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Public Evil 07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Eggsy, and Galahad
- Written by. Jade
공공의 악
Public Evil
* 해리Harry
갤러해드의 집으로 향하는 도로는 이번에도 뻥 뚫려있었다. 해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가 달리고 있는 2차선 도로도 실은 갤러해드가 지방자치기관에게 로비를 벌여서 자체적이고 은밀하게 깐 것일지도 몰랐다.
자연은 자신의 등을 밟고 있는 발이 누구의 것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순도 높은 향기가 주택의 사방을 아우르고 있었다.
해리는 현관 앞에 바짝 차를 세우고 문을 두드렸다. 해리가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니트를 입고 있었지만 동시에 타이도 두르고 있었고 매우 이지적인 인상을 풍겼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발을 한 짝 물리면서 질문했다.
“갤러해드는?”
“다른 분과 약속이 있으셔서 절 대리인으로 세우셨습니다. 들어오세요.”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이미 몇 장의 종이와 펜 두 자루가 준비되어 있었다. 해리는 자리에 앉기 전부터 종이에 적힌 내용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잘 판단하셔야 합니다.”
남자는 해리가 서류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을 제재하고 싶지는 않으나 당장은 여기에 집중하라고 넌지시 지시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해리가 남자를 바라보았다.
“보스가 직접 로버트를 찾아서 그를 죽일 겁니다. 당신이 로버트를 확보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걸 알고 계시니까요.”
해리는 너무나 놀랐다. 판사, 검사, 상대편 변호사와 배심원단, 심지어는 자신이 변호를 맡은 의뢰인까지 상대로 삼아가면서 다져졌던 침착함고 크게 타격을 입었다. 남자는 그런 해리는 개의치 않아하면서 해리가 읽기 쉽도록 서류를 돌려주었다.
“만약 보스가 당신의 의뢰인을 죽이는 데 동의하신다면 이 서류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류에 쏠려 있던 해리의 관심이 증발했다.
“…나 역시 갤러해드에게 말할 것이 있었는데.”
“당신에게 해가 될 만한 소문을 퍼뜨린 자는 이미 이쪽에서 찾아내 격리시켰습니다. 보스가 일을 다 마치시고 나면 그도 죽이겠지만 그 자는 보스의 소유이고 당신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자에 관해서는 그쪽에서 염려할 게 없습니다.”
해리가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펜 뚜껑을 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해리는 자신의 의문점을 풀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만 해가 될 이야기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보스와 당신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보스에겐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보스의 완벽함과 섬뜩함을 더 강화시켜줄 테니까요. 손해를 보는 건 당신입니다.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변호사에게 밤보다 어둑한 곳을 휘젓고 다닌다는 이미지가 덧입혀진다면 아무래도 오래 활동하기는 어렵겠지요.”
남자의 말은 구구절절 치가 떨리도록 논리적이었다. 소문에 피해를 보는 쪽은 해리였다. 그리고 그 소문을 받쳐주는 증거가 너무도 명확하고 가시적이라서, 초기에 불씨를 꺼버리지 않으면 그것은 수많은 땔감들을 먹고 연기를 피울 게 틀림없었다.
해리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그가 펜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묻죠. 내 서명은 왜 필요한 겁니까?”
“서류를 자세히 읽어보세요.”
해리가 서류를 홱 손에 들었다.
그것은 흠 잡을 데 없이 구성된 하나의 계약서였다. 해리는 점잖고 우아한 말씨들을 나타낼 수 있도록 엄선된 어휘들 사이사이에서 자신이 불리한 입장이라는 숨겨진 진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 해리가 인질인 에그시를 되찾는데 필요한 정보를 끝내 제공하지 못해서 생겨난 조항들이 해리의 손끝을 턱턱 구부러뜨렸다.
서류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해리 하트가 로버트를 넘겨주지 못했으므로 본디 갤러해드 쪽에서 처리해야 하는 에그시를 돌려주는 일뿐만 아니라 해리 입장에서 로버트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발생했으므로 그것까지 갤러해드가 해결해주는 대신 해리가 갤러해드 조직의 법률적 자문을 간헐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리는 갤러해드가 로버트를 죽일 의도가 없었으나 ‘고문변호사의 명예를 위하여’ 기꺼이 피를 묻히겠다는 뉘앙스에 기가 찼다. 해리는 남자의 코앞에서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내뱉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해리는 인내심을 발휘해 두 번째로 서류를 읽다가 자신이 가장 크게 잘못한 일이 로버트를 놓쳤다는 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해리가 에그시를 풀어줘야 했기 때문에 떠안은 조건이었다. 순간 그는 위험하지만 충분히 그 위험성을 감내할 수 있는 선택지를 떠올렸다. 해리는 자신이 갤러해드에게 발목을 묶인다는 게 너무도 싫어 에그시를 포기할 뻔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남자가 목소리를 냈다.
“서명하실 겁니까?”
해리는 펜을 잡았다. 남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해리는 갤러해드의 필체 옆 공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해리 하트의 희생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에그시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됐습니까?”
“계약서의 사본을 가지고 가실 건가요?”
“필요 없습니다.”
해리는 쏜살같이 짐을 챙겼다. 남자는 다소 엉뚱하게도 집 안에 켜져 있던 전등들을 천천히 끄기 시작했다. 그러자 창문을 드리운 커튼 덕분에 내부는 급속도로 어두워져갔다.
