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Novelette

[Kingsman/해리에그시] Public Evil 08

Jade E. Sauniere 2015. 8. 3. 16:30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Eggsy and Galahad

- Written by. Jade


공공의 악

Public Evil



* 해리와 에그시Harry and Eggsy



  에그시는 3일 만에 해리 하트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에그시보다 먼저 해리가 와 있었지만 에그시는 당혹해 하지 않고 해리에게 인사했다. 해리가 사무실 문을 여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해리는 하던 대로 최근에 들어온 사건의 담당 검사에 대한 정보를 에그시에게 요청했다. 물론 그것은 검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사의 내역을 뽑아오라는 뜻은 아니었기에 에그시는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법원 내부에 앉아서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듣는다든가, 몇몇 기관들을 돌아다니면서 여직원들에게 살가운 태도로 검사에 관한 소문들을 물어보았다. 에그시가 맡는 일들은 원래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서 해리 하트는 자신의 완벽한 승리를 계획했다.


  에그시는 그렇게 오전 내내 바깥에 있다가 점심 무렵이 되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1시간 반 뒤에 재판 일정이 있어서였다. 에그시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해리와 함께 법원에 가는 편이었다. 

 

  “제가 챙겨야 할 건 없고요?”

  “아, 오늘은 사무실에서 기다려주겠니? 대신 저녁은 같이 먹자.”


  해리는 팔에 반으로 접은 재킷을 걸면서 말했다. 그는 특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또 에그시는 해리의 행동 속에 숨은 저의를 물어보는 일을 잘 하지 못했다.


  “네, 알겠어요.”

  “내가 알기로 오늘 오후 시간에 올 사람은 없어. 그러니 편히 있어도 된다.”

  “네. 다녀오세요, 해리.”


  해리가 떠났다. 에그시는 잠시 해리의 등을 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빙글 돌았다. 사람이 털썩 앉는 바람에 의자가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도, 해리는 승강기에 오르면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에그시의 모습을 생각했다. 


  에그시는 변함없이 성실했고 결백했다. 해리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가지게 된 건 에그시의 잘못이 아니었다. 법원으로 가는 길에 에그시를 초대하지 않은 것도, 해리가 어떤 면으로든 에그시를 원망해서가 아니라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사이 갤러해드의 부하가 카메라며 도청기를 달 것이 걱정되어서였다. 그 일련의 사실들은 흔들림 없는 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해리는 모든 것을 객관화의 늪으로 밀어버리고 법정을 향해 갔다. 


  에그시는 20분 정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시간에 에그시가 몸을 굳히고 한 일 중에는 해리가 자신을 떼어놓고 법원으로 간 까닭을 추측하는 것도 있었다. 에그시는 이렇게 두 사람이 따로 떨어져있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흉악하게 생긴 마피아에 대항하여 해리를 지키고 말 거라는 정의감에 불타는 건 아니었지만, 에그시는 그래도 자신과 해리가 붙어 있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에그시는 눈썹 옆을 쓱쓱 긁었다.


  해리가 어떠한 일을 시키고 간 게 아니라서 에그시는 자신의 태도를 약간 뒤늦게 고쳤다. 에그시는 해리의 속내를 파악하는 일을 그만두고 드라마를 틀었다. 다 본다고 해서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며 해리가 추천해준 작품이었다. 에그시는 40분짜리 드라마를 한 편 다 보고, 그 회에 나온 사건의 내용을 수첩에 요약해본 다음 낮잠을 잤다. 해리의 말대로 오후에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은 없었다.


  시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리가 일을 마치고 에그시를 데리러 온 시각은 정확히 저녁을 먹기에 알맞은 시간대였다. 에그시는 편안한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자신의 옷차림을 걱정했지만 해리는 그렇게 엄격한 레스토랑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에그시는 해리의 기준을 의심했다. 해리는 에그시가 지금까지 본 식당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곳으로 그를 데려간 탓이었다. 에그시는 자신이 해리보다 체격이 작다는 걸 알아 차마 그의 재킷을 빌려 입겠다고 말만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자신의 티셔츠를 가려줄 무언가를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문 앞에 서 있는 직원은 긴장한 티가 역력한 에그시를 내쫓지 않았다.


  에그시는 여전히 주변의 분위기에 조금 겁을 먹고 있었다.


  “제가 메뉴판을 봐도 뭘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해리가 골라주세요.”

