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 The Dull Flame of Desire 05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기자는 볼에 갑자기 와닿는 딱딱한 물체에 몸을 뒤척였다. 베개와는 전혀 다른 서늘한 감촉은 서서히 기자를 잠에서 깨웠고, 그 물건의 정체가 총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완전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자를 겨눈 존재는 그대로 그를 침대에 눕힌 뒤 말했다.
“아직도 그를 찾고 있나?”
“누..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부자가 폭로했던 프로젝트의 참여 인원 가운데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잖나. 이제 그 일에 관해서 캐고 다니는 건 당신뿐인 것 같던데.”
잠에서 깬 지 10분도 되지 않았지만, 기자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작동하면서 괴한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더 이상 붙을 곳도 없이 밀착된 총구가 관자놀이 끝까지 밀려드는 것 같았다. 기자가 바들바들 떨며 대답했다.
“그, 스팍 말입니까?”
반문이 없는 걸 기자는 재주껏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름도 특이해서 금방 찾을 줄 알았더니 어, 없었습니다. 몇 번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포기할까 생각했..”
기자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강하게 자신을 매트리스 끝까지 미는 악력을 느끼면서 기자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다. 귀신이나 유령보다는 죽음의 신에 어울리는 낮은 음색이 말했다.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존 해리슨이 잠에서 깨어났다. 의외로운 꿈을 꾸었다. 아무래도 그의 무의식 역시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형제에 관한 기억은 해리슨을 충만하게 했다. 대개는 그것이 살인을 향한 욕구로 이어졌지만, 그런 여운 없이 해리슨은 편안하게 입꼬리를 올릴 수 있었다. 기다리던 최후가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 부탁하셨던 자료는 메일로 보내뒀어요.
“역시 빠르네. 고마워.”
- 그리고 존 해리슨이 뜬금없이 바이올린을 갖다 달라고 요청하던데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무시할까요?
잠시 어깨와 머리로 핸드폰을 고정한 채 키패드를 누르느라 커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여자가 재차 물었다.
- 짐?
“오, 아니. 어.. 뭐 딴 얘기는 없었어? 이유를 댄다거나 조건을 건다든가. 빈말을 할 놈이 아닌데.”
- 갑자기 바이올린 타령은 왜 하냐고 묻긴 했었는데 별 의미 없는 답변이었어요.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고 즐겁다고 하던데요. 의심스럽죠? 거짓말 탐지기라도 동원해 볼까요?
경력이 오래지 않은 그 요원은 매사에 지나치게 열의가 넘쳤다. 커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으면서 멍한 음성을 흘렸다. 핸드폰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이 컴퓨터에 걸린 암호를 풀고 메일함을 열고 있었다.
“그것까진 됐고, 이번에 있을 검사에서 제대로 몰아붙여줘. 이제 끊는다.”
마지막까지 힘찬 인사를 남기는 후배와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커크가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았다. 첨부된 파일에는 각 신문사들의 기사나 영상 인터뷰 등, 온갖 자료들이 꽉꽉 담겨있었다. 커크가 무작위로 문서 하나를 클릭했다. 그러고 보니 커크는 이태까지 존 해리슨이 죽였던 피해자들에 관해서 세심하게 들춰본 일이 없었다. 그는 경찰도 FBI도 아닌지라 그가 무려 15년 동안이나 벌여온 수많은 사건들에 일일이 신경 쓸 명분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커크는 자신이 처음 보는 정보들을 유심히 머릿속에 담아갔다. 존 해리슨에게 마지막으로 당한 피해자는 마커스라는 남자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깔끔한 방식으로 처리된 반면 유독 마커스에게 많은 총알이 박힌 게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커크가 사건의 날짜를 확인했다. 해리슨이 자신의 집을 불태우면서 자수한 날에서 뒤로 많이 밀린 때였다. 그것으로 커크는 직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존 해리슨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살인을 멈췄고 정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잠깐, 마커스?”
