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Full-length

[Kingsman/해리에그시] Saint and Sinner 08

Jade E. Sauniere 2015. 8. 3. 16:11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성자와 죄인Saint and Sinner

Chapter 4. 성자의 과거A Past of a Saint







  “…아니, 미국에 있는 집들은 다 이래요?”


  에그시가 대놓고 눈을 흘겼다. 


  “이 정도면 잘 구한 거야. 맨해튼에서는 방 구하는 거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다고.”


  셋 중에서 뉴욕 중심가의 부동산 시세를 유일하게 겪어본 멀린이 씩씩하게 거실을 가로질러 창문을 열었다. 에그시는 자신이 살던 캠든 구석의 다세대 주택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질겁하며 전진했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한 아파트가 영국인 스파이들의 거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추적 활동에 필수적인 장비들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멀린 뿐이라 자연스럽게 내부 청소는 록시와 에그시의 몫으로 떨어졌다. 록시는 일단 세탁기도 구제해줄 수 없을 커튼들을 잡아 뜯었고 에그시는 큰 봉지를 구해와 쓰레기들을 한데 모았다. 


  “란슬롯.”


  무더기로 흩날리는 먼지를 뚫고 록시가 멀린에게 다가왔다.


  “자네는 내일 디케이 코퍼레이션으로 가봐. 면접 일정이 잡혀 있어. 파일에 있는 것들은 빠짐없이 숙지해.”


  멀린의 말에 록시보다 에그시가 먼저 반응했다.


  “저는요?”

  “자네에겐 다른 일을 줄 거야. 순발력이나 기억력만으로 신경 영양학 같은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섭렵할 수는 없지 않겠나.”


  난데없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면서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전문 용어들의 향연에 에그시가 잠자코 걸레를 집었다. 누구도 파일을 열어본 록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풍선에만 몸을 의지해 대기권에 올라갔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록시가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멀린이 준 자료를 외운 것이 벌써 3일 전의 일이 되었다. 그간 뉴욕에서는 록시의 활약으로 멀린이 디케이 코퍼레이션의 사내 망에 마음대로 접속할 수 있게 된 사건 같은 평온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일상들이 이어졌다.


  겉으로는 워싱턴 D.C 또한 그러한 것처럼 보였다.


  베이커는 FBI 헤드쿼터가 자리한 도시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무엇도 밝혀진 게 없는 의문의 남자를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뉴잉글랜드 특유의 사투리가 아닌 정석적으로 정립된 발음을 듣는 우연조차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베이커는 자신의 책상 위에서 하루도 치워진 적이 없는 수배 전단을 끌어당겼다. 


  베이커는 사진 속 남자를 보면서 속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왜 40분이었지? 그 특정한 숫자가 가진 의미가 뭐지? 당신은 어디까지 나를 기만했던 건가? 


  놀랍게도 베이커의 의식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젠장, 그렇게 솔직했다고?”


  남자의 말씨는 대서양의 바람을 맞지 않은 아주 근본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도로 상황이 협조적이라면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스미스소니언 역까지 가는 데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베이커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재킷을 챙겼다. 





  리치몬드 발렌타인과 에드윈 디케이는 더할 나위 없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동반자였다.


  발렌타인의 현실적 감각은 주로 정치적 사안들과 연관이 깊었다. 반면에 에드윈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를 맞이하여 곳곳에 부유하는 정보들을 잘만 제련하면 뛰어난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것들은 그들의 성격과도 통하는 점이 있었다. 발렌타인은 폭력을 질색해하니 화술이 중심이 되는 분야에 능통할 수밖에 없었고, 정보가 폭력을 조장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에드윈은 강제성을 내포한 각종 행위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에드윈은 짜증이 났다는 몸짓으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는 세계의 안녕을 위하여 필수적인 기계를 맞대고 있었으나 그것은 아직 불완전했다. 에드윈 디케이의 사명 의식을 띤 해리 하트는 브루클린 남부에조차 존재할 수가 없었고, 그러한 불운은 적어도 2주는 넘게 지속될 예정이었다.


