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Full-length

[Kingsman/해리에그시] Saint and Sinner 06

Jade E. Sauniere 2015. 5. 13. 21:29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성자와 죄인Saint and Sinner

Chapter 3. 신념의 유산A Legacy of Faith






  백악관에서 내셔널 갤러리에 이르기까지, 연방정부 산하에 있는 온갖 기관들이 둘러싸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는 미국에서 넥타이 맨 남성들이 넘쳐나는 거리 중 하나였다. FBI 특수 요원 스튜어트 베이커도 그 무리의 일원 중 한 명으로서 그는 방금 샌드위치를 사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베이커입니다.”

  —수사 중이신 사건과 관련하여 긴히 제보 드릴 게 있습니다.


  베이커가 핸드폰을 똑바로 잡았다. 


  “어떤 사건 말씀이시죠?”

  —사우스 글레이드 교회 살인 사건입니다.


  3분만 더 걸으면 워싱턴의 FBI 헤드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이커는 그 시간을 조금 늘리는 대신 자신의 조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방금 이 핸드폰으로 온 전화 좀 추적해줘.]

  “…전단을 보신 겁니까? 거기에 나와 있던 건 이 번호가 아니었을 텐데요.”


  30초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45초만 끌어주세요.]

  —괜찮으시다면 시간 좀 내 주시죠. 꼭 대면으로 처리해야 하는 용건입니다.


  베이커가 액정을 켜서 금방 값이 늘어난 숫자를 외웠다. 베이커는 걷던 방향을 고수하며 반 바퀴를 돌았다. 관광객과 시민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보자께서 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 것 같긴 합니다만, 오늘 당장 만나 뵙기는 힘들겠는데요. 내일은 어떻습니까? 제보자께서 편한 시간대를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 사건의 진범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일정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베이커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그가 어떠한 위장술도 없이 사방을 두루 체크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당신이 찾고 있는 그 사진 속의 남자입니다.


  베이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40분 뒤 스미스소니언 역에서 만나지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보실 거라 믿습니다.”


  해리가 수화기를 제자리에 꽂았다. 3초를 더 버티지 못해 전파를 추적하지 못한 베이커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넣은 순간에 해리는 반쯤 공항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게 줄 지폐를 준비했다. 





  “어디까지 추적했었어?”

  “발원지가 워싱턴 D.C라는 건 확실합니다.”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다 털어내지도 못한 요원들이 허둥지둥 사무실 안을 누비고 있었다. 베이커는 벌써 샌드위치가 든 봉지를 손도 대지 않고 책상 위에 던진 뒤였다. 


  “그렇다면 굳이 40분씩이나 여유를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베이커가 머리카락을 움켜쥐면서 생각을 진전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팀 소집해서 인근 주변 싹 살피라고 해. 10블록 이내 긁어모을 수 있는 CCTV 영상은 모조리 확보하고 이 빌딩도 확인해봐. 수상한 자가 들어오진 않았는지, 갑자기 카메라가 고장 난 구역은 없는지.”

  “접선 장소의 인력은 어떻게 배치할까요?”

  “거긴 비워야 해. 협회 건물에 잠복하는 게 한계일 거야. 놈이라면 위장 중인 요원쯤은 금세 판별할 수 있을 걸.”


  연방 요원들이 눈썹을 휘날리고 머리를 흩날리는 소리가 났다. 물론 소란스러운 건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도 마찬가지였다. 멀린이 노트북이 든 가방끈을 잡으며 부지런히 뛰었다.  


  “제퍼슨, 새로운 소식 있습니까?”

  —이제 비행기에서 내렸습니까? 지금 아주 큰일이 났어요. 해리가 사건의 담당 요원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직접 만나려는 것 같아요.

  “이런 젠장할.”


  졸지에 멀린의 짐꾼이 된 에그시가 헥헥거렸다. 둘보다 먼저 표지판을 확인한 록시가 길을 지시하고 있었다. 


