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ue Detective

[TrueDetective/마티러스트] Some Consistent Things

Jade E. Sauniere 2015. 2. 11. 11:00

- True Detective, Martin Hart/Rustin Cohle

- Written by. Jade

 

Some Consistent Things

 

 

 

  많은 경우 사물은 사람보다 더 일관적이다. 마틴은 당장 그 명제에 대한 증거물로 내놓을 수 있는 대상을 보고 있었다. 

 

  지금은 마틴에게 있어 드문 순간이었다. 상당 부분 거주지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보이던 집에서 나온 뒤 러스트는 실질적으로 마틴의 사무실에서 살고 있었다. 수중에 돈이 없어 방을 얻기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며, 자신은 집이 제공하는 가장 큰 편안함인 수면을 잘 누리지 못하니 집이 필요가 없고, 잠을 못 자는 시간에는 아주 높은 확률로 일을 할 테니 차라리 사무실에 계속 있는 게 효율적이라는 러스트의 빈틈없는 논리를 마틴은 극복해내지 못했다. 결국 러스트는 마틴의 곁에 아주 오래 있게 되었다. 

 

  마틴이 처음으로 러스트가 없는 책상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금연의 좋은 점과 더불어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를 담은 책이 책상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틴이 진짜로 네가 불사신인 줄 아냐며 혀를 차는 동작을 담아 러스트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물론 마틴은 러스트가 그 책을 펴 본 적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마틴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모로 더 이상 세무원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게 되었음에도 러스트의 옆구리를 떠나지 않는 검은색 노트였다. 두께도 크기도 90년대에 그가 들고 다니던 공책과 똑같았다. 마틴은 얇게 긁힌 자국만 조금 났을 뿐 상한 구석이 없는 공책을 슬그머니 뒤집어 보며 관찰했다. 7년 전 러스트의 모습과 많이 닮은 깨끗함이었다. 마틴은 공책을 앞뒤로 살펴보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그는 옛날에도 러스트가 먼저 보여주지 않을 때 말고는 러스트의 공책을 들춰본 적이 없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일관성이 공간을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마틴은 러스트의 사건 노트 아래에 무언가가 깔려 있음을 발견했다. 노트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그것만큼이나 딱딱한 표면을 가진 물건이었다. 마틴은 넓게 뚫려 있는 사무실의 유리창을 슬쩍 훑었다. 러스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마틴은 휙 노트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가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까맣고, 형태는 사각형으로 일치하지만 보다 더 매끄러운 공책이 드러났다. 마틴은 순간적으로 그것을 러스트의 다이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러스트가 일기를 끼적대는 모습을 상상하다 혼자 웃어버렸다.

 

  ‘세상 다 산 양반처럼 구는 주제에 일기?’ 마틴은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러스트의 일기장이라는 자신의 추론을 버리지 않았다. 크기도 일기장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기에 적합해 보였고, 험한 여행길을 겪어보지 않은 게 분명해 보이는 광택 또한 마틴의 추측에 가능성을 실어주었다. 마틴은 날숨이 섞인 웃음을 흘리면서 다이어리의 책등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에게는 추정이 아니라 선택의 길이 열려 있었다.

 

  마틴은 다이어리를 펼쳤다. 

 

  검은 표지의 뒤편에는 글자가 없었다.

 

  나무와 펜과 종이 속의 종이가 하나의 비유 같은 질서에 맞춰 배열되어 있었다. 커피를 마신 자국이 찍힌 머그잔이나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자도 볼 수 있었다. 마틴이 보기엔 화가가 되었어도 충분했을 듯한 재주가 무심한 선으로 빈 공간을 채운 모습이었다. 마틴은 또박또박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자 그가 가득해졌다.

 

  마틴은 눈을 크게 뜨고 러스트가 그린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떤 생각이 들어 공책을 빠르게 넘겼다. 러스트가 그린 사람은 마틴이 유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러스트의 집과도 같은 이 공간에 러스트가 관찰하면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사무실에 머무르는 사람은 마틴뿐이었다. 마틴은 러스트가 들고 다니는 커다란 노트만큼이나 그가 찾을 수 있는 일관적이고 변함없는 대상이었다. 마틴은 그림을 보다가 화가가 될 생각은 안 해봤냐는 물음에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에는 늦었다고 대답했던 러스트를 떠올렸다. 

 

  문이 열리면서 나는 개성 없는 소음에 마틴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러스트가 손을 뒤로 뻗어 출입문을 미는 자세 그대로 마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틴은 재빠르지만 의미 없는 동작으로 러스트의 작은 공책을 내려놓았다. 러스트의 표정은 덤덤했다.

 

  러스트는 의외로 별 말이 없었다. 마틴이 저도 모르게 노골적으로 러스트의 눈치를 살폈지만, 러스트는 본래의 자리로 안내받지 못한 공책을 사건 노트로 가릴 뿐이었다. 세상에서 러스트 콜을 다룬 경험이 가장 풍부한 마틴도 러스트의 표정을 읽는 방법을 몰라 하릴없이 눈썹만 움찔댔다. 

 

  러스트는 침묵했다. 마틴이 20분 째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결국 마틴은 자신의 파트너가 어쩐 일로 이해심을 발휘했다고 생각했다.

 

  마틴이 비로소 러스트에게서 시선을 떼고 서류를 펼쳤을 때, 러스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공책을 펼쳐 마틴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