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STID/칸커크스팍] Wires

Jade E. Sauniere 2014. 5. 20. 21:26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James Kirk/Sp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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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Jade

 

Wires

 

 

 

  엔터프라이즈가 유독 하얀 빛깔이었던 걸까? 밤과 먹구름과 마른 재의 색깔로 가득한 함선의 내부는 일찍이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얀 구름들이 지배한 가운데 푸른 하늘이 군데군데 섞인 것 같던 엔터프라이즈에서 벗어나 내가 떨어진 곳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을 허락하고 만 내 처지를 역설해주는 것처럼 대조적이다. 나는 더 이상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 아니며 벤전스에 탑승해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본즈는 내가 한 번 방사능을 뒤집어 쓴 이후로 유독 내 건강을 염려했다. 여기서 건강이라는 건 육체와 정신을 모두 아우른다. 내가 매일 총격 사건을 겪기라도 하는 것처럼 심심찮게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안내장이 메디컬 센터로부터 날아오곤 했는데, 본즈가 전보다 더 나를 염려하는 것처럼 나 역시 예전처럼 본즈의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일을 즐기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봤을 때 안타까울 정도로 불행하게도 본즈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딱 한 번 스타플릿의 보안 시스템이 초기화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샌프란시스코의 발전소가 보수 중이었기 때문에 다들 거기서 발생한 문제가 스타플릿 본부에 잠깐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다. 해킹이라든가 네트워크에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없었고, 시스템이 긴급하게 보조전력을 공급받을 때처럼 유연하게 반응한 점도 장교들이 안일한 결론을 내리게 하는 데 일조했다. 이제 와서 보니 유감으로 여길 게 많네. 그렇게 맘 놓고 있던 장교들 중에는 당연히 나도 있었다. 그래서 칸에게 붙잡혔다.

 

  그 놈을 만나는 매 순간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짜릿한 기억으로 남고 만다. 턱을 어긋나게 만드는 기막힌 방법으로 내 말문을 막은 주제에 칸은 꽤나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날 앉혔다. 물론 내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자마자 마취제를 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젠장, 여전히 알 수 없는 놈. 근육이 피부 속에서 녹아버린 것 같은 무거운 감각은 끔찍했다.

 

  “통신기를 갖고 있나.”

  “납치당한 사람한테 그런 걸 물어? 갖고 있었어도 네가 뺏어갔겠지!”

 

  칸은 두말 않고 내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칸은 내 바지의 뒷주머니에 꽂혀 있던 커뮤니케이터를 찾아내 손에 쥐었다. 마취제의 효력인지 나는 내 엉덩이에 딱딱하고 네모난 감각이 남아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네 부함장에게 연락해라.”

  “…뭐야, 그럴 거면 난 왜 데려왔는데?”

  “그 수다스러운 입에는 여전히 감정을 줄 수가 없군. 네가 내 요구에 대해 의심을 품을 처지인가?”

 

  나한테 전화를 걸라고 시킬 거면 신경 마취제 같은 건 조금 늦게 놔줘도 괜찮잖아. 제기랄. 플립을 열고 버튼을 누르는 게 언덕 위로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것처럼 버거웠다. 그런데 내 입에 무슨 감정을 줄 수가 있다는 거야? 그 말은 나의 다른 부분에 관해서는 어떠한 감상을 피워 올릴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려서 속이 움찔거렸다. 칸은 누구도 읽을 수 없는 표정만 짓는다. 그의 속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언행 역시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나는 사지를 움직이기 힘든 인질의 역할을 고분고분하게 수행한 끝에 연결음을 내고 있는 커뮤니케이터를 칸이 서 있는 쪽으로 밀었다.

 

  —메시지를 받은 겁니까, 짐?

  “그 역할은 내가 맡을 종류가 아니다.”

 

  커뮤니케이터를 든 칸이 등을 돌렸다. 

 

  —…어떻게 최하층에서 빠져나온 거지.