  —이쪽에서 계속 지원할 테니 스미스소니언 역으로 최대한 빨리 와요. 30분 남았습니다.


  도로 사정이 나쁘다면 스미스소니언까지 30분은커녕 50분도 소요될 수 있다는 건 영국인도 아는 상식이었다. 멀린은 하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택시 정류장 한복판으로 나간 멀린이 지폐를 흔들었다.


  “30분 안에 100달러 벌고 싶으신 분 있습니까?”


  킹스맨 신입들이 노련한 선배의 임기응변에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스미스소니언 역은 오른쪽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왼쪽으로는 워싱턴의 오벨리스크를 끼고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축에 속하는 정류장이었다. 베이커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관광객들의 무리에서 살짝 비켜나 역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와 일직선상에 서 있었다. 만남을 주선한 남자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베이커는 7분 뒤에 용의자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었다.


  팀원들의 위장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그들과 거리를 둔 베이커와는 달리 제퍼슨은 동행인을 기다리는 승객의 자세로 역 여기저기 널려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FBI보다 유능하다고 확신하는 킹스맨 요원들이 매표소와 신문 가판대 등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록시와 멀린, 에그시가 탑승한 택시는 스미스소니언 역과 200m쯤 떨어진 곳에 정차했다. 거의 목숨을 건 운전 끝에 100달러를 손에 쥔 히스패닉 기사가 땀을 훔치면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2분 남았어요.”


  그 말에 에그시가 누구보다 앞서 검은색 표지를 향해 뛰었다. 멀린이 안경을 톡 건드렸다. 


  “제퍼슨, 해리는요?”

  —아직 안 온 모양입니다. FBI 측도 잠잠하군요. 오늘은 역 바깥이 한산한 편이로군요. 갤러해드는 안으로 내려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멀린이 록시를 데리고 걸었다. 멀리 역시 줌을 통해 거리를 죽 더듬었지만 소득을 얻지 못했다. 에그시는 그새 지하철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용의자는?”

  —안 보입니다.


  베이커가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였다. 장애물을 넘듯이 에스컬레이터를 지난 에그시가 사방으로 몸을 틀어댔다. 텁텁한 상아색에 가까운 내부 조명이 닿는 그 어디에도 해리 하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해리가 지정했던 시간이 되었다. 


  —…갤러해드가 오지 않았어요, 멀린.


  그 때 스미스소니언 역에 정차하는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미끄러져왔다. 베이커와 제퍼슨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일말의 희망을 품으면서 하나씩 떠오르는 얼굴들을 주시했다. 

그들의 기대는 만족되지 않았다. 


  “이상하군. 거짓을 꾸며내는 목소리는 아니었는데.”


  베이커가 겉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15분을 더 기다렸고,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리라는 가능성을 버렸다. 워싱턴 포스트를 두 번째 읽던 제퍼슨의 요원도 슬금슬금 제퍼슨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에그시만이 하염없이 나오고 사라지는 사람들에게서 눈길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그의 그림자라도 잡길 원했던 해리는 워싱턴과 300마일은 족히 떨어진 도시에서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해리는 미간을 가득 좁히면서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와 온갖 하얀 기계장치들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추론해내려 노력했다.    


  “언제 일어나나 싶었지.”


  그 찰나에 해리가 미처 접수하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다가왔다. 해리가 다시 털썩 누웠다. 


  “설마 진짜로 미국에 오자마자 FBI 요원에게 날 좀 잡아가 달라고 전화를 걸 줄은 몰랐어. 신사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니었군.”

  “당신 누구야.”

  “당신이 미국에서 저질렀던 일을 아는 사람.”


  눈꺼풀이 한번 상하로 왕복 운동을 했을 뿐인데 동공에 안개가 서렸다. 그러자 손목이 고정된 해리를 대신해 남자가 물기가 있는 손수건으로 해리의 속눈썹과 눈가를 닦아주었다. 


