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Public Evil 06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Eggsy, and Galahad
- Written by. Jade
공공의 악
Public Evil
* 해리Harry
그 날은 아침 9시부터 재판이 있었으므로, 해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법원에서 그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했다. 그는 재판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의뢰인과 함께 조금 이른 점심을 먹었고, 자신의 편을 들어준 판사의 결정과 의뢰인의 호들갑스러운 감사 인사를 받은 뿌듯한 변호인의 모습으로 법정에서 나왔다. 예상보다 일정이 일찍 마무리되어 해리는 어제 연락을 했던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약속 시간을 앞당길 수 있겠냐고 물었고, 마침 상대편도 여유가 난다며 해리의 제안에 응했다. 두 사람은 연회색 건물 앞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한 아파트에 도달했다.
그곳은 해리가 에그시에게 기왕이면 직장 부근으로 이사를 오라며 추천해줬던 장소들 중에서 제일 일찍 탈락한 곳이었다. 해리는 아직도 정문 입구의 간단한 방범 장치가 작동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점은 아마 로버트도 좋아할 것이었다. 중개업자는 이전에 해리가 아파트를 둘러봤을 때보다 달라진 점은 없다고 했다.
“단기간으로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해리와 몇 번 거래를 해 본 경험이 있는 그 중개업자는 컴퓨터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린 다면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해리를 대하는 법을 잘 알았다.
“한 달 미만이라면 여기서 당장 계약서를 작성해드리도록 하지요.”
“그 정도로 길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끝내죠.”
두 사람은 간소한 아일랜드 식탁에서 계약서를 썼다. 해리는 계좌번호를 보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금을 지불했다. 그의 성미와 아주 잘 맞는 군더더기 없는 과정이었다. 중개업자는 해리에게 가볍게 악수를 청하고 물러났다.
해리는 꽉 억눌려 있던 머릿속이며 가슴 밑바닥에 맑은 산소가 들어옴을 느꼈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해리는 아파트에서 나와 바쁜 걸음걸이로 번화가에 들어선 뒤 바로 보이는 카페의 문을 열었다. 노동자들이 점심식사 직후 들이킨 카페인이 아직 효력을 발휘하고 있을 시간이라 카페 안에는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해리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놓고 카운터 근처에 서 있었다. 그 때 벨소리가 울렸다.
“네.”
—중간점검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해리 하트.
해리는 놀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최고로 험한 혼잣말을 내뱉고 말았다. 여전히 자신의 귀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이름은 ‘젠장’이 아니야. 갤러해드라고 불러주면 고맙겠어.
“갤러해드라고? 당신에겐 좀 과분한 별칭이로군.”
—3시간 뒤에 올 수 있나?
“날 어디로 불러내고 싶은 거지?”
해리는 갤러해드라는 남자가 부른 주소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해리에겐 익숙지 않은 곳이었다.
“…3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긴 한 건가?”
—지금 출발하면 15분 정도가 남겠군.
해리는 종업원이 아메리카노가 든 컵의 뚜껑을 닫는 걸 보고 급히 핸드폰의 밑부분을 감쌌다. 해리는 굳이 자신을 부르지 않아도 좋다며 손가락을 들어보이고는 커피를 가져갔다.
“나보고 당장 출발하라고?”
—그럼 조금 후에 보지.
해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전화는 끊겼다. 해리는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문서들을 챙기고 사무실 문을 잠갔다. 그도 집에서 하는 야근은 달갑지 않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해리는 주소를 미리 입력해 놓은 핸드폰을 거치대에 꽂고 차를 출발시켰다.
해리는 그의 주요 영역을 벗어나서 교외를 깊숙하게 가로질렀다. 평화로운 정경은 끝이 없었다. 해리는 약간은 신기하게 창문을 내다보면서 운전했다. 그가 핸들을 돌렸다.
명예교수로 활동하는 나이 먹은 신사가 가끔씩 학술지에 낼 글을 쓰면서 지내면 딱 어울릴 듯한 주택이었다. 해리는 그늘이 진 땅에 차를 세웠다. 그가 초인종을 지그시 눌렀다.
문이 열렸다. 이번에 문을 열어준 건 해리 하트의 얼굴을 가진 작자가 아니라서 해리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자신이 갤러해드로 불리기를 바라는 남자는 얼음과 샴페인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한 잔 하겠나?”