  “아직도 그쪽이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건 의외로군. 어느 시스템이든 초기 상태로 되돌아가는 때에는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네 놈 짓이었나.

  “궁금증이 풀렸다면 내 요구사항을 기억할 준비나 해.”

  —너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는 나머지 캡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와 네 함장이 있는 지역의 좌표를 불러줄 것이다. 어떤 수송수단을 이용해도 좋으나 도착하는 즉시 파괴하고, 비무장 상태로 혼자 오도록. 30시간의 여유를 주겠지만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꽤 빠듯할 거다.”

 

  칸은 통신을 끊었다. 커뮤니케이터는 당연히 내 주머니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안면 구석구석을 구기면서 놈의 등을 노려보았다. 몸을 쓸 수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머릿속이 또렷해진 것 같기도 했으나, 떠오르는 건 괴상한 생각들뿐이었다. 가령 나는 그럴듯한 눈초리를 뜨고 칸이 혹시 자신을 맨손으로 휘어잡았던 벌칸에게 앙심이 남아 있는 건 아닐지 그 가능성을 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영양가 있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극저온 캡슐들은 둘로 나누었고, 그 중 반은 너랑 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칸은 팔을 내린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나 혼자서 가지고 올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그게 뭔데?”

  “함선과 충격파 장비.”

 

  그 간단한 말이 내 핏줄을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그 덕에 내가 좀 더 뜯어봐도 될 만한 요소들이 머리에서 날아가고 말았다. 

 

  검은색, 어둠, 어둠. 까만 우물에서 겨우 고개를 쳐든 기분이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내닿은 벤전스의 잿빛 현실에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스팍이 존재한다. 엔터프라이즈는 한꺼번에 함장과 부함장을 잃었다. 바꿔 말하면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역시 자신의 함선과 부함장을 잃었다. 스팍이 멍하게 칸의 검은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다시 도망쳤다. 그곳 역시 밝지는 않다. 낮처럼 빛처럼 밝은 곳은 엔터프라이즈다.

 

  주춤주춤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던 고개를 황급히 뒤로 잡아당긴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깜빡 잠들었던 동안 좌우의 어두침침한 공동은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칸의 묵직한 뒷모습이 왼쪽으로 비켜났을 때 나는 세로로 묶여 있는 스팍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동시에 피부가 움츠러드는 추운 공기가 느껴졌다. 칸이 스팍을 제압하는 데 어떤 방법을 동원했는지 감이 잡혔다.

 

  “…우리 둘을 잡았으니, 이제 맘 놓고 스타플릿을 쳐부수러 갈 건가?”

 

  칸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난 뒤 그는 몇 분이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칸을 주의 깊게 응시하게 된 나는 주변의 차가운 공기에 냉혹함을 아주 조금 뺏긴 것 같은 그의 비밀스러운 눈동자와 파괴적인 욕구가 툭툭 불거져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매끈한 손을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네가 동의할 경우 스팍은 나의 충직한 동료로 탈바꿈된다.”

 

  본래 사람이 너무 놀라운 말을 들으면 되묻는 반응부터 내뱉기 마련이다.

 

  “뭐, 뭐라고?”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샌프란시스코를 영원히 역사 속으로 잠재우기 위해 나갈 것이다. 그 이후에 스팍을 나의 충직한 동료로 탈바꿈시키겠다.”

  “…대체 무슨 헛소리야! 그럼 내가 뭘 동의할 수 있다는 건데!”

 

  “네 부함장을 언제 세뇌시킬 건지 그 시기에 관해서 너는 의사표현을 할 수가 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유와 더불어 마음껏 사고할 수 있는 능력마저 뺏겨버린 듯한 복잡한 허탈감이 자꾸 어깨를 아래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럼에도 칸의 눈빛은 빌어먹게도 부드러웠다! 자신이 괴롭히는 대상에게 측은함을 느끼는 악마의 미로에 사로잡혀 나는 물음표만 내밀었다. 