  “…당신은 FBI가 아니잖아. 보아하니 당국의 수배 전단을 보고 충실히 범죄자를 잡는 데 협조할 성미도 아닌 것 같고.”


  남자가 손수건을 털면서 웃었다. 


  “맞았어. 그렇다면 남는 경우는?”


  당신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자신이 끝끝내 밀쳐버린 에그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해리가 강박적으로 흡수했던 정보들이 빙빙 돌았다. 


  “리치몬드 발렌타인은 죽었어.”

  “그의 사상은 살아있지.”


  동작 센서에 의해 작동하는 문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해리는 즉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경보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빨간 불을 켜고 다니는 것에 아무런 반응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해리의 가슴을 눌렀다. 


  “그걸 위해 당신이 해 줘야 할 일이 아주 많아, 해리 하트.”





  “여기야.”


  임시적으로 미국의 킹스맨 지부에 모인 멀린과 에그시, 록시는 제퍼슨이 일찌감치 확보해뒀던 덜레스 공항의 CCTV 자료를 분석하고 있었다. 공중전화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해리가 워싱턴까지 제대로 오긴 했네요.”


  록시가 여러 개로 분할된 화면 중 왼쪽 열의 두 번째 영상을 가리켰다.


  “이건 출구 쪽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네요. 저희처럼 택시 정류장으로 가는 것 같은데요?”

  “그럼 갤러해드가 택시를 타고 스미스소니언으로 가던 도중 행방불명되었다는 건가? 그가 택시 기사한테 납치될 인물은 아닌데.”

  “덜레스 공항에서 스미스소니언까지 가장 확실한 루트가 뭐죠?”


  록시의 물음에 제퍼슨이 빠르게 지도를 띄웠다. 


  “별로 복잡할 것도 없네. 완전히 직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방향이 바뀌지 않아.”


  멀린이 첨언했다.


  “중간에 샐 만한 구석도 없다는 소리군. 확실한 것은 해리가 택시를 탔다는 거고,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엔 없겠습니다.”


  제퍼슨은 멀린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해리가 미국에 오기를 호시탐탐 노리던 자가, 해리의 도착 일정에 맞추어서 덜레스 공항의 택시 기사들을 모두 매수한 다음 해리를 데리고 갔다는 것.”

  “해리한테 수배 전단을 보낸 사람의 짓이 분명해요.”


  사색과 집중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가는 것 같던 에그시가 불쑥 끼어들었다. 멀린이 일리가 있다는 제스처를 지었다. 


  “좋아, 이제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았군. 그 놈은 대체 누굴까?”


  “누군지는 몰라도 리치몬드 발렌타인만큼 해리에 대해 잘 아는 녀석일 확률이 높지요. 수배지로 해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하고 미리 덫을 쳤잖습니까. 더군다나 그가 킹스맨 요원이라는 것만 빼면 갤러해드가 다른 사람들의 표적이 될 빌미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발렌타인이 해리의 또 다른 신분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그와 가까웠던 사람을 추적해봐야겠군요.”


  옆에서 갖은 몸짓으로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광고하던 에그시가 말문을 터뜨렸다. 


  “전 누군지 알 것 같아요.”


  그러고는 에그시가 멀린을 쳐다보았다. 멀린은 자신도 답을 알 수 있다며 암시를 주는 에그시의 눈빛에 힘입어 탄식하듯 말했다. 


  “맙소사, 그 때 발렌타인에게 위성을 빌려줬던 놈이로군.”


  록시의 동공이 커졌다. 세 사람이 겪었던 기상천외한 경험담에 대해 모르는 구석이 많은 제퍼슨은 눈썹을 꿈틀댔다. 


  “당시 발렌타인의 시스템을 분석했던 기록이 남아있는지 확인해야겠어. 란슬롯, 공항에 다시 한 번 가봐. 최근 기사들에게 거금을 주면서 이상한 요구를 한 사람이 있는지, 그 인상착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탐문해. 제퍼슨은 계속 FBI를 감시해주십시오. 에그시는 발렌타인 주변을 맡는다. 그의 회사에 근무했던 간부들부터 미심쩍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곧장 알려줘.”