  “네가 먹고 싶은 걸 골라야지.”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요. 해리를 믿을게요.”


  결국 해리 혼자서 주문을 했다. 에그시는 서로 다른 요리들이 나오겠구나 하는 사실만 간신히 알아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사무실에는 별일 없었고?”

  “그럼요.”

  “생각했던 것보다 재판이 늦게 끝나서 일찍 돌아가지 못했구나.”

  “그 정도야 저도 당연히 알죠. 해리가 공부하면서 보라고 했던 드라마 틀어놓고 잘 있었어요.”


  음식이 나와서도 해리는 최선을 다해 에그시와 대화를 이어가보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일주일은 더 쉬어도 됐을 텐데.”

  “집에 있자니 마땅히 할 것도 없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재밌게 노는 방법은 잘 몰라요.”

  “휴일에는 뭘 했니?”


  해리가 그렇게 물었을 때 에그시는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썰리는 것에 에그시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가 고기를 맛보았다. 에그시는 해리에게 답변을 주는 것보다 맛있다는 감탄을 먼저 내뱉을 뻔했다. 스테이크는 훌륭했다. 에그시는 근래 자신의 혀가 대단히 호강한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갤러해드가 범죄를 그의 업으로 삼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고급스러우면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레스토랑을 운영해도 좋았을 것이었다.


  “그냥 집에서 한 번 영화도 보고, 마트도 갔다 오고 청소도 하고 그랬어요. 집 안을 좀 관리했죠. 그렇게 평화로운 것도 나쁘지 않기는 했는데, 지나치게 조용한 건 그것대로 또 문제가 있더라고요. 저는 아무래도 몸을 움직여줘야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해리는요? 저 없는 동안에 일 많았어요?”


  이번에는 해리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느라 조금 늦게 대답했다.


  “…아니. 새로운 의뢰인은 없었고 기존에 맡고 있었던 사건들을 처리했단다.”


  에그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해리는 요리 잘해요?”

  “그렇게 잘하지는 못해. 긴급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은 만들 줄 알지만, 근사한 메뉴에는 손도 못 댄단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했니?”


  에그시는 무난한 속도로 비워지고 있는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해리라면 이 정도 요리는 집에서 구현할 줄 알 것만 같아서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구나.”


  갤러해드가 만들어준 저녁을 맛본 경험이 없는 해리는 에그시가 무슨 맥락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에그시가 갤러해드로부터 벗어나고 해리의 사무실과도 멀어져서 보냈던 나날들처럼 단조로움 속에 휩싸여 있었다. 





  며칠 뒤 점심시간이었다. 그전까지 해리와 에그시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은 없었다. 작은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바로 두 사람이 종이상자에 포장된 면 요리를 나눠 먹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에그시는 살짝 놀랐다. 일단 벨소리가 울린 건 에그시의 것이 아니라 해리의 핸드폰이었다. 그런데 해리는 점심을 먹을 때는 핸드폰이 무음 상태에 돌입하게 만드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방금 그 소리는 에그시가 아는 음악이 아니었다. 


  “…이 전화만 받고 오마.”


  에그시는 의아해하느라 해리를 향해 고갯짓 하는 걸 잊어버렸다. 


  “핸드폰을 하나 더 사셨나?”


  해리의 두 번째 벨소리에 관한 상념들이 점점 커지려고 할 즈음에 에그시의 핸드폰도 지르릉댔다. 에그시는 순간적으로 해리가 사라진 방향을 한 번 쳐다보았다.


  “여보세요?”

  —상처는 어때.


  에그시는 입을 동그랗게 벌렸지만, 목소리를 내는 일은 지체했다. 그는 잠깐 머리를 굴렸다.


  “갤러해드?”

  —그래.


  에그시가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화면은 까맣기만 하고 발신인의 번호는 나와 있지 않았다. 에그시가 턱 아랫부분을 찡그리면서 입술 끄트머리를 내렸다.


  “그때 생각 없이 수영을 해서 조금 상태가 이상해지긴 했는데 큰 이상은 없을 거래요. 나쁘지 않아요.”


  에그시는 그저 물어보는 이가 있기에 응답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안부 인사 돌려요?”

  —다 나으면 또 와도 상관없어.

  “수영장에요? 난 거기 주소 몰라요. 차도 없고.”

  —주소는 알려주면 되고, 차는 내가 보내주면 돼.