  에드윈은 자신의 짜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묘책을 짜내려 애썼다.


  해리 하트는 참으로 비현실적이게도 자신의 고결했던 역사를 보존하려 했다. 에드윈이 그를 지배하고 있지 않을 때 해리 하트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속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보편을 위한 대의를 실행한다는 현대적 기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끈질기게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에드윈이 기계를 개량해 작용 범위를 늘려도 해리가 변하지 않으리란 건 너무도 자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결론은 절로 도출되었다. 에드윈은 기계와 해리 하트를 모두 개조해야 했다.





  저녁이 되어 베이커는 자택에 다다랐다. 그의 집은 FBI 특수 요원이 산다는 게 전혀 드러나지 않은 흔한 목재 주택이었다. 베이커는 긴 숨을 내쉬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거실의 등을 밝히려고 했다.


  “불은 안 켰으면 좋겠군요.”


  베이커는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주거 침입을 저지른 범죄자 주제에 아주 정중한 말투를 선보였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침입자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신….”

  “저번에 약속 지키지 못한 건 사과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요. 총은 꺼내지 말고. 옆 건물에 저격수가 있습니다.”


  베이커는 오른발을 앞으로 슬슬 비비면서 기민하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보시죠.”

  “나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짧아진 빛은 베이커가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남자의 본체는커녕 발끝에도 닿지 못했다. 답답함과 긴장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사실 여기엔 당신을 죽이러 왔고 맨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될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모르는 어떤 장애물이 아직까지 내 이성을 지켜주고 있군요. 우리 두 사람에게 잘 된 일이지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는군요.”


  해리가 불쑥 손바닥을 들었다. 베이커가 창문가에 가까워지는 것을 더 방관할 수 없었다. 베이커의 실루엣이 경련했다.


  “당신이 이해해야 할 것은 내가 정신을 잃고 당신을 해코지할 위험이 당장은 없다는 겁니다. 내가 당신을 죽인 것처럼 위장은 하겠지만 저격수만 조심하면 당신은 살아서 여길 나갈 수 있어요. 내가 알려주는 번호로 연락을 하면 미국에서 당신이 만날 사람을 가르쳐줄 겁니다.”


  해리의 음성은 드물게 절박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이 이상의 호기는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드윈이 베이커의 사진을 주면서 자신을 보냈을 때 해리는 구멍 뚫린 연방 요원의 시체를 발밑에 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거기엔 저주스러울 만큼의 현실성이 있었다. 자신은 다시금 모든 의지를 빼앗기고 총알을 난사할 것이었다.


  그러나 건너편 건물에 은신중인 스나이퍼를 발견하고 해리는 자신의 예상을 수정했다. 자신이 곧장 베이커를 죽이리란 확신이 에드윈에게 없다는 걸 간파한 그는, 노련한 감각으로 자신을 조종하는 에드윈의 능력에도 어떠한 제한점이 있다는 것까지 추리해냈다. 워싱턴 D.C에서 해리는 온 힘을 다해 곤두서있는 자신의 양심과 함께했다.


  베이커 요원에게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니, 틀렸습니다.”


  베이커가 총을 뽑아들었다. 순간적으로 해리가 창문 뒤편을 힐끗했다.


  “나는 당신이 뉴욕과 켄터키에서 벌어진 학살극에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만 알면 돼요.”


  네모난 창문의 그림자가 함정처럼 베이커를 향해 입을 벌렸다. 해리가 두 팔을 들었다.


  “도망가지 않을 테니 제발 멈춰요.”

  “당신이 사우스 글레이드 교회의 교인들을 죽였습니까?”

  “베이커 요원.”

  “맨 처음에 나한테 전화했던 건 자백을 하기 위함이었습니까?”


  해리는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나는 내 죄를 외면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거 좋네요.”