  에그시와 록시는 그 즉시 임무에 착수했다. 두 요원을 보낸 멀린이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일이 커지는군요, 멀린.”


  멀린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래도 해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리치몬드 발렌타인은 정말로 폭력을 견디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세상을 구할 방법이 인구 감축이라고 최종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나서도, 그것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리라는 걸 인시하지 못했다. 


  발렌타인의 옆에서 여러모로 그에게 현실성을 불어넣어 준 사람은 멍청함에 가까운 사고의 다양성을 지적하면서 그에게 충성스러운 경호원 한 명을 소개했다. 두 다리 자체가 치명적인 무기인 그녀는 발렌타인에겐 살가운 태도로 일관하며 그와 점차 밀접한 관계를 맺어갔다.


  그는 가젤과 더불어 발렌타인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인사였다.


  발렌타인이 자신의 제일가는 골칫덩이가 죽지 않았다면서 그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그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차선책’을 구상해보자고 제안했다. 인간의 번식 능력에 직접적으로 손을 댈 수 없는 이상 인간은 그 개체수를 감당할 수 없는 바이러스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 게 뻔했다. 교회 실험을 통해서 일반인들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것이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신속하고 경제적인 인구 조절을 위해서는 그들의 입맛대로 부릴 수 있는 특수 요원들이 필요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발렌타인의 소굴로 떨어진 그 킹스맨 요원은 이를테면 최적의 실험체였다. 발렌타인은 동업자이자 친구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치면서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는 바이오 리서치 회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발렌타인은 그에게 약간씩의 영감만 주면 되었다.


  매번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디케이 코퍼레이션의 창립자 에드윈 디케이는 시술을 마친 자신의 해리 하트가 깨어날 것을 고대하면서 축배를 채웠다.  





  브루클린 북쪽은 뉴욕 시의 많은 지구가 그러하듯 다 외울 수도 없는 스트리트와 애비뉴로 구석구석 나누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북부 브루클린 부근이 위험한 이유는 대중교통이 잘 닿지 않고 큼직하게 뚫린 도로가 없어 상대적으로 고립된 데다, 뉴욕의 밤을 지배하는 마피아들의 거점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양복 차림의 남자는 범죄자들의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는 몇 천 달러를 호가할 듯한 슈트를 뽐내면서 북부의 6할을 주무르는 범죄 집단의 본거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깡마른 소년들이 손버릇 발휘할 기회를 놓쳤다면서 슬금슬금 골목으로 몸을 피했다. 


  그가 그늘에 가려져 있던 나무문에 대고 노크를 했다. 가리개가 내려간 틈새 사이로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럼 잘 부탁해, 미스터 하트.


  발차기를 한 대 먹여줄 심산으로 문지기가 손잡이를 당겼다. 신사의 깨끗한 손에 어느새 밀착한 피스톨이 불을 뿜었다.


  심상치 않은 소음을 들은 마피아들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것과는 비교되는 속도로 해리는 왼손에 이미 총을 걸어 끼우고 있었다. 좁은 길목이 끝나고 아직 뒤처리가 마무리 되지 않은 돈뭉치들이라든가 수상한 가루가 잔뜩 든 봉지들이 해리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기웃거렸다.


  해리 하트는 그것들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엇갈린 해리의 두 팔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눈썹 사이를 목표로 날아간 총알들이 눈 깜짝할 새에 두 명의 마피아를 쓰러뜨렸고, 그와 동시에 험악한 점프 실력으로 뛰어오른 장정들이 해리에게 달려들었다. 테이블들이 요란하게 고꾸라졌다.


