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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over/칸웨인] Justifying Hero

Jade E. Sauniere 2014. 6. 5. 12:23

 철근과 유리로 만든 건물이 이루는 숲에 청색 꽃이 피었다. 그 꽃의 뿌리는 포유류의 다리처럼 양쪽으로 뻗어서는 꼭 사람처럼 기우뚱대며 땅을 딛고 있었다. 빌딩 숲 사이에서 핀 파란색 꽃이 걸어 다닌다. 웨인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오감이 의식을 이기질 못했다. 지금이라면 천사와 악마가 서로의 날개를 바꿔 끼는 모습을 봐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웨인은 이 기막힌 상황의 문제를 파악해보려 애썼다.

 

  문제는 화신이 인간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감각이지만 결국 그 감각의 그물에 잡히는 것만 쓰러뜨릴 수 있다는 진리가 문제였다. 웨인은 용케도 자신이 사태를 옳게 파악하고 있음에 만족해했다. 그는 명확하게 윤곽이 잡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방에 청색 꽃이 있었다. 웨인의 머릿속에도 그것은 존재했다.

 

 

  Based on Batman Trilogy by Christopher Nolan

  Khan Noonien Singh & Bruce Wayne Crossover

  Written by. Jade

 

  Justifying Hero


 

  인간의 무의식에 퍼져 있는 온갖 상념들을 양분처럼 빨아 먹으면서 자라는 꽃에 대하여 웨인이 자신 있게 표출할 수 있는 감상은 신비로움이었다. 새벽을 닮은 파란빛과 극지방을 제외한다면 대륙에서 가장 추운 산자락에서 자란다는 점, 시야를 어지럽히는 향기 등 그 꽃의 모든 것이 불가사의했다. 그런데 사실 그가 가장 의아하게 여기는 점은 꽃이 남성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웨인이 들어본 것 중 제일 낮고 부드러우며 우아한 음성으로 꽃이 건넨 첫 마디는 이랬다. 특이하군. 

 

  웨인은 그 말을 꽃이 했다고 구별하기 위해 며칠을 소비했다. 그것은 자신의 잠꼬대 같기도 했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본심의 일면 같기도 했다. 아주 빗나간 표현은 아니었다. 그는 눈 덮인 땅에서 청색 꽃을 꺾었으나 그것의 향기가 웨인의 머리에 박혀 성장을 했으므로, 꽃과 대화를 나눈다는 건 자신의 머릿속에다가 말을 거는 것과 같았다. 

 

  너는 화신을 담은 기반이며 단 하나의 법칙을 위해 일궈져야 하는 농지이다. 

 

  웨인은 놀라면서 필사적으로 그 목소리를 거부했다. 무의식은 굳이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아는 웨인은 과거를 회상하고자 온 힘을 기울였다. 그의 시선을 스쳐 지난 청색 꽃이 순간 낯선 여성으로 보였다.

 

  꽃, 환상, 화신, 여러 가지로 칭할 수 있는 목소리를 만난 곳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이름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지역이었다. 거기서 화신은 유일하게 그가 브루스 웨인이라는 것에 주목해주었다. 나 말고도 그 꽃의 향기를 맡은 사람은 꽤 될 텐데? 듀카드도 그랬을 거고. 침대에서 뒤척이며 내뱉은 혼잣말에 화신은 대답했었다. 그들은 너보다 비옥하지 않았다, 웨인. 화신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비옥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독특했다. 웨인은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지 않는다고 해도 너는 그의 아들이다. 웨인은 그 말에는 웃을 수 없었다. 

 

  청색 꽃의 화신에 대하여 웨인은 단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다. 화신은 사적인 복수자를 꿈꾸었던 웨인에게 영웅의 꽃내음을 불어넣었다. 상징적인 의식에 불과한 줄 알았던 향을 맡는 일이 처음으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그 때 그걸 신에게 빚진 걸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내 잘못이었나? 회상이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웨인이 툭 혼잣말을 하자 그걸 놓치지 않고 화신이 목소리를 냈다. 너는 영웅이다.

 

  “너는 영웅이다.”

 

  웨인은 진심으로 놀라 고개를 돌렸다. 