해리가 차의 운전석 안으로 들어갔다. 물방울이 튀는 소리인지, 나뭇잎이 뒹구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
오늘은 사무실을 나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음에도 오래된 리듬을 잊지 못한 해리의 육체는 그가 늘 일어나던 시각에 그의 정신을 깨웠다. 해리는 단호하게 눈을 감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일어나야 했다.
해리가 자기 전 확인했던 갤러해드의 문자메시지가 아직도 핸드폰의 액정 정면에 떠올라 있었다. 해리는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하늘은 흐리지 않았으나 화창하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
모호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해리는 에그시를 데리러 향했다.
타의에 의하여 어느 한 구석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해리와 달리, 에그시는 무척이나 멀쩡하고 또 한결같은 모습으로 해리를 반겼다.
“해리!”
에그시가 두 팔을 열심히 흔든 반면 해리는 가볍게 고개만 까딱했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구나.”
“네.”
“다리를 찔렸다고 하지 않았니?”
“낫고 있는 중이에요.”
해리는 그 다음에 에그시에게 물어볼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해리는 정석적으로 에그시를 맞이했고 그를 위해 승용차의 뒷좌석을 열어주었다.
에그시를 차 안에 태우고 걸음을 옮기면서 해리는 갤러해드를 응시했다. 갤러해드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눈썹이나 입매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해리는 그것이 그 남자가 웃는 법이라고 단정했고, 또 그것이 그 자의 특색과 소름 돋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해리는 더 오래 갤러해드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해리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에 들어가 있는 에그시의 얼굴은 해리의 눈꺼풀에 닿으려다가 밀려나버렸다.
해리는 아주 조용하게 운전했다. 에그시는 이전에 해리의 차를 얻어 탄 경험이 몇 번 있어서인지 차 안의 적막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음악이라도 틀어줄까?”
해리는 정면을 보면서 말했다. 좌석에 파묻혀 있던 에그시가 잠시 허리를 들었다.
“전 괜찮아요. 해리가 듣고 싶으면 틀고요.”
“도시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리니까 졸리면 자도 된단다.”
“알겠어요.”
에그시는 해리가 50분 정도를 달리자 잠이 들었다.
에그시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해리는 새 핸드폰을 구입해야만 했다. 앞으로는 갤러해드가 보다 더 용이하고 안전하게 해리에게 연락을 할 수 있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해리가 준비해야할 몫이 있었다. 해리는 어젯밤 잠들기 전 여러 사법기관들에서 갤러해드와 그의 조직의 소행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사건들을 검색했었다. 해리는 그것들 중 하나가 자신의 무릎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해리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에그시는 더욱 깊은 잠에 빠지고 있었다.
해리는 후회했다가, 후회하지 않았다가, 다시 후회했다.
그는 범죄자에게 며칠간 잡혀 있었던 피해자가 꼭 들어야하는 말들을 해주었다. 집에서 푹 쉬라면서, 당분간은 휴가를 줄 테니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속뜻이 담긴 말들을 간신히 소리 냈다. 집으로 간 해리는 일시적인 자유를 약간이라도 더 완벽하게 만들어보려고 갤러해드가 알고 있는 두 종류의 핸드폰을 모두 꺼놓고 양주를 마셨다.
그 날 하루는 아마 거의 모두에게 일상적인 날이었을 것이다. 기상이변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중심가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빌딩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어제 방송되었던 뉴스와 명확하게 구별이 가지 않는 프로그램이 반짝였다. 해리는 10분 정도 뉴스를 듣다가 텔레비전을 껐다. 어떤 채널에서도 해리 하트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폭로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부랑자처럼 보이는 남자와 마피아 조직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내보내지도 않았다.
오직 해리만 그 모든 것에서 가시를 발견하고 있었다.
⁂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잠긴 사무실을 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거기다 그 때 해리를 붙잡고 있던 건 두통이었다. 과음을 하지 않았는데도 물이나 다른 음식 없이 양주를 마셨더니 몸 구석구석에서 오늘은 평소 같지 않다며 주황색 표시등을 치켜들고 있었다. 해리는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물과 함께 알약을 목으로 넘겼다. 그는 물을 한 번 더 마시고 자리에 앉아 필기구를 잡았다.
해리는 빠르게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 능했다. 그는 곧 그가 보고 있는 자료 외의 모든 걸 잊어버렸다. 만일 갤러해드가 그런 식으로 핸드폰과 같이 작업과 필수적인 연관성이 없는 요소들을 망각해버린 해리의 관심을 잡으려면 몸으로 행동을 취해야만 할 것이었다. 에그시가 헉헉거리면서 해리의 사무실로 들이닥친 것처럼 말이다.
해리는 얼떨결에 보고 있던 자료들을 들고 방문 바깥으로 나갔다. 에그시의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에그시? 지금 출근한 거니?”
에그시는 원망과 억울함이 조금 섞여 있는 목소리로 자신이 전화를 건 걸 몰랐냐고 물었다. 해리는 그 때 비로소 자신이 핸드폰을 꺼 놓고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리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감행한 이유를 에그시에게 말할 수 없어, 더욱 더 일상적인 모양새로 에그시에게 왜 전화를 걸었냐고 물었다. 에그시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울려고 했다.
“해리랑 통화가 가능한 시간인데도 해리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해리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나는 그 자에게 납치되지 않았어.”
그것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면 진실이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거짓인 말이었다.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방향은 에그시에게로 갔고, 거짓으로 이해하는 방향은 해리에게로 왔다.
에그시를 보내고 나서 해리는 핸드폰들을 켰다. 구입하지 얼마 안 된 전화기에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Test.
해리는 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