  해리는 가벼운 동작으로 자신에게 돌진해온 마피아 하나를 피한 뒤에 여덟 발자국 정도 떨어진 구석에서 감히 개인화기를 어깨에 메려는 남자를 쐈다. 동시에 그의 왼팔이 등 뒤로 꺾이면서 나이프를 휘두르려던 놈을 맞추었다. 살상을 위한 하나의 독립적인 장치처럼 해리의 팔이 공중에서 춤을 췄다. 


  이를 갈던 마피아 하나가 성질을 못 이기고 해리에게 정면으로 들이댔다. 해리는 슬쩍 뒷걸음질을 치면서 발의 옆면에 힘을 주었다. 해리가 밀어낸 탁자가 놈의 균형을 뺏어가며 한바탕 해리의 앞쪽이 막혔고, 그 짧은 틈에 해리는 네 발의 총알을 소모했다. 


  “뭐 저런 미친놈이!”

 

  그것은 곧 남자가 자신의 입술로 구현한 최후의 한 마디가 되었다. 해리는 그의 머리통을 도움닫기 삼아 위로 도약하더니, 떨어지는 에너지를 실어서 탄창이 빈 피스톨을 다른 놈의 가슴에 통째로 꽂았다. 순간적인 바람에 해리의 재킷이 팔락이면서 그 속에 정렬된 권총들이 약간 드러났다. 


  해리가 새 피스톨을 뽑았다. 범죄자들의 작은 광장 같은 공간의 구석에 몰린 해리는 마치 그 지점이 자신에겐 최적의 자리라는 것처럼 무릎을 세웠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테이블이 해리의 바리케이드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뒤편에서 해리는 한 뼘의 오차도 없이 적들을 명중해갔다. 양 손에 쥔 총의 탄약이 떨어지면 그는 날개처럼 재킷을 펼치며 묵직한 탄창이 끼워져 있는 피스톨을 꺼냈다. 먼지와 핏방울이 자극적인 예술을 표방하듯 튀었다. 


  해리가 고요하게 숨을 쉬었다. 그곳에서 호흡은 극소수를 위한 특권이었다. 해리 하트는 어떤 명확한 의식이 결여된 얼굴빛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매끈한 구둣발에 시신들이 벽으로 밀렸다.


  에드윈 디케이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해리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골목과 대로를 잇는 어중간한 위치에 굳어 있던 소년이 해리의 사격에 즉사했다. 에드윈이 어깨를 으쓱했다.


  “총 더 필요해?”


  해리는 대답도 없이 에드윈이 차에서 꺼낸 샷건을 받았다. 그의 모든 세포가 죽음을 추구하고 있었다.  





  베이커가 노란색 테이프를 넘어 사건 현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NYPD들이 봉투와 푯말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검시관 말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지 6시간 남짓 흘렀다는군요.”


  워싱턴에서 근무하는 베이커에게 뉴욕에서 벌어진 범죄까지 관여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다행히 그를 상대하게 된 경찰관은 사건 자체에 기분이 언짢아 베이커를 성가셔할 정신은 없는 듯 보였다. 


  “총성이 꽤 많이 났을 텐데 신고가 그렇게 늦게 접수되었다는 겁니까?”

  “더 특이한 건 신고자는 총소리 때문이 아니라, 출근길에 지독한 피 냄새를 맡고 경찰을 불렀다는 겁니다.”

  “…설마 목격자들을 다 죽인 겁니까.”

  “일반 주민처럼 보이는 시신들이 몇 구 발견되긴 했습니다.”


  현장 곳곳에는 총을 맞고 그대로 지상으로 떨어진 시신들이 있었다. 경찰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베이커를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마피아들의 거점은 어두웠고 퀴퀴한 냄새가 풍겼으며, 자비라는 것이 증발한 모습이었다. 베이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비슷해.”

  “예? 뭐가 말입니까?”

  “한 명에 의한 다수의 학살, 의도는 알 수 없고 용의자의 흔적은 찾을 수도 없고…. 최근에 사우스 글레이드 교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과 흡사한 점이 많군요.”