“아니.”
갤러해드는 전혀 무안해하지 않고 날씬한 잔에 샴페인을 채웠다. 부드러운 기포가 동그란 고리 모양을 그렸다.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보기보다 성격이 급하군.”
“그 날 이후로 로버트를 본 적이 없으면 당신은 꾸밈없이 그렇게 말했겠지.”
해리는 앉으면서 살짝 인상을 구겼다. 첫 번째 만남처럼 그의 등 뒤에는 닫힌 방문 하나가 있었다. 갤러해드는 굳이 설명했다.
“에그시는 이 대화를 듣지 못해.”
해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직 로버트의 위치에 관해 알아낸 건 없어. 변호사라고 해서 사람 뒷조사에도 능한 건 아니야.”
“그런가?”
“그래.”
갤러해드가 잠시 등을 돌렸다. 그가 식탁에 잠깐 내려놓았던 잔 안에는 아직 기포가 만연해 있었다.
“그건 좀 아쉬운 소식이로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샴페인을 한 번 마셨다. 훌륭한 황금빛과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기포가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다. 해리는 갤러해드가 자신과 비슷한 와인 애호가인지 문득 궁금했다.
“처음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건가?”
해리가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지. 그런데 그 질문이 무슨 쓸모가 있나?”
“나한테 로버트를 넘겨줄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내 호의를 사보겠다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보는데. 당신은 처음부터 혼자였나?”
“로펌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당신,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내가 왜 당신의 호의를 사려고 노력해야 하지?”
해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곧장 갤러해드에게 발언의 순서를 넘겼는데, 사실 그 빠르고 조금은 성급하게 들리기도 하는 응답마저도 해리 하트의 계산 아래에 있는 것이었다. 해리는 일부러 로버트를 넘겨줄 마음이 없냐는 갤러해드의 말에 관한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혼자서 로버트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면 내가 당신의 심부름꾼을 살려둬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 로펌에서의 일은 힘들었나? 이지적이고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난 더 큰 의미를 추구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갤러해드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번째로 샴페인을 마셨다. 그는 소파에 앉지 않았다. 해리는 갤러해드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자신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그런데 해리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갤러해드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사악하다고 생각하나?”
해리가 듣기에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질문이었다.
“당신은 범죄자야. 나는 당신이 납치를 저질렀다는 것만 알지만, 당신은 살인자일 가능성도 높지.”
“나는 굳이 누군가를 해하고 싶어서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일들을 저지르는 건 아니야. 그래도 내가 악한가? 내 의도가 순수하다 하더라도?”
“일반인과 범죄자를 구별하는 건 범죄자들에겐 어떠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지. 때에 따라서는 그걸 사악함이라 칭한다고 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나를 사악하다고 생각하겠군.”
해리는 남자가 무엇을 얻어내고자 끈질김을 발휘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해리는 그저 내키는 대로 답해버렸다.
“그래, 아마도.”
갤러해드의 낯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만 가지고 그의 현재 심경이 불편한지 아닌지 구별할 길은 없었다. 해리는 반사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잘 사용하는 자를 경계했다. 남자가 마지막 샴페인을 목으로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가 작은 종이를 건넸다.
“진전이 있거든 여기로 연락을 줬으면 해.”
해리가 쪽지를 확인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완벽한 휴대전화 번호였지만, 해리는 그것이 사법 기관에서 추적 및 조회가 가능한 번호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오늘의 점검은 여기서 끝인가?”
“샴페인 한 잔을 마시고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아니, 사양하지.”
갤러해드는 소파에 앉은 채로 몸만 돌렸다. 해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갤러해드의 집을 나갔다. 시원한 공기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차에 탑승한 이후 해리는 운전에만 몰두했다. 그에게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해리는 단 한 번도 갤러해드의 주택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
해리는 집에서 챙겨 온 스테인리스 텀블러에 든 커피를 마셨다. 태양보다 부지런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각성 성분이 필요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움직여가면서 차를 세우니 로버트가 발로 바닥을 긁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가 조수석의 차창을 내렸다.
“로버트!”
해리의 목소리를 들은 로버트가 날쌔게 얼굴을 내밀었다.
