaching’이라는 거창한 글자는 애초부터 헨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해리가 방문을 닫는 헨리에게 말했다.
“에그시가 자네에게 쓸데없는 부탁을 한 모양이군.”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전 그냥 재밌을 지도 모르겠다며 명함 하나 준 게 다라고요. 아, 진짜!”
“그게 헨리를 부추긴 게 아니고 뭐겠니, 에그시.”
에그시가 툴툴거렸다. 해리가 앞장서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 박사님이 그래도 실력이 좋으니까 그 이상한 놈도 납치 아닌 납치를 해서 자기 정신 좀 감정해 달라, 신비로운 무의식에 대해 한 수 가르쳐 달라 하는 소리를 했을 거 아니에요.”
“맞다. 아주 이상한 놈이었지. 마을 주민들을 선동해서 그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시리아 반군으로 편입을 시키려는 생각을 한 미친놈이었어.”
“아, 돌겠네.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헨리한테는 입 꾹 다물고 있을게요. 해리!”
“…정작 나는 괜찮았는데, 왜 둘은 말다툼을 하는 건가?”
해리가 그 말에 멈칫하여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2초쯤 늦게 눌렀다. 기회를 잡은 에그시가 눈을 반짝거렸다.
“진짜요? 어땠는데요?”
해리가 에그시를 옆으로 치워냈다.
“헨리, 이 박사의 전문 분야라고 하는 건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나지 않았어. 크게 신경 쓰지 말게. 영혼 코칭이라니, 표현은 참 거창하군.”
“물론 그건 당신의 몫이겠지, 해리.”
엘리베이터가 일반적인 효과음을 내면서 세 사람을 위해 문을 열었다. 해리는 몸에 익은 대로 헨리와 에그시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하강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해리까지 탑승을 완료했을 때 헨리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게 될 지는 당신이 정하게 될 테니까.”
해리와 에그시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란히 눈동자만 굴렸다. 헨리는 잠시 하늘의 빛깔을 바꾸었던 미지의 대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하늘에는 파란색이 없었고, 오래된 도화지 같은 색깔이 담겨 있었다.
혁명과 개혁이 단 한 차례 접점을 찾은 역사가 있다. 이상향을 위해 힘쓰던 기사가 주군이 재창조하려는 이상적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헨리는 아주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간이라면, 무채색의 하늘을 물들였던 그 그림자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한 하나의 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 사람이 비슷한 걸음으로 건물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