해리슨에게 집중되어 있던 커크의 사고가 갑자기 전환점을 맞았다. 기억을 짜내던 그는 벌떡 일어나 블라인드를 모조리 내리고 책장을 헤집기 시작했다. 움푹한 곳에 숨겨져 있던 금고의 앞면에 드러났다.
커크는 아직도 자신이 이 금고를 열어 볼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는 커크가 존 해리슨과 레너드 맥코이와 스팍을 담당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며, 기관 안에서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치 중 하나였다. 커크가 금고를 열고 낡은 파일을 꺼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붉게 찍힌 ‘기밀 사항’이라는 글씨는 여전히 선연했다. 커크가 첫 장을 넘겼다.
같은 시각 맥코이 역시 존 해리슨이 던져 준 수수께끼를 붙잡고 있었다. 그는 마커스 사거에서 어떤 특이점을 읽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커크와는 다르게 존 해리슨의 살인 행적들을 하나씩 살펴본 적이 있는 맥코이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존 해리슨은 한 가지 방법을 고수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순환고리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눈에 띄는 것은 날짜였다. 사건은 해리슨이 자수한 날로부터 두 달은 더 전에 발생했다. 맥코이는 해리슨이 보통의 사이코패스들이 구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냉철하고 합리적인 논리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존 해리슨은 자신의 우월함을 져버릴 인물이 절대로 아니었다. 맥코이가 그의 어두운 미로를 들여다보려 애썼다.
더불어서 그가 분명히 딴 속셈이 있어서 찾아왔을 이곳에서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피실험자는 스팍 하나뿐일세. 그마저도 변형된 외모 때문에 우리가 데리고 있은 덕에 가능했다는 걸 알지 않는가. 바깥으로 나간 애들은 전부 죽었어.
박사가 폭로한 이름들의 맨 마지막에 존 해리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야말로 제일 먼저 죽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네. 마지막에 들어와서 별다른 취급도 받지 못한 채 그냥 프로젝트에서 나왔어야 했을 테니. 존 해리슨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
왜 그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우리는 피실험자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어. 그런데 알아서들 다 나자빠졌지 않은가. 육체적, 정신적 부작용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이었어. 당시에 존 해리슨이라는 아이가 몇 살이라고 나오던가?
..9살이요.
절대 못 살았을 거야.
커크가 어두운 회의실에서 나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있지, 그 놈이 요구했다던 바이올린. 들여올 때 철저하게 검사해.”
기관에서 가장 체격이 좋고 격투 기술이 뛰어난 남성 요원 하나가 무뚝뚝하게 케이스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요원의 양 옆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이 반듯한 자세로 총을 쥐고 있었다. 존 해리슨이 느릿하게 걸어와 지퍼를 열었다. 아름다운 곡선과 고풍스러운 나뭇결이 드러난 바이올린이 들어 있었다. 해리슨이 귀를 바짝 대고 현을 튕겨보며 소리를 가늠했다. 요원들이 물러나려고 했다.
“맥코이 박사에게서 연락은 없었습니까?”
그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았든 못 찾았든, 솔직한 성격의 맥코이가 몸이 달아 있을 시간이 되었다고 여겼다. 깍듯하고 정갈한 말투로 해리슨이 그들에게 물었다. 물론 그것은 대단히 이질적인 풍경이라, 세 요원들은 약간씩 인상을 찡그리거나 흠칫했다.
“..상담 일정이 잡히면 알려주겠다.”
문이 쾅 닫혔다. 해리슨이 고상한 손동작으로 바이올린과 활을 집었다. 창문도 없는 좁은 방 안에 뚫려 있는 환풍구는 언제든 닫혀서 그가 숨을 못 쉬게 만들 수도 있었고, 밖으로는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이들이 부대 수준으로 부지런하고 빈틈없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해리슨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가 몸담았던 어떤 조직의 연구원들이 아이들의 안정을 위한답시고 자주 틀어주었던 음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