 

  녹색 천만으로 몸을 감쌌다거나 화관을 쓴 모습은 아니었다. 청색 꽃의 화신은 평범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 웨인의 앞에 서 있었다. 다만 그의 피부는 꽃이 본래 자라는 눈 쌓인 산등성이를 의미하듯 하얬고 눈동자가 꽃잎처럼 파랬다. 웨인은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펼쳐지는 환상인지 알고 싶었지만 목을 돌리는 게 불가능해 다른 곳을 볼 수가 없었다. 꼼짝없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웨인은 화신의 말을 들었다.

 

  “부모를 잃은 자녀들에게 반드시 복수의 의무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야. 그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지 않아도 성을 잃지는 않는다. 모두 네가 그 혹은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

 

  “이제 그 얘기는 내게 아무런 효력이 없어.”

  “그것이 왜 그런지에 관해서 궁금해 한 적은 없나?”

  “무슨 소리지?”

 

  “너는 훗날 사고를 당할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내 영웅이 되기로 한 것은 네 선택이었다.”

  “뭐?”

 

  “언젠가 네가 말했던 것처럼 나를 태워서 그 향기를 맡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비슷한 얘기를 해 줬었지. 사연들은 제각기 달랐지만 내가 그들에게 일깨워줄 것은 한 가지였다. 내가 보기에 너와 그들이 불우한 정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거울상 같은 허위로 뭉친 정체성에 더 강하게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당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소린가?”

  “웨인, 너는 영웅이어야 한다.”

 

  화신은 얼핏 듣기에 엉뚱한 말인데도 그것이 하나의 논리에 포함된 것처럼 읊조렸다. 그것이 식물의 논리인지 신의 논리인지는 불투명했다. 어쨌든 웨인은 그것을 파악할 수 없었다. 웨인은 단지 화신의 푸른 모습을 보고 있었으며, 밤을 망토처럼 두르고 다니는 자신의 영웅이 어느 역사가나 시기적절한 전쟁으로 비롯되지 않았다는 걸 아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복수라는 행동 없이도 너는 죽은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것은 첫 번째 탄생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 탄생에서 너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시계탑에서 눈에 보이는 암흑과 그렇지 않은 암흑에 휩싸여 있는 도시를 굽어보는 위인이 되었다. 한 번 태어나면 자신이 탄생했다는 사실로부터 절대 떨어질 수 없다. 다만 두 번 태어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뒤집을 수 있는 위업을 이뤄냈다는 것이 다른 것이다.”

 

  꽃이 변한 화신이 무의식과 닮은 언어를 내뱉고 있으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웨인은 세상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도면을 받아든 기분이었다. 그래서 웨인은 화신이 청색 눈동자를 묻힌 손을 자신을 향해 뻗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영웅으로 거듭난 너의 탄생을 번복하지 마라. 그것은 너의 성과이고 선택이며 독립이 불가능한 근원적인 구조이다.”

 

  환상이 부서졌다. 

 

  웨인은 소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빌딩 숲 사이를 걸어 다니고 있는 건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손에 청색 꽃잎 같은 건 달고 다니지 않았다. 웨인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고개도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었다. 웨인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고향이라는 걸 확인한 뒤에 앞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위대함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화신이 의미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웨인은 그 미소가 잎사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잎사귀는 무의미하지 않다. 아무도 발견한 적 없는 들꽃도 기회만 얻으면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데, 보기 드문 청색 꽃이 화신이 되어 자아내고 있는 잎사귀에 의미가 없을 리 만무했다. 

 

  화신은 웨인과 거리를 더 좁히고 그와 이마를 맞댔다. 그러면서 아래로는 웨인의 손을 잡아당겼다. 딱딱하고 끝부분이 뾰족한 물건이 웨인에게 쥐어졌다.  

 

  태어나서 복수하고 진화하여 마침내 자신이 사랑했던 도시에 껍데기를 남겨주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던 위인은, 그 모든 시간을 잊어버리고 활기를 느끼고 말았다. 박쥐같은 망토를 두른 웨인이 날아올랐다. 눈물 없이 눈동자를 흩날릴 수 있는 화신이 팔을 들어 올리자 웨인은 더 높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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