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셜록존] Interpretations on Pragmatism (To Rooana)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Interpretations on Pragmatism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셜록은 아무런 사고도 하지 않으면서 어중간하게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세차지 않았고 물방울은 모자를 뚫어버릴 것처럼 굵지도 않았다. 셜록은 무언가의 스위치를 켜듯 한 번 눈을 깜빡였다가 자신이 긴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우산을 펼쳤다. 바깥쪽으로 2분쯤 우산을 펼쳐두고 있었는데도 천이 찢어지거나 뼈대가 부러지지 않았다. 셜록은 몇 초 뒤에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물방울을 비라는 형태로 인지했고, 그 사실로부터 자신이 있는 장소를 파악해냈다.
셜록이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시애틀의 빗방울은 부드러웠다.
시애틀의 잿빛 하늘은 셜록의 감각 중 어느 한 부분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비를 뿌릴 듯 말듯 어두운 색깔은 셜록에겐 아주 익숙한 것이라 그의 눈을 따갑게 하지도 않았고 모종의 성가심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문제인 것은 그 하늘이 하필이면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 자연적 사실이었다. 셜록 홈즈는 시애틀에 있었다.
습기 있는 날씨와 잘 어울리는 카푸치노의 향기가 빗방울보다 더 자주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종이컵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셜록은 핸드폰을 꺼냈다. 방금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모종의 일을 끝내고 거리로 나온 지 6분 정도가 지난 시각이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메시지를 읽고 즉시 지워버렸다.
셜록이 보기에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이 대개 보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을 똑같이 입력해두고 있는 인물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수정할 필요가 없는 일처리를 좋아했으며 그런 일이 가능한 인재를 가만히 놔두는 것은 국가적인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이크로프트 개인의 영리함에서 감당할 수 있는 양을 항상 넘어서는 업무가 그에게 밀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이크로프트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여 그에게 과제를 쥐어주어야만 했다. 공무원 딱지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현실적인 실용주의였다.
셜록은 택시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이 정도의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나같이 불을 켜지 않은 간판들이 도시를 미묘하게 칙칙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셜록의 머리를 귀찮게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 부근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풍기고 다녔던 커피향의 발원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셜록은 스타벅스 간판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팔목에 장우산 손잡이를 걸친 채 두 개의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있었다. 셜록은 걸으면서 저절로 남자가 들고 있는 컵 안의 내용물을 알아맞혔다. 아메리카노와 핫 초콜릿이 분명했다. 남자에게서 핫 초콜릿을 받아갈 상대는 너무도 뻔했으므로 셜록은 일말의 흥미를 위해 머릿속에서 연상 놀이를 준비했다. 핫 초콜릿으로부터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셜록은 표정 없이 우산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그는 어느새 택시 정류장에 서 있었다. 셜록은 순간 택시 정류장에 떨어져 있는 금박의 초콜릿 껍질에 묻어있을 수 있는 각종 물질들을 생각해보았다. 마이크로프트의 실용주의 하에서 그것은 한 인재가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흘려보내는 짓에 불과했으나, 셜록은 그것에도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
시애틀과 여덟 개의 벽을 사이에 둔 런던에서 존 왓슨은 보편적인 의미가 있는 초콜릿의 껍질을 만지며 누군가에게 고마워했다.
존은 바깥에서 가져온 종이 봉지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는 출근하기 직전에 허드슨 부인이 가져다준 초콜릿 뭉치 옆에 포장된 상자를 붙였다. 존은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혹시 집 안에서 녹지는 않았을까 하며 허드슨 부인의 초콜릿을 뒤적거렸다. 존은 어떤 사상이나 목적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정과 호의로부터 탄생한 달콤함을 풀어진 표정으로 관찰했다. 존이 초콜릿을 우물거렸다.
존은 한 번에 선물 꾸러미들을 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의 새 집만큼이나 한산해진 냉장고 안은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한 무더기의 초콜릿을 받아들였다. 이제 존은 씻을 준비를 했다.