  경찰관이 말만 들어도 속이 거북해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 미친 놈 얘기요? 여기서도 악명이 자자합니다. 죄 없는 교인들을 때려잡더니 이젠 마피아를 족치고 그야말로 미친놈이 따로 없군요.”


  베이커가 이만 가자는 시선을 보내자 경찰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앞장섰다. 진득하게 굳은 피 웅덩이에 젖은 다리 한 짝이 베이커의 눈꼬리를 마지막까지 끌어당겼다. 


  “요원님은 두 사건이 동일범의 짓이라고 보십니까?”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두 사람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왔다. 그러나 베이커의 눈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자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자신할 수가 없어요.”




  뉴욕에서 한 가닥 한다는 마피아 집단이 속수무책으로 괴멸 당했다는 뉴스는 킹스맨 미국 지부에까지 팔랑팔랑 날아왔다. 멀린이 신문을 들고 에그시와 록시가 매우 불편한 자세로 엎어져 있는 간이 회의실 앞에서 발을 붙였다. 


  “다들 일어나. 속보다.”


  에그시의 머리가 용수철마냥 책상에서 튕겨져 나왔다.


  “해리 왔어요?!”


  멀린은 웃어야 할지 안타까움을 표시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간신히 안면을 다잡았다.


  “그건 아닌데 해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서가 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는군.”


  록시가 입술을 비죽이면서 상체를 들었다. 에그시가 주섬주섬 멀린으로부터 신문을 끌어다가 중앙에 놓았다. 멀린이 접어놓은 페이지를 읽던 두 사람의 동공에서 졸린 기운이 저절로 사라졌다.  


  “…갤러해드가 이런 짓을 하셨다고요?”

  “내가 록시에겐 얘기를 안 했던가? 발렌타인이 자신의 USIM 칩을 시험하려고 한 현장에 있었던 그는 칩의 영향력 때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을 다 죽였고 이후에는 발렌타인의 총에 맞았지. 갤러해드의 머릿속에는 아직 그 파동이 남아 있어.”


  에그시는 멍하니 손끝으로 신문지를 긁었다. 


  “누군가 해리를 돌이킬 수 없는 살인마로 만들려고 해요, 멀린.”

  “그걸 막기 위해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거다, 에그시. 더 상세한 이야기는 브리핑실에서 하도록 하자.” 


  멀린이 아직 어리기도 한 두 요원을 다독이며 그들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재퍼슨이 테이블과 노트북을 연결하다가 목을 폈다.  


  “다들 영 혈색이 좋지 않군. 커피라도 들겠나?”

  “아니요…. 괜찮아요.”


  에그시가 말했고 록시도 살짝 웃으며 사양의 의사를 표명했다. 그 사이 멀린이 노트북의 정면을 차지했다. 


  “란슬롯, 자네가 조사한 것들을 풀어놔보게.”


  록시가 저도 모르게 허리를 폈다.


  “아, 네. 지시하셨던 대로 TSA(미 교통안전청) 요원으로 위장하여 택시 기사들에게 접근했었습니다. 갤러해드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날에 한 남자가 기사들을 돌면서 특이한 요구를 했다더군요. 누군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택시를 잡거든 연락을 해 달랬답니다.”

  “사진은?”

  “딱 한 장 줬다는 원본을 확보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갤러해드가 맞았고요.”


  “그 남자에 대해서 건진 게 있나?”

  “간단한 양복 차림을 하고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였다고 합니다. 사설 보안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 같다고 기사들이 입을 모았는데 아마 심부름꾼이었겠죠. 기실 저희의 이론이 맞다는 걸 증명만 했을 뿐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수고했네. 에그시?”


  에그시는 입을 두 번 뻐끔거리는 독특한 동작으로 간밤에 저장해두었던 정보들을 끄집어냈다.