“타게. 내가 구한 집을 보여줄 테니.”
로버트는 조수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해리가 버튼을 조작하기도 전에 창문을 올렸고 문도 잠갔다. 해리는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로버트를 바라보았다가 차를 꺾었다.
정기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은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 아파트는 한밤에 내려앉은 정적을 계속 품고 있었다. 해리가 로버트를 안내했다. 그가 예상한 대로 로버트는 출입구의 키패드와 같은 기본적인 방범 장치가 기능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하루 만에 계약까지 마칠 수 있는 방들의 종류는 어느 정도 정해져있더군. 여기가 그래도 내가 아는 집들 중에서는 우범 지대와 가장 거리가 멀었네.”
로버트는 내부를 둘러보기는 했으나, 해리가 방금 한 말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기색을 잔뜩 풍겼다.
“이 정도면 정말 괜찮은데요. 진심입니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고.”
해리는 의뢰인을 향해 옅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오늘부터 법무부와 협상에 들어가려고 해. 자네에게 몇 가지 정보와 증언만 더 받아내면 그쪽에서 자네를 위한 새 신분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힘을 써볼 거야.”
“네, 변호사님.”
“열쇠를 줄 테니 원한다면 오늘부터 여기 머물러도 돼. 아마 내가 질문지를 받아올 것 같은데, 밤 7시 즈음에 여기 있어줄 수 있겠나?”
“그렇게 할게요. 알겠습니다.”
“협조해줘서 고맙네, 로버트.”
해리는 로버트에게 집 열쇠와 더불어 건물 출입구에 사용되는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로버트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해리의 말을 경청했다. 해리는 한 번쯤은 집 안에 있는 창문을 모두 열어놔야겠다며 살짝 농담을 걸었고 로버트는 크게 호응해주었다. 로버트를 아파트에 두고 나오면서 해리는 완벽하게 평안을 되찾았다.
사무실에 가는 건 시간 낭비였다. 다행히 준비성이 뛰어난 해리는 차 안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너끈히 보낼 수 있는 양의 일감을 챙겨왔고, 그는 샌드위치에 커피를 곁들여 먹으며 업무를 처리했다. 법무부 건물에 차츰차츰 불이 켜졌다. 택시와 자동차가 건물 앞을 지나가는 횟수도 늘었다. 해리는 샌드위치를 씹었다.
9시 하고도 15분이 지나자 해리가 차에서 나왔다. 그는 손을 닦은 물티슈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침이라 그런지 입술이 새빨간 직원이 해리를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크레인 씨와 만나기로 했었는데요.”
“성함이 혹시 해리 하트신가요?”
“맞습니다.”
“네, 곧장 올라가시면 됩니다.”
해리는 여직원에게 옷깃이 서로 스치는 듯한 인사를 건넸다. 건물 내부는 벌써부터 바삐 움직이는 구둣발 소리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해리는 8층에서 내려 크레인과 만났다. 해리와 몇 번 인연을 맺었던 인물인 만큼 크레인은 해리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또 그는 해리가 머릿속으로 시행해보았던 시뮬레이션의 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크레인은 이전에 경찰이 주었던 질문지보다 양도 많고 훨씬 자세한 물음들이 적혀 있는 종이뭉치를 넘겼다.
“그것도 꽤 많이 줄인 거요.”
“이해합니다.”
크레인의 입매가 잠깐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되도록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받았으면 좋겠네.”
“로버트는 자신이 받기로 약속한 것들만 무사히 받을 수 있다면 대단히 고분고분하게 나올 겁니다.”
“새 신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게.”
“그러지요.”
“모쪼록 잘 부탁하겠네.”
해리는 웃으면서 크레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침 오늘은 법원에 갈 일도 없었다. 해리는 사무실에서 1시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머릿속에 담았다.
해리는 그 날 내내 갤러해드에게 받았던 쪽지를 꺼내보지 않았다.
오전만큼이나 일상적인 오후가 찾아왔다. 그리고 오후보다 더 평화로운 저녁이 도시를 뒤덮었다.
해리는 아직까지 로버트의 연락처를 모르긴 했다. 하지만 해리는 아파트 안에 로버트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옳았다. 로버트는 거실에서 해리를 맞이했다. 해리가 유일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건 로버트가 자신에게 총을 겨눈다는 상황뿐이었다.
