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 The Crime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2014/06/16
- 제이드식 함축적 표현과 철학에 주의
- Written by. Jade
The Crime
레너드 맥코이는 총을 들고 있었다. 총은 그가 산 일평생을 다 더듬어 봐도 도저히 그와는 인연이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레너드 맥코이는 그 총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온 몸으로 울면서 총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검은 총신에 그것보다 더 짙은 검은 뒷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검은 것으로 검은 타깃을 노리고 있었다.
그 또한 까맣게 타들어가기만 한다.
레너드 맥코이가 든 총은 겉으로 보기에는 퍽 평범해보였다. 손에 땀이 나도 쉽게 미끄러지지 않게 손잡이 부분의 일부가 울퉁불퉁했고 거기서부터 위로 올라가면 총알이 빠르게 뚫고 지나가는 길목과 출구가 딱딱한 표면으로 덮여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흔해빠진 피스톨 한 자루였다. 레너드 맥코이에게 총을 준 장본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최첨단 어뢰도 맞추기 어려운 목표물을 관통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스타플릿 장교가 사격술을 배우기 제일 안 좋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레너드 맥코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검은 물체 두 개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저편에서는 72정의 전투병기로 이루어진 지평선이 파도가 이는 바다처럼 넘실거렸다. 레너드 맥코이는 입술을 세게 깨물면서 총을 올렸다. 그러다가 다시 내렸다. 그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지평선이 생겨나고 있었다.
온갖 불가능한 일들이 화산처럼 솟아나는 그 곳은 우주의 중심이었으며, 곧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지도 모를 샌프란시스코였다.
뒤쪽이 사고를 방해할 정도로 소란스러워지자 그제야 레너드 맥코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퀴를 단 포신들이 주르륵 나타나 제 자리를 집었다. 그는 어디서 그런 구시대적이면서도 무섭도록 이지적인 무기들이 등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레너드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거기서 물러났다. 그러니 72개의 점들이 이뤄내고 있는 지평선에 가까워진 꼴이 되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타깃과도 가까워졌다. 짜증이 솟았다. 그는 외쳤다.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방아쇠를 당기라는 거야!
놀랍게도 레너드 맥코이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엉겁결에 올라간 팔이 지평선에 흡수되려는 까만 등을 조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차라리 총성을 울릴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아마 타깃은 뒤를 돌아볼 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자살도 아니고 전쟁에서 명예롭게 죽는 것도 아닌 한 인간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던 저의를 들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지 몰랐다.
레너드 맥코이가 눈으로 울었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남자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남자는 머리도 눈치도 좋은 편이었으므로 레너드 맥코이의 속내를 분명코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자신이 직접 장전한 총을 건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죄나 미움이 아닌 종족적 한계로 빚어진 엇갈림이 레너드 맥코이의 눈앞에서 가시적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그는 눈가를 닦기 위하여 한 팔을 내렸다가 다시 총을 잡았다.
레너드 맥코이와 그의 타깃을 떼어놓고 있는 건 명백하게도 종족적 한계였다. 전부터 그것을 직감하고 레너드 맥코이는 하나의 고목을 인간으로 만들려는 것과 비슷한 작업을 행하기 시작했다. 언어관을 공유하고 이론적으로 파고들 수 없는 이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비슷한 삶을 살 수 있고 비슷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 같은 나무를 만드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나와 같아질 타자를 주조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나무라도 300년을 살았다면 그것은 지혜로울 수 있다.
고목은 자신이 돌아갈 자연을 어기지 않았다. 레너드 맥코이는 외쳤다. 빌어먹을! 바람이 불면서 그의 목소리는 빠르게 흩어졌고 무리들은 하나의 성채가 되어갔다. 레너드 맥코이는 총을 들고 있는 손을 마구 털었다.
끝없이 부풀어 오르던 지평선의 끝부분에서 레너드 맥코이만 들을 수 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변명은 않겠다. 칸이 말했다.
씨앗이 좁은 화분보다는 울타리 없는 평지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진리이다. 레너드 맥코이가 신경질 내는 부분은 엄연히 말해서 그것이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정해진 방향이 있다는 사실조차 거스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평지만큼이나 넓고 아름답게 가꾼 정원마저도 진정한 자연이 아니라면서 외면하는 씨앗의 행동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우주의 중심은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인간들의 도시다. 곧 우주의 중심적인 방향은 인간이 이끈다.
나도 마찬가지야. 레너드 맥코이가 대답했다.
그 어느 장교보다 노련하고 정확하게 레너드 맥코이는 칸을 쏴 맞추었다. 인간과 강화인간을 경계 짓던 한계선이 스르르 무너졌다.
칸은 총을 맞으면서 레너드 맥코이가 왜 자신에게 총을 쥐어줬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을 애석해했다.
9 Crimes by Damien Rice
Same Song, covered by Natalie Lungley
저는 요새 타자철학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면서 자꾸 타자를 들먹이는 특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엔 다 <독립의 역사> 때문인 것 같은데.. 사실 타자라는 개념은 현대 사람들이 한 번씩은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 내가 아닌 자는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하지요. 자신의 오만과 속단을 줄여주는 가장 좋은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칸은 이 타자라는 개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만합니다. 그의 세계는 언제나 그와 같은 동족들이 구성하고 있는 세상이지요. 우생학적 논리이기도 하고 트라우마같은 과거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동화와 한 가지로 구성된 세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특징입니다. 강화인간의 입장에서는 그걸 꼬집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강화인간과는 다른 보통 인간이기 때문에, <독립의 역사>에서는 '인간'이 타자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고요.
그런데 애초에 자기 자신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려는,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진정 인간적인 특성이라면 당연히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성질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이 단편에서 등장하는 레너드 맥코이는 그러한 의미에서 굉장히 인간적입니다. 그는 강화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인간적인 순리이고 본능입니다. 강화인간들에게 인간이 타자이듯, 인간에겐 강화인간이 타자이기 때문에(이것은 원작 등 온갖 부분에서 많이 노출이 되었었습니다), 또한 타자는 자아가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칸은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레너드 맥코이에게서 벗어나 동족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굳이 총이라는 것을 끌어온 건 노래에서 등장하는 가사 때문입니다. 'Give my gun away when it's loaded Is that alright?'라는 가사가 있지요. 이 노래는 굉장히 가사가 추상적이라 저도 잘 이해를 못합니다만, 지식인에 보시면 몇 가지 구절을 아주 빼어나게 해석한 답변이 있습니다. 총은 죽음의 상징물이고 죽음은 달리 보면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 헤어짐입니다. 아주 냉정하게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싶다면 총을 건네주는 게 비논리적인 행위는 아닐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너드 맥코이는 그러한 총이라는 사물을 헤어짐이 아니라 연속성을 끌어오는 데 이용하고 있지요. 칸이 총을 맞아서 쓰러지고, 그래서 대열이 흩어지고 스타플릿들이 상대방을 붙잡으면 레너드는 다시 칸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칸이 정말 평범하게 생긴 피스톨로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해준 건 어쩌면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써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문장을 집어넣은 것이거든요. 정말 당신(레너드 맥코이)와 공존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도 확답을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존본즈라서요...? 죄송합니다(....) 3분 45초짜리를 9번 들으면서 쓴 거니, 기껏해야 30분이 조금 넘었지요? 이럴 때는 진짜 삘로 오는 겁니다. 작가도 잘 모른다 이겁니다!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