셜록은 공항 터미널에서 내렸다. 그동안 셜록이 진행한 연상은 400개가 넘는 고리들로 촘촘하게 채워졌다. 그는 공장 구석에서 정신없이 단 음식을 먹고 있던 아이들도 떠올렸었고 초콜릿 향이 나는 목구멍에서 소녀가 내지른 비명도 기억해냈었다. 그러고 보니 공항은 하늘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셜록 홈즈는 런던에 가까워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초콜릿과 관련 없는 생각이 끼어들자 셜록은 혼자 눈썹을 찡그렸다.
사고하기를 멈춘 자의 비극이 볼썽사납고 한심하다는 건 런던에 시간의 중심점인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확고하고 진실했다. 셜록이 생각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러한 비극과 영영 멀어지기 위한 한 가지 방책이었고, 이를테면 그만의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도 가능하다면 내버려두지 않는 게 좋다는 마이크로프트의 실용주의가 선불폰에 도착하는 문자 메시지로 대변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만히 있는 일이란 집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그 외의 공간에서는 익숙하지 않기 마련이며 사고력은 언제나 날카롭게 벼려두는 게 좋은 법이었다.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모리어티에게 중독되어 있던 아이들을 계속 떠올렸다. 그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존 왓슨의 주변을 휘감고 돌려 할 때 즈음, 셜록은 공항 내 광고판을 보고 자신이 초콜릿과 밸런타인데이를 연관 짓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밸런타인데이 기념 초콜릿, 향수 할인]
첫 문자로 셜록이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은 모두 전달한 마이크로프트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셜록은 연상하기를 중단했다.
존 왓슨은 샤워 가운의 앞을 묶었다.
아직 침대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으므로 존은 미리 아침에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했다. 그는 토스트를 눈에 띄는 곳에 꺼내 놓았으며 그 옆에 접시와 잼 바르는 나이프를 배치했다. 열려 있는 창문이 있는지 확인했고, 내일 갈아입을 옷을 미리 의자에 걸었다. 짧은 시간 안에 집안 대부분을 돌아다닌 존은 발에 무언가가 걸리는 일도 없이 무사히 침실에 당도했다. 조용한 밤이었다.
존은 숙면을 위해 엄선한 두꺼운 책을 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확실히 단조롭고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왔다. 자문 탐정의 동료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을 때는 전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수법이었다. 존은 작은 전등을 키고 책을 읽었다.
존도 조금씩 죽은 사람에게 평생 자신의 감정과 믿음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을 매번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사라졌으므로 그는 자신을 조금은 피로하게 만들어줘야 했고, 자신과 아주 많은 사람을 함께하던 사람이 돌아올 수 없으므로 순식간에 붕 떠버린 자신의 시간을 같이 꾸릴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 생존 전략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은 실용적인 설득력 아래 존은 천천히 책 속의 문장을 따라갔다.
런던은 밤이기에 캄캄했고 시애틀은 오전이었으나 저녁처럼 어두웠다. 존이 눈을 껌뻑거리는 사이 셜록은 탑승 게이트를 찾아가며 조명을 밝힌 면세 상점들에게 약간씩 시선을 주었다. 빗방울과 커피 냄새에 이어 화장품들의 잔향이 그를 건드리려 애썼다.
셜록은 존을 생각했다. 존은 그에게 논리적으로 풀 수 있는 질문이나 문제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존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서 그의 사고력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점은 없었다. 베이커 가가 아닌 다른 곳에 새 집을 마련했다는 전직 군의관은 홈즈 형제의 실용주의에 부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이 존을 생각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진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 시애틀의 하늘과 초콜릿이 빚어낸 뜻밖의 자극에 자신이 필사적으로 대항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하여 셜록 홈즈는 가장 순수한 의도로 존 왓슨의 편안한 밤을 그렸다.
Valentine's Day by Linkin Park
I used to be my own protection
But not now
I never knew what it was like, to be alone
나는 나 자신의 보호장치이곤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혼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일지 나는 전혀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