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Khan] The Earth of Pain
-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실상 필자의 산책일기에 가까움
- 2014/06/08
- Written by. Jade
The Earth of Pain
여인은 산책을 하러 나왔다. 그녀는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을 때는 바깥공기를 쐬는 게 현명하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여인은 늘 가던 경로를 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는 집의 뒤쪽의 발달된 마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은 아직도 변화가 찾아오는 곳이었다. 왼쪽으로 틀 수 있는 횡단보도와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사이에 두고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새로 생긴 카페라든가 레스토랑, 혹은 수입품을 파는 가게를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인은 왼쪽으로 갔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뜻밖의 변화들을 많이 찾아냈다. 여기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 손가락을 거의 채워갈 정도로 오래 눌러 앉아 있었는데도 아직 그녀가 보지 못했던 장소들이 많았다. 여인은 사람들의 손글씨로 벽이 장식된 오붓한 만남의 공간과 교회의 돌담에 핀 데이지와 장미들을 구경했다. 아기자기한 계단을 올라가 어린이들을 위해 교회가 작게 지어 놓은 학교도 기웃거렸다. 그녀는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크게 돌았다.
그곳은 아직 주거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이었다. 여인은 인부들이 쓰는 간이 화장실과 많은 쓰레기들, 그 사이사이에도 꿋꿋이 싹을 편 상추들이나 몇 가지 채소들을 볼 수 있었다. 늙은 여인이 마침 건물 옆쪽, 비어있는 땅에 심어 놓은 자신의 농작물을 돌보고 있었다. 머지않은 곳에 굴삭기가 있었으므로 노인은 아마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자신의 새싹을 뿌린 모양이었다. 경작을 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무색했다. 여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땅을 파내는 굴삭기의 거대한 입과, 흙을 고르게 펴는 노인의 손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있었다. 봉지에 제대로 담겨있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으며, 그러한 처지로 방치된 지 한 달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쓰레기들이 정당한 자에 의해 개발되고 부당한 자에 의해 가꿔지는 땅 위에 있었다.
여인은 몇 개의 건물을 더 지났다. 요새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아주 많은 듯했다. 여인은 아주 많은 텃밭들과 창가에 한 개씩은 꼭 놓여 있는 화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비닐봉지와 종이들이 있었다. 여인은 느릿하게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리막길에 덮여 있는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이름도 알 수 없는 풀들과, 방금 교회 돌담에서 보았던 데이지를 닮은 하얀 꽃이 껑충하게 큰 채로 박혀 있었다. 여인은 신기해했다. 두 종류의 인간과 여러 종류의 쓰레기에 시달리는 땅은 아직도 강인하여 여인의 복사뼈를 넘는 꽃과 풀들을 키워냈다. 어찌나 당당한 자태냐면 여인은 그것들을 다 피하지 못하고 조금씩 밟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여인의 발길에도 꽃은 그녀의 손톱보다 얇은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여인은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서 뒤를 돌아보았다. 키가 큰 잡초들과 억센 꽃들, 여인이 사는 집보다는 새것인 주거 건물들, 비어있는 있는 땅에서 벌어지는 작은 다툼과 그것을 방관하는 잡동사니들이 하나의 계단처럼 여인의 눈에 다 들어왔다.
여인은 그것을 보고 맨 처음에 땅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식물은 땅의 것인데 요새는 사람이 소유한 식물이 넘쳐난다. 땅은 자신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에 매달려 있다. 인간의 땅에는 인간의 식물이 심어지고 그것을 두고 식물이 아니라 철근을 심겠다며 언성을 높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바람에, 진정한 땅의 식물은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모든 게 땅이 견뎌내고 있는 고통이었다. 빼앗기고 쫓겨나고 깎이고 원하지 않는 뿌리를 받아들인다. 과연 수거가 될는지 의심스러운 인공적인 잔해들까지 낑낑대면서 안고 있어야 한다. 땅의 처지는 불쌍하다. 여인은 입술을 비죽였다.
여인은 시선을 살짝 돌렸다. 잡초와 데이지인지 무엇인지 모를 꽃이 크게 그녀의 앞을 채웠다. 노인이 키우던 채소보다 줄기가 길게 뻗은 풀들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땅은 자신이 숨 돌릴 곳을 마련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콘크리트를 꿰뚫은 자신의 생명력을 남몰래 찬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위대한 대지의 조각이었다.
그것은 여인에게 한 사람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신문이나 뉴스로만 접할 수 있는 인물로 그녀가 제대로 알 리가 만무했지만 여인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를 제대로 만나지 않았더라도, 아마 모든 사람들은 그 남자가 고통과 다른 이들의 이해(利害)와 끈기로 가득 찬 대지를 닮았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