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Novelette

[STID/존본즈] The Dull Flame of Desire 02

Jade E. Sauniere 2013. 9. 18. 16:48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문 앞에 서 있던 양복 입은 남자가 웬 열쇠를 들이밀었다. 맥코이가 움찔해서는 남자를 보았다. 두터운 문에 힘입어 그는 존 해리슨과 꽤나 멀어졌지만 몸 구석 어딘가에 성에라도 낀 듯 불편한 기분이었다. “뭐에요?” 묻는 맥코이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박사님께서 이번 일을 맡으시는 동안 머무를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 간접적으로나마 익숙한 맥코이는 남자의 말을 마냥 반겨 들을 수는 없었다. 맥코이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 말인즉슨 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런 얘긴 계약서에 없었어요.” 

  

  “박사님이 존 해리슨으로부터 얻는 모든 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중요한 자료입니다. 과정상 빠진 정보가 있었음은 사과드리지요. 이의가 있으실 경우엔 저를 통해 주시면 제가 상부에 전달하도록 하죠.” 


  호의와 약간의 열정까지 느껴질 만한 훌륭한 말이었지만, 한편으론 실질적 효력이 전혀 없는 빈말이기도 했다. 금발이 돋보이는 명랑한 얼굴에 한숨을 뿌리며 맥코이가 열쇠를 낚아챘다. 여러모로 복잡했다. 하필 색채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요원의 눈동자 역시 파란색이었다는 점이 더 맥코이 박사를 심란하게 했다.


  “..설마 존 해리슨과 같은 건물이라거나 하진 않겠죠?” 금발의 요원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그 놈은 박사님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 있을 겁니다.”




  박사에게 떨어진 자료는 정말로 많지 않았다. 존 해리슨이 스스로 잡혀오면서 자신의 집을 완전히 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대방의 심리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것은 그와 대면했을 때의 언행과 각종 반응들이었지만, 대상의 배경을 아는 건 질문을 선별하고 상담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맥코이는 잿가루밖에 남지 않아 도저히 건져올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누군가 남겨 놓은 짧은 메모를 책상에서 치웠다. 어쩐지 존 해리슨이 기반을 닦아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해리슨이 남겨 놓은 것들만이 존재했다. 15년 동안 벌여 왔던 살인은 경찰의 보고서에, 언론에, 변변찮은 인간의 블로그까지 가득했다. 비위가 약한 건 아니었지만 맥코이는 그것만큼은 정말로 보기가 싫었다. 아무 것도 없는 책상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맥코이가 이내 화면을 켰다. 검색창에 해리슨의 이름을 입력했다. 


  오늘 맥코이는 해리슨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를 맡긴 사람들은 상담의 횟수와 시간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을 원했다. 헤드라인으로 커서를 옮기던 맥코이가 소리 나게 숨을 내쉬었다. 살인마와의 게임에서 이미 뒤처지고 있는 박사로서는,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잽을 맞아야 했다. 맥코이가 눈을 부릅뜨고 존 해리슨이 저지른 잔혹한 역사를 머리에 담았다.




  레너드 맥코이가 존 해리슨을 만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맥코이는 방에 들어온 직후부터 다시금 스나이퍼들의 시선과 레이저를 한 몸에 받으며 두툼한 수갑을 정비당하고 있는 해리슨을 힐끗했다. 그의 손을 묶고 있는 쇠붙이는 척 봐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종류가 아니었다. 저 인간한테 그걸 끊어버릴 수 있는 힘이라도 있는 것인지, 맥코이는 사형을 선고하지도 않았으면서 저격수를 대동해 그를 위협하는 윗사람들의 행동이 의아했다. 기분 탓이겠지만 이젠 총을 쥔 남자들의 시선이 몸에 닿는 것도 같았다.


  존 해리슨이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얇지는 않은 벽으로 한층 더 둘러싸인 그 안에는 맥코이와 해리슨밖에 없었다. 맥코이가 자리에 앉는 해리슨을 관찰했다. 어제 입었던 옷이었고 보통 사람보다 창백한 인상에서 피로한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직 고개를 올리지 않아 반쯤 가려진 눈을 보면서 맥코이는 생각했다. 신의 가호에 힘입어 저 눈동자를 마주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면, 해리슨이 그토록 오래 살인 행각을 유지할 수는 없었으리라. 다른 무엇보다 그의 눈은 악몽에서 목격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는 빛을 띠었다.