  “캘리포니아 본사를 비롯해 미국 내에 있는 지부들을 집중적으로 팠어요. 해리를 미국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범인은 미국에 둥지를 틀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근데 CEO들은 거의 다 평범한 월급쟁이더라고요. 사적으로 발렌타인을 만난 적도 없는 것 같았어요. 조사가 끝난 건 아니지만 쓸 만한 게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제퍼슨이 커피를 홀짝이며 두 사람의 보고를 대신 정리했다.


  “막힌 길이로군. 자네들 곁에 멀린이 있다는 걸 행운으로 알게나.”  


  그 말에 에그시와 록시는 대선배님을 향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의 빛을 만면에 깔고 멀린을 바라보았다. 멀린이 잠시 노트북을 두드렸다.


  “발렌타인의 시스템을 스캔했던 데이터는 저장되지 않았어. 다행스럽게도 내가 발렌타인의 위성이 있던 궤도를 기억하고 있어서, 당시 발렌타인이 끌어다 쓸 수 있었을 만한 후보군들을 추려냈지.”

  “와, 진짜 멀린은 천재에요!”


  멀린의 입꼬리가 웃으려다가 만 모양으로 흔들렸다.


  “고맙구나, 에그시. 여하튼 이 셋 중 하나가 발렌타인을 도왔을 거야.”


  간단하게 꾸며진 인포그래픽이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제일 먼저 에그시가 손가락을 뻗었다.


  “어… 하나는 펜타곤 거네요?”

  “그래서 그건 빼도 돼. 제 아무리 발렌타인이라고 해도 그토록 짧은 시간에 국방부 첩보위성을 빌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럼 저희가 주시해야 하는 건 록히드 마틴이랑 디케이 코퍼레이션?”


  록시가 동의를 구하듯 멀린을 올려다봤다.


  “난이도가 꽤나 많이 내려간 것 같지 않나?”


  브리핑룸에 있는 모든 인원이 무의식중에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자유 의지라는 것이 공허하게 대기 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해리 하트의 옅은 호흡 속에 섞이지도 않고, 그가 직시할 수도 없는 형태로 시시한 신화처럼 해리를 좌절시켰다. 그는 단죄를 위하여 바다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나 그것마저도 그의 독립적인 반성 의식에 기초한 게 아니었다. 해리 하트는 좌절했다.


  “왜 이렇게 기가 죽어 있나, 미스터 하트.”


  유리잔을 든 에드윈이 의자에 앉아 있는 해리에게 살짝 시선을 얹었다. 


  “당신은 정의를 집행했어. 뉴욕의 범죄 조직 하나를 조각냈다고. 뿌듯하게 여길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해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자제력을 억압하던 파동이 잠잠해진 것과 관계없이 해리는 에드윈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종류의 폭력과도 멀어지고 싶었으며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폭력이 자신을 벌하길 바랐다. 


  발렌타인이 발명했고 에드윈이 통제하고 있는 신경파는 그를 죄업 속으로 내팽겨 친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해리는 난데없는 소란에 잠에서 깨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는 이유로 한 여인을 죽였다. 소용을 다한 탄피가 어깨 뒤로 날아가면서 새로운 타깃을 모색할 때 느꼈던 뒤틀린 희열까지 그의 뇌리에 고스란히 남았다. 


  에드윈은 코앞의 적이 아니라 그것을 박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피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 같았던 눈동자의 극적인 변화를 흥미롭게 응시하다가 뒤로 후퇴했다. 에드윈이 위스키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럼 푹 쉬고 나중에 또 보자고.”


  해리는 에드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자신과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을 만치 결백하고 깨끗한 청년이 자신을 독려하려고 열심히 늘어놓았던 언어들이 해리의 의식에 대고 노크를 했다. 해리는 그것이 선명해질까 싶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현실이 가라앉았고, 무의미하며 무자비한 살의로 무장한 꿈이 총을 휘두르며 날뛰었다. 그는 어디에 있어도 누군가를 죽였다. 빛에서도 어둠에서도 자신이 몸을 기댈 만한 곳을 찾지 못한 해리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