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ything
[AmazingSpiderman/해리피터] To His Father
Jade E. Sauniere
2014. 5. 12. 18:42
- The Amazing Spider-Man 2, Harry Osborn/Peter Parker
- 더쿠의 외로운 영감만이 남아 있는 50분 날림작.
- Written by. Jade
To His Father
달려가는 차 옆으로 한 청년이 걷고 있었다. 해리 오스본은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눈을 크게 뜨면서 유리를 짚었다. 그런데 창살 달린 독방과 안전띠가 주렁주렁 달린 의자만을 왕복하던 1년간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위치조차 가물가물해진 해리는 운전사에게 차를 멈추라고 말하지 못했다. 오스코프의 수장은 하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명령을 내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피터 파커가 납골당에서 빠져나와 얕은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해리는 창문도 내리지 못하고 입도 벙긋거리지 못했다.
해리가 비로소 쓸모 있는 행동을 한 건 차에서 내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그는 거침없이 오스본의 명예와 권위를 들먹거리면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담당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담당자는 오스본이라는 이름에 바들바들 떨었다. 해리의 성씨는 그에게 워낙 비극적인 것만을 제공해왔기에 해리는 그것의 대단함을 자주 까먹곤 했다. 그가 뉴욕에서 제일 세련된 건물이 아니라 그늘이 우거진 정신병동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건물의 담당자를 들들 볶은 뒤에 원하는 것을 얻어낸 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가 맨 처음에 들렀어야 할 곳이기도 했다. 문이 없는 방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휘날리고 다니는 먼지 한 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식어 빠진 복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해리는 혼자서 발소리를 냈다.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해리는 그 곳에 들어서서 고개를 돌렸다. 라운드 티셔츠 위에 남방을 걸치고 점퍼까지 껴입은 뒤에, 양 어깨엔 가방을 맨 피터 파커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물론 실제로 해리의 곁에 피터는 없고 그가 여기 올라오기 전에 보았던 폐쇄회로 카메라의 화면이 해리의 눈앞에서 다시 재생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기억나세요? 피터에요. 어렸을 때 해리랑 자주 놀았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시려나. 리처드 파커 씨의 아들이라고 하면 기억나시겠어요?”
피터는 말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오스본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칸막이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 노만 오스본의 사진이 피터의 앞에 있었다.
“사실… 으음, 괘씸하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아저씨에게 명복을 빌어주거나 아저씨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 여기 온 건 아니에요. 전 아저씨가 아빠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루즈벨트에 가 봤거든요. 루즈벨트가 뭐냐고 물어보지는 않으시겠지요? 이제 거기는 저만 오고 갈 수 있어요. 아저씨가 별로 반가워하지는 않으실 것 같네요.”
눈앞의 남자를 특별히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면서도 피터는 잠깐 쭈뼛거렸다. 그는 어른스럽다가도 눈 깜짝할 새에 순수해질 수 있었다.
“제가 여기 온 건… 여기서라면 해리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피터가 오스본을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는 혹시 해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계세요?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저와 똑같은 나이인 해리가 어째서 죽어가고 있었는지, 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병을 앓고 있었길래 방사능 거미 같은 게 필요했는지…. 그리고 해리는 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는지. 제 아무리 거미줄 쏘고 날아다니는 인간보다는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저씨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좀 더 유능하리라고 보는데요.”
피터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계속 그의 등 뒤에 머무르고 있던 손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 꼼지락거렸다.
“…물론 저는 여기 나타날지도 모를 해리를 기다리려고 왔지만, 아저씨를 위한 것도 가져왔어요. 짜잔.”
피터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이면서 하얀색 꽃 한 송이를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사진조차 근엄하고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노만 오스본은 입을 꾹 다문 표정으로 피터를 응시했다. 피터는 꽃을 두어 번 흔들고 팔을 내렸다.
“그럼, 저 여기 좀만 있을게요.”
피터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고 지퍼를 열었다. 스파이더맨의 가면 대신 작은 책과 MP3 플레이어가 나왔다. 그는 사실 안에 거미가 그려진 옷을 받쳐 입지도 않았다. 스파이더맨이자 피터 파커가 아니라, 오스본 가의 꼬마와 유일하게 어울려주었던 작은 소년 피터로서 그는 노만 오스본이 정면으로 보이는 딱딱한 벽에 등을 붙이며 아래로 미끄러졌다. 피터는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펼쳤다.
해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가 자신의 친구에게 눈길을 돌렸다. 피터가 들고 온 책은 얇지 않았다. 300페이지는 넘을 법한 충분히 두꺼운 책이었다. 그는 피터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을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피터에게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 해리는 피터가 한 손에 꽉 잡히는 책을 끝까지 다 읽고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노만 오스본은 이번에도 해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을 방관했다. 오스본 가문이 이 시설을 이용하면서 많은 투자금을 쏟아 부었던 역사가 해리에게 통제실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쥐어주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피터가 자신의 아버지를 마주하면서 자신을 기다렸다는 걸 몰랐을 것이었다.
해리가 눈을 깜빡였다. 아직 피터는 그의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 아버지 기일을 알고 있었네.”
해리는 마치 자신은 리처드 파커가 사고를 당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피터는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여건이 됐다면 나도 갔을… 아니, 단정 지을 수는 없겠다. 요새 나는 내가 10분 뒤에 무슨 일을 저지를 건지도 모르고 살거든. 마취제에 취해 있지 않았더라면 글쎄, 갔을 수도 있고. 대신 증오심에서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면 가지 않았을 거고.”
그는 평온하게 말했다. 마취제를 술로, 증오심을 숙취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해리가 피터와 있으면서 구사했던 어법이었다. 해리 오스본은 피터 파커의 곁에서 가장 평온했었다. 피터는 오래간만에 친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친숙한 말투를 듣지 못하고 두 번째 책장을 넘겼다.
“꽃은 그냥 여기 두고 가지. 예쁜데.”
노만 오스본의 작은 서랍을 열어도 되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던 피터는 결국 가기 전에 사진 앞에서 꽃을 한 번 더 흔들고 나왔다. 지금 피터의 하얀 꽃은 그의 옆에 놓여 차분하게 꽃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해리는 슬프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 때 피터는 해리가 서 있는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해리는 피터를 보고 있는데 피터는 그를 보지 못했다. 세 번째 책장이 팔랑거렸다.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피터가 책을 읽으면서 그를 기다리는 데 소모한 시간은 3시간이 약간 못 되었다. 피터는 충분히 오래 기다렸다. 아마 피터는 그웬 스테이시가 처음으로 땅에 묻힌 그 순간부터 때때로 해리를 기다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걸 직감하고 있는 해리는 자신의 푸념을 끝맺지 않고 그것이 허공에 의미 없이 흩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피터가 가져온 꽃은 정말 예뻤다. 해리는 또 쓰게 웃었다.
그는 오랫동안 피터를 생각하고, 그보다는 짧게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 뒤에 납골당에서 나왔다.
해리는 차에 타기 직전 운전사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놓으라며 손짓했다. 그는 전화기를 받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비서와 통화를 했다. 통화는 짧았고, 해리가 이태까지 자신을 은둔자로 잘 포장해 왔기 때문에 운전사는 말없이 차의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일주일 뒤에 피터는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묘석 위에, 자신이 해리와 그의 아버지에게 주려고 샀었던 하얀색 꽃이 따뜻하게 아버지를 덮고 있음을 발견했다.