  

  맥코이가 녹음기를 켰고 해리슨이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부터 해리슨은 깜빡임도 자제하고 맥코이를 응시했다. 보통 대상이 입을 열지 않아도 전문가들은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읽으면서 개략적으로 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훈련된 인재 중 하나인 맥코이 박사라면 이 와중에도 뭔가 얻어가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피부색 따라 석고상이라도 되어버린 건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모조리 통제할 수 있기라도 한 것인지 맥코이는 해리슨에게서 어떠한 근육의 떨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맥코이는 비상식적으로 투명한 존 해리슨의 눈과 어제 읽었던 기사의 내용을 겹쳐 보고 있었다.


  “..시간 이렇게 때울 거면 나 다른 일 좀 볼게요.” 


  맥코이가 팔을 내리며 가방을 뒤지는 모양새를 취했다. 굳어 있는 것 같았던 존 해리슨의 목이 움직였다.


  “나 말해도 괜찮아요?”


  “무슨 뜻이에요.”


  “내 목소리를 불편해 했잖아요. 특히 내가 당신의 이름을 말할 때.”


  가방에서 또 다른 노트를 꺼내며 맥코이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가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것엔 해리슨에게 가급적이면 들키고 싶지 않은, 어젯밤까지 그가 분석을 거듭한 사건에 대한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몇 십 명을 죽인 살인자가 내 이름을 말하는데 오싹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이번엔 해리슨의 얼굴에 표정이 섞였다. 숨기지 않은 흥미로움, 맥코이는 두 번만의 만남에서 매번 자신에게 흥미롭다는 느낌을 내비치는 해리슨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후에 요긴하게 쓰일 증거 중에 하나였다. 맥코이가 필기를 했다. 지금은 존 해리슨의 모든 것이 견디기 힘들지만 자신의 흐름 역시 생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시간은 당신과 내가 대화하는 시간이 맞는 거죠?”


  맥코이는 아예 순순히 나가지 않기로 작정한 듯 물었다.


  “대화라고 받아들이나요?”


  “상담이라고 표현한다면 나에겐 아무런 질문권이 없을 것 같아서요. 대화라면 나도 자연스럽게 레너드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잖아요.”


  다시 존 해리슨이 ‘레너드’라고 하는 말에 움찔해 버렸다. 가슴이 순간 빨리 뛰었다. 맥코이는 티 나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느라 대답이 늦었는데, 그 찰나에 해리슨은 급격히 차가워졌다가 다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질문을 하기 위해 거짓 답안을 내놓진 말아요. 거짓말, 참말도 구별 못하진 않거든.”


  드물게도 해리슨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한 번 시험해 봐요.”




  금발의 남자는 벽에 등을 기대고 양 손엔 펜과 작은 수첩을 들었으면서,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말들의 일부를 주의 깊게 기록하고 있었다. 맥코이 박사와 존 해리슨을 갈라놓고 있는 책상 아래에는 도청기가 붙어 있다. 자신이 설치한 것은 아니지만 들킬 경우 그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하는 남자는, 날 선 불안보다는 오히려 차분히 집중하는 태도로 펜을 놀렸다.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존 해리슨의 눈치라면 언젠가 도청기를 발견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에 특별히 마음을 두진 않을 것이다. 맥코이 박사는 짜증을 적당히 받아 주면서 설득을 하면 된다. 남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두 인물에 대하여 그렇게 평을 내렸다.


  - 취미 같은 건 없어요?


  -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요, 레너드?


  - ...그 말은 당신이 사람 죽이는 일을 취미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단정 지어도 되겠죠?


  첫째 날 15년 묵은 연쇄살인마의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 같았던 박사는 그새 나름대로의 전략을 수립한 것 같았다. 남자는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취미는 뭐죠?”


  존 해리슨이 물었다. 비꼬는 어투는 아니었다.


  “책을 읽길 좋아한다든가, 영화관을 즐겨 간다든가. 뭘 만들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시간 날 때마다 악기를 연주하길 즐기는 종류도 있고.”


  “나는 그 모든 걸 해 봤지만 그걸 취미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공책에 시선을 두고 있던 맥코이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수갑도 찰랑이지 않으면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존 해리슨이 일말의 변화를 보이는 부분은 자신의 표정과 어조뿐이었다. 그리고 맥코이는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맥코이는 말없이 해리슨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심장을 맴도는 레이저 빛을 힐끗 본 푸른 눈동자는 분명히 그것을 아주 우스워하면서도 화를 내고 있었다. 


  “당신의 생각을 정정해 줄게요. 사람 죽이는 일은 내 취미가 아니었어요.”


  “그러면?”


  “내가 찾은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일.” 


  맥코이는 그 순간 자신이 분노하는 악마의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