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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stellar/만] Competitive Identities

Jade E. Sauniere 2015. 2. 11. 11:14

- Interstellar, about Doctor Mann

- Written by. Jade


Competitive Identities




  67시간은 추운 낮이고, 또 다른 67시간은 그보다 더 추운 밤이다. 이 별의 낮과 밤은 서로 별 볼일 없는 힘겨루기를 하는 듯하다. 낮은 땅에 햇빛을 전해주면서 지면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따뜻하고 활기차게 만들어줘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잊은 것 같았고, 밤은 편안하고 조용한 어둠으로 지면 위의 생명체들에게 휴식을 주어야 하는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의미 없는 경쟁과 가혹한 역전만이 가득하다.


  만 박사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누운 자세 그대로 눈만 깜빡였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은 절전 상태로 가만히 서 있는 로봇은 어떤 움직임이 포착되면 즉시 가동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만 박사는 정지해 있는 로봇을 깨우기 싫었다. 그는 누워서 한 번, 두 번 눈을 깜빡였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낮은 온도가 내부를 돌아다녔다. 생명을 품어본 적 없는 행성은 갑자기 찾아온 낯선 박동을 위하여 쉽사리 자신의 성질을 바꿔주지 않았다.


  만 박사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몸을 살짝 옆으로 틀 수도 있었다. 그 작은 뒤틀림이 로봇에 불이 들어오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만 박사는 눈만 깜빡였다. 그가 그것을 별달리 원하지 않아도 눈을 뜨고 있는 이상 그는 눈을 깜빡여야만 했다.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눈꺼풀은 끝없이 반복되는 어둠을 그의 망막으로 끌고 들어왔다. 만은 그 안에서 환상처럼 반짝이는 것들을 보았다. 그것은 과거에 그가 들었던 말소리이기도 했고, 과거에 그가 보았던 다른 누군가이기도 했으며 과거에 그가 스스로 내뱉었던 선언이기도 했다. 


  만 박사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였을 때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잠을 청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굳게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피로하게 만드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비한 물자들을 기록하고 지금까지 탐험한 영역이 임시적인 지도에 제대로 표시되었는지 확인하며, 이번엔 북쪽 방향으로 해가 질 때까지 탐사를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돌아와서는 탐사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기록하기로 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만 박사에게 가장 중요한 기록은 그가 여기로 오는 여정을 결심했었던 순간이었다.


  —지구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여기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고, 속삭임에 불과했던 그것은 갈수록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외침이 될 겁니다.


  이것은 그저 당시의 상황을 인정했던 것이었다. 인간을 살리는 것조차 불투명해 보이는 와중에 자연을 회생시키는 일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신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자격이 있다고 믿어요.


  이것은 그야말로 믿음의 표현이었다. 탐사 대원의 선발 과정에 적극 참여했던 만 박사는 정말로 자신이 설득한 이들이 충분히 교육을 받았으며, 인류에 대한 책임감과 약간의 모험심 등을 두루 갖춘 훌륭한 인재라고 믿었다. 


  만 박사는 그 사실적인 기록 사이를 뒤졌다. 그의 머리가 기억하는 것은 몇 마디 말이 전부였지만, 그는 어쩐지 우주선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에게는 희망적인 가능성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추측하게 되었다. 그는 다른 대원들이 전부 실패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오만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그려보지 않은 사람처럼 무한히 좌절을 향하여 추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 박사는 결국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생명에 대한 자비가 없는 이 행성에도 낮과 밤이 존재한다. 그러나 낮과 밤이 가지는 비율은 같고 언제나 춥기 때문에, 그것들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은 거의 없어진다. 창문이 없는 이 공간에서 67시간은 단지 어떤 상상력으로도 다룰 수 없는 구체화된 절대영도(絕對零度)였다. 만 박사는 그것이 차마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숨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그것은 영웅과 분리된 한 인간의 언어였다. 하지만 그의 행성은 진실을 깨달은 유일한 인간에게조차 매정하여 끝없이 춥고 어두웠다. 






'Full of Sound and Fury' composed by Dean Valentine

Used in the second trailer of American Sni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