  에그시는 힘들게 집어 올렸던 면 한 가닥을 상자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거 참. 갑자기 날 찌른 게 미안해지기라도 한 거예요?”


  —그 때 너에게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야. 널 찌르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지. 나는 널 미워하지 않아.


  그것은 지금 에그시에게 꼭 필요한 주문이나 다름없었다. 에그시는 입만 몇 번 벙긋거리다가 복도로 나갔던 해리가 돌아오는 걸 발견했다. 


  “…해리가 오네요. 그만 끊을게요.”


  에그시는 서둘러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면을 후루룩 삼켰다. 해리가 빈손으로 와 에그시의 근처에 앉았다. 에그시는 슬쩍 해리의 표정을 살폈다. 어떤 긴급하고 비밀스러운 전화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 내용이 썩 해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 모양이었다. 내려앉은 해리의 눈동자는 서늘했다. 에그시는 혹시 자신이 해리를 괴롭히고 있는 거냐며 물어보고 싶었다.


  음식을 다 먹어갈 즈음에 에그시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에그시가 박스를 접으면서 물 흐르듯 휴대전화의 버튼을 눌렀다. 갤러해드가 정말로 주소를 보내주었다.


  “내가 치울 테니 주렴.”


  어느새 탁자를 정리한 해리가 에그시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에그시는 자신이 몇 분 정도 멍하니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당황했다. 


  “아… 죄송해요.”

  “그럴 거 없어.”


  에그시는 해리에게 상자와 일회용 포크를 넘겨주고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에그시는 아직 칼에 찔린 상처를 조여주고 있는 실밥도 풀 수가 없었지만, 그런데도 갤러해드가 자신을 해한 일은 1년은 된 것처럼 느껴졌고 그가 수영장을 개방해주고 와인을 대접해준 일은 사흘밖에 되지 않은 생명력 넘치는 사건처럼 다가왔다.


  “중요한 연락이 왔다면 나가서 확인해도 좋단다.”


  해리가 서서 에그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그시가 손을 홰홰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에그시는 깨끗하게 손을 비웠다. 해리는 여전히 에그시의 위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에그시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화제를 꺼냈다는 것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그 결과가 두려웠다. 해리 하트의 눈동자는 상냥하지 않았다. 에그시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새에 눈썹을 슬프게 늘어뜨리기라도 했는지 해리의 얼굴빛은 금세 평온해지긴 하였다. 그러나 에그시는 해리의 차가움을 잊지 않았다. 


  해리 하트가 에그시를 버린다면 에그시가 갈 곳은 하나, 아니면 둘이었다.


  “내가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생겼어.”

  “네?”


  에그시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요, 해리. 출장이요?”

  “그래. 나도 사무실에 없을 테니, 너도 당분간은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일이 어느 정도 끝나면 연락하마.”

  “어디로 가시는데요? 멀어요?”

  “이 나라를 출국해야 해.”


  에그시는 자신이 갤러해드와 함께 있는 동안 해리에게도 자신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확신했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해리에게 준 영향이 두려웠다. 해리 하트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그의 원칙들이 깨지는 게 에그시의 눈에 빤히 보였다. 그 때문에 에그시는 일부러 신경질을 꾸며내면서까지 해리의 일정에 반대했다. 


  “아니, 어떤 클라이언트가 변호사한테 왔다 갔다 하라고 그래요? 이태까지 한 번도 그런 의뢰 받아준 적 없잖아요. 나중에 해리가 더 고생할 수도 있어요. 가지 마요.”


  “그건 네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에그시.”


  에그시의 목구멍이 꽉 막혀버렸다. 어떠한 사건을 받고 거절할지는 전적으로 변호사의 재량인 것이었다. 해리의 발언은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에그시가 끼어들어 벌릴 틈은 없었다. 에그시는 입술을 깨물고 해리를 응시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 말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도록 해.”


  해리는 방에서 홀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에그시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깜빡였다.


 해리는 에그시에게 절대로 진실을 밝힐 의향이 없었다. 자신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사업을 도와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된 처지와 선량한 청년이 자꾸만 연결되는 바람에 자신의 정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은 해리 하트만이 떠안아야 하는 요소들이었다. 해리가 가끔씩 에그시를 원망하다가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린다는 것은 또 다른 미움으로라도 가려야 하는 무엇이었다.


  두 개의 핸드폰이 해리와 에그시의 책상에서 까맣게 잠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이따금 주인의 의식을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