 

  “…어째서?”

  “스팍을 내 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와 돈독한 교류를 맺고 있던 너 역시 나를 따라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너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건가?”

 

  칸이 스팍의 머리 위쪽으로 손을 뻗었다. 정확한 원리를 파악하고 싶지도 않은 기계의 일부분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끌려왔다.

 

  “뭐?”

  “너를 얻기에 앞서 네 부함장을 먼저 회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인 일이다. 물론 네 부함장을 평화로운 방식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으므로 몇 가지 복잡한 장비들과 계획이 동원된 것이고.”

  

  되물을 기력마저 살금살금 내 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칸은 내 표정을 읽은 듯 스스로 대답했다.

 

  “너는 지금도 나를 동력 삼아 움직이고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일부로 살아서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내 동료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가까스로 앞문장이 내가 칸의 피를 수혈 받아 회생했음을 의미한다는 걸 파악했다. 그 뒤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른 개량인간들이 칸의 선례를 참조해서 만들어진 모양이지. 그것을 안다고 해서 칸을 무력하게 올려다봐야 하는 내 처지나, 그림자 속에 묻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스팍이 눈을 번쩍 뜰 수는 없었다.

 

  “네가 지금 스팍을 세뇌시키는 것에 승낙할 경우 몇 가지 이점을 주겠다.”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듣고 있자면 내 귓가만이라도 평안해지는 것 같았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스타플릿과 연관되지 않은 인간들은 최대한 공격하지 않겠다. 스타플릿 소속 장교라도 네가 특별히 이름을 거론하는 몇몇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전처럼 지구 전 영역을 지배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며 무인 행성을 개척하는 데 초점을 맞출 거다. 무엇보다 네가 네 부함장과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그 길고 매끄러운 말에 끌려가듯이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뇌를… 당한다면서.”

  “그렇다.”

  “그것으로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던 스팍은 영영 사라져버리잖아.”

 

  “네 동료라는 정체성은 남아있게 된다.”

  “동료?”

  “같은 함장을 따르고 있다는 관계로 너는 여전히 네 동료 스팍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스팍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주위가 왜 이렇게 싸늘하냐는 시선을 뿌리며 눈썹을 치켜세울 벌칸은 벌써 그가 발휘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빼앗긴 채 어떤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분간은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 스팍만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잃어버린 것보다 남겨진 걸 더 쉽게 헤아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약물이 든 주사기를 들어 올리고 있는 칸을 눈으로 쫓았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내가 어떤 의사를 표현하든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건 없다는 잔인한 맥락이 스며들기에 어울리는 부드러움이었다. 

 

  벤전스는 승무원들이 일말의 진동도 느낄 수 없는 안정적인 움직임을 자랑하며 나아갔다. 스팍은 보통 함교보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의자 주변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나는 스팍이 눈을 감은 모습만을 본다. 적어도 그는 나를 향해 눈을 뜨지 않게 되었다. 스팍은 함장과 함께 다음 경로를 상의했다. 

 

  내가 스팍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칸이 받아든다. 조금은 급하게 대화를 끝내면서 칸이 고개를 돌렸다. 함선과 우주와 스팍에게 자신의 차가움을 나눠주느라 유리알처럼 깨끗해진 청록색 안구는 현실과 과거 그 어느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가치였다. 스팍을 자리로 돌려보내는 건조한 손짓과 나에게 닿는 따뜻한 정서를 피해, 나는 또 다시 어두운 곳으로 도망쳤다.

 

 

 

 

Wires by The Neighbourhood

 

 

 

  - 애스크 리퀘스트 두 번째, " 혈청을 받은 커크에게 칸이 동질감을 느껴서 크루로 만드려고 스팍을 납치해 세뇌하는 거요"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 단편은 가급적으로 한 호흡에 써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최대한 속력을 내어 두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