로버트는 실제로 해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당신, 날 속였더군.”
해리는 가방을 내려놓고 두 팔을 들었다.
“무슨 소린가?”
“내가 당신 사무실을 내 발로 찾아갔을 때 죽이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같은 사이코패스 속마음을 누가 알겠어. 나를 있는 대로 놀리고 싶었던 모양이지?”
해리는 하마터면 자신에게는 총이 없다는 불리한 위치를 잊어버리고 팔을 다른 방향으로 쳐들 뻔했다. 여전히 짜증은 났지만 해리는 입 안을 깨무는 것으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자네가 하는 헛소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왜 나에게 사건을 맡기러 온 의뢰인을 죽여야 하나?”
“젠장, 더 이상의 거짓말은 집어 치우라고!”
로버트가 마구잡이로 총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나랑 동료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그러더군. 변호사 놀이를 하는 마피아 두목보다는 훨씬 믿음직한 놈이야. 그 녀석이 보스의 얼굴을 봤다고 하더라고. 갑자기 운전기사를 대체해야 하는 일이 생긴 덕분에 말이야. 그 녀석은 그래도 나 같은 족속들 중에서는 신문이랑 좀 친해서 명망 높은 인권 변호사 해리 하트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 그리고 자기 보스가 그 해리 하트와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도 알아버렸어.”
해리는 자신이 휘청거렸다고 느꼈다. 다행히 그 느낌은 과장된 것이었고, 해리는 그저 두 발을 조금 불규칙적으로 움직인 것이 다였다. 그는 다시 시선을 올렸다.
흥분한 로버트의 얼굴은 대체로 붉었다. 해리는 로버트처럼 흥분해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해리 하트의 이성을 지배하는 유일한 문제는 로버트가 어떻게 그런 치명적이면서도 희귀한 정보를 손에 쥐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갤러해드는 일견 자신처럼 빈틈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로버트와 친분이 있는 부하를 운전석에 앉혔을 것 같진 않았다. 허나 해리는 진실을 부정하는 재주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해리 하트와 갤러해드의 외양이 같은 건 맞는 이야기였다.
“변명을 못하는군?”
해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마피아가 아니야.”
“목격자가 있는데?”
“그 인간이 왜 나랑 그토록 닮은 건지는 나도 알고 싶네. 하지만 그와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야.”
“그 말은 당신이 보스를 본 적이 있다는 소린가? 인권 변호사가 마피아 두목을 만날 이유가 뭐가 있지?”
로버트가 예리하게 해리의 틈을 찔렀다. 순간 해리의 민첩함이 감소했다.
“옆으로 물러서.”
“어딜 가려는 건가?”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목숨을 바칠 줄 알아? 비켜. 벽에 딱 붙어.”
해리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면서 현관문과 떨어진 벽면에 등을 가까이 댔다. 로버트는 계속 험상궂은 인상을 지우지 않으면서 해리를 향해 총구를 흔들었다. 마침내 해리가 한숨을 쉬면서 벽에 밀착했다.
“꼼짝 말고 있어.”
로버트는 현관문을 열면서도 한쪽 팔로는 해리를 겨누었다. 해리는 로버트를 보지 않았다. 복도로 나간 로버트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한동안 눈을 감으면서 생각을 했다. 그가 앞으로 엎어진 자신의 가방을 들었다. 검은 가죽의 표면에 먼지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 사소한 흠이 해리의 신경을 날카롭게 좁혔다.
해리가 전화기를 꺼냈다. 오늘 그가 입고 나온 재킷에는 쪽지가 한 개 들어있었다. 해리는 쪽지를 보고 번호를 누르면서 표정을 끊임없이 굳혀갔다.
신호흠은 딱 두 번만 지속되었다.
—해리 하트?
“…내가 전화를 걸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 번호는 당신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한테 알려줄 게 있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갤러해드의 음성은 차분했다. 그것은 해리 하트의 음성이어야 했다.
“그래. 당신도 무척이나 해결하고 싶어 할 문제가 생겼어.”
—전에 내가 알려줬던 주소로 오면 도움을 주지. 내일 일찍 와.
해리는 아파트를 박차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