  베이커가 기어이 해리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당신을 체포해도 문제될 건 없겠지요.”


  팔을 뻗은 베이커의 곡선이 창문의 테두리 속에 갇혔다. 해리는 눈을 감았다. 그의 옆 유리창이 깨졌다.


  옆머리를 관통당한 베이커가 낮의 태양보다 강렬한 빛이 되어 해리의 망막을 찔렀다. 베이커의 손에서 튕겨 나온 피스톨이 툭 하고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는 하나의 거대한 비극이자 절망이었다. 해리가 고개를 젖히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베이커의 핸드폰이 죽음이 펼친 적막을 찢었다. 해리는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당신은 지금 연방 요원을 살해했어. 큰 실수를 저지른 거야.”


  —어제 그 자는 덜레스 공항의 CCTV 영상을 받아갔어. 그러니까 대체 자백하겠다고 전화는 왜 한 거야? 당신이 단서만 주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안 생겼잖아.


  “나는 여기에 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러 온 거였어!”


  —아니, 당신은 나의 비유가 되기 위해 미국에 온 거야.


  해리는 핸드폰을 부숴버릴 듯이 꽉 쥐면서 저격수가 있던 건물을 올려다봤다. 비죽하게 나와 있던 총부리와 스코프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도청기가 없어도 당신이 그 자를 죽이지 못하리란 건 명백했지. 그래도 난 당신이 대담성을 좀 발휘하길 바랐어. 당신에게 기대를 품었다고, 미스터 하트.


  해리가 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적법한 판결이지 욕망에 좌우되는 형벌 같은 에드윈의 궤변이 아니었다. 해리는 통화를 끊으려 했다. 


  —그거 안 물어봐?


  구둣발에 밟히기 직전의 위기에 놓인 핸드폰이 가까스로 에드윈의 말을 전했다. 


  “뭘 말이지?”

  —저격수를 쓸 거였으면서 왜 당신을 거기다 데려다 놨는지.


  에드윈은 해리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은 포기를 몰라. 방금도 그랬잖아. 당신이 속해 있었던 수호와 대의의 세계로 계속 돌아가려고 해. 난 그런 꼴을 보려고 머리 굴려가면서 당신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아니야, 미스터 하트. 당신이 가야 할 길은 내가 정해.


  해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당신의 등을 떠밀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을 얻었어. 


  굳은 듯 꼼짝하지 않던 해리가 핸드폰을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 모서리가 깨지고 뒷면이 나가떨어진 핸드폰은 베이커의 피가 고인 웅덩이까지 주르륵 밀렸다. 해리가 베이커의 집을 떠났다.





  FBI 요원이 자택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워싱턴의 일간지를 위시한 각종 언론사에 실려 미국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연방수사국은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는 성명을 냈고, 지역 경찰들에게는 FBI에게 적극 협조하라는 공문이 배달되었다. 


  연방 요원에게 미행까지 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제퍼슨은 신문지를 들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면서 1면이 잘 보이도록 신문을 내려놓았다. 제퍼슨은 멀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케이 코퍼레이션으로 출근한 록시의 얼굴빛은 평소보다 복잡했다. 동료들 몇몇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지만 록시는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 에그시는 오늘 밤이라도 디케이 코퍼레이션의 건물을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며 멀린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아주 시원한 비바람만이 몰아낼 수 있을 듯한 끈적끈적한 안개가 몇몇 이들의 가슴을 틀어막았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그것의 근원지이나 주변을 해치는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리 하트는 가방 하나를 열고 있었다. 해리는 그 안에서 권총 한 정을 꺼냈다. 내용물이 훤히 비치는 유리그릇을 닮은 그의 두 동공이 공허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해리는 자신에게 미래를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해리는 이에 냉정하게 사고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며 자신은 현재 독존했다. 


  해리 하트는 홀로 절망하는 자였다. 그의 피스톨이 가녀린 낙관주의와 함께 정장 재킷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